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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 (큰글자도서) : 2017년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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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권정현
  • 출판사 : 다산책방
  • 발행 : 2019년 07월 15일
  • 쪽수 : 348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30622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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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다산북스 큰글자도서는 글자가 작아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분들에게 편안한 독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책 읽기의 즐거움을 되찾아 드리고자 합니다.

    한중일 세 나라가 ‘세상에 없는 요리’로 맞서다!

    이 소설은 1945년 일제 패망 직전의 붉은 땅 만주를 배경으로 전쟁을 두려워하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와 그를 암살하려는 중국인 요리사 첸, 조선인 여인 길순 세 명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첸은 “체구가 작고 깡마른 중국인”으로 “등은 꼽추처럼 목과 붙어 있으며 어깨는 공처럼 둥글고 배에도 살이 늘어져 있”는 볼썽사나운 생김새를 지니고 있지만, 손에 “무수히 불과 싸운 흔적”이 남아 있는 천재 요리사이자 비밀 자경단원이다. 그가 독살하려는 자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야마다 오토조)로, 등장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전쟁의 공포를 잊기 위해 궁극의 맛과 미륵불의 미(美)에 집착하는 유약한 겁쟁이 성격은 실제 야마다 오토조가 백만 관동군을 지휘하지 못하고 소련군에게 모두 항복시켜 칠십만 관동군을 포로로 잡히게 한 역사적 기록에 상상력을 더한 것이다.

    출판사 서평

    7년 만의 심사위원 만장일치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흩어진 독자들을 분명 다시 모을 수 있는 작품!”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칼과 혀]가 다산책방에서 출간되었다. 혼불문학상은 우리시대 대표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1년에 제정되었고, 1회 [난설헌], 2회[프린세스 바리], 3회 [홍도], 4회 [비밀 정원], 5회 [나라 없는 나라], 6회 [고요한 밤의 눈]이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혼불문학상 수상작들은 “한국문학이 아직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삶의 영역”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한편 그것을 밀도 있게 포섭해내는 역량과 기량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신뢰를 받고 있다.
    2017년 제7회 혼불문학상의 열기는 뜨거웠다. 총 282편으로 전해보다 응모작이 다소 늘었고, “전통이라는 거대한 뿌리 속에서 오늘날을 읽어내고 동시에 과거의 역사를 오늘날까지 면면히 계승되어온 통치성의 구조 속에서 맥락화”하는 수준 높은 작품이 다수였다. 이 가운데 “최근의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서서히 실체가 밝혀지고 있는 만주국”을 배경으로 “한중일의 역사적 대립과 갈등을 넘어 세 나라 간의 공존가능성을 타진한, 그리고 그것을 높은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유례없는 극찬을 받은 [칼과 혀]가 심사위원 전원의 흔쾌한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수상자 권정현 작가는 2002년 충청일보와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2016년 단편소설 [골목에 관한 어떤 오마주]로 제8회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중국인 요리사 첸과 관동군 사령관 모리, 조선 여인 길순, 세 사람의 시점으로 쓴 [칼과 혀]는 일제의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내적으론 미의 본질, 나아가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수작이다.”(심사평 중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한중일 세 나라 인물의 탁월한 형상화!


    이 소설은 1945년 일제 패망 직전의 붉은 땅 만주를 배경으로 전쟁을 두려워하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와 그를 암살하려는 중국인 요리사 첸, 조선인 여인 길순 세 명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첸은 “체구가 작고 깡마른 중국인”으로 “등은 꼽추처럼 목과 붙어 있으며 어깨는 공처럼 둥글고 배에도 살이 늘어져 있”는 볼썽사나운 생김새를 지니고 있지만, 손에 “무수히 불과 싸운 흔적”이 남아 있는 천재 요리사이자 비밀 자경단원이다. 그가 독살하려는 자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야마다 오토조)로, 등장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전쟁의 공포를 잊기 위해 궁극의 맛과 미륵불의 미(美)에 집착하는 유약한 겁쟁이 성격은 실제 야마다 오토조가 백만 관동군을 지휘하지 못하고 소련군에게 모두 항복시켜 칠십만 관동군을 포로로 잡히게 한 역사적 기록에 상상력을 더한 것이다.

