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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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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현직 기자와 작가가 함께 쓴 울릉도 근대사 기행!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 뒤 해설이 따르는 독특한 형식!
    지난 100여 년 간 섬사람들이 일궈온 삶과 문화 이야기도 부록으로 엮어


    ‘아직 잠 깨지 않은 바다였다. 거친 바다 위 세 척의 배는 가랑잎처럼 떠돌았다.’
    130여 년 전, 왕명을 받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된 이규원은 울릉도로 향하던 배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전 울릉도는 수백 년 동안 비워진 섬이었다. 고려 때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탓에 조선 태종 때부터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키고 섬을 비우는 쇄환정책(刷還政策)을 펴왔던 터였다. 대신 2, 3년에 한 번씩 수토관(搜討官)을 보내 섬을 관리했다. 수토관은 지방군 지휘관인 삼척영장(三陟營將)과 월송만호(越松萬戶)가 교대로 맡았다.
    거친 동해를 건너야하는 수토길은 녹록지 않았다. 광해군 5년(1613년) 삼척영장 김연성은 군사 180여명을 이끌고 울릉도 수토에 나섰다가 거친 풍랑을 만나 배가 전복돼 군사들과 함께 익사했다. 숙종 20년(1694년) 삼척첨사로 임명된 이준명은 울릉도 수토에 나서기가 두려워 첨사직을 회피했고, 영조 36년(1760년) 삼척영장 이유천도 비슷한 이유로 자신을 파직해달라는 문서를 조정에 올리기도 했다.
    1882년 고종은 울릉도를 계속 비워둬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이규원을 현지로 보내 섬의 상황을 낱낱이 보고하도록 했다. 그 시기 이규원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였고, 지금으로 치자면 군 사단장급 장성에 해당하는 정3품 무관이었다. 그는 10여 일 동안 울릉도 전역과 해안을 검찰한 뒤 보고서와 지도를 작성해 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고종이 이듬해 16가구 54명을 섬으로 이주시키며 울릉도 재개척의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이규원이 남긴 보고서가 ‘울릉도 검찰일기’(鬱陵島檢察日記)다. 이규원은 고종에게 하직인사를 한 뒤 출발해 울릉도를 조사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2개월의 여정을 일기에 담았다. 특히 12일간의 울릉도 조사 기록엔 매일의 날씨와 지형, 식생, 만난 사람들, 느낀 점 등을 상세히 적었다.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은 검찰일기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울릉도·독도 이야기다. 울릉도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는지, 조선 정부는 왜 울릉도를 비워두고 관리했는지, 울릉도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면 독도를 어떻게 인지할 수 있었는지, 다시 사람이 살게 된 것은 언제 부터였는지 등 상당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지나쳤을 우리 역사를 쉽게 풀어 알려준다.
    현직 신문기자와 작가가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란 점도 눈길을 끈다. 이 책을 기획하고 해설 부분과 부록을 쓴 김도훈은 매일신문 기자다. 그는 이 책을 완성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특히 이규원 일행의 울릉도 검찰 모습을 복원하는 일이 그랬다. 이규원 일행의 여정을 생생하고도 치밀하게 묘사하고 싶었지만 그건 능력 밖의 일이란 걸 실감했다”고 했다. 역사적 사실을 담보할 수 있는 사료는 검찰일기가 거의 유일했고, 기록과 기록 사이의 빈 공간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채우는 일이 녹록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을 덧댄 이야기에 해설이 따르는 식’이란 당초 기획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당 부분을 박시윤 작가가 맡아 쓰게 된 이유다.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은 ‘역사의 대중화’에 방점을 두고 만들었다. 지은이 박시윤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소설을 통해 130여 년 전 이규원 검찰사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지은이 김도훈은 소설 뒤 이어지는 해설을 통해 그들의 여정을 소개하고 그동안 제대로 몰랐던 울릉도·독도와 관련한 대한민국 근대사를 쉽게 풀어 설명했다. 독자들이 역사의 흔적을 직접 찾아가볼 수 있도록 장소에 대한 안내도 빼놓지 않았다. 상상력을 동원했지만 기록에 없는 이야기는 피했고 객관적 사실을 따랐다. 그러면서도 독자가 읽기 편하도록 애썼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독특한 시선으로 울릉도 곳곳을 담아낸 100여 컷 사진은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서점에 가면 울릉도에 관한 책이 차고 넘칠지도 모르겠다. 책이 넘치는 시대에 책 한 권을 보태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옛 모습을 더듬어 울릉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아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관심으로, 우리 땅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두 지은이의 말이다.

