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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정치 : 고영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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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멸하는 모든 것들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두 손


    세상을 바라보는 온유한 시선과 유쾌한 발상이 돋보이는 순박한 시편들로 개성적인 서정의 세계를 펼쳐온 고영민 시인의 신작 시집 『봄의 정치』가 출간되었다. 2002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그동안 서정시의 다채로운 변주를 보여주며 17년간 꾸준히 시작 활동을 해왔다. 따뜻함과 삶의 비애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그의 시는 다양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데, 특히 일상적인 소재에 곁들인 유머와 해학은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친근한 언어로 정통 서정시 문법에 가장 충실한 시를 쓴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은, 그간 지리산문학상(2012)과 박재삼문학상(2016)을 수상하면서 시단의 주목을 받았다.
    『봄의 정치』는 박재삼문학상 수상작 『구구』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다섯번째 시집이다. “생의 활력이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가 오롯한”(안지영, 해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기존의 섬세한 시어와 결 고운 서정성을 간직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사물의 존재론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표제작 「봄의 정치」를 비롯하여 총 66편의 시를 4부에 나누어 실었다.

    출판사 서평

    낮은 자세로, 공손한 마음으로
    사소한 일상을 품어안는 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비범한 생명의 새로운 경지를 발견해내는 시인은 “어떤 속삭임도/들을 수 있는 귀”와 “아주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눈”(「내가 어렸을 적에」)으로 사물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간다. 일상의 소재들을 마음껏 부리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의미와 무의미의 내밀한 관계를 안과 밖으로 변주하면서 “안에서/밖을 만드는”(「밀밭 속의 개」) 시적 사건들을 포착해낸다. 더불어 시인은 “액자를 떼어내고 나서야 액자가 걸렸었다는 것이 더 뚜렷해지는”(「액자」) 이치를 깨달으며, 부재로 인해 존재가 드러나는 삶의 역설적인 풍경을 깊은 통찰력으로 응시한다.
    시인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사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소멸되어가는 존재들에게 온기를 불어넣는다. 마치 “입속에 새끼를 넣어 키우는/물고기”(「입속의 물고기」)같이. 낮은 자세로 다가가 사물에 눈을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끝내 아무것도/움켜쥐지 못한”(「조약돌」) 존재들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공손한 마음으로 사물의 본성을 일깨우며, 쓸쓸하게 저물어가는 생의 뒷면을 따듯하게 품어안는다.

    고영민 시인과의 짧은 인터뷰 (질의: 편집자)

    ―4년 만의 신작 시집인데,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그냥 담담합니다. 목수가 집의 주인이 아니듯 시인도 시집의 주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집을 짓고 나면 목수가 연장을 챙겨 그 집을 떠나듯 시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는 벌써 이번 신작 시집으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왔다는 느낌입니다. 얼마 전 새벽녘에 일어나 이번 시집의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편 한편 읽으며 잠깐 울었습니다. 일종의 해원(解冤)이었습니다.

    ―그간 17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시를 써오셨습니다.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소설가 이승우가 『사랑의 생애』에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라고 말했듯, 시를 쓰는 사람은 시의 숙주입니다. 시는 시를 쓰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生)을 시작합니다. 사람이 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가 사람 속으로 들어옵니다. 시가 들어와 사는 것입니다. 숙주가 기생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생체가 숙주를 선택하는 이치입니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안의 시가 잘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시적인 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시인의 말’을 보면, 이번 시집을 엮으면서 어머니의 죽음을 겪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시집을 끝까지 완성했는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조금 더 슬퍼지고 조금 더 쓸쓸해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가장 잘하는 것 중의 하나가 무언가에 대해 또렷이, 그리고 아주 오래 기억하는 것입니다. 때론 이것이 나를 끔찍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기억들이 결국 나를 이루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어머니와 함께했던 시간을 전부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어머니와 함께했던 어떤 기억들을 아주 또렷이 기억하고 있으며, 오래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시집에서 가장 얘기하고 싶었던 주제는 무엇인가요?
    삶과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원초적인 질문이죠. 제 시의 많은 부분은 울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떠나고 떠날 일들에 대한 쓸쓸함, 생에 대한 근원적 비애,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한 연민을 얘기하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얼굴에 남은 베개 자국」이라는 시입니다. 사는 것이 얼굴에 남은 베개 자국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젊은 시절엔 살에 탄력이 있어 자국들이 금세 지워졌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탄력을 잃어 시간이 한참 지나도 몸에 새겨진 자국들이 쉽게 지워지지가 않더라고요. 퇴근하고 양말을 벗으면 양말 자국이 오래 남고, 수영을 하고 나면 반나절이 지나도 물안경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가요?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저는 뭘 써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뭘 써야 할지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원고가 모아지면 그걸 또 주섬주섬 묶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왜 이 짓거리를 또 하고 있나’ 혼자 중얼거리겠지요.

