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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왕도 익산, 그 미완의 꿈 : 무왕과 왕궁리, 선화공주와 미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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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병호
  • 출판사 : 책과함께
  • 발행 : 2019년 08월 12일
  • 쪽수 : 332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889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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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마를 캐는 백제의 흙수저 청년 서동과 그 적국 신라의 금수저 처녀 선화공주의 로맨스가 펼쳐진 설화의 도시. 유네스코 세계역사유산(백제역사유적지구)으로 등재된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이 있는 역사의 도시. 백제가 도달한 고대왕국의 위용과 역사 문화 경관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고도/왕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건립 시기가 밝혀진 석탑 중 가장 오래된 석탑에다, 이제 단일 문화재 기준 최장기 보수 공사라는 새로운 기록이 추가된 미륵사지 석탑이 있는 유적·유물의 도시. 그리고 무왕이 왕국의 부활이라는 운명을 걸고 던졌던 마지막 정치적 승부수의 도시이자 미륵사의 발원자로 알려진 선화공주의 풀리지 않는 실체를 둘러싼 미궁의 도시 익산.
    일본인 관학자들에 의해 익산의 근대적 문화재 조사가 처음 시작된 1910년부터,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준공식’이 있은 2019년 현재까지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 제석사지, 쌍릉 등 익산의 주요 유적과 그곳에서 출토된 문화유산의 특징과 역사적 의미를 통해 ‘익산을 낳은 백제’ ‘백제를 품은 익산’을 대면해보는 책이다.
    독자들은 한국사에서 주목된 바 없는 백제 사비기(538∼660)의 또 다른 중심 곧 우리에게 낯선 ‘고도 익산’ ‘왕도 익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역사도시 익산’의 오래된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책은 120여 컷에 이르는 익산의 백제 유적, 유물, 발굴 현장 사진, 도면 등을 체계적으로 싣고 있어 ‘백제의 익산’ ‘익산의 백제’ 문화유산의 고고학적·미술사학적 맥락을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출판사 서평

    천년 고도(古都) ‘익산’의 오래된 미래

    100년 전 익산은 어떻게 발견되었을까?
    그 후 ‘고도 익산’ ‘왕도 익산’이라는 역사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마를 캐는 백제의 흙수저 총각 서동과 그 적국 신라의 금수저 처녀 선화공주 사이 고의의 ‘가짜뉴스’가 오작교가 된 로맨스가 펼쳐진 설화의 도시. 유네스코 세계역사유산(백제역사유적지구)으로 등재된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이 있는 역사의 도시. 백제가 도달한 고대왕국의 위용과 역사 문화 경관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왕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건립 시기가 밝혀진 석탑 중 가장 오래된 석탑에다, 이제 2019년에 단일 문화재 기준 최장기 보수공사(20년)라는 새로운 기록이 공식적으로 추가된 미륵사지 석탑이 있는 유적·유물의 도시. 그리고 무왕이 왕국의 부활이라는 운명을 걸고 던졌던 마지막 정치적 승부수의 도시이자 미륵사의 발원자로 알려진 선화공주의 풀리지 않는 실체를 둘러싼 미궁의 도시, 익산.
    《백제 왕도 익산, 그 미완의 꿈》은 일본인 관학자들에 의해 익산의 근대적 문화재 조사가 처음 시작된 1910년부터,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준공식’이 있은 2019년 현재까지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 제석사지, 쌍릉 등 익산의 주요 유적과 그곳에서 출토된 문화유산의 특징과 역사적 의미를 통해 ‘익산을 낳은 백제’ ‘백제를 품은 익산’을 대면해보는 책이다.
    독자들은 한국사에서 주목된 바 없는 백제 사비기(538∼660)의 또 다른 중심, 곧 우리에게 낯선 ‘고도 익산’ ‘왕도 익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역사도시 익산’의 오래된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책은 120여 컷에 이르는 익산의 백제 유적, 유물, 발굴 현장 사진, 도면 등을 체계적으로 싣고 있어 ‘백제의 익산’ ‘익산의 백제’ 문화유산의 고고학적·미술사학적 맥락을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익산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 쌍릉과 제석사지, 익산토성을 중심으로 현재 추진되고 있는 여러 사업은 ‘고도 익산’의 역사·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발굴이 이루어졌고 기존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료들이 발견되어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수수께끼 같은 익산의 유적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쏟아내고 새로운 전설과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진행형의 백제, 또 하나의 백제 익산
    설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고고학과 역사학의 경계에서