    추천사

    이 책은 1882년 한 관리가 남긴 울릉도에 관한 기록을 오늘날의 사진과 함께 엮어 펴낸 일종의 역사 보고서라 할 수 있는데 책장을 넘기면 울릉도의 아름다움과 함께 참으로 안타깝고 놀랍고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사실이 전개된다. 그래서 울릉도의 아름다움은 더욱 처연하게 다가오고 기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각성과 함께 우리 국민들이 모두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일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울릉도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두 사람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우리시대에 귀중한 기록물이라 할 만하다.
    - 유홍준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전 문화재청장

    목차

    책을 내며

    1장_가 닿으라
    울진 구산포~울릉 학포

    2장_영(嶺)을 넘다
    학포~태하

    3장_살 만한 땅
    태하~현포~천부~나리동

    4장_가장 높은 봉우리
    나리동~성인봉~저동

    5장_섬으로 온 사람들
    저동~사동1리

    6장_통구미골
    사동1리∼통구미

    7장_이름을 새기다
    통구미~학포

    8장_종이 위의 섬
    학포~죽암 뱃길

    9장_왜인의 표목
    죽암~도동~사동~학포 뱃길

    10장_빗장을 열다
    학포~울진 구산포~서울

    부록_울릉도의 삶과 문화 100년의 이야기
    01 오징어잡이_ “그 많던 오징어는 어디로 갔을까”
    02 목선 제작_“박 치는 목수는 목수도 아니지”
    03 음식 문화_“울릉도에 살려면 ‘오징어 똥창’ 정도는 먹어야지”
    04 종교와 삶_“고단한 삶 위로해준 버팀목이지”

    맺으며

    본문중에서

    파도가 솟구쳤다. 바람이 어지럽게 날뛰었다. 우레와 폭우가 쏟아졌다. 배가 사방으로 까불었다. 키질하듯 흔들리는 세 척의 배 안에서 목숨 일백이 놀아 움직였다. 눈알이 뒤집힌 사람들의 콧구멍과 목구멍에서 삭다 만 밥알이 쏟아졌다. 사람과 짐짝이 엉겨 나뒹굴었다. 이물에 선 사공 박춘달의 낯이 허옇게 질렸다.
    “바다가 끓는다. 노를 놓아서는 안 되네. 최대한 멀리 나아가야 하네.”
    사공이 멀건 거품을 토하며 소리쳤다. 파도는 이물과 수백 수천 번 맞붙었다. 배는 속절없이 겉돌았다. 저잣거리의 난잡한 욕지거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죽음의 바다 위에서 힘줄이 터지도록 노질을 해대는 사내들의 내일이 사나웠다. 사공은 이물에서 고물까지 굴러 가 간신히 붙어 있었다.
    (소설 부분 중에서/ p.12)

    규원은 섬 어딘가에 있을 왜놈을 떠올렸다. 그들은 자신보다 먼저 섬을 훑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보다 섬을 더 잘 알 것이었다. 그들의 발자국이 섬 곳곳에 지문처럼 눌러 붙어 주인 노릇을 했을 것이고, 주인과 침입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섬은 있는 대로 내어주었을 것이다. 반출된 자원은 왜놈의 나라에서 후한 금으로 거래되었을 것이고, 왜놈을 위해 아낌없이 쓰였을 것이다. 제 것이 아닌 것을 취한 그들은 부유했을 것이고, 제 것을 제 것인지도 모르고 도둑맞은 조선은 가난했을 것이다.
    규원은 마른 침을 삼켰다. 손이 떨리고 숨이 가빴다. 목구멍에서 덥고 날카로운 말들이 쏟아질 것 같았다. 섬 곳곳에 왜놈의 언어가 어지럽게 들어박혀 조정을 조롱하고 능멸하는 것만 같았다. 가슴 언저리에 묵직한 통증이 일었다. 규원은 그토록 힘겹게 바다와 싸웠던 이틀 낮밤을 떠올렸다. 숨을 크게 들이켰다. 꽃과 나무 향기가 났다. 향기 어느 즈음에서 까마득한 왜놈들의 얼굴이 스쳤다.
    (소설 부분 중에서/ pp.33~34)

