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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에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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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국내 최초 소개!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재일교포 작가 후카자와 우시오의 첫 단편집
    -2012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대상 수상작
    -나오키상 수상자 미우라 시온이 추천하는 책


    일본에서 주목받는 재일교포 작가 후카자와 우시오의 국내 첫 단편집이다. 이 책은 2012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대상작인《가나에 아줌마》의 주인공, 가나에 후쿠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섯 편의 단편들을 통해 재일교포 가족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다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재일교포들이다. 그러나 가족 간의 미묘한 관계, 사회와의 괴리감, 치매에 걸린 조부모에 대한 불편함과 자책감 등은 보편적인 인간이 겪는 문제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런 보편성이 가슴 찡하게 만든다. 작가가 살아오면서 만난 다양한 인생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연작집이다. 후카자와 우시오 작가의 소설은 세계 여러 곳에서 번역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가나에 아줌마》는 ‘누벨솔레이(새로운 태양, Nouvelle Soleil)’의 첫 번째 앤솔러지로 누벨솔레이는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 곳곳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소설을 발굴해 소개하는 아르띠잔의 기획 시리즈다.

    출판사 서평

    여성, 재일교포, 가나에 아줌마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이 주는 감동
    -‘여성’과 ‘재일교포’라는 문학적 화두가 돋보이는 소설들


    ‘여성’과 ‘재일교포’는 후카자와 우시오 작가의 소설 작품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소재다.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긴 김민정 작가는 “후카자와 우시오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쓰는 작가다”라고 말한다. 《가나에 아줌마》는 일본에서 2012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심리묘사는 김민정 작가의 말을 빌자면 “소소한 일상 속 대화들이 소설 속에서 빛을 발하며 ‘리얼’한 감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결혼과 연애는 다른 거란다.”
    차근차근 짚어 말하는 후쿠를 미키는 강렬한 눈빛으로 똑바로 쳐다봤다.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미키는 명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거라. 부모님과도 잘 상의해봐.”
    후쿠는 미키에게 지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키는 턱을 잡아당기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강한 의지를 담은 듯한 그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미키와는 대조적으로 미야모토 부인은 고개를 깊이 조아렸다.
    “아드님은 잘 지내시나요?”
    미야모토 부인이 후쿠에게 액자를 건네면서 물었다. 후쿠는 데쓰오와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럼, 잘 지내다마다.”
    허공에서 데쓰오의 낮은 목소리가 공허하게 흩어졌다. 아무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미야모토 부인이 미키를 재촉하며 조용히 일어났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미야모토 부인은 목소리를 한 톤 높여 인사하고 가볍게 묵례했다.
    미키는 방에서 나오면서 여러 번 후쿠 쪽을 뒤돌아보았다. 이런 구시대의 유물은 처음 본다는 듯 차가운 얼굴이다.
    ― <가나에 아줌마> 중에서

    “얘, 제대로 안 하면 하나 마나야. 조상님 볼 면목 없게시리.”
    도미코는 굴비를 생선 그릴에 넣으며 대답했다.
    “엄마만 신경이 쓰이는 거지, 조상님은 그릇 같은 거 신경도 안 쓸걸. 아까도 말했지만 엄마는 너무 융통성이 없어.”
    “잘 들어 영인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한 거야. 그래야 너도 시집간 집에서 제사 지낼 때 실수를 안 하지.”
    “나는 제사 안 지내는 집으로 시집갈 건데.”
    혼잣말하듯 영인이 말했다.
    “아가씨, 선봐서 결혼하는 집은 다 제사 지내요. 저도 제사 없는 집으로 시집가고 싶었어요.”
    제기를 다 꺼낸 순오가 나지막이 말했다. 도미코는 듣지 못한 것 같다.
    “별수 없네요. 그럼 저는 장남 말고 차남한테 시집갈래요. 근데 나한테 그런 걸 고를 권리가 있을까? 에리카 언니, 언니는 다행이다. 오덕이 오빠가 장남이 아니라서.”
    목소리를 낮추고 영인이 말했다. 에리카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다.
    다행이라니? 그런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실은 이 집에 시집온 것 자체를 후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일본 사람> 중에서