    추천사

    윤달에 머무는 시인이 떠오른다. 낮달과의 대화도 한뼘이겠다.
    고영민의 시공간에서는 일상과 온기가 서로 살고 있다. 서로의 계절이기도 하다. 현실의 상상력이면서 현실의 반대 혹은 기억들인 온기는 일상을 울울하고 헐렁하게 포옹한다. 울울할 때 시인의 말은 겸손해지고, 헐렁하다면 시인은 말을 줄인다. 예컨대 “봄 오는 일이/결국은 꽃 한송이 머리에 이고 와/한 열흘 누군가 앞에/말없이 서 있다 가는 것임을” 자각하는 꽃의 제의/온기는 “왔던 길 되짚어갔을/꽃의 긴 그림자”(「적막」)라는 떨림/일상과 같은 감정이다. 일상과 온기는 서로의 몸에 스며들기 위하여 서슴없이 너를 꽃이라 하는 곡진함을 발명했다. 그럴 때 고영민의 두 손은 드라이플라워의 형상이다. 그것은 바짝 말랐지만 생의 여러 지층에서 돋아나서 지금 도착했다. 이미 눈물을 헌정했기에 시인은 꽃의 의미를 다정하게 나열한다. 고영민의 시가 애틋한 소이연이 저러하다. 오래도록 시인은 날짜들에게 죄다 공손했다.
    윤달이 필요할 때마다 고영민의 시집을 뒤적거려야만 했다.
    - 송재학 / 시인

    목차

    제1부
    철심
    적막
    나이 든 개
    딸기
    봄의 정치
    시인 앞
    편육
    밀밭 속의 개
    내가 보는 네가 나를 보고 있다면
    흰 토끼 일곱마리는
    연안
    네트
    저녁의 눈빛
    내가 어렸을 적에
    망(望)
    만두꽃

    제2부
    아지랑이
    무화과
    폐문
    목련
    두부

    꽃눈
    은행나무 사거리
    어제보다 나은
    사육제
    긴 호스
    닭의 입구
    조약돌
    입속의 물고기
    슈퍼문
    여름비 한단
    고독

    제3부
    아무도 없는 현관에 불이 켜지는 이유
    웃으면서 이별을
    매화꽃 둘레
    옥상
    느시
    복숭아와 사귀다
    밤의 기억
    베고니아
    송편
    톱밥 꽃게
    어항
    얼굴에 남은 베개 자국
    복자기나무에 물이 들다
    소녀
    엉겅퀴

    제4부
    깊이
    가난의 증명
    지퍼
    저녁으로
    목단
    풀을 벨 때
    두엄
    붉은 입술
    상류
    튜브
    순한 개
    액자
    조숙
    불 냄새
    꽃의 얼굴을 하고
    자두
    국도변 옥수수밭
    물의 목수

    해설|안지영
    시인의 말

    본문중에서

    봄이 오는 걸 보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밤은 짧아지고 낮은 길어졌다
    얼음이 풀린다
    나는 몸을 움츠리지 않고
    떨지도 않고 걷는다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만으로도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봄의 정치' 중에서)

    꽃은 시인 앞에 와서 핀다
    꿀벌은 시인 앞에 와서 날갯짓한다
    잎새는 시인 앞에 와서 지고
    군인은 시인 앞에 와서 담배를 꺼내 문다
    흰 고양이는 죽는다
    시인 앞에 와서
    연인들은 시인 앞에 와서 입을 맞춘다
    아이들은 시인 앞에 와서 뛰놀며
    노인은 시인 앞에 와서 운다
    ('시인 앞' 중에서)

    뒤에서 누가 당신을 부른다면
    당신은 어느 쪽으로 돌아보나요

    왼쪽인가요
    오른쪽인가요

    당신이 돌아본 왼쪽은 어느 쪽인가요
    당신이 돌아본 오른쪽은
    어느 쪽인가요

    그 둘 사이는 얼마나 먼가요
    ('은행나무 사거리' 중에서)

    누가 나에게 먼저
    와 있는 것 같다

    서로 보지 않으려 해도
    서로가 보이는

    미리 구덩이를 파놓고
    뭔가를 넣는 소리
    흙을 덮는 소리

    심장이 멎을 듯 멎을 듯
    뱀눈 뜨는 소리

    입이 트이고
    귀가 트이는
    ('밤의 기억' 중에서)

    우리는 다 알면서도 묻지
    그냥 대답이 듣고 싶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는 복자기나무에게 묻고
    복자기나무는 물이 든다

    원치 않았으나
    피할 수 없었던 일
    알고 있던, 그러나 영영 몰랐던 일
    ('복자기나무에 물이 들다' 중에서)

    누가 올 것만 같다
    어두워져가는 저 길 끝
    누가 올 것만 같다

    조금만 기다리면
    조금, 조금만 더 기다리면

    (…)

    지워지고 있다
    기다리는 내가 지워지고 있다
    누가 올 것만 같아 기다린 내가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게
    지워지고 있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다
    누가 올 것만 같아
    ('저녁으로'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8
    출생지 충남 서산
    출간도서 8종
    판매수 756권

    196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시 [몰입] 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악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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