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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1 소요유 멀리서 아득히 거닐다 : 고형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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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매일 이별 없는 순간은 없다. 다만 우리가 망각하고 있기에 떠나고 사라지는 것을 모를 뿐이다. 우리 영혼의 곡두는 무엇인가를 수도 없이 지나쳐 가고 지나쳐 왔다. 수많은 이름들로 찾아와서 자기 몫의 생을 살고 어느 날 훌쩍 자신을 떨쳐버리고 훨훨 날아간다. 오히려 우리가 살았던 이 육체의 세상을 죽음은 심히 낯설어한다. 그것을 안다면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닐 것이다.
    (고형렬 에세이 장자1 소요유, 『멀리서 아득히 거닐다』―「남쪽 하늘로 이사갈까」 부분)

    수많은 타인에 의해 ‘나’는 늘 왜곡되고 오해되므로 우리는 모두 아프다. 그렇다고 그게 ‘나’가 아니라고 설명하거나 납득시킬 방법도 없다. 실은 ‘나’도 아직 ‘나’를 만나지 못했는데 무슨 수로 ‘나’를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타인에게 자신을 증명하고 이해시키려는 부단한 노력으로 결국은 자신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고, 그 자신도 오해된 타인을 끝임 없이 반복 재생산하느라 고단한 삶이다. 누구도 여기서 예외일 수가 없다. 인간의 언어와 문자는 마냥 어긋나고 미끄러지면서 숙명적 쓸쓸함만을 안겨줄 뿐이다.
    아직 만나지 못한 ‘나’는 어디 있을까? 분명 그것은 나에게 속해 있을 텐데 왜 만나지 못하는 것일까? 혹시 때때로 만났는데 스쳐 지났는데 못 알아본 것은 아닐까?
    지리멸렬한 도시의 시간과 자본에 점령당한 공간은 채찍질만 해대고 돌아볼 겨를도 없이 모두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다. 우린 모두 뒤를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뒤가 차단되고 삭제된 우리들, 이대로 괜찮을까? 과거를 잃은 것은 미래를 잃은 것. 요샌 유행처럼 사람들마다 현재를 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는 자본과 기계적 시스템의 가차 없는 채찍질뿐인데. 혹시 우리 모두 뭔가에 조작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이제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고형렬은 말한다. “인간은 문명과 도시에 안주했고 혼돈과 방황을 잃어버렸다.”
    그 혼돈과 방황이 삶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출판사 서평

    방황하고 싶다
    그리고 소요하고 싶다. 저들과 함께.
    그는 외친다, 혼자. 마치 광야에서 절규하듯. 마음만이라도 안주와 체제를 떠나 혼돈과 자유로움을 찾아가라. 그 누구에 대해서도 책임감으로 자신을 묶지 말라. 그 어떤 윤리로도 자신의 존재를 묶지 말고 괴로워하지 말라. 어떤 자비도 사랑도 이념도 책무도 나의 방황과 소요를 구속할 순 없다. 이것만이 장자의 절대 헌장이다.