    미오는 고개를 숙이고 손 안에 든 빈 컵을 꾹 눌러 찌그러뜨린다. 눈물이 북받쳐 오르는 걸 애써 참는다.
    “그렇게 중요한 얘기를 나한테 안 해준 게 너무 서운했어. 절친이란 무슨 얘기든 다 할 수 있는 사이 아니야?”
    얼굴을 들고 다마를 쳐다봤다. 의도치 않았는데 미오의 눈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다마가 “자, 잠깐만” 하며 낭패라는 표정을 짓는다.
    “울 것까진 없잖아. 마치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잖아.”
    “미안해. 그렇지만 거짓말을 하려고 한 건 아니야. 그게, 그냥.”
    점점 눈물이 솟아난다. 미오는 주스 컵을 테이블 위에 두고 양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코를 훌쩍이고 “그냥”이라고 다시 말했다.
    “말 못 했어.”
    “왜?”
    다마가 맑은 눈으로 미오를 응시한다.
    “모르겠어. 그냥 말을 못 했어. 한국인이라는 걸 숨기고 싶었어.”
    “뭐? 그게 어때서? 한국인인 게 어때서? 그게 나쁜 거야? 감추긴 왜 감춰?”
    “너는 모르잖아.”
    검지를 꺾어 눈머리를 지그시 누르며 대답했다.
    다마는 가만히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재깍 미오에게 건넨다. 미오가 고맙다고 말하고 손수건을 받아 눈물을 쓱쓱 닦았다.
    ―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중에서

    재일교포 작가이자 재일교포의 현실을 고스란히 전하는 작품으로 각광받는 후카자와 우시오 작가의 문학은 단순히 재일교포에 대한 인식과 재평가에 대한 의미만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재일교포로서의 삶을 매개체로 하여 문학 독자라면 누구나 감동과 읽을 맛이 넘치는 문학 작품으로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가나에 아줌마>의 주인공인 가나에 후쿠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연결고리다. 30년간 200쌍. 가나에 아줌마는 재일교포의 혼담을 이어주는 일본 제일의 '중매쟁이'다. 수수료로 돈을 버는데도 웬일인지 생활은 검소하기 짝이 없다. 소설 속에 드러난 그녀가 필사적으로 혼담을 주최하는 이유는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재일교포와의 결혼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간 <사주팔자> 속 미숙의 삶은 재일교포와는 또 다른 뉴커머(new comer)로서의 불안정함과 혼란을 보여준다. 또, 미숙에게 사주풀이를 하러 온 가나에 아줌마의 남편 가나에 데쓰오 노인의 사연을 통해 가나에 아줌마 가정의 비극이 무엇인지 세세하게 드러난다.
    <돌잔치>는 일본에는 없는 한국의 고유한 문화를 철저히 지켜오고 있는 재일교포의 문화를 다룬다. 일본 주류에서 벗어난 재일교포라는 신분을 감추고 만난 젊은 시절의 인연인 호스티스 레이나와 우연히 합동 돌잔치를 치르게 된 주인공 다다키. 그에 대한 심리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느지막이 자유를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여 고른 아내와의 결혼생활에서 느끼는 중년 남성의 애환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일본 사람>의 주인공 에리카는 이 작품의 유일한 일본인 주인공이다. 양반 가문의 재일교포 남성 오덕과의 결혼을 위해 무리하게 임신을 하고 승낙을 얻어낸 2주 후, 시댁의 제사에 처음으로 참여해 느끼는 감정들을 실감나게 다루고 있다. 한국보다 더 완고하게 전통을 중시하는 재일교포의 문화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낮은 유교문화의 핵심인 제삿날의 풍경을 통해 씁쓸함을 느끼는 일본 여성의 눈을 좇아가며 여성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누구보다 완고하게 양반 가문의 법도를 강조하던 시어머니 도미코의 반전도 소설적 흥미와 감동을 더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재일교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이전에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멈춰 서게 된다. <국가대표>는 펜싱 일본 국가대표를 꿈꾸는 재일교포 고등학생, 다케루의 이야기다. 귀화하지 않은 부모님의 문제로 인해 귀화신청이 지연되고 있는 한국 국적의 펜싱 고교선수 다케루와 같은 이유로 올림픽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고 귀화도 포기한 형 마사루의 이야기 속에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과 일상을 가로막는 국적 문제 등에 고민하는 재일교포들의 고뇌가 잘 묘사되어 있다.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치매를 앓는 외할배와 함께 살게 되면서 이를 바라보는 중학생 미오의 눈을 통해 재일교포의 역사를 보여준다. 1968년 일본에서 발표되어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금지곡으로 지정됐음에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할배가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는 애창곡이다. 심해지는 할배의 치매 증상으로 시설에 모시기로 한 미오 가족은 할배의 마지막 여행을 애창곡의 무대인 요코하마로 정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가 할배의 애창곡이 된 비밀을 풀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결혼’이라는 인생 중대사를 관장하는 중매쟁이 아줌마 ‘가나에 후쿠’를 통해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그렸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가치관도 다른 다수의 등장인물들이 가진 고민과 고통, 기쁨은 재일교포로 태어났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것들이지만, 등장인물들의 기저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부분은 가족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후카자와 우시오

