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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3 양생주 나를 찾지 않는다 : 고형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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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만물 속에 수많은 ‘나’의 존재들이 있다
    혼돈 속에서만 진정한 양생이 가능해진다. 기계적 질서가 아니라 혼돈의 기류를 받고 그 안으로 망아(忘我)하는 길이 합일의 양생이다. 방박(磅礴, 깨어 부숨)과 혼돈으로 가지 않고서는 병든 영혼의 전생적 치유는 불가하다.

    고형렬 에세이 장자 7권 중 제3권 『양생주』이다. 양생주의 키워드는 상아이다. 고혈렬은 상아(喪我)를 ‘너 자신을 찾지 말라’고 해석했다. 나를 찾지 않음으로써, 나를 잃어버림으로써, 오히려 진짜 ‘나’에게 다가가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 책의 효용은 무엇일까. 상아, 상망, 비피무아, 승물유심, 소요유, 방박, 제미파류…. 장자의 어휘들은 긴 세월 동안 두터운 관념의 옷만을 껴입혀져 왔다. 오해, 왜곡, 훼손된 부분도 상당하다. 고형렬의 이번 작업은 저 두꺼운 옷을 벗겨보려는 지난한 작업이면서, 본래의 장자가 탄생시킨 ‘언어의 몸’에 다가가 보려는 방황이며, 그 ‘언어의 몸’이 다시 자유로이 소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모색이다. 이제 이 책은 독자에 의해 제 자신의 생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이 책 또한 정신과 육신의 생을 살아낼 것이고 완성이든 미완이든 독자가 만들어갈 것이다.
    고형렬은 어떤 것도 단정 짓거나 확신하지 않고 조심스런 질문에 문학적 상상력을 더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장자를 더듬어 간다. 아무 것도 결정화하지 않으므로 명쾌한 답을 유보하는 문장들로 이어지는데, 어쩌면 이것이 소요유적인 문법이고 상아의 문법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장자 해설서가 아니다. 이 책에는 세상에 나가 쓸 칼이 없다. 외워서 가르칠 문장도 없다. 다만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오묘한 문법으로 장자의 육신과 장자의 육성을 탐색할 뿐이다. 장자라는 2,300년 전 칠원리에 하급관리로 생존했던 한 인물의 일상과 그가 이룬 내면의 경지에 관한 탐구이며, 그에게로 직접 가보고자 하는 모험의 기록이다. 또한 상아와 상망, 소요와 승물유심과 제미파류에 대한 아득한 기다림의 서이다.