    고형렬 에세이 장자 7권 중 제1권인 『소요유』는 시작하는 에세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은 이 에세이의 종편인 7권 『응제왕』 마지막 문장과 『소요유』의 첫 문장은 기이하게 서로 삼투하면서 나선형으로 이어진다.
    “이제 책의 문을 닫는다. 그러나 삐꺽 하고 문이 열리면 까마득한 그 북명의 바다가 펼쳐져 있을 것만 같다”는 『응제왕』의 마지막 문구가 “북명(北冥)의 바다는 어디일까. 왜 붕새는 분노(忿怒)했을까. 나는 오늘도 북명의 바다로 간다”라는 『소요유』의 첫 문장으로 슬며시 이어져 있기도 하지만, 이미 『응제왕』의 후반부에선 북명의 바다와 어린 물고기 곤을 향해 돌아가는 조심스럽지만 모험적인 걸음이 자주 포착된다.
    이 전집 7권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 흘러가기 때문에, 2권이든 3권이든 어떤 편이라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뒤섞이기 때문에, 구태여 1권부터 7권까지를 순차적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어찌 보면 그건 이 전집을 읽는 방법 중 가장 지루한 독법일 가능성이 높고, 지루한 것을 참으며 뭔가를 뚜렷하게 건져 올리려고 분투하는 것은 장자의 이야기 나라에선 반칙이다. 3권 『양생주』부터 읽어도 되고 4권 『인간세』부터든지 5권 『덕충부』부터 읽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오히려 『소요유』와 『제물론』은 가장 나중에 읽을 것을 권장하는 바다.
    『소요유』의 키워드는 방박이다. 방박은 일차적으로 커다란 휘저음 혹은 뒤섞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저자는 막고야산의 신의 덕을 빌어 이렇게 재해석한다.
    “방(磅)은 우주며 자연이며, 박(礴)은 결실과 숙성, 가공의 세계이다. 모든 만물들이 이 질서 안에 움직이고 할 일을 다하고 맺어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간다. 자연 안의, 이 세계 안의 사거(徙去)이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문장도 있다.
    “이 방박은 위대한 혼돈(渾沌)이다. 그 혼돈은 장차 끝에 가서 살해되고 말지만 인간의 지혜로는 어리석기 그지없다. 이 그지없음을 인간과 그 두뇌들이 박살을 내고 있다. 이제 그 박살은 미안한 말이지만 거의 완성단계에 다다라가고 있다. 이제 인간들이 축배를 들 날이 머지않았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고농(瞽聾)의 오만한 욕망의 지혜에서 비롯되었다.
    불행하게도 이 지상의 세계는 이미 만물 방박을 회복할 수 없다. 아름다운 고(古)는 맑고 어둡고 높으나 인간은 결코 그곳을 상상할 수도 갈 수도 없게 되었으며, 먼 종말(終末)의 미래 밖으로 스스로 초라한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하나씩 들고 추방되고 있다.”

    장자는 이미 죽었다. 강고하고 획일화된 틀 안에 갇혀서 박제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정신의 박물관 지하 같은 공간에서 먼지에 파묻혀버린 그 장자를, 시인 고형렬이 이 책 전 7권을 통해서 이제야 애도하고 제사를 지낸다. 따라서 이 책 집필의 궤적과 탄생의 과정, 그리고 이윽고 독자와의 만남 자체가 장자를 위한 지노귀굿이며 장자 부활의 제의이다. 시인은 시적 상상으로 순결하고 천진무구한 질문들을 무수히 쏟아내며 장자 너머의 장자를 불러와 함께 춤추며 노래한다. 그 중독성이 탁월한 선율과 노래를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을 것이다. 그동안 진짜 장자는, 낡고 퇴색한 장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책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운이 좋으면, 앎을 내려놓고 그리하여 마음이 맑게 개이는 어느 날의 오후쯤, 2,300년 전의 장자가 되살아나 저만치 시간의 강을 건너오고 있는 모습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고형렬 에세이 전7권 대장정의 궁극적 목표는 어쩌면 그것이어도 좋을 듯하다. 안개 속에서 혹은 비바람 속에서 휙 스쳐 지나가는 장자의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얼핏이라도 엿보게 되는 것. 그리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확고하게 믿어온 장자의 상이 스스로 무너지면서 장자를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고형렬에 의해 부활된 장자는, 자기 지식이나 정보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와는 십중팔구 불화할 것이다. 새로운 세대들이나 스스로 아직 앎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다가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쨌든 인연이 있어 만난다면, 정작 그들은 먼 데서도 가까운 그리움을 깊이 안으리라는 예감이다. 고형렬의 장자는 저 세계인의 신명을 뒤흔드는 <방탄 소년단>처럼, 전혀 다른 메시지와 전혀 다른 가락으로 새로운 철학의 놀이마당을 열어갈 것이다.