    유연호는 잠들지 않았다. 낱장으로 그린 그림들이 한 장의 종이 위에 퍼즐을 맞추듯 제자리를 잡아 나갔다. 붓끝에 걸린 그의 감각이 새하얀 종이를 생생히 채웠다. 점잖고 단아했던 그는 밤새 지지리도 궁상맞은 몰골이었다. 그의 그림은 가냘픈 듯 풍성했고, 실물을 얹어놓은 듯 섬세하면서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았다.
    유연호. 평소 그는 혼자 떠돌다가 끊임없이 생각에 잠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말미에 뭔가를 그리곤 했는데 죽죽 그어지는 붓놀림에 소리의 조화가 쏟아졌고, 음영의 밝기가 경계 없이 번졌다. 바람이 흘러가는 소리, 새가 울고 꽃들이 피고 지는 소리, 빗방울의 굵기, 구름의 농도와 대지의 내음까지도 제법 밀도 있게 되살아났다. 그림은 그를 닮아 결이 세세하고 날카롭고 단단했다. 그의 그림에는 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보아도 유연호만의 그림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떠나오기 전 임금이 그를 불러 일렀다.
    “화원, 그대의 그림을 익히 눈 여겨 보았네. 내 한 번도 본 적 없는 대해(大海)의 섬이 궁금하여 친히 그대를 천거한 것이니 세세히 그려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도록 하게.”
    유연호는 섬에 든 날부터 수천 년 시간을 보고 듣느라 편히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한 밤중에도 터질 듯 밀려드는 섬의 영감이 그를 사정없이 뒤 흔들었다. 코피를 쏟거나 먹은 것을 게워냈다. 그리고는 홀린 듯 그려나갔다. 그의 그림에는 알 수 없는 아련함, 보이지 않는 이끌림이 서려있었다. 오랫동안 비워진 채 숙성된 섬의 언어와도 같았다. 규원은 그런 유연호를 재촉 하지 않았다.
    칠흑의 밤, 그만의 기법은 아득한 이끌림으로 되살아나 종이 위에서 분출하였다. 먹 선은 산 능선을 타고 기어 내려와 물속에 잠기는 듯싶다가 다시 기어올라 선명하게 산과 바위를 일으켜 놓았다. 산과 기암괴석이 밤새 종이 위에 적당하게 올라와 있었다.
    (소설 부분 중에서/ pp.194~195)

    절박함에 수천 리 물길을 건너온 사람들의 삶은 헐거웠으나 더불어 희망할 만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히 이 섬에 남아야 하고, 그들이 남음으로써 나라와 백성이 서로 복될 것이었다. 당대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날들 앞에 규원의 마음엔 조금씩 연민이 일었다. 자신에게 움막을 내어주고도 누추함에 몸을 들지 못하던 그들은 좁은 움막에서 서로 부대끼며 단잠을 자고 있을 것이었다. 규원은 밤새 그들의 고단함이 마음에 걸렸다. 죽을죄를 지었다고 엎드려 사죄하던 그들의 죄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국법이란 백성이 최소한의 먹고사는 것 후에 있을 것이었다.
    규원은 국법에 의해 강제로 섬과 작별한 옛 사람들과, 섬을 잊지 못해 목숨을 다하여 대해(大海)를 건너온 악착같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조정은 비겁했다. 섬을 비우고 그 후 어떠한 긍정도 내어놓지 못했던 역사의 오류 앞에 규원은 어떠한 말로도 응답할 수 없었다. 나라의 녹을 먹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소설 부분 중에서/ pp.146~147)