    고도(古都)는 백제 왕도, 신라 왕경, 사비 도성처럼 ‘왕도(王都)’ ‘왕경(王京)’ ‘도성(都城)’으로 불린다. 국왕이 거주하는 왕도에는 왕궁이나 관아 등의 국가시설이 집중되며, 주변 지역과 구별되는 정연한 도로망·방어시설·종교시설 등을 갖추고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한다. 익산은 백제가 도달한 왕도의 위용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역사 문화 경관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다. 익산의 왕궁리유적, 미륵사지, 쌍릉, 익산토성 등은 통치 공간인 왕궁, 국가 통치 이념을 보여주는 사원, 왕실의 권위를 보장하는 사후 공간인 능묘, 방어시설인 성곽에 대응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익산의 백제 유적과 그곳에서 나온 유물들은 백제라는 고대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다만 백제는 무왕(재위 600∼641)이 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660)하고 말았다. 왕궁리 일대에 왕궁을 건설하고, 용화산 아래에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사원인 미륵사를 건립해 국가의 면모를 일신하려 했던 무왕의 꿈, 선화의 꿈, 왕도 익산의 꿈이 한순간에 꺾여버린 것이다. 백제 무왕의 익산 경영 프로젝트는 결국 이루지 못한 미완의 꿈이 되었고, 호국사찰이자 왕실 사원인 동양 최대의 가람 미륵사는 이제 흔적만 남아 있으며 미락사의 발원자로 알려진 선화공주는 그 실체가 미궁에 빠져 있다.
    책에서 무왕과 선화공주, 왕궁리와 미륵사는 역사로도 설화로도 이야기되고, 설화와 역사의 경계 사이에서도 고고학과 역사학의 경계 사이에서도 다루어진다. 이처럼 이 책은 단순히 답사 안내나 문화유산 소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유적·유물 등 고고학 자료의 발견으로 과거에 역사적 사실로 믿었던 것들이 어떻게 허구가 되고 또 어떻게 새로운 역사서술이 이루어지는지를 주요하게 다룬다.
    무왕과 선화공주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삼국유사》 무왕 조에 실린 서동설화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며, 왕궁리 일대의 왕궁 건설과 미륵사 건립 이야기 뒤편에는 다층적 시간이 녹아 있다. 그것은 결코 백제사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백제의 왕도 익산에 관한 이야기에는 백제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그리고 백제가 멸망한 이후로도 계속해 지금까지 익산을 역사의 터, 삶의 터전으로 지켜온 익산 사람들의 바람이 응축되어 있다.

    “무왕 대 백제는 신라와 모두 13차례 전쟁을 벌일 정도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 따라서 민간에 널리 퍼져 있던 설화의 주인공인 셋째 딸을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로 대치해 백제와 신라 사이 해묵은 갈등을 해소하려는 양국 민중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 있다. 백제와 신라의 극한적 대치 속에서 양국이 신랑과 각시, 각시와 신랑처럼 금슬 좋은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양국 민중의 간절한 꿈과 소망이 서동설화로 남겨졌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책의 내용]

