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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철학에 관한 내용을 담은 전문서적입니다.

서문..8
역자 서문..14
I. ‘구 유럽적’ 사고에서 ‘신 유럽적’ 사고로..25
1. 존재론적 사고의 ‘무엇 질문’에 관해..26
2. ‘자연의 세계’에서 ‘비개연적인 것들의 세계’로..32
II. 태초에 차이가 있다. ..43
1. 구성으로서의 인식 ..50
2. 관찰로서의 인식..56
3. 형식으로서의 의미..61
III. 생명, 의식, 소통 ..73
1. 살아 있는 것의 자기생산에 관해 ..74
2. 의식의 자기생산에 관해..77
3. 사회적인 것의 자기생산에 관해..82
4. 생명, 의식, 소통 ― 중간 결산..98
IV. 처음에 역설이 있다..119
1. ‘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 첫째 부분..119
2. ‘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 둘째 부분..125
3. 역설적 작동으로서의 관찰 ― 그리고 그것의 귀결..132
V. 성찰.145
1. ‘관찰자’에 대한 논평 ― 또는: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 ..148
2. 형이상학적 함의..157
3. 질문과 의심..170
자주 인용된 니클라스 루만의 문헌 약호..176
참고문헌..177

[서문]
유령이 돌아다닌다. 독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모든 유령이 그러하듯이 옷 때문에 그의 원래의 모습은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 유령은 땅을 밟지 않고 나타난다. 이 허깨비를 지켜보는 관찰자(!)는 그에게 ‘자기준거성, 자기생산, 구성주의 또는 심지어 급진적 구성주의’와 같은 다양한 이름을 갖다 붙인다. 이 유령은 처음에는 ‘사이버네틱스, 생물학, 사회과학’의 학문 분과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알다시피 유령은 어디에나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이차원의 허깨비는 그사이 유력 일간지와 주간지의 문예란 편집실에까지 존재 또는 비非존재를 드러내었다. 특히 ‘위험한 일도 감행하라’는 명령에 충실한 편집자들은 이 유령으로 인한 유행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이 유령에게 소통 능력을 갖추어 주려 애쓴다. 수준 높은 지성인들은 이제 생각하지 않고 ‘관찰한다.’ 이 유령이 전하는 메시지는 ‘생각하는 것은 유행에 뒤처졌고 관찰하는 것이 새로운 유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특히 학술 기사나 문예란 기사의 애독자들을 헷갈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냉정하게 말하면, 독자들은 어떻게든 난관을 극복해야만 한다. 또한 독자는 우연성 개념이 세상의 새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제공할 임무를 가진 직능 집단의 상투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도 감당해야 한다. 이제 그 개념은 세상의 사실을 쉽게 가공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사람들이 늘 쓰는 말이 되어버렸다. 우연성 개념이 미심쩍어지면 두덴Duden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전은 관찰 개념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내용도 알려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결국 관찰이 무슨 뜻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 두덴은 오류를 범한 것이다. 그래서 이 점과 관련해 우리는 니클라스 루만과 이 책의 주제를 언급할 차례가 되었다.
여기서 유령이라고 일컬은 것은 새로운 인식론적 패러다임을 의미한 것이다. 사회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니클라스 루만은 “급진적 구성주의”라는 명칭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 활동의 가장 탁월한 대표자이자 연구자이다. 구성주의의 핵심 내용은 인식하는 태도로 세계와 마주하는 주체가 있다는 생각을 포함해, 인식된 모든 내용은 자기준거적으로 수립된 구성이며, 이 구성은 두뇌가 작동한 결과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때 두뇌는 작동 층위와 관련된 것으로서 외부에 대해 완전히 닫힌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루만은 『사회적 체계들』이라는 제목으로 1984년에 이와 관련된 자신의 첫 대작을 발표했다. 제목이 『사회적 체계의 이론』이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하라. 그는 1984년에 소개한 이 기본 사상을 자세히 설명하고 수정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빼어난 저서들을 추가로 출간하였다. 자신의 사상을 평이하게 설명하려는 루만의 노력이 큰 결실을 맺지 못했던 이유는 일단은 그것이 다루는 내용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루만의 독특한 언어와, 필자의 판단으로는 루만이 자신의 견해를 일반인들이 이해하도록 충분히 배려하지 않았던 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그 동안 루만의 사상을 상세히 전달하려는 동료들의 입문서들이 나오게 되었다.
