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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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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힘겨운 오늘을 지우고 ‘옛날’과 ‘훗날’만 남아
    별처럼 반짝이는 삶


    1995년 동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와 올해로 등단 24년을 맞은 시인 윤병무의 세번째 시집 『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529번으로 출간되었다. 두번째 시집 『고단』 이후 6년 만에 찾아온 새 시집이다. 첫 시집 『5분의 추억』 이후 두번째 시집 출간까지 1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던 데 비하면, 이번 시집 출간까지는 그리 오래 걸린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4년이라는 그의 짧지 않은 시력에서 드물게, 그래서 귀하게 찾아온 세번째 시집이기에 기대와 반가움이 더욱 크다.
    일상의 서정이 차곡차곡 쌓인 전작 『고단』에서 드러났던 고단하고 비루한 삶의 하중과 슬픔은 그대로 이어지지만, 이번 시집 『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에 이르러 시인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삶이 정말 고단한 것일까?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두 개의 소제목 아래 나누어진 58편의 시편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시 속에 녹아든 과학적 관점
    시는 새로운 관점으로 새로운 세상을 연다. 그것은 과학과 비슷해 보인다. 새롭게 알려지는 과학적 사실들 또한 우리에게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가 과학과 다른 점은 과학이 새롭게 밝혀진 하나의 사실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관점을 열어준다면, 시는 시인마다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윤병무의 관점은 과학의 관점마저 수용하여 그만의 새로운 세상을 펼쳐 보인다.

    걸음을 본다
    발길을 듣는다

    내행성 행인들이
    아침이면 떠날 곳으로 바삐 돌아간다

    백육십오 년에 한 살 먹는 해왕성은
    밤길에 말을 분실한다

    소란한 소행성의 상념이
    운석으로 다져진 발끝을 본다

    비가역으로 이끄는 중력을 본다
    양말이라도 홀랑 뒤집고 싶건만
    ―「집으로 집으로」 전문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직장인의 흔한 일상을 그리는 이 시가 평범하지 않게 보이는 이유는 그들을 “내행성 행인”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관점에서 비롯된다. “내행성 행인”이 “아침이면 떠날 곳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그 걸음은 행성의 움직임을 동시에 만질 수 있게 한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동원은 이 구절의 관점이 “달의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행성으로서의 지구를 보았을 때와 동일한 관점이라고” 지적하며, “시는 과학의 관점까지 시의 이름 아래 녹여내 새로운 세상을 열곤 하며, 그때면 우리의 삶도 다른 세상을 살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시의 특성이 “윤병무의 이번 새 시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힘겨운 삶의 위안을 주는 것들
    윤병무의 시가 향하는 걸음은 주로 고단한 일상이나 슬픔의 자리를 향한다. 윤병무의 시에 “우리 시사에서 간과되고 있는 생활의 서정이 있다”고 말한 이는 시인 함성호였다. 그는 또한 “거기에는 생활하는 자의 슬픔이 아니라, 생활이라는 삶 자체의 슬픔이 있다. 그 슬픔을 윤리적으로 인간 삶의 보편성과 마주하려는 한 도덕적 자아가 여기 있다”라는 말로 “슬픔의 윤리학을 통한 도덕적 지향”이 “윤병무 시의 핵심이고 그의 생활이 추구하는 목적이”라는 생각을 역설했다. (『고단』 해설)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 윤병무는 슬픔에만 머물지 않는다.

    머리를 헹구는데
    수압이 낮아졌다

    당신이 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당신이 손을 씻는 것이다

    기쁜 상상은 그만두자
    당장 눈이 매우니
    ―「수압」 전문

    수압의 변화로도 감지할 수 있는 ‘당신’의 존재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늘 함께하는 이의 부재는 부재 자체로는 실감을 주지 못할지라도, 그가 돌아왔을 때의 함께 있다는 느낌이 삶의 큰 위안을 준다. “생활의 서정”을 이보다 더 감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윤병무는 이러한 위안을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을 통해서도 얻는데, 그가 주로 기대는 자연은 바로 ‘달’이다.