    “모리(야마다 오토조)는 실존인물이다. 마지막 관동군 사령관으로 역사에 기록된 그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 겁쟁이였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실화가 내게는 소설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때때로 오토조가 되어 생각했다. 나에게 백만의 관동군이 있다. 본토엔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황제가 항복했다. 150만 이상의 소련군이 국경을 넘어오고 그 모든 장면은 꿈처럼 아침마다 의식을 뒤흔든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주 천천히, 부관이 가져온 아침식사를 들며 다음 할 일을 생각해보지 않을까?” (작가의 말 중에서)

    권정현 작가는 “한국문학사의 어떤 결여 혹은 빈틈”이라 할 수 있었던 이 역사적 사실을 “시대적으로 전혀 거리감을 느낄 수 없는” ‘요리’라는 현대적 소재로 이야기에 녹여내 “단연 이채롭고 낯선 소설”을 써낸 것이다.

    “도마 위에서 벌이는 목숨을 건 쇼를 즐기고 있다.
    나는 내 칼이 재료가 아니라 그들의 심장을 구원하길 바란다.”


    사령관 암살 계획을 세우고 황궁 주변을 서성거리던 첸은 헌병대 간부에게 잡힌다. 궁정 주방에서 일하기 위해 온 요리사라고 항변하는 첸 앞에 사령관 모리가 나타난다. 총살형으로 죽게 될 거라는 헌병대 간부의 위협과 달리 뜻밖에 사령관 모리는 첸이 광둥 제일의 요리사라는 걸 증명하도록 목숨을 건 불가능한 요리 시험을 내린다.

    “조건이 있지. 요리 재료는 단 한 가지! 기름은 물론 어떤 양념도 사용해선 안 된다. 조리기구도 제한한다. 오로지 재료를 익힐 불과 음식을 다듬을 칼의 감각에 의지하도록. 요리 시간은 단 1분, 재료는 신경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해.” (39쪽)

    첸은 단 1분의 제한시간 동안 칼과 한몸이 되어 구운 송이버섯 요리 ‘향식(餉食)’을 만들어 대령해 죽음을 면하고 장교식당에서 일하게 된다. 첸은 점점 비밀 자경단원이 아닌 요리사로서 모리에게 궁극의 맛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런 첸의 요리에 자신도 모르게 점점 길들여져가는 모리는 군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풀려나 첸의 아내가 된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조선인 여인 길순을 궁으로 들인다. 비로소 “날카롭고도 위태”한 삼자 대결의 새 국면이 펼쳐진다.

    “혀가 잘린 요리사 하나를 알고 있다. (…) 그 사내는 거의 매일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위해 한 가지 요리를 만들어 올리지. 세상에서 가장 정성스럽게, 가장 맛있게, 자신의 존재를 요리하고 있어.” (226쪽)

    동아시아적 상상력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과감하고 도발적인 소설!


    한중일 각 나라를 대변하는 첸, 모리, 길순은 모두 ‘칼과 혀’와 밀착된 삶을 산다. 민족 간 싸움의 무기로서 ‘칼과 혀’로 서로를 해치려고 하지만, 각자 소중한 음식에 관한 추억―첸과 아버지의 칭탕거우러우(淸汤狗肉, 개고기찜), 모리와 어머니의 분고규(豊後牛, 규슈 지방의 전통 쇠고기 요리), 길순과 고향 요리 청국장―의 상징으로서 또 다른 ‘칼과 혀’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무하기도 한다.
    “가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문 하나가 저 부엌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어느 부엌이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린 배를 채울 무언가가 숨어 있게 마련이지. 죽이고 죽는 전쟁쯤은 잠시 잊어도 좋은 그곳.” (230쪽)
    소련군이 진군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모리는 의식을 치르듯 삼시세끼를 부지런히 먹고 마시고, 심지어 “먹는 즐거움”을 느낀다. 화덕이 있는 장교식당과 극락사의 공양간처럼 중요하게 등장하는 ‘부엌’이라는 공간은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문”, “죽이고 죽는 전쟁쯤은 잠시 잊어도 좋은” 곳이다. “천상의 향기가 풍기는 듯” 생생한 묘사로 “연이어 식탁 위에 오르는” 구운 송이버섯, 포탸오창(佛跳墻), 쉐창(血腸), 새우딤섬 요리, 홍샤오러우(红烧肉), 지부니(冶部煮), 문어죽, 흰 쌀죽 등 십여 가지의 다채로운 한중일 요리들이 그 부엌에서 만들어진다. ‘부엌’이라는 공간은 죽은 재료가 새로운 하나의 생명으로 거듭나 서로의 입속으로 들어가 소화되듯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한중일 “증오의 역사”에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무대이다.

