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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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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위화, 모옌과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문학의 거장
    한사오궁이 쓴 실험적 장편 소설, 《암시》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중국 최고의 지성 한사오궁이 쓴 소설 《암시》는 이미지에 관한 책으로, 작가 스스로 새로운 시도라고 밝힌 작품이다. 기묘한 형식과 색다른 주제로 직조된 이 책은 다양한 이미지가 우리 삶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탐색한다. 과거의 시간에 갇혀 아무 말 없이 움츠리고 있는 기억 속 이미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며, 무수한 언어 밖 이미지 또한 우리 사회의 정치와 경제, 폭력과 도시화, 그리고 문명의 발전에 개입한다. 작가는 문화대혁명 시기의 온갖 선전과 구호부터 현대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사색적인 목소리로 담담히 서술을 이어나간다. 총 4부 112개의 꼭지로 나뉜 이 소설은 오랜 친구 사이의 단순하고 일상적인 화제에서 시작해 어느덧 숨 가쁘고 내밀한 비밀로 나아가는 듯한 신선한 감각을 선물하는 실험적 작품이다.

    출판사 서평

    스쳐가는 눈길 한 번, 모자 하나, 오래된 기차역, 물건을 사라고
    부르짖는 외마디 고함……. 이런 것들이 내 기억 속에 박물관을 짓고
    진정한 삶을 이뤄낸다. 나는 줄곧 이 삶 속에 흩어진 사소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해석하고자 애썼다. 엉킨 실타래처럼 어지러운 존재를 설명하고,
    사전 속 낱말처럼 정의내리고 싶은 것이다. -‹머리말› 중에서

    소설 《암시》는 작가 한사오궁이 스스로 새로운 시도라고 밝힌 작품이다. 소설 《마교 사전》을 쓴 뒤 작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은 오직 언어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 말을 입 밖에 내기 무섭게 스스로 의심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때부터 또 한 권의 책을 써서 이 말을 뒤집어보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암시》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언어 따위가 일찍이 다다른 적 없는 곳에도 삶이 존재할 수 있는지, 또 그와 같은 진짜 삶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작가의 말처럼 《암시》는 언어 밖의 이미지에 관한 책이다. 1부는 서로 다른 장면, 표정, 얼굴, 복장, 의식 및 기타 사물에 숨은 정보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꼬집는다. 그러고 나서 작가는 독자와 함께 이러한 이미지가 우리의 개인적 삶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냉철하게 탐색한다. 예를 들어 2부에서는 이미지가 우리 기억, 감정, 느낌, 개성, 그리고 우리의 운명에 어떻게 간섭하는지 고찰하고, 3부에서는 이미지가 사회와 경제, 정치, 교육, 문명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탐색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언어와 이미지가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과 함께 그 안에서 현대사회가 당면한 지적 위기를 희화적으로 짚어낸다.
    기억 속 이미지는 과거의 시간에 갇혀 아무 말 없이 움츠리고 있지만 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우리 삶에 특징적인 부호와 표지로서 자리매김한 채 우리의 기억과 감각, 감정과 성격, 그리고 운명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것이다. 사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무수한 언어 밖 사물이 우리 사회의 정치와 경제, 폭력과 도시화, 그리고 문명 발전에 끊임없이 개입해 힘을 발휘한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온갖 선전과 구호부터, 현대의 텔레비전 연속극과 가라오케, 행위예술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시종일관 침착한 목소리로 담담히 서술을 이어간다. 장면, 표정, 얼굴, 복장, 의식 등 갖가지 익숙한 사물과 개념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재평가는 어느 순간 우리를 이방인처럼 낯설게 만들기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게 만들기도 한다.
    암시는 어떤 사건에 대한 의미의 침투 현상이자, 감각기관의 사전 검증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대수롭지 않은 암시를 무시하고 만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이자 은폐에 다름 아니다. 낯섦에 익숙한 현대인은 온 힘을 다해 익숙했던 사물이 주는 암시를 외면한다. 어쩌다 가끔은 옛것을 그리워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좇거나 굳이 애써서 세월의 더께를 헤집어 찾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의 경험은 때로는 말로 표현하고 싶어도 이야기할 길이 없어지고, 때로는 무의식중에 표출되어 한 번 지나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 책은 그렇게 지나가버린 것들을 이야기한다.
    작가 한사오궁은 지금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줄곧 탐색자와 회의론자의 면모를 잃지 않아왔다. 그의 붓끝은 억눌리고 가려진 삶의 진실에 관심을 기울이며, 역사와 문명, 그리고 기억 사이에 응어리진 매듭을 풀어낸다. 작가의 말처럼 《암시》는 “언어 따위가 일찍이 다다른 적 없는” 진짜 삶을 좇고 있다. 언어로써 언어에 저항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로써 개념에 저항하며,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언어와 마음 사이에 놓인 비밀 통로를 간절하게 희구함으로써.