나는 이 입문서들 가운데 하나에서 인용을 하고자 한다. 페터 푹스P. Fuchs는 『니클라스 루만 ― 관찰하다』에서 루만의 사상을 소개하는 입문서를 쓰려 할 때 경험한 일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몇 주 동안 계속 원고를 구겨버리기만 했다. ... 마침내 나는 ‘소통’ 개념이 핵심인 이 이론을 어쩌면 소통 상황을 설정해 가장 쉽게 기술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신비주의자들이 정신적 황폐화라고 말하는 경지를 실컷 맛본 후에 말이다. 다시 말해 이 이론을 체계이론에 관한 소통의 구성으로 기술해보자는 구상이었다”(Fuchs, 1992: 8). 그 후 푹스가 소개하는 ‘구성’이란 참여한 인물들이 배당받은 역할을 이용해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따져 묻는 동시에 자신의 행동으로 명확히 보여주려는 연극작품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나는 이 시도를 내재적으로는 확실히 성공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내재적으로만 그렇다. 이 말은 루만이 의도하는 이론 유형은 기본적으로 순차적인 설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이론 유형은 순환적 구조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순환논증과 자기준거성의 역설을 해소하기보다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푹스의 방법은 루만의 이론 이해에 전적으로 유용하다. 푹스는 물론 다음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 문제란 루만 사상을 통찰하려는 독자는 푹스의 서술 방식과 그의 책 내용을 실제 이해할 수 있기 위해, 왜 순환적 사고가 요즘 말로 ‘인기’인지를 사전에 해결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독자는 왜 자신의 ‘평소의’ 사고 습관을 적어도 일반적인 면에서 포기해야 하는지 미리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독자는 왜 루만의 이론이 예를 들어 이론이 아니라 심지어 사회적 체계로, 즉 이론 그 자체를 다루는 것으로 파악해야 하는지 미리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전 지식이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이해되어야만 하지만, 이 사전 지식은 기본적으로 원래의 내용이 이미 이해되어 있을 때만 생겨날 수 있다.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루만의 사상을 인도하려는 사람이 떠맡아야만 하는 쉽지 않은 임무다. 이것을 질문으로 표현하면, 어떻게 하면 ‘새로운’ 사고를 ‘낡은’사고 틀과 ‘낡은’ 언어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질문, 즉 결국 해결되기 어려운 이 질문에 진지하게 매달려 보려는 시도다. 이 질문은 이 책의 텍스트에도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독자는 이 진지한 노력이 평소에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논증의 엄격성 정도와 관련해 어느 정도 용납해줄 것을 자신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되풀이해서 다룰 내용을 단계적으로 점점 심층적으로 파고들려는 노력이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거치게 될 과정의 각 단계들은 다음과 같은 주안점을 특징으로 설정하고 있다. 니클라스 루만은 자신이 ‘낡은 유럽식’이라고 분류한 존재론적 사고를 수정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나로서는 존재론적 사고가 무슨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하는지, 혹은 그 속에 어떤 함의들이 숨어 있는지에 관해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 합당한 접근 방법인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이 책의 2장은 자기준거적 체계 이론의 실질적 구성요소들을 다룰 것이다. 인식의 생물학적 특성을 다루는 ‘인지 과학’에서 루만이 차용한 핵심 개념들이 소개되고 자세히 설명된다. 이 단원의 목표는 한편으로 루만이 ‘태초에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가 있다’는 자신의 선언을 인식론적으로 어떻게 규명하는지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다음 장을 대비해 미리 루만이 의미라는 현상을 주체와 무관한 것으로, 즉 세계 복잡성을 다루어내는 데에 사용되는 구별의 특수한 형태로 구상했다는 사실과 그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루만은 의미의 생성이 주체의 능력에 기인한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소통을 통해서도 세계 복잡성을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축소시킬 수 있다는 명제를 내세우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세계 복잡성 축소가 심지어 자체 동학을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체의 사회 구성자 자격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에 있어 결정적인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다음으로 이 책의 3장의 고찰들은 집중적으로 바로 이 주체의 이론적인 무력화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루만 초심자들에게는 놀랍게 여겨질 것이다. 이 주제는 사회의 구성은 인간들이 아니라 소통이 실제 주도자로 통용되어야 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자체 동력에 의해 처리되는 것으로 가정되는 사회적 체계와 관련해볼 때 인간은 사회적 체계의 환경에 배속될 수 있을 뿐이다. 루만의 사상을 이 지점까지 공감할 수 있다면, 수용자에게는 “이러한 유형의 이론이 갖는 가장 어려운 문제”(Luhmann)가 남아 있다. 이것을 간략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런 내용이 된다. ‘관찰하는 것은 역설적 작동이다.’ 4장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역설을 최종 공식’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진술의 함의를 신중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앞에서 인식론적으로 얻어진 내용의 몇 가지 핵심적 특성들을 추상화라는 막연한 높이에서부터 일상생활이라는 더 구체적인 영역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때 제기되어야 할 질문은 다음 내용이다. 니클라스 루만이 주창하는, 낡은 유럽식 사고와의 작별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떤 중요성을 가지는가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루만의 저서들이 일차적으로 인식론적 관점에서 고찰되는 것은 루만의 사회이론의 모든 분석 결과가 그의 인식론적 논리 기반을 이해했을 때만 제대로 수긍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공감하고 이 방면에서부터 루만의 저작에 접근하려 시도한다면, 루만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루만은 독자가 이해의 어려움에 봉착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각주를 이용해 풍부하게 언급해 놓은 기초적인 저자들의 저서를 참조하라는 전제를 명백히 내세우고 있다. 고귀한 독자들의 관심과 시간이 그렇게 하기에 충분하다면, 독자들은 생물학자와 수학자들의 까다로운 저서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루만의 사상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쓰는 나의 관심은 앞으로 루만의 저서들을 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