    ‘가나에 아줌마’로 연결되는 여섯 작품들의 연관성과 숨어 있는 인물 찾기의 재미,
    소설 읽는 즐거움이 뛰어난 작품들


    이 책은 여섯 편의 단편들이 매우 독특하고 탄탄한 구성으로 이어져 있다. 첫 편의 주인공 ‘가나에 아줌마’는 여섯 편의 작품에 모두 등장하며, 각 단편의 등장인물들은 여섯 편의 소설 속에 슬며시 등장하여 이야기와 이야기가 서로 연결된다. 처음 읽을 때는 각 작품의 소설적 재미와 의도를 즐기느라 놓치게 될 수도 있지만 이 책을 두세 번 읽다 보면 각 편 등장인물들의 연관성은 마치 숨은그림찾기 같은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또 다른 작품에 등장하여 또 다른 관점에서 등장인물을 평가하는 내용들은 도처에 숨어 있다. 그들의 연결요소는 모두 가나에 아줌마가 주선한 중매 대상들이라는 것이다.
    가령, <가나에 아줌마>에서 영인과 맞선을 보는 박 변호사와 그의 누나는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의 미오 어머니와 외삼촌이다. 영인은 <일본 사람>의 주인공 에리카의 시댁 인물로 남편의 여동생, 즉 아가씨다. 가나에 아줌마의 외손자인 쇼타는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의 주인공 다케루의 친구이며, 쇼타가 안내한 외할머니, 가나에 아줌마의 집에서 보여주는 중매 의뢰자의 사진첩에 등장하는 인기 없는 남자는 <사주팔자>에서 미숙이 궁합을 봐주는 시조카인 다카히로다.
    각 작품을 넘나드는 인물들 간의 관계도를 따라가다 보면 소설의 재미가 배가되는 동시에, 재일교포의 삶을 얼마나 다양한 세대와 인물과 소재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추천사