    출판사 서평

    고형렬은 포정의 해우를 빌어 이렇게 해석한다.
    “참 무참한 일이지만 칼은 살과 뼈를 뼈와 살은 칼을 대극(對極)하며 대조(對照)한다. 다시 말하지만 제도이립 위지사고는 포정 자신이 독이 되면서 즉 주체가 되면서 그 주변의 것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경지이다. 혼연일체의 모습을 구체화한 말이다. 그러나 비피무아[非彼無我, 그대가 아니면 나는 없다]를 기억한다면 저 주변에서 예컨대 돌이나 산, 풀, 물, 바람, 별의 입장에서 나는 또 다른 그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저쪽의 그대인 나가 없이는 또는 여기 칼을 들고 서있는 그대의 나 없이는 나뿐 아니라 서로가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여기서 서로가 양생하고 상망(相忘)은 비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렵지만 흥미롭다. 그는 어떤 단정도 확신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조심조심 그 길을 더듬어 간다.
    고형렬 에세이 장자의 많은 부분이 천천히 쉼표를 넣어 읽거나 행갈이를 하면 그대로 아름다운 시가 된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농도 짙은 문장을 찾아 읽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휴식이 될 것 같다. 위대한 백정 포정은 바로 여기서 칼이라는 무기 아닌 하늘의 악기로 연주를 하고, 고형렬의 문장은 그 오묘한 선율을 따라 춤을 춘다. 칼로 소의 몸을 해체하는 포정의 몸짓이 춤이고 칼이 살을 가르고 뼈를 발라내는 소리가 음악이다. 포정의 칼은 천상의 악기(呂)이고 소의 뼈와 살 사이를 지나는 저 고요하며 서늘한 소리는 천상의 음악(律)이다. 포정을 창조한 이는 장자이고 장자의 포정을 다시 데려와 저 아름다운 음악을 지극히 연주하게 하는 이가 고형렬이다. 고형렬이 아니었다면 포정의 저 춤과 노래는 우리에게 영영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포정은 보이지 않고 그 칼끝만 서걱서걱 움직이고 있다. 그때 포정은 네 가지 동작을 포착했다. 손, 어깨, 발, 무릎. 네 신체부위로 힘을 쓰면서 소는 해체되었다. 수견족슬(手肩足膝)이 사자의 빠르고도 둔중한 동작은 도를 연주하는 악기이다.
    이 네 곳에서 힘이 시작된다. 장자는 인간의 동작을 너무나 잘 관찰하고 있었다. 이 네 곳이 세상을 움직이고 가고 있었다. 포정의 몸에서 소를 해체하는 소리가 들린다. 살과 뼈가 갈라지는 한없는 편안함. 아무런 고통, 기억 따위의 인식, 의식이 없다. 포정의 한 손놀림 속에 들어와 있는 물건일 뿐. 나는 문득 저 소리 자체이고 싶었다.
    획연향연 주도획연의 두 획자는 슥삭슥삭이다. 뼈에서 살을 베어내고 가르는 소리다. 거대한 집채가 해체되는 것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또 무엇인가를 드러내고 고치거나 없애는 개혁의 냄새가 난다.
    포정의 해우장은 음악 연주가며 장자의 마음터이며 곧 아무 이의 없는 생것의 천지이고 무의(無依)의 자연이다. 해우장은 이 세계이다. 포정의 손에 의해 죽어 살과 뼈를 바치는 소가 지극한 존재가 아닐까.
    인류의 인간들 중에 그 소만한 희생을 치른 자가 있을까. 농담 같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없을 것 같다. 인간의 몸을 고기로 먹은 자들이 아니고선 그런 희생자는 없을 것이다. 이 소를 단순하게 볼 수가 없는 까닭이다.
    소를 해체하여 살을 바르는 동작이 마치 절뚝절뚝거리듯 움직여 나아간다. 마치 올자(兀者)가 걸어가는 듯한 이 행보에서 장자는 놀라운 고도의 기술을 보여준다. 포정의 솜씨와 행동은 그대로 장자의 글에 와서 짝을 맞춘다.
    어눌하지만 모든 것을 갈라치고 지나간다.
    최고의 경연과 문장이 일치되고 있다. 장자는 그가 움직이는 그대로 현장에서 그것이 최고의 장자 문자로 모사(模寫)되었다. 두 개의 실천과 문자가 하나의 예술로 움직인다. 그것은 일찍이 이 지상에 없었던, 그 누구도 연주한 적이 없는 음악이다.
    그러나 그 음악이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포정의 자그마한 무릎뼈가 구부러졌다 펴졌다 하면서 거대한 소에 탁 달라붙어서 때로는 떨어지면서 살을 가르고 베어내는 모습은 마치 걸어가는 노인과 아기의 모습 같았을 것이다.
    작은 인간의 의지의 표상이다.
    소리만 들릴 뿐 살의 몸체는 발라지고 허물어지고 있는 듯, 아무런 손상이 양쪽에 없었다. 이것이 대자연의 이치며 운행이 아닌가 하고 숨죽이고 바라보았다.”

