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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 안티고네 : 유종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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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유종호
  • 출판사 : 현대문학
  • 발행 : 2019년 06월 10일
  • 쪽수 : 39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72759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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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시대의 당면 과제를 직시하다!
    한국 문단의 거목 유종호의
    날카로운 통찰, 삶에 대한 성찰의 기록들
    [그 이름 안티고네]


    노년은 삶의 종언이 바로 근접해 있는 시기다. 그것은 먼 우렛소리가 아니라 바로 머리 위에서 나는 포성이요 천둥소리다. 뒤늦은 깨달음처럼 삶이란 죽음으로 부터의 도망이요 둔주요 결국 패색 짙고 숨 가쁜 둔주곡遁走曲이란 느낌이 든다. 볼일을 만들어 볼일을 보면서 사람들은 닥쳐오는 삶의 종언을 의식에서 몰아내려 한다. 글을 끼적거리는 것도 삶의 궁극적 사실을 외면하려는 심층적 충동의 소산이라 느껴진다. 만년의 글쓰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 조그만 책은 21세기 들어서 내는 열다섯 번째 것이다. 스무 살 버릇이 여든까지 온 것이다. "모든 위대한 현자들은 장군처럼 폭군적이고 장군처럼 무례하다"고 체호프가 적어놓고 있다. 폭군적이지도 무례하지도 않은 글이란 것으로 자괴감을 달래려 한다.

    출판사 서평

    깊이 있는 사유와 날카로운 언어감각의 비평가 유종호의 에세이 [그 이름 안티고네]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월간 [현대문학]과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 문화의 안과 밖]에 연재한 글들을 선별해 묶은 이 책에는 현 시대의 당면 과제를 직시하게 하는 비판적 통찰과 노년의 삶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담겨 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그 이름 안티고네]에는 저자가 일상에서 건져 올린 지혜와 깨달음들을 기록한 1장부터 사회에 대한 높고 낮은 목소리의 발언의 2장, 문학과 인문학에 관련된 이야기의 3장, 개인의 과거 경험담의 4장까지 다채로운 내용의 산문 41편이 실렸다.

    노년의 지혜를 믿지 않는다는 저자의 역설적 어조로 시작된 1장은 행간을 따라가다 보면 "많은 것을 배워 보태며 늙어가고 있다"라는 B. C. 6세기 아테나이의 현자 솔론의 말처럼 노년의 아름다움, 노년의 깨달음 뒤에 오는 지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독방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면서도 군중 속에서 완전해지는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감정,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가 빛나는 장이다.

    2장에서는 정치적 지형 변화와 조짐들에 대한 여러 이슈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시사적 문제들을 엄정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며, 그에 맞는 합당한 방향을 제시한다. ‘소포클레스 3부작’과 같은 신화와 고전을 감상하는 대중들의 수용 방식, 문학작품을 대하는 향수자의 안목이나 성향을 통해 소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쏠림 현상 등에 가차 없는 일침을 가하고 이에 더하여, 아테나이 민주정치의 도편추방제를 살피며 현 시대의 정치적 어둠과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영웅들을 폄하하려는 시도나 청산해야 할 과거의 잔재에 대해 "역사는 아무도 묻지 않는 것에 대답하는 귀머거리와 같다"는 톨스토이의 유효한 말을 통해 송곳 같은 언어로 신랄하게 지적한다.