    목차

    머리말

    북명(北冥)의 물고기, 붕(鵬)새가 되다
    남쪽 하늘로 이사 갈까
    생물들은 아지랑이와 티끌 속에서
    물은 배를 기다린다
    바람은 날개를 찾아온다
    쓰르라미와 비둘기들의 비웃음
    길을 가는 자의 양식(糧食)
    대춘(大椿)은 8천 년을 살았다
    궁발의 북쪽은 무엇을 예언한 것일까
    일관(一官)과 일군(一君)의 메추라기들
    송영자(宋榮子)를 비판하는 장자 선언
    무궁을 노니는, 이름 없는 인간들
    기산에서의 유(由)와 요(堯)의 독대
    그대는 귀휴(歸休)하시오
    그리운 고야산의 신인(神人)
    만물이 방박(磅礴)하는 자연의 음악
    무용한 모자와 요(堯)의 아득함
    대호(大瓠)가 부서지다
    송나라 변벽광 세탁업자의 수약(手藥)
    장자와 혜자 사이의 저나무
    마지막 대화

    본문중에서

    어느 날 비 그친 갈지산에서 산책하다 문장이 혼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칠원서』를 읽으면 길을 잃는다.
    나는 그 잃어버린 길을 간다. 그 길은 무용(無用)의 길이다. 무용의 소요 공간은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며 광막지야(廣莫之野)이다.
    이것이 길을 찾는 다른 ‘길’이지만 형체가 없는 진인(眞人)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
    그것은 만물유전의 흑암 속에 있겠지만 언어의 길가에 있는 대수(大樹) 밑에서 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꿈의 현실인 도시 밖에서 아득할 뿐이다. 그 길은 ‘길’이 아니다. 나는 다른 길에서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무용을 친구로 삼고 초월하려 한다. 삶은 혼돈과 방황 밖에 묶여 있다.
    맹춘(孟春)의 눈이 낙엽되어 공중에서 춤을 춘다. 너를 대신하여 바람에 의탁한 가을의 소요이다. 대지의 만물 운영은 자연과의 동행에 있다. 자연을 인임하고 소요하는 것이 최상의 삶이며 자연의 길이다. 숨어 있는 자연의 언어와 벗하는 천진한 사색이 진인(眞人)의 내적 삶이고 소요의 하늘이며 지식과 아집의 감옥을 부수는 방외(方外)의 길이다.
    소요유의 장자는 폭넓은 상상으로 동식물과 인간, 사물과 만나 소요한다. 인간만이 장자의 탐구대상이 아니다.
    장자는 작은 지혜와 피아의 시비(是非)에 인간의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인간을 만물의 하나로 놓고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인간은 모두 소외됐거나 자기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들과 같다.
    (…)
    장자를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 장자의 세상은 너의 눈동자에 얼비치는 눈물빛 하늘이다. 또는 사물과 현실의 딱딱한 꿈이고 그물망이다. 누구나 몰락과 환영의 이 세계에 만물을 두고 사라진다. 장자의 사상은 그 무궁(無窮), 무극(無郤), 무짐(無朕) 이 3무(無) 속에 있다.
    ('머리말' 중에서)