    ■ 프롤로그
    “익산은 미륵사지 석탑에서 사리봉영기가 발견되기 이전에도 수없이 다채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조선시대 실학자들은 익산을 한반도의 가장 오래된 국가인 고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이 위만에게 쫓겨 남쪽으로 이동해서 정착한 마한의 중심지로 믿고 있었다. 또 익산은 고구려 유민인 안승이 세운 보덕국이 있던 땅이며, 견훤이 백제가 시작된 곳이라며 후백제의 정통성을 삼으려 했던 땅이기도 하다.
    책에서 다루는 왕궁리유적, 제석사지, 미륵사지, 쌍릉을 둘러싼 다채로운 층위의 이야기들은 왕도 익산, 역사도시 익산을 이해하고 익산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데 작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제1장 익산 지역 고적조사의 여명
    “익산의 유적·유물에는 100년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흔적이 응축되어 있다.”
    100년 전 익산이 어떻게 발견되고 그 후 어떻게 고도 익산, 왕도 익산이라는 역사상이 만들어졌는지를 알아본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근대적 고적조사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 익산이 어떻게 인식되었고, 또 단편적 유적 조사 이후 익산의 주요 유적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어갔는지를 언급한다.
    1910년 일본인 관학자(官學者) 세키노 다다시 팀에 의한 미륵사지·왕궁리유적·미륵산성 등의 조사, 1915년 미륵사지 석탑의 ‘시멘트’ 보수 공사, 1917년 야쓰이 세이이쓰 팀에 의한 익산 쌍릉의 발굴, 우현 고유섭의 미륵사지 석탑과 왕궁리 석탑 연구, 해방 이후 익산에 관한 최초의 논문인 이병도의 서동설화 연구, 1960년대 왕궁리 석탑의 수리와 사리장엄구의 발견, 백제 무왕 대 익산으로 천도했다는 내용이 기록된 국내외 유일한 사료인 교토 쇼렌인 사찰의 《관세음응험기》의 발견, 1973년 원광대학교 부설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발족과 익산 지역 선사·고대사 연구 핵심 센터로서 연구소의 주요 활동, ‘익산문화권’ 개념의 등장, 정부에 의해 진행된 ‘백제문화권 개발 사업’ 등을 정리하고 있다.

    ■ 제2장 익산의 백제 왕궁과 사원의 조사
    “왕궁리유적과 제석사지는 사비기 백제 왕궁과 사원의 특징이 집약된 곳”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별도설 등을 얘기할 때 미륵사지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왕궁리유적과 제석사지를 알아본다. 1976년 시작되어 30년이 넘는 왕궁리유적의 발굴 과정 동안 이 유적에 대한 시각의 변화, 왕궁리유적을 통해 밝혀진 백제 왕궁의 특징에 대해 소개하며, 왕궁 동쪽에 조영된 제석사지와 그 폐기장 유적(선사시대 조개더미를 제외하고 역사시대 유적 중 유일한)의 발굴 성과도 함께 설명한다.
    왕궁리유적에서 발견된 공방지, 왕궁리 공방지 동서 석축 배수로 남쪽에서 발견된 3기의 수세식 대형 화장실(최초로 확인된 삼국시대 화장실 유적) 유구와 그 내부 출토 기와·토기, 왕궁리 5층 석탑과 그 사리장엄구 등을 통해 왕궁리유적 성벽의 축조나 왕궁리유적의 유구·유물들이 7세기 초까지 그 시기가 소급되며 백제 멸망을 전후한 자료들과 명확히 구분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익산 지역 고대사 서술은 큰 전환을 맞게 된다. 이후 왕궁리유적 발굴은 사비기 백제 왕궁의 실상을 밝히는 방향으로 추진되었고, 일례로 왕궁이 사원으로 바뀌는 과정이 논의 및 연구 주제로 부각되었다. 이를 통해 익산 주요 유적의 장기적 발굴에서는 7세기 전반 익산에 부여에 버금가는 중요한 국가시설이 있었음이 점차 드러나게 되었다. [어떤 연구자들은 익산을 별도(別都), 행궁(行宮), 이궁(離宮), 별부(別部)로 보기도 하고, 무왕이 익산 천도를 계획했지만 실제 단행하지는 못했다는 의미에서 ‘익산 경영(經營)’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 제3장 미륵사지 발굴과 동탑의 복원
    “미륵사지 발굴은 5개년씩 총 3차에 걸쳐 이루어져 1994년 말에야 끝이 났다.”
    1980년부터 1994년 말까지 15년간 진행된 미륵사지 발굴의 성과, 동원 석탑의 복원 과정, 도립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의 건립 과정 등 미륵사지 서탑에서 사리장엄구가 출현하기 전까지 이루어진 미륵사지의 발굴·보존·활용 상황을 차례로 살핀다. 동탑 복원의 문제와 한계도 들여다본다.
    미륵사지 동원과 서원 사이에 배치된 중원 금당지와 목탑지의 발견으로 확인된 삼원병렬식 가람배치(각기 중문·불탑·금당으로 이루어진 동원·중원·서원의 3개 사원을 나란히 병치해 1개의 대사(大寺)를 만드는 가람배치)는 미륵사지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고대 사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다. 미륵사지 발굴 과정에서 7만 810평(약 23만 4,083제곱미터)이나 되는 넓은 유구 면적이 조사되었고 1만 8,710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동탑을 7층과 9층 2개 안 중 9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기까지의 과정과, 복원 이후 과거의 옛 모습이 아니라 20세기의 현대식 건축물을 세웠다는 혹평을 면치 못하는 사정이 자세히 밝혀진다. 이러한 미륵사지 발굴은 1997년 미륵사지유물전시관(2019년 2월 국립익산박물관으로 승격, 2019년 말 개관 예정)의 설립으로 이어지며 문화유산의 보존·활용·전시·교육에서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다른 유적들의 선례가 되었다.