    후카자와 우시오 작가가 재일교포 사회의 애환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전개하는 이야기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일으킨다.
    또, 우리 인생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어주는 직업에 주목하게 한다. 맞선을 주선하는 가나에 아줌마와 사주팔자를 봐주는 역술가 미숙은 자연스럽게 연결된 지역의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교포 사회의 한인들을 중심으로 더러는 일본인들과의 인연을 맺어주는 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의미를 찾고 있다.
    후카자와가 그린 재일교포 사회는 “불합리한 일을 겪으며 살아가게 되고” “자신이 태어난 환경과 잘 타협해서 살아가야 하며” 힘겹게 사는 교포들을 위해 한・일 관계가 개선되어 이역의 삶이 더는 불편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있음을 알게 해준다.
    나아가서 북・일 관계가 개선되어 북으로 간 아들의 행방을 모르는 가나에 데쓰오 가족의 비극이 더는 없도록 해야 하는 과제 또한 미래에 남겨진 문제임을 말해준다. 아들의 생사도 모르는 가나에가 ‘도대체 왜 타인의 인연을 맺어주는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독백의 의문은 우리의 귀청을 울린다.
    - 박재규 / 전前 통일부장관, 경남대학교 총장

    목차

    가나에 아줌마|사주팔자|돌잔치|일본 사람|국가대표|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본문중에서

    피로연이 절정에 달하자 한국 전통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복을 입은 조총련 부인회 여성들이 대여섯 명 둥근 원을 만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인회 회장 손에 이끌려 후쿠도 그 원 안에 합류했다. 무릎 통증을 참으며 양쪽 옆에 있던 부인들과 손을 잡고 춤을 춘다. 데쓰오는 입꼬리만 올리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후쿠를 지켜보았다. 둥근 원 안에는 후쿠의 소개로 결혼한 여자들의 얼굴이 오간다.
    후쿠는 춤을 추며 생각했다.
    ‘민단도 조총련도 상관없다. 한국이든 북한이든 아무렴 어떠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동포들의 혼담을 하나라도 더 성사시키고 싶다. 그렇게라도 고이치와의 인연을 꼭 붙들어 두고 싶다’고 후쿠는 생각했다.
    노래는 세 곡으로 끝이 났다.
    “우리나라 만세!”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만세를 불렀다. 그러자 “만세!” 대합창이 시작되었다.
    부인들도 모두 양손을 들고 만세를 했다.
    부인들과 손을 마주잡고 있던 후쿠도 그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양손을 올리고 만세 자세가 되고 만다.
    (……)
    한복을 입은 여자들 사이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
    “만세! 만세! 만세!”
    만세는 다시 반복되고, 부인들과 잡고 있던 손이 또 한 번 위로 끌려 올라갔지만 후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양옆에 있는 여자들의 손에 이끌려 의미 없이 양팔을 위아래로 올렸다 내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가나에 아줌마' 중에서/ pp.52~53 )

    “한국 남자도 제각각이지요. 그리고 결혼은 신중하게 생각해서 해야죠.”
    “아줌마 남편도 당연히 한국 사람이죠?” 그녀의 시선이 미숙의 왼손 약지에 멈춘다.
    “네, 그런데요.” 미숙이 대답하며 18K 금반지를 감추듯 오른손을 포갰다.
    “부러워요. 한국인 남편이라니.” 이런 경솔한 발언은 생각이 짧다고밖에 할 수 없다.
    “아니요. 제 경우엔 재일교포와 결혼했어요.” 그러나 그녀는 미숙의 말을 도중에 끊고 “재일교포가 주변에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한국인은 한국인이잖아요” 하고 못을 박듯 말한다.
    “그렇기는 한데 한국에서 온 우리 입장에서 보면, 재일교포도 3세가 되면 일본인과 다름없어요. 요즘은 4세, 5세도 있고요.”
    “흠, 그럼, 아줌마는 일본 사람이랑 결혼한 거랑 별다를 바 없다는 말씀인가요?”
    그렇다. 미숙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 외로움과 서러움은 에이주와 그의 가족에게서 자신과 같은 민족성, 한국인다움을 찾아내지 못하는 데서 시작하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이 미숙처럼 애초부터 한국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일본을 좋아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때그때 카멜레온처럼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일본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것도 피곤해 보여요. 한국인인데 일본인? 너무 복잡하잖아요.”
    스무 살도 더 어린 아가씨한테 동정을 받다니! 그러나 그녀가 하는 말은 모두 맞는 말이다.
    일본인과도 다르고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과도 전혀 다른, 재일교포라는 하나의 특수한 인종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사주팔자' 중에서/ pp.85~86 )