    과거의 책을 다시 읽은 것은 조우(遭遇)이다. 대부분 조우는 실망을 안겨주지만 장자의 이 조우는 그 뜻이 더 심오하고 일견 덧없고 두렵다.
    나는 어리석은 길만 걸어온 것 같다. 자신을 찾아 이상을 찾아 사랑을 찾아 목표를 설정하고 글을 쓰고 사회생활을 해왔지만 결국 나는 나동그라진 한 존재에 불과하다. 알게 모르게 경쟁하고 혼자 밀실에서 만족하고 멀리서 비웃으며 자유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른이 되고 장년이 되었지만 어리석기는 매한가지이다.
    (…)
    생명에게는 바람과 물이 가까이 있다. 이 두 물과 바람이 생명을 길러낸다. 이것이 없는 곳이란 상상하기 어려우며 그것이 없는 정신의 언어도 생활도 메마를 수밖에 없다. 쓰르라미도 비둘기도 모두 바람과 물가에서 살아간다. 이 바람과 물은 장자 사상의 재료 중에서 가장 종요(宗要)로운 근거이다. 아무튼 이 둘이 없으면 재미없는 사유와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일단 이것은 무용한 것 같지만 출렁이게 하고 스스로 반짝이고 무언가를 흔들어주고 스쳐 지나간다.
    이것이 바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바람과 빛의 소요이다. 자연이 이처럼 먼저 소요하고 있다. 이것이 자연의 본질이고 파동이고 윤슬이다. 장자는 그들을 보고 그들을 따라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물에서 물결이 치는 것과 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는 것과 같다. 천지가 그대로 서로 거역한 적이 없다. 자연의 소요의 빛과 바람이 없다면 〈소요유〉 편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아니 장자의 위대한 사상이 시작할 수도 존재할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이 소요유는 만물이 꿈꾸는 소유(消遊)와 요유(搖遊)가 함께하는 자연의 가장 이상적인 조화이다.
    아무리 작은 바람과 물일지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를 어디론가 실어다 날라주는, 도착하게 하는 날개이며 배이며 나뭇잎이다. 그것을 타면 풍경도 바뀌고 공간도 바뀌고 나도 바뀐다. 주객이 객주(客主)가 된다. 모두가 입장을 바꾸어 바라보게 되면서 속삭이고 팔랑거리고 출렁이게 된다. 마치 어미와 아이가 마음을 두고 몸을 바꾸는 것과 같다. 어미 속에 아이가 있고 아이 속에 어미가 있다. 기막힌 바람과 물의 변주와 음악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현대가 잃어버린 막막함과 그리움 그리고 풍류(風流)의 주인공들이다.
    장자는 한 잔의 물에서 경이를 본다. 물은 죽은 듯하고 부동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혹은 숨어 있는 대변(大變)을 보여준다. 생명을 포함한 이러저러한 자연의 만물을 움직이게 하고 자신도 모르는 생령의 풍력(風力)을 불러일으킨다. 장자에게 그 기의 파동이자 프리즘인 바람의 문채를 온갖 것의 세상에 세운다. 여기서 실제를 넘어서는 상상의 영역 밖으로 해방시키는 존재를 본다. 사실 과학 문명과 속도의 소유(所有)에 의해 미래의 공간과 현실은 비좁아지고 있다. 마치 지구라는 마룻바닥의 오목한 요(坳)에 떨어진 한 잔의 물 위에 그 잔을 얹어보려 하는 것과 같은 협애함과 답답함이 한 개인의 영혼까지 지배했다. 이것은 시공을 탈취당하는 일이다. 심각한 문명의 오염 속에서 연명하는 형국이 완성되었다.
    ('쓰르라미와 비둘기들의 비웃음' 중에서)