    ■ 제4장 미륵사지 서탑의 보수와 선화공주
    “사리봉영기에는 백제 왕후로 사택적덕의 딸만 등장할 뿐 선화공주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1999년 4월 문화재위원회에서 미륵사지 석탑(서탑, 국보 제11호)의 해체 수리 방침이 결정되고, 서탑 해체 수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서탑 남서쪽 모서리에서 발견된 석인상, 서탑의 사리용기인 금동제외호·금제내호·유리병과 진신사리, 6개 청동합과 각종 공양품 등), 특히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의 특징과 역사적 의미, 이 사리장엄구 발견 이후 모든 논의를 휩쓸어버린 선화공주 실체/실존 논쟁의 대표적 견해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2009년 1월 서탑 해체 과정 중 ‘639년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자 백제 왕후’가 미륵사 발원의 주체로 기록된 사리봉영기가 발견되면서 그간 미륵사의 발원자로 알려진 선화공주의 실존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미륵사지와 사리장엄을 주제로 2009년 한 해에만 최소 6차례의 학술대회가 열렸고 30편 이상의 논문이 쏟아졌다. 백제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문헌사, 고고학, 미술사, 불교사 연구자들은 모두 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서 가장 큰 관심은 단연 선화공주의 실존 여부였다. 지금까지도 학계의 반응은 크게 둘로 양분된다. 하나는 백제 당대인이 남긴 1차 기록을 믿고 선화공주의 실체를 부정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639년 당시 백제왕후가 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후라고 해도 백제 무왕의 왕비가 여럿일 수 있다는 점에서 선화공주를 여전히 긍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자 측은 백제 무왕 대에는 백제-신라 간 전쟁이 빈번해 백제와 신라 사이에 혼인이 맺어질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후자 측은 국가 간 혼인은 정치적·외교적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양국 사이에 긴장관계가 높아질수록 역으로 혼인이 더 쉽게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고 반박한다. 이 내용은 제5장으로 연결된다.