    검찰사 일행이 2일 저녁 무렵 도착한 태하리엔 울릉도 수토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태하는 조선시대 수토관들이 주로 상륙했던 곳이다. 수토관의 흔적도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태하항 왼쪽 바위 절벽 아래 곳곳엔 글씨가 새겨져 있다. 1801년과 1805년 각각 수토관으로 왔던 삼척영장 김최환·이보국과 그 일행의 이름을 새긴 ‘태하리 각석문’이다.
    울릉군지 등에 따르면 태하항 오른편에도 각석문이 있었으나 개발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830년과 1847년 각각 울릉도를 다녀간 삼척영장 이경정·정재천의 기록이다. 이 마을에 사는 박해수(87) 씨가 각석문이 있던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50년쯤 전이었어. 항구 만들고 길 낸다고 다 부숴버렸지. 그때 발파를 반대하던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가 타박을 마이 줬어. 먹고살기도 힘든데 마을 발전이 먼저라고 생각했지. 그놈을 그냥 뒀어야 했는데….”
    (해설 부분 중에서/ pp.39~40)

    이날도 검찰사 일행은 포구에서 조선인을 만났다. 일행이 울릉도에 들어온 날부터 지금까지 각 포구나 숙영지엔 늘 조선인이 있었다. 울릉도 도착 6일째인 이날까지 검찰사가 직접 만난 조선인은 93명이었다. 이들은 주로 배를 짓거나 미역을 땄고, 성인봉 주변을 오르내리며 약초를 캤다.
    이보다 100년 전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6년 11월 국립해양박물관이 번역해 출간한 ‘라페루즈의 세계 일주 항해기’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787년 5월 29일의 기록이다.
    ‘조선 해안에서 약 20리외 정도 떨어진 섬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중국 선박과 완전히 똑같은 형태의 배를 건조하는 작업장을 발견했다. 일하던 사람들은 단거리 포의 사정거리까지 접근한 우리 함선을 보고 놀랐는지 숲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들은 육지에 사는 조선 목수로 여름이면 섬에 식량을 가지고 와서 배를 건조한 후 본토에 가져가 판매하는 것 같았다. …섬의 서단을 지났을 때 섬에 가려 우리 함선이 오는 것을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작업장의 일꾼들이 나뭇조각을 옆에 두고 배를 짓다가 우리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해설 부분 중에서/ p.130)

    다시 학포에 도착한 이규원은 육로 검찰을 통해 확인한 섬의 식생과 특징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토산물은 산삼이다. 송병기 단국대 명예교수의 책 ‘울릉도와 독도’에 따르면 울릉도 산삼은 18세기 중엽부터 잠상(潛商)이 비밀리에 채취한 뒤 육지에 판매했고, 관원들도 울릉도에 사람을 보내 캐오도록 할 정도였다. 일시적이긴 했지만 정조 때는 울릉도 수토관들이 각 군현에서 선발한 30여 명 정도의 채삼군(採蔘軍)을 거느리고 수토길에 오르기도 했다. 정광중 제주대 교수는 “당시 이규원이 만났거나 울릉도에 머물고 있던 약초꾼 50여 명은 대부분 산삼 캐기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울릉도 산삼의 명성은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사동에 사는 박창규(76) 씨가 말했다.
    “우리 형수가 산삼 마이 캤어. 알봉(마을)이 고향인데 처녀 때 7뿌리 캤다 쿠데. 근데 나중에는 너도나도 산삼 캤다 캐서 가보면 다 가짜인기라. 인삼 심어 놓은 것을 뽑아놓고 산삼이라고 거짓말 한 거지. 가짜배기 팔다 경찰서에 붙들리 가서 직싸게 뚜디리 맞기도 하고. 10명 중에 1명 정도가 진짜였을라. 진짜배기는 두지(뒤주)에 숨겨 놨다가 팔았는데 다들 제값도 못 받았을 기라.”
    동물로는 요즘 울릉도에선 거의 보이지 않는 슴새가 대표적이다. 주민들은 ‘깍새’라고 불렀다. “안개 낀 날 마당에 불을 놓으면 불빛 보고 죽자고 날라드는데, 너무 밝아 눈이 멀어가 카는지 그냥 푹 널져 버래. 봄에 명태잡이 나가면 고기 잡은 거 묵을라고 배 주변에 바글바글했어.”
    깍새는 먹을 게 귀한 시절 주민들에게 요긴한 식량이 되기도 했다. 박 씨의 부인 정옥선(71) 씨가 말했다.
    “고무라 고무. 질겨도 그런 고무가 없다. 껍질 벗겨 오래 삶아야 돼.”
    박 씨가 한마디 툭 거든다.
    “물(먹을) 게 없어가 묵었지. 맛은 있는데 너무 질겨.”
    울릉읍 저동·도동, 북면 천부 등 울릉도 곳곳에 있는 ‘깍끼등 마을’도 깍새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깍새는 산란기가 되면 산등성이 쪽으로 올라오는데 바닷가 높은 곳을 ‘깍새등’ ‘각새등’으로 부르다 지금은 ‘깍끼등’ ‘까끼등’ ‘깍깨등’으로 부른다. 북면 섬목 앞에 있는 관음도도 ‘깍새섬’으로 불렸다.
    그밖에 이규원이 ‘울릉도 토산물’로 기록한 고양이와 쥐, 지네는 요즘 울릉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예전 고양이와 쥐는 육지의 것보다 몸집이 많이 컸다. 1808년 왕명에 의해 편찬한 ‘만기요람’은 ‘울릉도 산고양이는 개만큼 크고, 쥐가 고양이만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박 씨 부부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1950, 60년대만 하더라도 들고양이 중 큰 건 ‘중개’(보통 몸집의 개)만 해서 화장실 가기가 얼마나 무서웠다고. 큰 닭도 다 물어갔다. 전란 때 쥐는 또 얼마나 많았노. 농사도 못 지을 판이었어. 그리고 그때는 독수리도 많았는데 병아리를 못 키울 정도였다니까. 병아리 지키라고 아(아이) 이름을 ‘둑술’이로 지은 집도 있었으니까.”
    (해설 부분 중에서/ pp.176~177)