    호스티스였던 레이나와 재회하는 어색한 경험을 했다. 레이나는 같은 재일교포 중에서도 자기 같은 놈보다 생긴 것도 훨씬 낫고, 엘리트인 남성과 선을 보고 결혼했다. 자신은 레이나의 적수가 안 되는 평범한 여자밖에 소개받지 못했다.
    돌잔치를 하며 비교해보니 모든 것이 레이나에 비해 못한 것만 같았다. 마지막 희망은 히데아키의 미래였다. 아들의 미래가 확 트이길 바랐다.
    그런데 당사자인 히데아키는 물건을 잡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눈앞의 물건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주변의 어른들은 히데아키만 쳐다본다. 시간이 쉴 새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마나도 다다키도 마른 침을 삼키며 아들이 움직이기만을 조용히 기다렸다. 5분, 10분…….
    점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히데아키는 두려움에 떨며 가만히 앉아만 있다.
    기다리다 치진 가나에 아줌마가 엄마가 어떻게 좀 해보라며 마나를 추궁한다.
    “히데아키, 뭐가 좋아? 연필? 공책? 돈?”
    마나가 히데아키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팔을 끌어 물건을 잡도록 재촉했다.
    그때 히데아키가 물건은 다 제쳐두고 마나의 가슴을 꽉 쥐었다.
    마나의 얼굴이 빨개진다. 히데아키의 손을 가슴에서 떼어내려고 하자, 이번에는 마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누가 네 아들 아니랄까 봐, 짜식 가슴을 좋아하네. 분명히 어른이 되면 너처럼 야한 사람이 될 거야.”
    사토가 웃음을 참으며 귓속말을 했다.
    레이나를 보니 입술에 엷은 웃음을 띠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다다키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아이고, 가슴을 좋아하다니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네.”
    다다키의 어머니가 한탄하듯 토로하자 웃음이 터져 나온다. 긴장된 공기도 한층 풀렸다.
    ('돌잔치' 중에서/ pp.149~150 )

    에리카는 애당초 제사를 준비하며 남편 가족들과 조금이나마 친해져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머리까지 숙이며 부탁하는 것이 조금 과장된 퍼포먼스가 아닌가 싶었다.
    “괜찮아. 나도 빨리 집안 행사에 익숙해져야지.”
    에리카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한국에서는 제사를 음력으로 지낸다고 한다. 이미 달력은 9월도 종반 인데 오늘이 한국에선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이라고 한다. 남편이 말하길 정월, 추석, 그리고 4대 위까지 각각 돌아가신 날에 친척 일동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남편네 집은 추석 차례를 밤에 지내고 제사는 원래 오밤중에 지내는 건데 집집마다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고도 한다.
    고집스러움과 유연함.
    짬뽕이구나.
    에리카가 시댁을 볼 때 느끼는 순수한 감정이다.
    예를 들어 설날 차례는 양력을 고집하며, 그날은 또 오전 중에 지낸다고 한다.
    이름에도 일관성이 없다.
    에리카의 남편은 김오덕이다. 아주버니는 김형기, 형님은 박순오, 아가씨는 김영인. 그런데 시아버지는 일본 이름을 쓴다. 가네무라 도쿠지라는 이름이다. 시어머니는 가네무라 도미코라는 이름을 쓴다. 조카는 한자로 김수인이라고 쓰는데, 일본식으로 김슈토라고 부른다.
    가족 사이에도 아버지네 어머니네 하다가 갑자기 마마, 파파라는 둥 여러 호칭이 오갔다.
    어디 그뿐인가. 현관 명패에는 김(가네무라)이라고 적혀 있다.
    ('일본 사람' 중에서/ pp.157~158 )