    올봄에도
    돌고 돌아
    꽃보다 먼저 달이 만개했다
    ―「불기 2563년 춘분」 부분

    ‘불기 2563년 춘분’은 ‘2019년 3월 21일’이었으며, 이날은 보름이었다. 보름달은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 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때로는 희망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이번 시집에 유독 많이 등장하는 ‘반달’이 시인의 슬픔과 외로움을 나누어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완전하지 않은 반달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시인은 온전하게 제 모습을 갖춘 보름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삶을 다시 채울 수 있는 여지
    첫 시집 『5분의 추억』의 해설 말미에서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윤병무의 시에서 시간의 발견술이 시간의 원근법으로, 혹은 시간의 직유법이 공간의 환유로 전환되고 있는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고 밝히고, “그런 의미에서 윤병무의 화자들이 뿜어내는 고독의 이미지들은 고독의 진술이 아니라 고독의 존재감으로 구상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만나는 세상의 고독이란 결국 고독의 실감, 고독의 시간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광호가 설파한, “시간의 발견술이 시간의 원근법으로, 혹은 시간의 직유법이 공간의 환유로 전환되”는 이러한 시작법은 윤병무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번 시집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의 관점마저 수용하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인다.

    우주의 은하, 은하의 태양계, 태양계의 지구
    지구의 한반도, 한반도의 신도시
    동산을 눈 붉은 신발 한 짝이 공전해요

    오른 신은 괜찮다 하고
    왼 신은 절망해요
    기쁨을 향해 슬픔을 걸어요
    기쁨을 지나 슬픔을 맴돌아요
    동산 한 바퀴가 태양 한 바퀴면 좋겠어요
    곧장 서른세 바퀴 돌고 나면
    기쁜-슬픈 이야기의 데자뷔를 들려드리겠어요
    오래전 사라진 별의 빛을 보여드리겠어요
    ―「기쁜-슬픈 이야기」 부분

    우주에서 은하로, 은하에서 태양계로, 태양계에서 지구로, 지구에서 한반도, 그리고 한반도에서 신도시의 동산까지 시인의 시선은 상상할 수도 없는 먼 곳을 바라보다가 현실의 공간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신발 한 짝이 공전”하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산 한 바퀴가 태양 한 바퀴면 좋겠”다고 바라는 시인의 마음은 곧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1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시간이 짧은 산책을 하듯 지나갔으면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에 시인은 “오래전 사라진 별의 빛”을 보여주고자 한다. 김동원은 해설에서 “우리가 힘겨워했으나 오래전에 사라진 과거 어느 순간의 삶이 어느 별의 행성에선 빛으로 반짝거릴 수 있다”는 말로 그 의미를 찾아냈다. 현실의 관점이 아닌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지금의 슬픔도 별처럼 반짝일 거라는 얘기다. 하여 “시인은 우리에게 가장 힘겨운 오늘을 지우고 ‘옛날’과 ‘훗날’만을 남긴다.”

    당신과 나의 시간이 엇갈려 지나가도
    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
    ―「-ㄴ지 모르겠어」 부분

    이렇게 남은 ‘옛날’과 ‘훗날’은, 사라진다 해도 오랫동안 반짝이는 빛이 되거나 아직 살아가지 않은 미지의 시간이 된다. 슬픔에 잠긴 지금의 삶도, 이렇게 빛날 수 있고 또한 채워나갈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 시인의 말

    빚꾸러기가 되어 주야장천 걸었다.
    맨정신으로는 산문을 걸었고
    제정신으로는 시를 걸었다.
    당신을 갚을 날이 아주 멀지 않길.

    2019년 늦봄
    윤병무

    * 뒤표지 글

    몸소 갇혔던 시의 집을 나선다. 그동안 밤이 열리고 문이 닫히고, 닻을 내린 채 달이 출렁였다. 날마나 달은 잠겼다 떠올랐다 기울었다 침잠했다. 염주나 묵주 매듭을 엄지로 집듯, 마모된 달이 매일 한 칸씩 밤을 감았다. 닻의 사슬은 길겠지만, 결국 돌 중 하나일 테다. 녹슬어 끊어지거나, 끝까지 감아올려지거나.