    서면 태하리에 사는 박해수(88) 씨는 울릉읍 도동에 살다 16살 무렵이던 1940년대 후반 이곳으로 왔다. ‘강냉이밥’을 도저히 먹기 싫어서였다. 당시 태하리는 울릉도를 통틀어 논이 가장 많았다.
    “‘논이 젤로 많은 곳이 어데고?’ 물으니 태하동이라 카데요. 벼농사 지어 쌀밥 먹고 싶어 왔는데 쌀밥은 못 먹고 고생만 디따 했지요.”
    벼농사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감자와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식단은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나리동 처자들은 쌀 한 말 못 먹고 시집간다’란 말이 생길 정도였다.
    대신 다양한 밥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해조류인 대황을 삶아서 물에 우린 뒤 쌀이나 보리를 섞어 대황밥을 지었고, 명이 줄기를 썰어서 명이밥을 만들었다. 무채를 썰어서 보리 옥수수와 함께 밥을 지은 무밥, 옥수수를 갈아 넣고 쌀이나 보리와 함께 밥을 한 옥수수밥도 마찬가지다. 쌀은 줄이면서 양을 늘리기 위한 방편이었던 만큼, 배합 비율은 집집마다 달랐다.
    ('부록' 중에서/ pp.28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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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생. 신문기자. 하얀 산과 곧추선 절벽에 설레던 젊은 날을 보냈다. 호텔방보단 텐트가, 정장보다는 윈드재킷이 익숙했던 시절이었다. 마흔에 접어들며 쉽게 읽히는 대중적인 역사책 한 권 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살았다. 이 책이 그 책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매일신문 기자로 2019년 1월 초까지 5년을 울릉도에서 보낸 결과물인 건 확실하다. 떠나는 일이 익숙했던 지난날이 너무나 아득해, 먼지 쌓인 빙벽화를 이젠 버릴까 고민하고 있다. 함께 지은 책으로 《도쿄 스토리》, 《비욘드 오사카 고베 그리고 도쿄》가 있다.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을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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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경북 문경의 별이 많은 동네에서 태어났다. 뜻하지 않게 도회지로 나와 별 볼 일 없이 자랐다. 학창시절 끓어오르는 감정을 어쩌지 못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10대를 온전히 글을 쓰며 보냈다. 한때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에 절어 문학과 멀어졌으나 30대 초반 병을 앓으며 본능처럼 원고지 위로 돌아왔다. 2011년 목포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도피하듯 울릉도로 떠났고 울릉도 살이 2년 만에 뭍으로 돌아왔다. 도처에 처소가 산재해 있으니 발 닿는 곳이 곧 내 처소라고 함부로 떠들며 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는 2013 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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