    목차

    머리말

    무애(無涯)와 유애(有涯)
    전생(全生), 온전한 생이란
    포정의 위대한 해우(解牛)
    획연향연 주도획연, 소 잡는 소리
    모든 소가 보이지 않았다
    육체의 깊은 곳을
    저의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여토위지의 출시행
    양생(養生), 새로운 생을 얻다
    나만 홀로 있다
    꿩을 자세히 보라
    생사초월, 영원의 양생
    지궁화전(指窮火傳) 알 수 없는 끝

    후기 _ 양생주(養生主)의 존재와 비밀

    본문중에서

    이것이 까마득한 고대에 장자가 집필한 『칠원서』의 세 번째 편인 〈양생주〉이다.
    〈양생주〉는 『칠원서』 7편에서 길이가 가장 짧은 글이다.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문제의 한 물건이 있으니 다름 아닌 인간이다. 수많은 상취(相吹)의 존재 중에서 지혜와 언어, 손, 불을 가지고 있는 이 존재는 두렵고 복잡한 존재이다.
    그들은 유애한 존재이다. 언젠가는 모두 저 자연의 무로 돌아가 없게 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단지 살아있는 동안 생의 유일한 양생을 문제로 다루는 〈양생주〉는 난해하다.
    〈제물론〉에 이어 다시 〈양생주〉의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생을 얻는 일’ 즉 양생을 인식하고 행하는 일의 앎을 얻기 위해서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을 살면서 자기 생을 인식하는 것 같지만 정작 인식하는 자는 거의 없다. 생을 문장으로 쓸 수 있는 자가 드물기 때문이다. 어쩜 그것은 불가한 일이다. 내가 아는 이것에 대한 장자의 답은 명쾌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아 발견이 아니라 기이하게도 상아(喪我)이다. 나는 이것을 ‘너 자신을 찾지 말라’고 해석했다.
    죽기 전에 장자가 직접 한자 한자 썼을 〈양생주〉를 한자 한자 읽으면서 무엇이 양생인지를 알아간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양생주〉를 만난 것은 가장 자유롭고 커다란 언어의 축복이자 상상 경험이다. 이 〈양생주〉를 읽지 않았다면 내가 살았다 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천지일지의 소 한 마리가 해우된 말의 집을 찾아 비근비근대는 내 정신의 아귀와 짝을 맞춰 거기 도달하고 싶었다. 나는 그 소를 위해 울지 않을 것이며 오직 바람을 따라 무한히 떠날 준비를 한다.
    무애의 바다로 열려 있는 선창에 댄 종선 한 척이 비걱거리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 과거의 그들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로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언어이고 삶이어도 나는 괘념치 않을 것이다. 그곳에 나의 정신과 말의 본향이 있을 것이다.
    장자는 무애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다이고 혼돈일 수 있다. 우리는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리게 되고 만나지 않아도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의 자리가 또 떠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떠나는 것들에게만 아름다움에 해당하는 무엇의 편린 하나가 떨어져 있을 것이나 그것에조차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 쉼없이 어디론가 옮겨 가는 나를 알 길이 없다. 그 부지가 양생일 줄은 몰랐다.
    그러므로 해서 나는 무한의 여행 속에 존속(存續)한다. 〈양생주〉는 이 존속의 길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러나 양생이 그리 만만하게 손과 마음에 잡히는 것은 아니다. 양생이 양생을 안다는 것은 신묘하고 난해한 일이다.
    누구나 그렇게 무서운 길을 떠났다. 한 순간에 그들은 무애로 가고 없다. 주변에서 늘 사람이 죽지만 가공할 일이다. 타인과 뒤섞인 삶이 인식되지 않고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누구가 죽는다. 아니 죽을 수 있다. 아니 죽임을 당한다.