    ■ 제5장 쌍릉의 재조사와 백제 무왕
    “소왕묘의 분명한 피장자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익산 쌍릉(대왕묘와 소왕묘)의 피장자(被葬者) 문제를 이야기한다. 1917년 일제강점기 당시 이루어진 쌍릉 발굴의 재보고서가 거의 100년 만인 2015년 12월에 간행되면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대왕묘 재발굴을 통해 그 무덤 주인이 밝혀지는 과정을 알아보고, 나아가 소왕묘의 무덤 주인을 밝히는 일이 선화공주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핵심임을 강조한다.
    일본인 고고학자들이 1920년 작성한 쌍릉 발굴 보고문은 본문 1쪽, 사진 2컷, 도면 2컷이 전부였다. 이에 국내외 할 것 없이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수집·정리하려는 노력을 거쳐 나온 국립전주박물관의 《익산 쌍릉》 보고서에서는 쌍릉의 피장자가 무왕 부부가 아닌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대왕묘가 선화공주의 묘일 가능성이 크다는 새로운 견해가 제시되었다. 이는 학계의 통설(대왕묘=무왕의 묘, 소왕묘=무왕 왕비의 묘)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미륵사지 사리봉영기에서 시작된 선화공주의 실체를 둘러싼 논란이 이제는 쌍릉의 피장자 문제로 옮아가게 된 것이다. 이를 기화로 2017년 9월 대왕묘의 재조사(익산시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착수하게 된다. 이 대왕묘 재조사에서 부여 최대 고분보다 더 큰 대왕묘의 석실에서 발견된 인골의 분석 결과는 대왕묘가 백제 무왕의 무덤일 개연성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또한 대왕묘와 소왕묘에서 출토된 밑동쇠와 山자형 장식 세트의 제작 기법 변화 추이를 통해 소왕묘 유물이 대왕묘 유물보다 조금 더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따라서 소왕묘가 대왕묘보다 먼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는 소왕묘의 피장자가 적어도 서탑 사리봉영기의 ‘사택왕후’는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사택왕후는 대왕묘에 묻힌 무왕보다 더 나중에 죽었기 때문이다. 대왕묘의 묘도(무덤길) 조사를 통해 대왕묘가 그 피장자가 살아생전에 미리 준비한 수릉(壽陵)이고, 또 무왕이 사비기 왕과 왕비의 무덤이 주로 축조된 부여 능산리 일대가 아니라 익산에 수릉을 만든 것이 무왕의 익산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 에필로그
    “이제 비로소 문화유산의 보존 원칙이나 보존 철학에 대해 고민하는 직접적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익산과 부여 두 지역에는 모두 ‘서동공원’이라는 이름의 공원이 있다. 익산 사람들은 마를 팔던 어린 서동이 왕위에 오르기 전 성장한 곳이 익산인 만큼 익산에 서동공원을 두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부여 사람들은 수도 남쪽 연못가에서 무왕의 어머니가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현재의 궁남지 옆에 서동공원을 만드는 게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한다. 지역사회에서 이처럼 문화유산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문화유산의 발굴, 보존·정비, 특히 활용 문제가 고도의 정치성이 포함된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화유산의 발굴, 보존·정비, 활용 논의가 점차 각 지역의 특수성만을 강조해 지역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 이후 나온 감사원의 지적과 문화재청의 반박의 입장을 살핌으로써 문화유산의 보존 원칙이나 철학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는 장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목차

    프롤로그
    1,370년 전 백제의 타임캡슐을 열다 / 미륵사지 사리장엄구 발견의 충격 / 미궁에 빠진 선화공주 / 한 해 6차례나 열린 학술대회 / 사리장엄구 발견, 그 뒤 10년 / 새로운 전설과 역사가 만들어지는 땅, 익산 / 이 책의 서술 방향과 구성

    제1장 익산 지역 고적조사의 여명
    익산 지역 고적조사의 여명 / 일제강점기, 한반도 고적조사의 시작 / 세키노의 첫 번째 익산 답사 / 1915년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 / 1917년 익산 쌍릉 발굴 / 후지시마의 미륵사지 가람배치론 / 우현 고유섭의 석탑 연구 / 두계 이병도의 서동설화 연구 / 왕궁리 5층 석탑의 수리와 사리장엄구의 발견 / 제석사지와 《관세음응험기》의 발견 /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발족 / 익산문화권과 수로 교통 / 백제문화권 개발 사업의 시작

