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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 유병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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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람살이의 난경(難境)과 아름다움에 대한 절절한 고백!
열여덟 순정을 살다 가신 어머니와
언니가 된 며느리 이야기!

'제12회 한국문학백년상 수상작'
만남과 인연의 소중함과 애틋함을 이야기하는 작가, 유병숙

내겐 되풀이되는 일상이 어머니에겐 언제나 ‘처음’이 되었다.
아들은 오빠로, 며느리는 언니로, 손주는 조카로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친정 식구가 되었다.

살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감당할 수조차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열심히 살아야 할 인생, 하지만 어김없이 다가오는 외롭고도 쓸쓸한 시간들. 유병숙 에세이는 삶의 이면들을 관조하면서 그 의미를 묻는 철학적 면모가 돋보인다.
사라진 현재 속에서 흩어진 기억의 퍼즐 조각들을 찾아 헤매며 살아가는 어머니와 과거 어머니의 어느 기억 속에 존재하는 시간들을 그리움이라는 단어로 현재를 물들이며 살아가는 며느리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적이고도 아픈 이야기다. 다음 구절은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뭉클해진다.

“언니, 나 시집보내려우?”
“멋진 할아버지 구해드려요?”
“싫어. 혹시 내 신랑이라면 모를까…….
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유병숙 작가는 책에서 누구에게도 얘기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냈다. 특히 그녀가 전해주는 공감과 긍정의 미학은 본받을 만하다. 불가피한 통증을 겪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솟구쳐 오르는 긍정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억의 질병을 앓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향한 그녀의 헌신적인 정성의 시간들은 한 편의 서사가 되어 사람살이의 난경(難境)과 그것을 이겨가는 아름다움을 동시에 전해주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출판사 서평

"제12회 한국문학백년상" 수상 작품집

[구성]
눈을 감고 꾸는 것이 꿈이라면
눈을 뜨고 꾸는 꿈이 치매라 했다.
어머니는 오늘 또 어떤 꿈을 꾸고 계실까.

1장은 가족들과 나눈 삶의 애환, 소중한 관계에 대한 애틋하고도 생생한 기록이 담겼다. 특별히 병고를 앓으신 시어머니에 대한 동행 일지(日誌)처럼 읽히는 글들은 모두 한 편의 연작 서사처럼 다가온다.
시부모님을 모신 며느리로서 겪어낸 일들을 글로 소상히 보여준다. 총명하셨던 어머니가 “망각이라는 강 앞에서 서성이고 계신” 시간들은 며느리로서, 작가로서의 삶에 어마어마한 충격과 고통과 감사의 연쇄를 낳아간다. 옛날 정성을 다해 어린 손녀를 가르쳤던 어머니가 이제 그 크신 은혜에 적으나마 화답하는 손녀의 가르침을 받고 계신 장면은 그대로 우리 인생을 은유하는 듯도 하다.
2장은 낡은 집에서 느낀 내면적 넉넉함과 자유로운 사유를 기록하는 한편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편안한 기분을 들려주고, 치열한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는 전언도 들려준다. 인생 곳곳에서 작가의 이러한 사유와 경험은 매우 보편적인 인생론적 가치에 대한 발견으로 나아간다.
3장은 ‘산’으로 대표되는 자연 이야기가 많은데, 여기서 ‘산’은 훼손되지 않은 원형성을 띤 신성한 공간으로 나타난다. ‘산’을 향한 탐사의 시간은 그녀로 하여금 일상을 송두리째 벗어나 ‘낯선 자아’와 한껏 마주치게끔 한다.
4장은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가장 원초적일지도 모르겠지만 평범한 일상과 가족 이야기가 따뜻한 온열기구처럼 들어앉아 있다.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으로서의 가족을 진중하고도 해학적으로 그려냈다.

작가 소개 - 유병숙

추천사

임헌영(문학평론가)
작가는 생애에서 깊은 인연일 수밖에 없는 객체들을 지극한 애정으로 포근히 감싸 안는다. 작품을 통독하고 나면 글들이 목덜미 속으로 술술 넘어가고 글이 곧 사람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꿰뚫어보는 듯하다. 만남과 인연의 소중함, 삼라만상에 대한 외경심 등 작가의 인생관도 엿볼 수 있다.

유성호(문학평론가)
글에 나타나는 감성과 지성의 균형적 개입은 수필의 심미적, 비평적 기능을 제고하여 문학적 차원을 한 단계 높이고 있다. 기억의 질병을 앓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향한 그녀의 헌신적인 정성의 시간들은 한 편의 서사가 되어 사람살이의 난경(難境)과 그것을 이겨가는 아름다움을 동시에 전해주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재무(시인)
오래 끓여낸 곰국처럼 경험한 현실을 핍진하게 우려내어 재구성한 그녀의 글들은 읽고 나면 절로 지적 포만감에 젖게 한다. 특히,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연작 수필들은 인간에 대한 존엄을 한껏 드높이면서 인간애의 농밀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박상률(작가)
유병숙의 글은 순하다. 글을 읽는 동안 크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기에 좋다. 그러나 순함 속에 할 말을 다 감추어 놓기에 한 줄도 건너뛰지 않고 다 읽게 된다. 순하면서도 할 말이 다 들어 있는 글. 그런 글은 읽는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일상에서도 목소리 큰 사람의 말을 다 듣는 것은 아니다. 듣는 척은 하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건성으로 들으면서 듣는 시늉만 하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노골적으로 주제를 드러내며 독하게 쓴다고 글쓴이의 의도가 전달되는 건 아니다. 그런 글은 첫 부분만 읽고 더 이상은 안 읽게 된다. 유병숙의 글은 글쓴이 성품 그대로 자분자분하고 조곤조곤하지만 독자는 눈물을 짓기도 하고 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는 일상 속 모습을 글로 어떻게 그려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작가이다.