    그래서 〈양생주〉는 꿈같다. 만물의 주인인 생령이고 생명의 〈양생주〉를 저 바람과 불 속에서 찾고 만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꿈은 없다. 우리가 살다 간 꿈은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그 꿈의 자리는 그곳에 남아 있다. 그곳이 이 현실 세계이다.
    그러나 현실이어도 인식이 되지 않는다. 동시에 그 현실을 가지려고 탐욕하는 정신은 없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사실 이 세계의 주인도 종속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길 나는 바란다. 나는 어쩜 반이승적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리 마음이 가는 것을 어쩔 것인가.
    그날 침묵이 침묵하는 장자의 어둑한 해우장을 상상할 수 있을까. 구부리고 있는 팔, 힘을 주고 있는 다리, 그 손과 눈과 머리카락이 나의 손과 눈과 머리카락이 아니었을까. 한 마리의 꿩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길이 없는 이 우주에서 천뢰가 울던 곳의 그 아래 어디쯤이었을까. 인간이 사는 곳이 있었으니 그 생명이라고 하는 집의 주인인 정신이 〈양생주〉였다니. 위지(爲遲)와 위계(僞戒)로 장자가 그 무애 앞에 혼자 칼을 들고 서있었다. 저쪽 세상이다.
    이 해우의 경지를 보인 것은 진인(眞人)을 위함이며 진인을 위함은 만물제동의 생을 보기 위함이다. 삶을 편애하지 않고 죽음을 껴안는 양생이다. 그러지 않고선 반쪽 양생일 것이다. 전우(全牛)와 전생(全生)을 보는 일이 그것이다.
    〈양생주〉의 주제는 바로 그가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따르는 길에 있다. 그 길이 보이던가. 본 적이 있는가. 그곳엔 이름도 분경(分境)도 고저도 대소도 없다. 죽음 속에서 내다보는 저 바깥의 생은 스스로의 인식과 무정(無情)이 될 만하다.
    모든 인간 속에는 마음의 진인이 있다. 그 마음의 진인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세월만 보낸다. 그 진인의 마음이 다친 적이 없었다. 그것은 형상이 없는 우제용의 그림자들이다. 호반의 구름 그림자와 같다.
    생명은 양생에서 시작되어 제물에서 움직인다. 제물의 핵심인 우제용은 만물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만물을 사용한다. 문혜와 저 까마득한 세월 뒤에 있는 한 독자를 위해 한 마리 소를 잡아 씀으로써 역으로 만물을 사용한 양생의 경지를 장자는 보여주었다.
    장자가 사유한 그 골방에 갇히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어진다.
    하긴 시비(是非)가 사라졌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가 왜 그들과 다 말해야 하겠는가.
    이 〈양생주〉가 애초부터 그 누굴 설득할 뜻도 없었거니와 나 혼자의 한없는 독백이었다. 그래서 모든 ‘나’ 역시 만물로 조용히 어쩜 무참하게 돌아가길 바란다. 저 무와 존재의 무애를 향한 바람의 물결과 풀잎처럼. 미완일지라도 완전한 인식의 대상은 없다.
    나는 겨우 그 어딘가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만 한번 확인하고 나는 나를 잊어 다시 말과 생각과 지혜와 문자를 가지고 찾지 않고 싶다. 나는 어디 묶여 있는 것일까.
    저 우주에선 지구 쪽으로의 상상이란 가당치 않다. 너와 내가 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우리를 발견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쪽이 무애가 있는 사유의 중심이다, 지구는 변방의 변방 밖이다.
    한 번만 만지고 싶다. 문명 끝에 있는 나의 마지막 손을. 다섯 손가락뼈의 살 껍질이 얇게 붙은 한 인간의 손. 아무 소용이 없는 손. 마치 너의 얼굴처럼 괴이한 형상을 한 손가락. 불을 지피는 알 길 없는 손, 인간의 손.
    양생은 자신을 이겨내는 싸움이며 자신을 희생하는 망각의 일이며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괴연독한 자연의 피동(被動)이다. 해우를 넘어 열 발짝 가서 한 번 쪼고 백 발짝 나아가 물 한 모금 마시는 일이다. 그것이 없을 수도 있다. 기이하게도 그 꿩이 없다고 내가 없는 것도 아니다.