    제2장 익산의 백제 왕궁과 사원의 조사
    익산의 백제 왕궁과 사원의 조사 / 왕궁리유적의 초기 발굴 / 공방의 발견과 분위기의 반전 / 수세식 대형 화장실의 발견 / 익산에서 찾은 백제 왕궁 / 왕궁리 공방의 특징 / 왕궁에서 사원으로 / 5층 석탑과 사리장엄구의 비밀 / 금강경판의 제작 시기 / 금강경판의 제작 방법 / 연동리 석조여래좌상과 광배 / 제석사지 발굴의 시작 / 제석사지의 거대한 목탑지 / 제석사지 폐기장 유적의 발굴 / 제석사지와 왕궁리유적의 위치 관계

    제3장 미륵사지 발굴과 동탑의 복원
    미륵사지 발굴과 동탑의 복원 / 미륵사지의 발굴 전 상황 / 중원 목탑지와 금당지의 발견 / 마침내 드러난 가람배치 / 특이한 모양의 금당지 기단 / 백제 멸망 이후에도 이어진 법등 / 연못지와 사자사지의 발굴 / 라이벌, 황룡사지와의 비교 / 동탑을 복원하기까지 / 미륵사지 석탑은 몇 층이었을까 / 동탑의 복원 과정과 교훈 /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의 개관 / 미륵사지의 보존과 활용

    제4장 미륵사지 서탑의 보수와 선화공주
    미륵사지 서탑의 보수와 선화공주 / 서원 석탑의 해체 경위 / 서탑 해체 과정에서 밝혀진 것들 / 서탑 남서쪽 모서리에서 발견된 석인상 / 사리용기와 진신사리의 발견 / 청동합과 각종 공양품 / 사리 공양 의례와 공양품 / 사리봉영기의 내용 / 선화공주 논쟁 / 《삼국유사》 무왕 조의 설화적 접근 / 미륵사지 3원의 배치 계획 / 서탑 성토층에서 나온 수막새 / 출토 기와로 본 미륵사지의 조영 순서

    제5장 쌍릉의 재조사와 백제 무왕
    쌍릉의 재조사와 백제 무왕 / 문헌기록에 보이는 쌍릉 / 1917년 쌍릉의 조사 성과 / 100년 만에 나온 발굴 보고서 / 대왕묘 주인공에 대한 논란 / 대왕묘 봉토에서 확인된 판축 기법 / 부여 최대 고분보다 더 큰 대왕묘의 석실 / 대왕묘에서 발견된 인골 / 대왕묘의 묘도가 말하는 것 / 무왕의 부모는 누구인가 / 소왕묘에서 나온 유물들 / 소왕묘는 사택왕후의 무덤일까 / 소왕묘의 피장자는 누구일까 / 무왕의 익산 개발 배경

    에필로그
    감사의 글

    부록
    익산 지역의 백제 주요 유적 조사 및 정비 연표 / 익산 지역의 백제 주요 유적 분포지도

    사진 제공

    본문중에서

    제2단 심주석이 산업용 로프에 단단히 묶여 육중한 크레인으로 공중에 들리는 순간,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일제히 탄성이 터져나왔다. 살짝 벌어진 심주석 사이로 1,000년이 넘게 갇혀 있던 다량의 보물이 그 자태를 드러낸 것이다. 심주석 한가운데 뚫린 사리공 안에는 금, 은, 유리로 만든 갖가지 보물이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보물창고를 발견한 순간이며, 백제사의 오랜 비밀을 간직해온 빗장이 열린 순간이다.
    (/ p.9)

    20세기 초 일본인 관학자들은 고고학이라는 신학문을 트레이닝하기 위한 연습장으로 한반도의 유적과 유물을 활용했다. 1910년 익산의 문화유산들이 처음 조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륵사지 석탑이 시멘트 콘크리트로 덮이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그 뒤 1917년 쌍릉 발굴과 1920년대 미륵사지 지표조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익산은 이후 오랫동안 학계나 일반인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한 변경 지대였다.
    (/ p.31)