    “나의 하루는 먹는 것으로 시작해 먹는 것으로 끝난다. 먹는다는 것은 내게 잠시나마 이 전쟁과 직위를 잊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 요리가 우리를 구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21쪽)

    허기 속에서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하루,
    칠십여 년 전과 다르지 않은 오늘을 보여주다


    권정현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교양 삼아 읽었던 [동아시아의 민족이산과 도시] [기억 속의 만주국] [미식 예찬] [악마의 정원에서] <만선일보>” 등 책과 신문 들에서 영감을 받고 참조하여 이 소설을 썼음을 밝힌다. “수고로움 속에 한 끼의 식탁이 차려지고 누군가는 허기 속에서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1945년 전쟁 통의 어느 하루가 2017년 오늘날의 하루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느 월요일 저녁의 봄 호수공원에서 누군가 맥주를 마시고 누군가 폭죽을 터뜨리고 또 벤치에 혼자 앉아 숨죽여 우는 어느 여인을 보면서 문득 깨닫는다.
    “작품에 대한 취재도 능력의 하나이지만 그 모든 것들을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게 적절히 버무리고, 그 작업과정에서 진정성을 놓치지 않는 것은 거의 천부적 자질이 없이는 불가능한 부분이다.” “만주라는 붉은 땅”에서 역사의 현재를 짚어내는 권정현 작가의 예리하고 섬세한 눈은 “한중일 민중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은밀하게, 그러나 위대하게 제시한다. 한국소설사에서 한중일 역사적 대립과 갈등을 넘어 세 나라 간의 공존가능성을 타진한, 그리고 그것을 높은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경우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거니와, 그런 점에서 보자면 [칼과 혀]는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도발적이고 혁신적인 소설임에 틀림없다. 좀 더 과감하게 말하면 지구가 하나의 공동체가 된 이 지구시대에 걸맞은 소설적 모험이며 동시에 한국소설 전반이 드디어 지구시대라는 새로운 영토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표지다.”(심사평 중에서)

    “나는 여전히 말하고 싶다. 이제 우리의 내기는 끝이 났다고. 나는 무엇도 요리하지 않았고 당신은 무엇도 먹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외로웠을 뿐이라고. 나는 요리를 했고 당신은 접시를 비웠다. 불과 싸우던 나의 시간도, 맵거나 짜거나 달콤하거나 시었을 온갖 요리의 맛들도, 우리를 아프게 했던, 시대가 만들어낸 순간의 고통일 뿐이라고. 한 접시의 요리가 깨끗이 비워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증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318-319쪽)

    추천사

    [칼과 혀]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흡인력이 강한 소설이다. 만주 신경(新京, 현 장춘)에 주둔하고 있는 관동군 사령부를 무대로 일본 패전까지 전개되는 70여 년 전 이야기지만 시대적으로 전혀 거리감을 느낄 수 없다. 그것은 광둥요리와 모리 사령관 독살 계획이 중심 줄거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눈길을 끈 것은 독창적인 인물 창조다. 요리와 미륵불상에 관심이 많은 모리 사령관과 광둥요리사 첸, 청진이 고향으로 위안부가 되었다 풀려나 첸의 아내가 된 길순은 잘 만들어진 인물이다. 특히 이 소설의 장점은 도마, 혀, 칼의 알레고리를 중심으로 주제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데 있다. 문체가 정밀하고 구성이 탄탄하며 소설 미학이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 문순태 / 소설가

    중국인 요리사 첸과 관동군 사령관 모리, 조선 여인 길순, 세 사람의 시점으로 쓴[칼과 혀]는 일제의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내적으론 미의 본질, 나아가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동시에 던지고 있는,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수작이다.
    일제 말 만주국을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은 치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를 형상화해 웅장한 스케일의 사건들을 파란만장하게 펼쳐 보인다.
    천상의 향기가 풍기는 듯 연이어 식탁 위에 오르는 생생한 요리들의 묘사가 기막히며, 이런 발군의 묘사에 맛깔스러운 대화와 원숙하고 깔끔한 문장, 치밀한 구성이 뒤섞여 군침이 저절로 흐르게 만든다.
    - 김양호 / 소설가,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응모된 원고 상태로[칼과 혀]를 읽는 내내, 거의 신기하단 느낌을 지닌 채 빨려 들었다. 이야기를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밀고 나가는 박력도 대단했고 인물 각각이 지닌 개성을 형상화하는 능력도 탁월해서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이 곁에 있는 듯 생생했다. 소설가에겐 작품에 대한 취재도 능력의 하나이지만 그 모든 것들을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게 적절히 버무리고, 그 작업과정에서 진정성을 놓치지 않는 건 거의 천부적 자질이 없이는 불가능한 부분이다. 문학적 묘사와 문체로 형상화한 작가의 능력과 노고에 대해, 동업자이되 독자인 사람으로서 갈채를 보낸다.
    - 이경자 / 소설가