    3장에서는 평론가로서 현장에서 느낀 고민들을 꺼내놓으며, 인문학의 위기가 도래한 현 시대에 대한 회의와 분석,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인문학의 위기 상황은 자연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교양과 고급문화의 쇠퇴, 경제 침체, 인구의 확장, 반지성‧반지식인주의의 팽배에서 비롯된 범세계적 현상임을 지적하며 그 과정과 원인을 찬찬히 톺아본다. 그리고 현재의 불안과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제1의 조건으로 유연하고 열린 마음의 시민적 자질을 제시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
    특별히 [맨부커 국제상] 수상으로 화제가 되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는 영미권 작가들의 다양한 반응에 대한 언급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던 이 작품의 장단長短을 객관적 시선으로 전달하면서도 공신력 있는 잡지에 리뷰가 소개되는 등, 나름의 성취가 있었음에 주목한다. 또한 거장 마르케스의 작품들을 돌아보며 우리의 지엽적 문학 풍토, 전기와 회고록의 사료적 가치, 문학적 모국어의 의미, 글로벌시대의 번역문학의 융성 등에 대해 밝힌 소회는 우리 문학사를 꿰뚫고 있는 지식인의 흔치 않은 발언이라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할 수 있다.
    특히 [나의 번역 체험]에서 다룬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리대왕] 번역에 얽힌 저자의 후일담은 필독을 권한다. 작품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세부적 과정―방대한 자료 수집, 각 판본들의 분석, 우리말과 외국어의 적확한 의미 분석에 따른 대체 불가능한 언어 선택을 위한 각고의 노력과 문학적 감수성의 세공―을 거치면서 불굴의 전의를 불태웠던 번역 연대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글은 한 편의 번역 작품은 장인정신과 책임의식이 빚어낸 결과임을 통감하게 한다.

    4장에서는 요철처럼 굴곡진 우리의 현대사와 맞물려 있는 개인의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을 통해 한 인간의 형성기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갈무리한다. 대학 입시를 치르던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겪은 지옥 같은 경험, 부역자로 지목돼 온갖 수모와 불이익을 당해야 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저자의 책을 읽고 찾아온 동향의 독자와의 만남 등에 관련한 여러 삽화들은 개인의 체험이 곧 역사의 증거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 지나온 시간들은 결국 ‘나’ 자신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었음을 고백하며, 노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었다는 만족감과 기쁨,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담은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전방위적 분야에 대한 심도 높은 분석과 경험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의 통합적 이해와 사유를 고취시키는 완숙한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는 유종호의 이번 저작은 난경의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애정 어린 마음으로 전하는 그의 위로와 희망, 당부의 메시지이자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더불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어른으로서, 삶이 가리키는 궁극적 진실에 가닿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와 정신의 집약체라 해도 무방하다. 또한, 과거를 분석해 내일을 전망하고 현재에 빗대어 어제를 성찰하는 노비평가의 섬세하고 면밀한 이 기록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방대한 지적 세계와 그가 살아온 궤적, 균형감 있는 삶의 태도를 실감케 하며, 큰 공감과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인생을 충분히 보아온 사람의 원형은 언제까지나 진실이다"라는 문장으로 귀결될 지혜와 도덕 그리고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시사하는 주옥같은 글이다.

    목차

    책머리에 5

    제1장 담배 그리고 시간
    담배 그리고 시간 13
    드물지만 아름다운 노년 23
    한 권의 책과 좌우명 하나 30
    막상 닥치고 보니 36
    늙기도 서러운데 43
    독방과 독서실 51
    그 개 안 물어요 59
    가까운 것 속의 지혜 67
    목적과 희망이 사람을 살린다 74
    싱싱한 벌꿀과 밀랍의 냄새 79
    초신성과 네잎클로버 84
    어느 마도로스의 전언 89
    좋아하는 말·싫어하는 말 94
    하마터면 그때 99

    제2장 그 이름 안티고네
    그 이름 안티고네 113
    소수 의견의 매력 122
    도편추방에 대하여 134
    전통과 민주제 140
    우리 안의 전근대 147
    덧셈과 뺄셈 153
    과거의 수모에 대한 복수 160
    남몰래 흘린 눈물 167
    환자에서 고객으로 173
    0 대 22 179
    옛날은 딴 세상이다 185
    겨울 나그넷길에서 193

