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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구술 기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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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국가가 통째로 앗아간 유년 시절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이 보여주는 그 시대 ‘가난의 지도’

    고도성장기 한국 사회가 외면하고 쓰레기처럼 청소해버린 소년들,
    그들이 통과한 처참하고 쓰라린 50여 년 세월을 듣다


    선감도에 세워진 수용시설 ‘선감학원’에 강제로 수용돼 유년 시절을 통째로 박탈당한 소년들이 있었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부랑아 단속 및 수용 조치를 위한 감화정책의 일환으로 1942년 설립된 이래 1982년까지 장장 40년간 존속했다. 부랑 아동을 보호, 수용한다는 취지와 달리 정책은 강제 납치 및 감금 형태로 실행되었다. 오랜 기간 국가가 부랑아를 ‘거리의 악’으로 낙인찍어온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시설로 잡혀간 아동들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각종 노역과 모진 고문, 폭력에 노출됐다. 그렇게 사회에서 ‘치워져’ 선감학원에 ‘버려진’ 소년들은 노예처럼 부려졌고, 그 쓸모가 다하면 거꾸로 사회에 내버려지거나 형제복지원, 삼청교육대 같은 또 다른 시설‧수용소로 끌려갔다. 어린 시절 각기 다른 시설로 끌려갔다가 삼청교육대에서 조우한 형제도 있었다.
    수십 년이 흘러 노년에 접어든 소년들은 국가의 진상 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일생일대의 대결을 시작했다. 진보장애언론 ‘비마이너’는 그 피해생존자 아홉 명을 만나, 그들이 통과해온 처참하고 쓰라린 50여 년의 세월을 듣고 기록했다. 이 책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는 바로 그 기록의 결과물로,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을 생생히 전달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 이제 막 자신의 억울한 경험을 말하기 시작한 피해생존자들이 투쟁을 지속하는 한, 사건은 쉬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수용시설, 청산되지 않은 일제 잔재
    강제수용시설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감학원 역시 일제의 부랑아 단속 및 수용 조치를 위한 감화정책과 함께 등장했다. 선감학원이 설립된 1942년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매진하던 시기로, 전시 군수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강제수용된 부랑아들을 참혹한 강제노역에 동원했다. 선감학원도 그런 필요에 의해 세워졌다. 1940년 경기도지사로 부임한 일본인 스즈카와의 지휘하에 경기도가 현 안산시 소재의 선감도 전체를 매수하고, 선감도 주민 전체를 도외로 철거시킨 후 공식 개원한 곳이 바로 선감학원이다. 선감학원은 ‘총후의 꿋꿋한 황국신민’을 연성하겠다는 의지를 내걸고 수용된 원생들에게 일제에 대한 충성심을 강제하는 교육을 실시했다. 극심한 인권 유린과 노역을 견디지 못한 원생들 다수가 탈출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사망하는 일이 빈발했지만, 선감학원은 굴하지 않고 ‘전시 동원’에 매달렸다.
    일제의 악법은 해방 이후에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일제가 물러간 후에도 부랑인 단속을 위한 법령들의 효력이 유지되었는데, 사회적 불안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구호정책은 진지하게 고민되지 않았고, 오로지 추방에 초점이 맞춰졌다. 1947년 서울 사직공원 안에 설치된 부랑아보호소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서울시는 시청 사회과 직원으로 하여금 경관을 대동시켜 부랑아를 ‘취체’하는 활동을 벌였다. 서울의 미화를 위한다며 부랑아와 거지 900명을 한꺼번에 시내에서 300리 떨어진 철도 없는 곳으로 추방하기까지 했다.
    이 보호소는 이후 1960년 서울시립아동보호소로 재개소해 대대적인 수용을 시작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당시 아동보호소에 수용된 인원 중 약 50퍼센트에 달하는 아이들의 실제 부모가 생존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행정 당국은 부모를 찾아 아이들을 돌려보내기보다 지방에 분산 수용하는 데 열을 올렸다. 특히 1961년에는 목포, 광주, 대전, 충주, 인천 등으로 아동들을 대거 분산시켰다.