    마사루가 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 월등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마사루는 한국 국적이어서 일본 국가대표가 될 수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에 귀화 신청을 했지만 서류 부족으로 통과하지 못했다. 어머니 세쓰코의 한국 호적 관련 서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사루가 한국 대표가 된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한국은 펜싱 강국으로 국내에 유망주가 많았다. 따라서 재일교포가 국가대표가 되는 일은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애당초 국적이 한국이라고 해봤자 마사루도 다케루도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교육을 받고 자랐다.
    다케루에게 조국에 대한 애국심 같은 것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한일 경기가 열리면 꼭 일본을 응원했다. 한국어는 전혀 하지 못했고, 한국 성인 ‘조’가 아니라 ‘도요카와’라는 일본 성을 썼다. 부모는 마사루가 태어난 후 아이가 일본에서 무사히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본 이름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주변에도 한국인이란 사실을 감춘 채 살고 있었다.
    마사루는 귀화가 거부된 후 부모를 원망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회사 펜싱부에 들어가 펜싱을 계속하고 있다.
    마사루는 베이징 올림픽 펜싱 시합, 그러니까 라이벌이 메달을 딴 시합을 녹화해두고 몇 번이곤 묵묵히 돌려 보았다. 그때 마사루의 표정은 감정을 꾹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후로도 마사루와 다케루 형제는 계속 귀화 신청을 하고 있는데 허가는 아직 떨어지지 않고 있다. 신청서를 처음 제출한 해로부터 벌써 4년이 지나 있었다.
    ('국가대표' 중에서/ p.205 )

    “아버지, 옛날 노래 좀 그만 부르세요.”
    엄마는 강한 어조였다. 이번에는 화살이 할배를 향한다. 엄마가 할배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전에는 이런 식으로 명령하는 투로 할배를 대한 적이 없었다. 더 존경하는 말투를 썼다.
    할배는 안 들리는 척 하는 건지, 아니면 자기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는 건지 엄마에게 등을 돌리고 소파에 앉아 그냥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
    발밑에는 역시나 그 보스턴 가방이 놓여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한국 드라마를 방영 중이었다. 할배가 좋아하는 사극으로 등장인물 전원이 조선왕조 시대의 옷을 입고 있었다. 현대가 배경인 드라마와는 달리 한국적 분위기가 물씬 나는 드라마였다.
    할배와 함께 살게 되면서, 원래는 자신들의 조국이지만 전혀 조국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던 한국이란 나라가 조금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매일 식탁에 김치와 한국 요리가 올라왔지만 미오가 그것을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할배가 말하는 한국어를 듣게 되었고 오늘처럼 한국 사극 드라마를 보는 기회도 꽤 잦아졌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한국인임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미오에게는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할배와도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에휴, 아버지, 모른 척 좀 하지 마세요. 텔레비전도 그만 좀 보시고요. 제발 부탁이에요. 앞으로 당분간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이 집에서 절대로 부르지 마세요.”
    할배는 엄마를 힐끔 보고는 바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할배가 엄마의 말을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중에서/ pp.292~293 )

    저자소개

    후카자와 우시오(Fukazawa Ushio)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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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2012년 「가나에 아줌마」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가나에 아줌마」와 그 주변인물을 엮는 단편연작집 『인연을 맺어주는 사람』을 비롯해, 현대 여성들의 가치관을 테마 로 한 『반려의 편차치』 『런치하러 갑시다』 『애매한 생활』, 재일교포의 일생을 그린 『바다를 안고 별에 잠들다』 등을 썼다. 「사주팔자」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단편이다. 『인연을 맺어 주는 사람』 『애매한 생활』은 곧 한국어판으로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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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고교 시절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게이오 대학교 졸업 후 잡지사 기자, 드라마 자막 번역가 및 통역가로 활동했다. 2011년 도쿄외국어대학 대학원에서 국제사회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박사 논문을 집필 중이다. 일본에서 단행본 [뮤지컬 겨울연가], 한류 잡지 [잇츠 코리얼] 등의 편집을 담당했다. 국내 저서로 [엄마의 도쿄]가 있으며 현재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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