    또 양생은 선과 악을 넘어 무명(無名)을 지켜내서 끝까지 위계(爲戒)하고 위지(爲遲)하는 삶의 길이다.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자는 없다. 죽어서야 말할 것 없지만 살아서 대부분 자신을 잃는다. 그가 바로 인간이다.
    〈양생주〉를 어렵게 대하면 아무것도 설명할 수가 없게 된다. 한 마디로 쉽게 말하면 〈양생주〉는 잃는 쪽에서 주는 이익이며(무익생無益生에 반하는 개념) 먹는 일이다. 사실 〈양생주〉에 먹는 것에 대한 말은 없다. 다만 꿩(雉)의 십보일탁이 있을 뿐이다. 물론 맨 뒤에 전(傳)과 함께 불(火)이 나오지만 더구나 포정이 소를 잡고 나서도 요리 과정이나 식사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
    그럼 〈양생주〉는 도의 이야기이기만 한 것인가.
    핵심은 인간은 무엇―〈양생주〉에서는 해체한 소이다-인가를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말하면서 편 속에 묻어두었다. 놀랍게도 도가 먹을거리의 옷(은유) 즉 소를 입고 있다. 동시에 먹을거리 즉 소가 도의 옷을 입고 있다.
    도와 먹을거리가, 음식물과 식사 행위가 하나로 되어 있어서 그 진언을 깨닫기가 쉽지 않지만 핵심은 존재와 희생과 먹는 일이 생 즉 양생이다. 자연의 법칙을 완전하게 인식하는 일을 해우로 보여주었고 이 불에서 〈양생주〉의 여행은 끝이 났다.
    해우하지 않으면 생을 얻을 수가 없다. 나의 양생은 나무와 불처럼 누구에겐가 양생이 될 것이다. 나의 뼈와 살이 건너간다는 것은 신비한 묶임이고 차라리 아름다운 숙명이다.이 말을 곱씹으면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의 글에는 소를 잡은 것에 대한 연민이나 생명을 해쳤다는 죄의식 같은 것은 없다. 당당하게 당연하게 해체했다. 그것에 대한 변명과 측은지심 같은 것은 지워져 있다. 단지 경계심을 주면서 열 발자국은 가서 먹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장자에겐 종(宗)은 있어도 교(敎)는 없다. 신도 없다. 굳이 말한다면 소와 포정, 십보일탁, 불기휵, 개독(介獨, 혼자 있음) 등등이 신이다.
    이렇게 볼 때 장자는 철저한 무신론자이다. 그러나 그는 우주 소요자이다.
    그의 숙명론은 자연에 무조건 순응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늘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생사에 대한 저항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이상을 찾으려는 처절한 수행의 몸부림으로 육박해 오는 적극적 숙명론자이다.
    그러나 그에게 책무란 없다. 그 책무를 자연에 떠넘긴 기이한 사상가이다. 나는 그 말이 누리기만 하라, 즐기라, 소요하라, 자유하라는 말로 들린다. 양생도 그와 같은 논리 속에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체제와 권력에만 대항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보다 더 큰 세계인 하늘과 숙명과 싸운 자이다. 도망 온 자로서 이 지상에 인간의 독자적인 삶과 철학의 아주 빠른 직관으로 의[義, 장자의 의는 위로 우뚝 솟음이다, 독(督)과 같음]를 세우고 숙명을 초극할 것을 주창한 자이다.
    〈양생주〉는 여전히 장자를 언제나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는 미제(未濟)를 남겨둔 시편(詩篇)이다. 나는 보고 싶은 사람이 없는 나의 시대 속에서 본유(本有)의 고진인(古眞人)을 그리워하며 이 글을 썼다.
    산지못과 같은 〈양생주〉의 576자는 노자의 오천언을 넘고 맹자의 34,685자를 관통하고도 부족하여 뒤돌아볼 것이다.
    ('후기_양생주(養生主)의 존재와 비밀'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4.11.08
    출생지 강원도 속초
    출간도서 43종
    판매수 2,652권

    낯선 현실과 영토를 자기 신체의 일부로 동화시키면서 내재적 초월과 전이를 지속해가는 고형렬은 15년 동안 삶의 방황소요와 마음의 무위한 업을 찾아 이 책, 장자 에세이 12,000매를 완성했다.

    속초에서 태어나 자란 고형렬(高炯烈)은 「장자(莊子)」를 『현대문학』에 발표하고 문학을 시작했으며 창비 편집부장,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첫 시집 『대청봉 수박밭』 을 출간한 뒤 『밤 미시령』,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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