    죄 없는 소년들을 납치해 가둔 국가
    피해생존자들의 증언도 이러한 정황들을 뒷받침한다. 그들은 국가가 부모 등 이렇다 할 보호자 없이 떠도는 부랑아뿐 아니라 단순히 길을 잃은 미아까지 강제로 납치해 시설에 수감했다고 입을 모은다. 꾀죄죄한 차림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소년들을 보면 묻고 따지지도 않은 채 마구잡이로 납치했다는 것이다. 길을 잃은 아이를 발견하면 경찰이 신원을 확인해 보호자를 찾아주는 것이 상식이건만, 그런 절차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울에 있던 작은아버지 댁을 찾아가다가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선감학원까지 잡혀왔다는 한일영 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파출소에 있는 순경 같았어요. 저한테 ‘집 어디냐’ ‘어디 가냐’ 하면서 집 주소를 대라고 했어요. 나는 주소는 몰라서 모른다고 했어요. 가평에 살고 가평국민학교에 다닌다고 했는데, 자기네가 확인을 하려고 하면 학교에 연락해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혼자서 왔다고 하니까 아예 믿지를 않았던 거 같아요. 저를 파출소에 데리고 있다가 바로 응암동 아동보호소로 넘겼어요. 자기들도 할당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아동보호소 가서 알고 보니까 다 그렇게 잡혀온다고 하더라고요. 웬만큼 꾀죄죄하고 그러면.”
    가족들이 버젓이 살아 있던 오광석 씨 역시 길거리를 돌아다닌다는 황당한 사유로 경찰에 납치되었다. 그는 자신의 스케치북에 이렇게 썼다. “박정희 정권 때 어린 나이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일명 양아치 차라는 차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멀정이 아머니가 있고, 여동생이 있는대도 또한 어린 간난아이 동생도. 있었는대 전 길거리에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고아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런 죄 없이 경찰의 손에 끌려간 아이들은 아동보호소와 이런저런 고아원, 선감학원 등의 시설을 전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성과 이름이 바뀌고, 생일이 조작되고, 소년들은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경찰 혹은 공무원이 납치해간 까닭에, 가족이 실종신고를 내더라도 별반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거리의 소년들을 납치 감금한 국가의 그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어떤 기준이었길래 공권력의 이름으로 그런 잔악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을까? 선감학원과 관련된 각종 역사 기록들은 우리에게 뜻밖의 사실을 전해준다. 명확한 기준은커녕 아이들을 납치해 수용한 원인이 너무나 모호하게 기재되어 있는 것이다. “생활고, 엄격한 생활, 악우 관계, 허영심, 주위 환경의 불순” 등 국가는 어린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특성들을 과도하게 부풀려 부랑아의 성질로 분류했고, 그 얼토당토않은 분류를 수용의 근거로 삼았다. 고민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기막히고 ‘손쉬운’ 분류가 누군가의 귀중한 인생 전체를 파괴한 셈이다.