    제3장 [채식주의자]에 대한 반응을 보며
    [채식주의자]에 대한 반응을 보며 201
    ‘구라’라는 마술 208
    개인사와 사회사의 접점 215
    모국어의 존엄을 위하여 230
    시의 해석에 대하여 239
    고향의 산을 향해 249
    특성화된 전집을 바라며 258
    나의 번역 체험 262
    인문학에 미래는 있는가 279
    교단을 떠나면서 294

    제4장 내 삶의 소롯길에서
    지옥의 하룻밤 311
    불사른 보배 327
    승산 없는 싸움 속에서 341
    어느 독자와의 만남 355
    꾸불꾸불 걸어온 길 366

    본문중에서

    정치공동체의 명령과 친족 윤리가 부과하는 의무 사이에서 혈족 의무와 죽음을 선택한 안티고네를 변호하고 숭상하는 (......) 학생들은 고전 비극을 사회와 불화 관계에 있는 근대적 자아의 순교를 다룬 근대극으로 수용하고 있는 셈이다. (......) 이것은 모든 고전이 수용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만 모든 것을 정치적인 억압과 저항, 전제와 항거라는 이분법으로 접근하고 그러한 면에서 편향과 쏠림 현상을 보이며 소수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
    안티고네 대 크레온의 대립에는 단순히 가족과 정치공동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대립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이란 젠더 간 대립, 젊음과 어른이란 세대 간 대립도 구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등장인물 각자의 입장에 서서 볼 때 비로소 비극 [안티고네]의 이해가 온전해질 것이다. 그럴 경우 안티고네 이상으로 크레온도 비극적 인물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부분적 선 사이의 갈등이란 테제도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삶은 병정 노릇 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로마의 스토아학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세상살이는 다름 아닌 수자리살이라는 게 살아온 삶의 실감에 가장 근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주인공은 편력 중의 구도자 집단을 따라가서 3년간 금욕적 수도생활을 한다. 그때 그가 배우고 익힌 것은 생각하기, 기다리기, 단식하기였다. 단식과 기다림을 통해서 자신을 제어하는 법을 익힌 것이리라. 삶을 병정 노릇 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우리는 많은 것을 견디어내고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pp.34~35)

    막상 그 ‘노후’를 맞고 보니 모든 것이 예상과는 전혀 딴판이다. 주위의 노년을 접해보지 않은 것이 아닌데 노년에 대한 이해가 아주 부실하였다. 노경이라는 것은 젊은 날의 기운과 힘이 점진적으로 쇠잔해가기는 하나 순순히 맞이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상태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동안 묵묵히 자아를 위해 복무해왔던 육체가 반란을 도모하여 일제히 봉기하는 비상사태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아니, 무서운 사실과 직접 대면하는 것을 피해 무의식의 차원에서 자발적인 인지 정지를 이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건 육신의 구석구석이 국지적인 불복종을 자행하며 주인 행세를 해온 정신에 도전해오는 것이 노년이다. 마음은 가주어假主語일 뿐 진주어眞主語는 몸이라는 사실은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실지로 당해보아야 절실한 실감이 된다. 노년은 유유자적할 수 있는 해 지기 전의 농한기가 아니다. (......) 안과와 내과와 치과 등등을 수시로 오가야 하는 소모적 비상사태이다.
    (/ pp.38~39)

    인간의 삶이 장미가 뿌려진 탄탄대로가 아닌 이상 누구나 어렵고 절망적인 상황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자아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년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럴 때 희망을 잃지 않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자기성취에 이르는 확실한 길일 것이다.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한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말은 이때 우리에게 의지할 만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 p.78)