    익산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경주나 부여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1960년대를 지나면서였다 그 서막을 올린 것이 왕궁리 5층 석탑의 해체 수리 공사였다. 이 석탑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미 돌과 돌 사이 틈이 벌어지고 북쪽으로 기울어져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이에 1965년 11월부터 석탑을 전면적으로 해체하는 보수 작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동국대 교수 황수영을 책임자로 하여 진행된 이 공사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리장엄구가 대거 발견된 것이다.
    (/ pp.52~53)

    익산에는 왕궁리유적, 제석사지, 미륵사지, 쌍릉, 익산토성(오금산성) 등 고대 도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왕궁, 사원, 왕릉, 성곽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1980년 익산 미륵사지 발굴 이후 왕궁리유적과 제석사지에 대한 대규모 조사가 이어졌다. 그에 따라 백제 사비기 익산에 왕궁이 있었는지, 그러한 왕궁이 무왕의 익산 천도와 관련된 유적인지가 커다란 관심사로 떠올랐다.
    (/ p.75)

    백제나 그 영향을 받은 일본에서 이처럼 왕궁과 사원을 계획하에 배치한 것은 정치공간과 종교공간을 일체화해 하나의 통합의례의 장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왕궁과 사원은 경관적으로도 주변 지역과 구분되어 도성을 더욱더 돋보이게 장엄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왕궁리유적과 제석사지는 사비기 백제 왕궁과 사원의 특징이 집약된 곳이라 할 수 있다.
    (/ pp.128~129)

    미륵사지의 발굴과 보존 활동은 동탑의 복원이나 전시관의 개관으로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서탑의 해체 복원 문제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콘크리트로 보수되어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는 석탑. 전라북도와 익산 지역 사람들은 미륵사지 서탑을 제대로 복원하는 것이 지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고 의외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 p.185)

    사리봉영기가 발견되고 난 직후 열린 학술대회에서 가장 큰 논란은 역시 선화공주를 실존 인물로 볼 수 있는가를 둘러싼 문제였다. 학계의 반응은 크게 둘로 양분되었다. 하나는 백제 당대인이 남긴 1차 기록을 믿고 선화공주의 실체를 부정하는 입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639년 당시 백제 왕후가 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후라고 해도 백제 무왕의 왕비가 여럿일 수 있다는 점에서 선화공주를 여전히 긍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 p.223)

    백제 무왕의 익산 개발 과정은 조선 정조의 화성 개발 과정과 매우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익산은 6세기 말〜7세기 초 새로 개발된 지역으로 대왕묘와 소왕묘가 조영되었고, 화성은 18세기 최고의 건축 기술이 집적된 신도시로 융릉(정조의 아버지 장조 곧 사도세자와 그의 비 헌경왕후의 능)과 건릉(정조와 그의 비 효의왕후 김씨의 능)이 조영되었다. 사비기 백제의 최고 기술이 집적된 익산의 위상을 고대사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생각할 때 조선시대 화성의 사례를 반드시 함께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p.297)

    익산이라는 한 작은 지방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문화재 보존 활동이 일제강점기의 고적조사 사업이나 조선총독부박물관의 활동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냉철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 정책과 정치권력 사이 연계, 고고학을 비롯한 학문과 정치권력 사이 연계는 훨씬 더 공고해졌으며 훨씬 더 교묘해졌다. 박물관의 전시나 교육 활동 역시 정치권력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하기 어렵다.
    (/ p.314)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일본 와세다대학 문학연구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해 고고부, 역사부, 부여박물관 등에서 학예연구사와 학예연구관으로 근무했다. 2015년 말부터 2019년 2월 말까지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을 지내면서 익산 지역의 백제 유적과 유물에 관한 조사·연구와 전시, 국립익산박물관 건립 사업 등을 이끌었다.
    백제의 도성과 사원, 기와, 소조상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썼고, 익산 왕궁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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