    혜자는 장자를 계속 공격한다. 비유물만 잘 들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 당시에도 궤변들이 많았기 때문에 장자 역시 그런 궤변을 설득하지 못하면 자기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혜자의 질문에 아주 포괄적이고 다의적인 답변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장자가 대단하더라도 혜자를 무조건 부족하다고만 말할 순 없는 일이다. 게다가 혜자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가죽나무 비유는 또 누가 들려줄 것인가.
    그도 자기 나름의 작은 생활 속의 이익과 자잘한 지혜의 즐거움을 주는 문학적 표현물을 생각하고 찾아 논리를 창조하면서 장자의 거대담론을 깨부수고 싶었을 것이다. 어쩜 혜자는 가장 솔직하게 장자에 대한 콤플렉스를 나타냈던 감정적이고 다혈질적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실용주의와 실사구시의 노선으로 장자의 무위론(無爲論)을 입 막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하늘만 쳐다보고 살지 않는다는 항의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새는 이름을 붕(鵬)이라고 붙였을 뿐, 실은 일세에 한 번도 날아가지 않는 무명(無名)이라 해도 그 탓을 할 수는 없다. 날이 밝아오고 저무는 하늘을 탓할 수 없는 그 무용과 같다. 물론 모든 지혜의 머리 위의 파란 하늘 속에 대붕이 날개를 펴고 떠있다는 것은 사상가들에겐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불쾌감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권력의 핵과 민중의 동조에 기반을 둘 것이다. 즉 정말 무용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는 사실의 확인에서 그들 사상의 위치가 확고해졌겠지만 그들의 정치적 현실감은 실로 고루하고 답답한 판에 박힌 틀이었을 것이라는 유추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기 사상의 영원 보편성의 세계를 활짝 열어젖힌 장자의 이 무명의 대본(大本)은 그들을 압도했고 지금도 유효한 미래의 화두로 남아있다.
    (…)
    콤플렉스적 측면에서 본다면 혜자는 속으로 장자의 붕사상 혹은 방박(磅礴)사상, 위연(威然)의 사상, 반중심 사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긍정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바로 그것이 저나무사상이며 대호사상일 것이다. 너나없이 당대의 사상가들이 모두 가장 중요한 것만 찾아가느라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장자만이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장자의 길 저 멀리에 새벽이 오고 있었다. 정작은 그걸 혜자가 알고 있었고 장자가 그 혜자의 앎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선 그 당시의 장자의 아주 낯선 사상을 이렇게 잘 비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당신이 일상과 사물을 중시해도 나의 방박의 사상은 이미 영원한 저 자연의 시종과 과정, 그 종결의 너머까지 간다면 당신은 어디 있을 것인가. 장자는 이미 인간의 망념 속에 있는 미시(微示)의 우주 생명 자체라고 자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벌써 그 소요(逍遙)를 이미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인간은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혼자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럴 때 장자의 사상엔 그 어떤 사회적 도덕적 명분이나 대의보다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천부의 권리와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장자는 체제나 도덕을 우위적으로 강요된 대부분의 사상의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전국시대가 가면서 권력 아래의 해바라기 사상가들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도 당시에 이 방대한 『칠원서』가 한 번에 완간되었을 리는 없다. 여러 정황과 사정으로 〈소요유〉 편의 한 부분 그러니까 붕새 이야기가 어떤 형식으로 떠돌았을 법하다. 또 그 다음 글이 순차적으로 펼쳐졌을 것이지만 그때 혜자가 붕새를 읽고 웃어넘겼을지 모른다. 물론 깜작 놀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때 자신의 마음이 장자로부터 도망쳐 버렸을지 모른다. 조금 묘한 것은 혜자가 자기 집의 저나무를 말하면서 증명한 적이 없는 민중들까지 장자의 말을 외면해 버렸다고 말한 것인데, 여기서 그 의중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왜 민중을 들고 나온 것일까. 혜자 같은 사람은 다수의 뜻을 가장 중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자는 제왕과 민중의 경계 자체를 두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장 비겁한 말은, 많은 사람들이 장자의 이야기를 가죽나무처럼 버린다고 말한 부분이다.
    ('장자와 혜자 사이의 저나무'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4.11.08
    출생지 강원도 속초
    출간도서 43종
    판매수 2,652권

    낯선 현실과 영토를 자기 신체의 일부로 동화시키면서 내재적 초월과 전이를 지속해가는 고형렬은 15년 동안 삶의 방황소요와 마음의 무위한 업을 찾아 이 책, 장자 에세이 12,000매를 완성했다.

    속초에서 태어나 자란 고형렬(高炯烈)은 「장자(莊子)」를 『현대문학』에 발표하고 문학을 시작했으며 창비 편집부장,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첫 시집 『대청봉 수박밭』 을 출간한 뒤 『밤 미시령』,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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