    우리 사회에서는 여러모로 쏠림 현상이 심하다. 정당 지지에서 정치인 선호에 이르기까지 또 학교 전공 선택에서 직업 선택에 이르기까지 쏠림 현상은 막심하다. 책 읽기나 그 평가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 그러나 수요의 감소 자체가 대세에 대한 민감성과 주류 다수파로 귀속하려는 쏠림 현상과 직접 연관돼 있다. "홀로 있을 수 없다는 이 크나큰 불행!"이란 라브뤼예르의 탄식을 강렬하게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대세를 좇고 주류로 합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홀로 있을 수 있는 고독의 감내 능력 없이 성숙한 개인은 형성될 수 없다. 무리 지어 살면서도 사람은 잠을 자고 꿈을 꿀 때 단독자로 수면상태에 빠지고 단독자로서 꿈을 꾼다. 그것이 인간 조건이다. 쏠림 현상을 극복하는 데 있어 소수 의견의 활발한 제시와 이를 매개로 한 자기 성찰은 개인의 성숙과 사회의 성숙을 위해서 긴요하다. 또 정당성 있는 소수 의견이 사회적 압력에 대한 자기검열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억압은 국가의 폭력 기구나 장치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동원된 "고독한 군중"도 댓글부대도 숨어 있는 폭력 장치다. 두려움 없이 자기소신을 밝힐 수 없는 사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다. 모든 수준에서 다양한 소수 의견이 두려움 없이 제시될 수 있는 사회라야 열려 있는 자유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p.132~133)

    어느 나라에나 국민적 영웅이 있다. (......) 가령, 영국에는 첫머리에 인용한 필립 시드니 경이 있고 프랑스에는 잔 다르크가 있다. (......)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이나 행동을 극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호하고 숭상하는 인물을 포장하고 미화한다. 그것은 비난받아야 할 일만은 아니다. 그것은 애정의 헌사獻詞요 고백이다. 자라는 세대에게 본뜰 전범으로 그리하는 경우도 있으니 교육용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선호 인물에 대한 덧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합리주의의 세례를 받은 근대인에게 지나친 미화나 극화는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적어도 역사적 인물에 관한 한 덧셈이나 뺄셈에서 자유로운 객관적 인간상을 보여줄 의무가 우리에겐 있다. 민족주의는 모든 격정이 그렇듯이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할 공산이 크다. 가령 충정공으로 추앙되는 민영환의 자결도 일단의 책임 의식을 보여주었으니 역사적 기억에 값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봉준이 농민전쟁에서 실패한 뒤 체포되어 심문받는 자리에서 중앙 탐관오리의 대표로 고영근, 민영준과 함께 민영환을 거론했다는 사실도 똑같이 기억돼야 할 것이다. 덧셈도 뺄셈도 없는 사실대로의 인간상 제시를 통해 우리는 전면적 사실 확인의 중요성을 몸에 익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시민적 지혜 형성에 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 pp.158~159)

    옛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딴 세상이다. 그 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고 또 공부도 해야 한다. 역사 교육은 그러므로 연대기의 암송이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의 교육이 되어야 마땅하다. 역사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회 변화의 기록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지만 ‘사실’은 해석된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사실’의 엄밀한 검토와 확인을 거치지 않고 자의적 ‘해석’을 능사로 삼는다면 그것은 중뿔난 이념의 전시용 마스게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사와 사회 변화의 서술로서의 역사는 당연히 정치사로 환원될 수 없다. 정치는 막강하게 중요하지만 그것이 삶과 사회의 전부는 아니다. 사회 변화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역사는 당연히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생활상, 그리고 관습 등을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 (......) 일부에서 ‘치욕의 역사’라고 하는 20세기 우리의 현대사도 정치사로의 환원을 경계하면서 사회 변화와 발전의 엄정한 궤적 탐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사회사, 경제사, 문화사, 생활사, 풍속사가 정치사와 어울리는 총체성의 역사가 될 것이다. 극도로 단순화되고 국지화되고 축약된 역사는 결국 몇 개의 추상적·정치적 언어로 환원되고 말 것이다. 거기서 역사의 참모습은 덧셈과 뺄셈과 곱셈으로 우그러지고 변형되고 마침내 실종된다.
    (/ pp.191~192)