    기억은 기록을 의심하고, 기록은 기억을 부정하고
    지금은 엄연히 ‘국가폭력 피해’로 받아들여지는 이 ‘선감학원’ 사건에 대해 털어놓기까지 피해생존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선감학원 출신’이라는 낙인, 평생을 가도 지워지지 않는 그 부끄러움을 당당히 드러내면서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경험은 과연 무엇일까? 이들이 끌려간 선감학원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피해생존자들은 하나같이 선감학원에서 보낸 지난날을 ‘자기 자신을 상실한 시간’으로 기억한다. 기본적으로 인적사항이 완전히 조작돼 호적이 말소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수의 생존자들은 이런 사실조차 퇴소 혹은 탈출 이후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선감학원 측은 모든 원생들의 생일을 선감학원 개원 기념일인 5월 29일로 기재하는 등 원아대장을 날조해왔다. 시설 내부에는 그 흔한 시계와 달력도 없어서 원생들은 시간에 대한 감각조차 가질 수 없었다. 선감학원에서 시간은 오로지 명령의 형식으로 고지되었다. 아침 점호와 취침 점호, 그것이 선감학원에 존재하는 유일한 시계였다.
    대부분의 피해생존자들이 자신의 (선감학원) 입소 시기와 퇴소 시기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성곤 씨는 입소 시기와 퇴소 시기를 매번 다르게 증언하거나, 아동보호소의 기록과 전혀 다르게 증언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생生에 대한 기억 자체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이렇듯 사회에 나와서야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줄 수 있는 모든 공적 기록/서류가 부재하거나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접한 피해생존자들은 또 한 번 무너졌다. ‘나’라는 존재가 거기(선감학원)에 있었다는 것을 누구도 증명해줄 수 없고,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 상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이 종종 신빙성을 요구받는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이는 분명 중대한 문제다. 선감학원의 운영 주체였던 경기도가 당시 서류를 온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본인의 증언뿐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자신이 입소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면 (피해 사실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의 인정을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 폭력과 구타
    소년들이 선감학원에서 당했다는 잔혹행위와 폭력의 목록을 보고 있으면, 기억을 회복하는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으로 느껴진다. 피해생존자들이 증언한 선감학원의 일상은 참혹하고 끔찍했다. 취학 나이의 소년들은 학교도 가지 못한 채 하루 종일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그 이후로 배움의 길은 영영 막혀버렸다. 기록상 선감학원은 ‘직업교육’의 명목으로 소년들을 양잠(누에고치 키우기), 축산(소 키우기), 이용 활동에 투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을 온전한 ‘직업교육’으로 이해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너무나 많다. 실제로 그것이 ‘작업의 능률’을 확보하는(그럼으로써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를 키웠어요. 20마리, 30마리 키웠어요. 소들이 겨울에 먹을 게 있어야 되잖아요. 억새풀을 잘게 썰어서 큰 통에다가 재워놔요. 그걸 하는 게 다 우리 같은 어린애들이에요. 낫도 안 줘요. 손으로 하던가, 우리가 돌로 만들어요. 돌 두 개를 갖고 다니면서 억새풀을 꺾어서 짓이겨서 하루에 40킬로씩 해야 돼요”(이○○)
    “농사에 관한 건, 웬만한 건 다 했어요. 보리밭이 되게 넓은 게 있었어요. 추운데 양말도 없이 고무신 하나 신고. 바람도 엄청 차가워요. 그 넓은 데를 어린애들이 매야 하죠.”(한일영)
    10세 전후의 어린아이들에게 낫조차 주지 않고 일을 시켰다는 것은, 그것이 강제노역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쉽사리 납득되지 않는 처사다. 작업의 능률을 높여 생산량을 늘리고, 거기에서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면 최소한의 의복이나 낫 정도의 도구는 지급해야 하지 않았을까. 선감학원의 모든 규율이 사실상 원생들을 인간 이하로 격하하고 존엄을 파괴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심지어는 급식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생식을 시도했고, 또 다른 아이는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다가 콜라병에 들어 있던 농약을 마시고 죽었다.
    “거기서는 항상 배가 고팠어요. 반찬도 맨날 새우젓하고 무 같은 걸 심어서 짠지를 만들어줬어요. 새우젓도 구데기가 끓어서 도저히 못 먹어요. 호박도 큼직하게 잘라서 익지도 않은 걸 주고. 그래서 내가 사회 나와서도 젓갈 종류랑 호박을 잘 안 먹어요. 생식도 엄청 많이 먹었어요. 논에 가면 벼가 있잖아요. 벼를 손으로 훑어다가 바닥에다 놓고 신발로 막 비비면 껍질이 까져요. 그럼 그걸 손에다 놓고 호호 불어서 입에 털어넣는다구요. 생쌀을.”(이대준)
    “어떤 아이는 배가 고파서 사무실에 들어가 콜라병 같은 게 있길래 그걸 마셨대요. 근데 그게 사실은 농약이었던 거예요. 어처구니없게, 농약을 먹고 죽은 거죠.”(현정선)
    더욱 참담한 것은, 폭력이 일상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원리였다는 사실이다. “빠따를 한 대라도 안 맞은 날은 오히려 불안할 정도”라고 말하는 생존자도 있을 정도로 매일매일 잔인한 가혹행위가 이어졌다. 특히 생활공동체인 숙소 안에서 폭력은 원생이 원생을 때리는 구조로 작동했다.
    “일렬로 원생들을 엎드려뻗쳐 시킨 뒤 원생이 원생을 때리는 ‘줄빠따’라는 게 있었다. 원생 열 명이 누워 있으면 맨 앞 원생이 일어나 아홉 명의 원생을 때린 뒤 맨 뒤로 가서 엎드린다. 그다음 원생이 일어나 또 아홉 명의 원생을 때린 뒤 맨 뒤로 가서 엎드린다. 맨 첫 번째로 때린 사람의 순서가 되면 줄빠따는 끝난다. 이불 뒤집어씌운 한 사람에게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대리는 ‘다구리’도 있었다.”(오광석)