    목차

    시인의 말

    자는 사람 슬퍼서 자는 사람
    달 이불
    -ㄴ지 모르겠어
    불면
    보월步月
    기쁜-슬픈 이야기
    당신과 나의 학이편
    아닌 이야기
    당신의 괄호
    이름에는 까닭이
    달 우물

    초가을 초저녁 초승달 아래
    그만―,
    이웃집
    타박네
    불면 2
    재채기
    청소년
    반달
    춘분
    고무장갑
    정월의 밤
    조타수
    뒷모습
    죄와 벌
    작별 동행
    아버지의 베개
    관상
    불기 2563년 춘분
    실상사 철조여래
    말의 뒤편
    그믐달
    생각을 생각하며

    볕 요를 깔고
    수압
    꽃버선
    갑 티슈
    고봉밥
    노을님의 말씀입니다
    요凹에 뉜 아이
    달 집
    물비늘
    집으로 집으로
    헛가래
    양치
    달 마을
    홑이불
    서울역
    가훈
    볕 요
    날개 없는 새
    붕어빵
    조문
    조문 2
    속편
    세면과 체면
    청산도에 가면
    어떤 날
    술과 말
    문자메시지

    해설
    시인이 여는 또 다른 우리의 세상 ‧ 김동원

    본문중에서

    나의 옛날을 사는 당신과
    당신의 훗날을 사는 내가
    외따로인 것은 별빛처럼
    빛이 닿아도
    열은 닿지 않아서이지

    ​빛은 열에서 태어나지만
    빛 없는 열은 당신이고
    열 없는 빛은 나이니까
    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

    ​​안녕의 시절은 시간이었지
    어느 때부터 어느 때까지였지
    빛이 열의 손을 놓았던 때는 시각이었지
    때를 새긴 어느 한순간이었지
    시간의 변주가 시작된 때였지

    ​흩어졌지 오래도록 재편되지 않아
    옛날이 훗날로 이행하는 중이었지
    어둠을 길 삼아 고독한 길을 갔지
    길은 고독을 배웠고 고독은 길을 익혔지
    배우고 익혀도 기쁨은 따라오지 않았지

    ​훗날을 사는 내가 멀리서 찾아갔지
    옛날을 사는 당신이 찾아오지 않아
    내가 당신을 찾아갔지
    훗날이 옛날을 즐거워했지만
    내가 당신을 즐거워할 뿐이었지

    ​나를 사는 당신을 알아주지 않고
    당신을 사는 나를 알아주었지
    당신이 섭섭해하지 않아도 여전히
    빛은 닿아도 열은 닿지 않았지
    몰라주는 달빛이 그저 서운했지
    ('당신과 나의 학이편' 중에서)

    세기말에 만난 친구가 당시
    중매로 만난 분과 밤길을 걸었다

    하늘을 가리켜 친구가 말했다
    저 달이 상현달일까요 하현달일까요

    대답은 친구의 귀를
    그저 반달로 만들었다

    그날은 갔어도 달은 해를 빌려
    지구와 저만큼 떨어져 상현과 하현을 켠다

    쥘부채를 펴고 접는 현을 저어
    나는 이십여 년을 천천히 귀가했다

    아무도 묻지 않는 하늘에 오늘은
    그믐행 쪽배가 칼끝을 세워 멈춰 있다

    밤 파도가 뱃머리를 치켜 올리고는
    내내 내려놓질 않는다

    당신은 달로 태어나
    몇 해 전부터 초저녁을 맞았다는데

    하필 삭에 닿아 그믐에 잠겼으니
    눈웃음 짓던 쪽배가 숨을 참고 있을 테다

    그래도 달이고 저녁이니 당신이
    무잠이질 마치면 버선코 쪽배 타고 나타날 테다

    그러고 나면 훗날 부채를 펼 상현달이
    옛날 그분처럼 그저 반달로만 보일 테다
    ('반달'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6종
    판매수 273권

    출근하면 출판인, 퇴근하면 시인. 귀가하면 아빠이자 남편인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정기 간행물 [자연과학]을 비롯해 과학 비평 계간지 [에피] 등, 여러 해 동안 과학 잡지와 과학 책을 만들어 왔다. 한편 십여 전 몇 해 동안은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CTL)에서 계간지로 발행한 [가르침과 배움]을 편집하면서 그야말로 ‘어떻게 가르칠 것이며, 어떻게 배울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지은이는 과학자도, 교육자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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