    목차

    머리말
    1부 은밀한 정보
    2부 일상의 구체적 이미지
    3부 사회의 구체적 이미지
    4부 언어와 이미지의 공존
    부록 1 인물 설명
    부록 2 색인
    부록 3 주요 외국 인명
    옮긴이의 말

    본문중에서

    나도 과거를 감각하는 사람이다. 내 감각은 당나라 때의 시, 한나라 때의 조각, 진나라 때의 전각 같은 데 머물러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아무리 노력해봐도 내가 겪고 있는 이 시대는 언제나 낯설기만 하다. 덧붙이자면 아무래도 호감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컴퓨터, 비행기, 에어컨, 감마나이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이르기까지, 비록 과거에 비해 훨씬 풍요롭고 자유롭더라도, 내게 이 시대는 받아들일 수는 있을지언정 좋아할 수는 없는 시대다.
    (/ p.41)

    당신은 아마도 누군가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던 그 하늘가의 먹구름을 기억할 것이다. 마치 먹물 한 대야를 뒤집어쓴 것 같은 하늘이지만 구름은 가장자리에 붉은 놀이 구불구불한 금테를 두르고 있었다. 먹구름은 두 겹, 세 겹, 강철 같은 은회색의 높은 구름과 짙은 먹물 같은 낮은 구름이 뚜렷하게 층을 이루며 한없이 드넓은 공간을 사이에 끼고 있었다. 길 잃은 산지니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이 어두운 밤의 포위망을 벗어날지, 어디로 가야 자신의 절망을 벗어날 수 있는지 모르는 양. 당신은 평생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다시는 그런 광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그때 온몸이 덜덜 떨리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날 당신이 왜 외출을 했는지, 어디서 소나기 직전의 먹구름을 보았는지, 함께 길을 걷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가 도대체 어떤 감상을 늘어놓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일을, 당신은 모두 잊었다.
    (/ p.113)

    나는 세상의 수많은 일이 결코 중복될 수 없으며, 특정한 그 순간 그 지점에서만 빛을 발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기억 속의 어떤 맛난 음식은 몇 년 뒤 다시 먹게 되면 아무 맛도 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기억 속의 어떤 열렬한 키스는 몇 년 뒤 다시 재연하게 되면 이상하거나 심지어 소름 끼칠 수도 있다. 땅 위에 피어난 꽃송이처럼 때가 지난 뒤에 옮겨 심으면 시들고 말라비틀어질 수밖에 없다.
    (/ p.139)

    생활은 일종의 각성이다. 전 우주의 기나긴 밤으로부터 깨어나는 완벽한 기회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런 기회를 갖는다. 나는 벌써 몇 번이나 졸다가 거의 잠들 뻔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깨어 있도록 각성하고 자극을 주어야만 한다. 충분히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질 수 있도록, 내가 기적을 만났을 때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지 제 볼을 꼬집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 p.180)

    나는 죽음이 두렵다. 사실은 삶 또한 두렵다. 마침내 삶이라는 것이 죽음보다 더 쉬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틀림없이 수많은 핑계를 대며 그런 삶을, 새로운 시작들을 피해 달아나려 할 것이다. 아이에 대한 책임, 부모와 아내에 대한 의무, 그리고 친구에 대한 보상과 직장에서의 공적인 임무, 그리고 살아나가기 위해 필요한 돈……. 모든 것이 아주 타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나는 심지어 떳떳하고 진지한 태도로 스스로를 설득할 수도 있다. 왜 낯선 위험을 스스로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가? 왜 어떤 감각을 느끼기 위해 집과 친구를 떠나야 하는가? 그것은 외려 지나치게 이기적인 발상 아닌가?
    (/ p.183)

    중국인이 일본 침략자에게 항거하기 위해서만 ‘지구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 있는 일이 모두 원론적으로 ‘지구전’이다. 그런 일은 모두 시간의 축적을 승부수로 삼는다.
    (/ p.220)

    기억 속의 그곳은 영원히 거기에 남는다. 무엇으로도, 어떤 힘으로도 박탈할 수 없다. 기억은 한 사람이 마음속에서 홀로 누릴 수 있는 비밀 동굴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 주인의 지문으로만 통과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통행의 권리와 즐거움을 나누어 가질 수 없다. 기억은 한 사람이 비밀 동굴 속에 감춰둔 황금과 같아서 그가 죽고 난 뒤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게 된다.
    (/ p.379)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3~
    출생지 중국 후난성
    출간도서 4종
    판매수 112권

    1953년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 태어났다. 후난 제7중학을 졸업하고 문화 혁명으로 인해 모든 학교가 문을 닫자 자발적으로 농촌에 내려가 인민공사 생산대에서 노동에 종사하였다. 당시 중국 사회에서 이런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인 '지식 청년'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이때의 경험을 통해 훗날 지청(지식 청년) 문학을 선도한다. 1978년 후난사범대학교 중문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받았고, 1981년 첫 번째 소설집 [월란]을 시작으로 전국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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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중국 문학을 전공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문연구모임 문이원의 상임연구원으로 고전 재해석 및 다시 쓰기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무협》《삶에서 앎으로 앎에서 삶으로》 《신화, 영화와 만나다》(공저) 《유라시아 신화여행》(공저) 등을 썼고, 《암시》《마사지사》 《거싸얼왕》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 《행위예술》 《모모의 동전》 《장자를 읽다》 《꿈의 해석을 읽다》 등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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