    “더 끔찍한 건, 사장 놈들이 원생끼리 권투를 시키는 거예요. 권투장갑을 만들어서. 권투 못하겠다면 또 짓밟아버리는 거지. 가혹하게. 거기서 사장 놈들은 재미를 보는 거예요”(현정선)
    이런 폭력은 내 옆에 있는 동료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내 옆의 동류가 나를 때리는 가해자이거나 내가 밟고 올라서야 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게 될 때, 오직 ‘자기가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원생들 간의 관계를 일부러 와해하려 한 선감학원의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우리 집에 가서 있을래? 선감원으로 도로 돌아갈래?”
    극도의 굶주림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탈출을 시도한 원생들도 있었다. 주민들의 감시 때문에 배를 탈 수조차 없었던 소년들은 헤엄쳐 바다를 건너는 모험을 감행했다. 일주일을 헤엄쳐 대부도까지 이른, 탈출에 성공한 경우도 있었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들도 있었다. 선감학원은 그 작은 시신들을 야산에 아무렇게나 암매장했고, 그마저도 살아 있는 동료 원생들을 시켰다. 아이들의 죽음과 관련해 경찰 조사나 검시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도망가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퉁퉁 불어가지고 소라, 낙지 이런 게 다 붙어 있어요. 거기다 빨간 소독약을 그냥 뿌리는 거예요. 냄새난다고. 한번은 장마가 크게 온 뒤에 뽕 따러 올라가다보니까 시체가 다 드러나 있는 거예요. 아이들 시신을 얼마나 아무렇게나 내버렸는지. 그런 아이들을 내가 직접 묻기도 했어요 선생이 준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이대준)
    경찰의 집요한 추적으로 또다시 잡혀온 소년들도 물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때리는 것이 탈출에 대한 벌이었다.
    “서로 마주 보고 서로의 뺨을 한 대씩 때렸다. 내가 널 때리고, 네가 날 때리고. 이상했다. 난 이렇게 세게 안 때린 거 같은데. 점점 화가 났다. 올려붙이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볼이 씨뻘게졌다. 오른손이 아플 때쯤이면 왼손을 치켜들어 때렸다. 전날만 해도 함께 도주를 계획했던 우리인데 오늘의 우리는 죽일 듯이 서로의 뺨을 휘갈기고 있었다.”(김성환)
    탈출에 성공한 소년들의 사정도 결코 좋지 않았다. 선감학원이 사라진 자리에 또 다른 약탈과 폭력이 비집고 들어왔다. 선감학원의 소년들을 익히 알고 있던 주변 어섬의 주민들이 탈출하는 소년들을 붙잡아 머슴살이를 시키고, 강도 높은 굴양식에 부린 것이다. 간판에 복지와 교육을 내건 또 다른 시설에 붙들려간 소년들도 있었다. 형제복지원과 삼청교육대가 바로 그곳이다.
    “나는 거기서 붙잡힐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붙잡혔어요. 그 사람들 입장에선 우리를 보는 사람이 임자예요, 완전 ‘심 봤다’지. 우리는 공짜로 쓸 수 있는 머슴 아니면 노예였어요. 주민 하나가 나를 앉혀놓고 자기 집에 가서 있을래? 선감원으로 도로 돌아갈래? 협박을 하는 거예요. 저는 당연히 있는다고 그러죠. 목숨 걸고 간신히 탈출해 나왔으니까.”(한일영)
    “마산포 앞에 보면 어섬이라고 있어요. 작은 섬인데 거기에도 부락민들이 살아요. 그 마을 사람들이 도망가는 아이들을 숨겨줘요. 그러고 나서 그 집에서 머슴살이를 시켜요. 거기서도 엄청 때리죠. 만약 말 안 들으면 다시 선감학원에 보낸다고 그러고. 마을 사람들이 도망가는 아이들을 잡아다 선감학원에 보내주면 밀가루 한 포대씩 받았어요. 그때 당시 밀가루 한 포대가 얼마나 비쌌는데.”(이대준)
    “선감학원에서 4년 정도 살다가 폐쇄될 때 나왔습니다. 집사람 통해서 선감학원에 대한 기사를 찾아봤는데, 1982년에 폐쇄되었다고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제 기억엔 1980년입니다. 제가 선감학원 폐쇄될 때 나왔거든요. 그리고 그해에 바로 형제복지원으로 잡혀갔습니다.”(김창호)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인간답게 꽃피기도 전에 저버린 삶
    선감학원이나 형제복지원 같은 시설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도 이미 오래다. 그러나 2019년 현재에도 피해생존자들은 여전히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고생 끝에 어렵사리 시설을 나왔지만, 시설 밖 사회는 이들에게 또 다른 감옥과도 같았다. 삶의 모든 가능성을 박탈당한 채 수용소에 갇혀 살아온 이들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학교를 다니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거나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경험들을 습득하지 못한 이들로서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다. 껌팔이, 구두닦이, 신문팔이로 생계를 유지한 이들은 그나마 나은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다가 범죄의 길로 빠진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든 범죄 그 자체는 용인될 수 없지만, 이들의 범죄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이 또 있을까?
    피해생존자 김성환 씨는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고, “누구도 나의 미래를 궁금해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게 그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이다. 선감학원에 끌려간 소년들은 왜 저 흔하디 흔한 질문조차 받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 질문을 바꿔 왜 아무도 그들에게 꿈을 묻지 않은 것일까? 아무도 그에게 하지 않았던 그 질문을 이제야 비로소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해본다고, 그는 말했다.
    “‘성환아, 넌 커서 뭐가 될 거야?’
    ‘운동 좋아하니깐 운동선수, 아니면 체육 교사. 혹은 형사, 혹은 고아원장.’
    내게도 좋아하는 것이라는 게 있었다. 나는 정의롭게 살고 싶었고, 나처럼 부모가 없는 아이도 이 사회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만약 선감학원에 잡혀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저 많은 꿈들 중 무엇을 이루었을까? 자신처럼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도 꿈을 심어주는, 그런 일들을 하게 되었을까?
    답할 수 없게 된 이 질문들을 이제는 우리가 함께 곱씹어볼 때다.