    [뉴욕 리뷰 오브 북스]가 [채식주의자]를 다룬 글을 실었다. 미국 여성 작가 다이앤 존슨Diane Johnson이 쓴 글인데 (......) 희생자인 채식주의자에게 독자의 동정이 쏠린다면서 불행한 기억에 눌리고 이해받지 못하는 그녀가 말하기와 먹기를 그쳤다고 요약하고 나서 육식을 좋아하고 녹색 야채에 무관심한 화자인 남편이 샐러드를 "군침이 도는 샐러드"라고 말한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적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 pitch black"에 싸인 부엌에서 어떻게 화자가 아내가 서 있는 것을 보았느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사소하지만 지적을 받고 보면 취약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번역자의 불찰이라 생각되는 영어 어법상의 부적정성의 지적은 수다하고 또 신랄하다. 인중人中을 뜻하는 ‘philtrum’을 접하고 사전을 찾아보았는데 원어도 그러한지 궁금하다고도 적고 있다. 세목에 대한 꼼꼼한 검토가 보이는데 대체로 극히 비판적인 소견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맨부커 국제상]의 규약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 존슨은 보다 본격적이고 정공적인 접근을 보인다. 육식을 비롯해서 결혼, 복종, 가족 돌보기, 간통, 예술, 인간 폭력, 탈인간적 환상, 금기, 절망한 자의 결단, 한국적 예법의 가혹한 압력 등을 다룬 흥미진진한 소설이라며 명망 있는 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응분의 경의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영예의 하나가 그 복합성에 있으며 이 복합성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그 부분이 수상에 기여한 것이리라고 적는다. 3부로 구성된 작품의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개관하고 나서 낯선 외국 문화의 특이성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흔히 적용하는-가령 개연성, 풍자, 리얼리즘 등의- 기준을 적용할 수 없어 판단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실토하고 있다. (......) 이어서 한국인 특유의 한 恨을 말한다. 존슨은 강렬한 항의의 감정이라면서 (......) 이렇게 부연한다. "한은 일종의 유니크한 한국인의 민족적 특성 혹은 정신 상황으로서 타인들이나 나라의 적 혹은 역사 그 자체에 대한 특유의 분노이다."
    존슨이 어떤 전거典據에 기대어 이러한 이해를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이 강렬한 감정이나 분노라는 것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원한이 공격적이고 능동적이고 때로 악의적일 수 있음에 반해서 한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비공격적이다. 그것은 크고 작은 좌절감과 무력감에 기초한 운명에 대한 원망이요 야속함이며 슬픔의 정감을 동반한다. 근자에 빈번해진 격렬한 집단적 항의를 ‘한풀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말을 역추적해서 강렬한 분노의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국지적이고 비역사적인 추론이다. 더구나 한을 민족적 특성이나 정신 상황으로 파악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논리의 비약이고 무책임한 일반화이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영미 쪽의 반응은 외국 문학 이해의 어려움과 함께 문체의 막강한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켜준다. 문학이 사회의 거울이라는 명제는 너무 느슨해서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안목 있는 외국 독자가 우리 사회를 미처 돌아가는 광기의 사회로 인지하고 있다는 의혹은 충격적이다.
    (/ pp.203~206)

    언어의 존엄성을 재확립하는 것이 이른바 고운말 쓰기나 인습적인 구문에의 맹목적인 순종이 아님은 물론이다. 모국어의 존엄성 확립을 위해 나는 무슨 기여를 하고 있는가? 모국어의 파괴와 훼손에 기여하는 일은 없는가? 이것은 모든 시인들이 때때로 엄숙하게 자문해야 할 우리 시대의 도덕적 책무이기도 하다.
    (/ p.238)

    저자소개

    생년월일 1935~
    출생지 충북 충주
    출간도서 26종
    판매수 3,012권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주립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공주사범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를 거쳐 2006년 연세대학교 특임교수직에서 퇴임함으로써 교직 생활을 마감했다. 저서로 [유종호 전집](전 5권) 외에 [시란 무엇인가],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한국근대시사], [나의 해방 전후],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 등이 있고 역서로 [파리대왕], [제인 에어], [그물을 헤치고], [미메시스](공역) 등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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