목차

1장_ 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 내 이름은 유병숙 / 눈부처 / 언니는 일등 요리사 /
사람을 쬐다 / 눈을 뜨고 꾸는 꿈 / 새로운 삶을 도와주는 집 / 해피타임 /
어머니의 공책 / 소양강 처녀 / 어머니의 고향은 금강산 / 어머니의 신용카드 /
두 분의 합창 /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 / 잃어버리지 말아요 / 마지막 노래 /
시아버님의 은수저 / 잘 있거라, 나는 간다! / 잘 자요, 당신

2장_ 그림이 있는 정원
거미가 지키는 집 / 그녀는 왜 웃었을까? / 불 좀 끄시오 / 그녀의 선택 /
이 죽일 놈의 지방종 / 무스코카의 그 노인 / 공주는 잠 못 이루고 / 그림이 있는 정원

3장_ 바람의 말을 듣다
머릿속의 바람 / 선을 넘다 / 야호 아주머니 / 산사태 / 말벌과의 동거 /
자연에 대한 예의 / 날개를 접은 섬 백령도 / 권정생을 만나다 /
바람의 말을 듣다 /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4장_ 장미에게 들인 시간
밥은 먹었니? / 나도 아픈 손가락 / 신조어 유감 / 엄마의 노랑 블라우스 /
장미에게 들인 시간 / 남편은 적응 중이다 / 그래, 기다려라! 딸아! / 맨발로 산을 오르다

|해설| 장미에게 들인 시간만큼 소중한 인생론_임헌영
|해설| 대상에 대한 지극한 마음을 고백해가는 사랑의 서사_유성호
|추천사| 유병숙 작가의 산문집에 부쳐_이재무

본문중에서

아침에 목욕을 시켜드리고 어머니의 얼굴에 로션을 발라 드렸더니 싱긋 웃으며
“어휴, 좋은 냄새! 언니, 나 시집보내려우?” 하며 한껏 달뜨신다.
“멋진 할아버지 구해드려요?” 짓궂은 내 말에
“싫어. 혹시 내 신랑이라면 모를까.”
“신랑이 누구예요?”
어머니는 얼른 아버님 함자를 대며
“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하신다.
귀여우신 우리 어머니!
수줍은 구십 노파의 눈동자에 생전의 아버님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17쪽)

어머니는 기억 중에 어렵고 힘들었던 일부터 잊어버렸다. 과거와 미래의 걱정이 사라진 현재 속에서 어머니는 어쩌면 일생 중 가장 평안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억을 잃어버리고 아니고는 기실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다. 아무리 슬픈 이야기를 해도 금방 잊어버리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일종의 축복이지 않을까?
눈을 감고 꾸는 것이 꿈이라면 눈을 뜨고 꾸는 꿈이 치매라 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눈빛 너머 어머니는 오늘 또 어떤 꿈을 꾸고 계실까. (45쪽)

아버님이 기념일에 해주었다는, 큐빅 다이아몬드 5개가 쪼르륵 박힌 금반지, 애지중지하시던 그 반지를 내 손가락에 밀어 넣으셨다.
“언니 가져요. 이제부터 이건 언니 거예요. 내가 주는 거니 잃어버리지 말아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내 손을 힘 있게 잡았다. 반지는 이제 어머니가 살아생전 나에게 남기신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힘들 때나 어려운 일이 닥치면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반지를 찾아서 낀다. 어머니의 손때가 남아 있는, 생활의 흠집투성이에 빛바랜 반지지만 언제나 든든하게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93-96쪽)

죽음의 반대말은 삶이 아니라고 한다. 톨스토이는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그가 죽자, 그토록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죽음이 그의 몸에서 빠져나갔다”라고 쓰고 있다. 죽음은 삶이 껴안고 있는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하루하루 무럭무럭 늙어가고 있는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 밝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즐거운 순간들은 가슴에 오래 머문다 했다. 그런 기억들은 시간을 초월해 영원히 남아 있게 될 것이다. 행복했다는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함축한 순간을 남길 수 있다면 죽음이 한없이 두렵거나 슬프지만은 않을 듯했다. (110쪽)

인간 세계가 비안개에 갇혀 있다.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신선이 된 느낌이다. 정말이었으면 싶다. 속세를 떠나 허허롭게 살아보았으면. 번뇌와 구질구질한 일상을 벗어나 오로지 나만 있으면 되는 자유 속으로 날아가고 싶다.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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