    추천사

    나는 이 귀중한 보고서가 용케 살아남은 소수가 국가에 던지는 고발장이자, 국가와 한편이 되어 이들을 멸시・천대하고, 이들의 고통을 못 들은 체했던 우리 모두에 대한 고발장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으로 태어났으나 국민으로 대접받지 못한 이들의 아픈 역사는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된다. 나아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폭력의 피해를 당한 이들은 물론 폭력을 가한 이들 역시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 이야기를 통해 지난날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기성세대에게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야만의 시절을 거쳐왔는지 깊이 되돌아보는 묵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이 그런 성찰에 매우 훌륭한 소재가 되리라 생각한다.
    -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섬을 나와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있고, ‘선감학원 출신’이라는 낙인과 자괴로 입을 닫고 숨어 사는 사람들, 그리고 살아 증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진상규명,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 정당한 보상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 절망의 핵심은 나아진 것도 나아질 것도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붙들려 고통당한 시절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19년 현재, 우리 모두는 자본과 국가가 만들어놓은 착취와 굴종의 세상에서 피해자 혹은 방관자 혹은 가해자로 살고 있다. ‘국가폭력’에 당한 원통함과 분노를 다시 헤집으며 비명으로 저항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가 함께하는 수밖에 없다.
    - 최현숙 / 구술생애사 작가