    세상에서 가장 무심하고 냉정한 칼과 가장 부드럽고 다감한 혀가 실낱같은 외길 위에서 만난다. 칼은 혀를 일거에 베어버리려 춤추고 혀는 혀대로 칼을 녹여내려고 뜨겁게 자신을 가열시킨다.
    2차 대전 말기, 중국 만주 일대를 배경으로 한중일 세 나라 등장인물의 대결 구도가 이렇듯 날카롭고도 위태하기 짝이 없다. 읽는 독자들 또한 마땅히 그러하리라. 베이거나 혹은 녹아내리거나…….
    - 이병천 / 소설가

    목차

    1부 9

    2부 183

    에필로그 328

    심사평 329
    작가의 말 345

    본문중에서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요리사로 운명이 정해졌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아버지는 피가 임리한 통나무 도마 위에서 첫 울음을 터뜨렸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횃대에 올라선 수탉처럼 패기가 넘쳤다고 한다. 아기 엄마는 도마 옆에 쪼그린 자세로 죽어 있었다. 태반조차 완전히 쏟아내지 못한 채였다. 탯줄이 팽팽하게 엄마와 아기를 잇고 있었는데, 갓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제 몸 길이의 세 배가 넘는 통나무 도마 위로 기어 올라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p.12)

    제19대 관동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山田乙三).
    이것이 나의 정식 직함과 이름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형식으로 불리길 원치 않는다. 나는 이 거대한 제국의 허울 좋은 주인이자 공포와 비명을 감춘 천수각의 성주, 그리고 매끼 맛깔나는 음식에 목말라하는 요리애호가이자 예술비평가다. 나는 시멘트 냄새 풍기는 사령부를 벗어나 거리의 이름난 음식점들을 순회하길 좋아한다. 만주가 질 좋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결코 아님에도 말이다. 이런 재미라도 없다면 나는 진즉 신병을 내세워 사령관 직함을 반납했을 것이다.
    (/ pp.23~24)

    오빠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만주가 점점 좋아져요. 이곳 특유의 게으름과 거리에 넘치는 붉은 흙, 철로의 붉은 녹과 자동차에 치인 짐승들의 붉은 피, 만족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붉은 치파오까지, 나는 그 속에 내 청진의 푸른 숨을, 푸른 피를 흘려 넣고 싶답니다. 전사가 되고 싶은 오빠와는 다른 의미에서 나는 붉은 색을 좋아해요. 그것만큼 치열하게 생명이 느껴지는 색도 없으니까요. 제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당장 오빠가 품고 다니는 그 작은 칼로 손목을 그어보아요. 누구의 소유일 수도 없는 오빠만의 뜨거운 생명, 그 뜨거운 살아 있음의 증거들이 투두둑 옷소매를 적시게 할 거예요. 거짓 황제가 경영하는 이 도시는 지금 바로 그 붉은 피가 필요해요.
    (/ p.46)

    나는 뜨거운 송이를 왼손에 단단히 쥔다. 불덩이가 손가락으로 옮겨온다. 피부에 박인 굳은살들이 비명을 지르며 불과 맞선다. 송이와 함께 익어가는 엄지와 집게손가락의 살냄새를 느끼며 송이의 표면을 태풍처럼 고요히 깎아나간다. 그을음을 한 겹씩 밀어내자 송이 본래의 흰 속살이 수줍게 벌어진다. 막 사랑의 기쁨을 알게 된 여인의 허벅지 같다. 칼등으로 툭 건드리자 특유의 향을 홀리듯 장교식당에 풀어놓는다. 제 몸의 일부를 태워 온전히 속살을 지켜낸 연하고 부드러운 자승자강(自勝自强)의 맛. 입안에 넣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깊은 향을 지닌 송이구이가 흰 접시에 담긴다. 58초. 마지막 2초가 남았을 때 나는 그을린 송이 조각을 뭉쳐 접시 한편에 ‘향식(餉食)’이란 두 글자를 새겨넣는다.
    (/ pp.62~63)

    모든 것의 시작은 작은 도마였으니까. 삶 아니면 죽음, 인생은 그 어떤 요리보다 담백하다.
    (/ p.167)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0~
    출생지 충북 청원
    출간도서 16종
    판매수 5,275권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고려대 문예창작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2002년 [충청일보]와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굿바이 명왕성], 장편소설 [몽유도원]등을 펴냈으며 2016년[골목에 관한 어떤 오마주]로 현진건 문학상을, 2017년 장편소설 [붉은 혀]로 제7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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