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적립 안내

김경진 시인의 에세이집 ?나를 중독시킨 한마디 괜찮아?가 도서출판 애지에서 나왔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문, ‘시적 치유 감성의 에세이’라 할 수 있다. 투병을 하다 끝내 곁을 떠나버린 아내의 부재와 상실의 통증, 끝없이 무너지고 엎어지는 몸부림 속에서 ‘괜찮다 괜찮다’ 주문을 외며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김경진 시인은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일찍이 ≪시문학≫과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첫 시집 ?서른 살의 사랑? 이후 여섯 권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이다. ?내 눈 속에 그대가 들어왔다?, ?그대에게 다 하지 못한 말?, ?눈물은 뜨겁다? 등의 산문집도 냈다. 태생적으로 시인인 그가 산문을 쓰기 시작한 것은 상징성에만 머물지 않고 서술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대부분의 산문에 시적 감수성이 그대로 녹아 들어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읽는 이의 마음과 감정에 따라 시처럼 읽혀지기도 할 것이다.

“상처 받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죠. 상처는 그대로 두면 곪아 마음을 썩게 하고 치명적인 자아상실의 병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에 자신을 치유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생각의 바탕에서 글이 출발했습니다. 자신을 챙기고, 자기를 배려하는 일부터 상처 치유는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상처 속을 파고들어 ‘나답게’ 살아가는 삶 속에 함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그는 삶의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글을 썼다고 한다.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는 것이 절망을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고 한다. 이번 에세이 대부분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지금 잘하고 있어, 괜찮아. 정말 괜찮아.” 라고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와 용기의 주문이 얼마나 큰 힘으로 나아가는지 여실히 녹아 있다.
김경진 시인이 자신의 지독한 상처와 결핍을 밀고 당기며 ‘지금-여기’의 ‘나’를 객관화시켜나가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편의 시처럼 예리하고도 뭉클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을 참답게 살아가려는 모든 ‘나’들이 자신에게로 가는 여정을 멈추지 말기를, 새롭게 다가올 희망과 사랑을 만나기를 바라는, 그의 간절한 마음도 읽을 수 있다.

1. 심장에 등을 달다
2. 나에게로 가는 여정
3. 잘하려 하지마, 그냥 살아보자
4. 삶의 맛
5. 괜찮아, 느려도 가고 있으면 돼

인연을 잃어버리고 나면 궁금한 게 없어집니다.
함께 이루고 싶었던 것, 가고 싶었던 곳을 향해
아쉬울 게 남지 않게 됩니다.
상실을 말할 기운도 없어집니다.

이별 이후 하나도 괜찮은 건 없었습니다.
괜찮아지지 않는다고 해야 맞습니다.
그러니 원래 맺은 인연이 없었다고
포기하며 나를 달래는 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괜찮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괜찮아 라는 주문이 앵속처럼 나를 중독시켰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괜찮다 라는 주문.
평정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 놓쳐서는 안 되었습니다.
‘괜찮아. 좋아질 거야. 지금이 나중을 견인해 줄 거야.
습관성 속 쓰림 정도는 꺼리지 말고 지내자.’
그렇게 자조적인 위로를 반복하며
팔짱을 낀 채 오랜 시간을 방관자로 지냈습니다.
무심해져야 정말 괜찮아질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팔짱을 풀어야겠습니다.
괜찮아지기 위해서 움직임을 멈춘 페달을 밟아
시간의 경계를 넘어가야겠습니다.
지켜내지 못한 인연을 보내주고
다른 인연을 받아들여야겠습니다.
― 팔짱을 풀고


손 나팔로 이름을 불러봐도 파도소리만 돌아옵니다.
지나간 사랑이 침전된 물은 파랗게 멍이 들어 있더군요.
방파제에서 파도와 만날 때마다
녹슬지 않는 추억들에게 속절없이 주눅이 듭니다.

모두들 사랑에 대하여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둔갑되어버린 세상입니다.
없으면 못 살 것처럼 사랑에 미쳐 있습니다.
사랑이 빠진 영화는 심쿵하지 않아서 밋밋합니다.
사랑이 없는 글은 건조하기만 합니다.

연애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연애도 못하는 사람은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습니다.
사랑을 이루는 방법, 사랑을 이어가는 방법을 말하고
이별에 대처하고 적응하고 극복하는 방법에 대하여
누구나 박식해져 있습니다.

정작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은 연애하는 방법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에서 오는 안정감일 텐데.
지키고 있는 사랑도 사랑이고 잃어버린 사랑도 사랑일 겁니다.
다만, 다른 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에 대한 사랑이
충분해야 가능하다는 걸 잊지는 말아야겠습니다.
― 사랑, 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