    목차

    들어가는 말 어떤 소년의 대결 4

    1부 수렁에 빠진 소년들

    살기 위해 돌멩이를 들었다 15
    김성민(가명) 구술 • 홍은전 글
    후기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에 관한 단상 34

    살아 있는 자의 사망신고 41
    김춘근 구술 • 하금철 글
    후기 기억 복원을 통한 ‘인간 선언’ 58

    꿀수록 불행해지는 꿈 61
    한일영 구술 • 김유미 글
    후기 예순의 소년이 겪은 울분과 억울함 87

    열다섯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어요 89
    이대준 구술 • 하금철 글
    후기 그와 함께 돌림노래를 부르겠다 108

    2부 삶이라는 공식에 셈해지지 않은 삶

    해일의 시간을 경험한 조개의 이야기 115
    김성환 구술 • 강혜민 글
    후기 지독한 해일의 시간, 그 후 137

    선한 사마리아인은 없었다 141
    김성곤 구술 • 하금철 글
    후기 한 퇴로 없는 삶에 관하여 167

    여기에 있는 나는 누구입니까 173
    오광석 구술 • 강혜민 글
    후기 나에 대한 흔적 찾기 195

    넝마주이 왕초가 만난 하나님 199
    현정선 구술 • 하금철 글
    후기 살아 있는 하나님들과의 만남을 꿈꾸며 217

    눈초리들의 감옥 221
    김창호 구술 • 홍은전 글
    후기 듣는 사람이 있어 가능한 이야기 251

    부록 선감학원 함께 알기 명랑사회, 거리의 아이들을 ‘정화’하다 • 하금철 259
    선감학원 연표 301
    추천사 한국 사회가 거쳐온 야만의 시절에 관한 보고서 • 김동춘 303
    추천사 선감학원, 그 절망의 핵심을 직면하기 • 최현숙 306

    본문중에서

    가난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없애는 손쉬운 길을 택한 국가가 ‘명랑한’ 사회 건설을 위해 거리의 소년들을 쓰레기처럼 청소하는 동안,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들이 당하는 폭력에 눈감았다. 먹고사는 일이 죽기 살기로 힘들었던 시절, 사람들은 그렇게 가난에 굴복하고 말았다.
    (/ p.6)

    우리 네 명의 기록자는 1982년 선감학원이 폐쇄될 즈음 태어났다.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한 세대가 아닌 우리에게 그 지도는 고고학적 유물처럼 낯설고 충격적이어서 신비로울 지경이었다. 어떻게 그런 폭력이 가능했을까.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이 폭력을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평범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 끝엔 ‘무고한 피해자’라 여겼던 구술자가 ‘범죄자’가 되어 나타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뒷걸음질 치던 우리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 전설에서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고 모든 이야기를 처음부터 복기하게 되는 일, 기록자들에게 일어났던 그 강렬했던 체험이 부디 독자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pp.7~8)

    “나는 힘들게 살아서…… 눈물이 다 말라버린 줄 알았어요……”
    아이처럼 우는 노인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랐다. 그 모습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쳐다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어떤 기억은 정말 뼛속에 각인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열다섯 살 소년은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다가 52년의 세월을 뚫고 이렇듯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 p.18)

    김춘근 씨는 22년간 섬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신의 손으로만 다섯 명의 아이들을 묻었다고 했다. 겉보기에 그는 이처럼 참혹한 시간을 견뎌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사람 좋게 웃었고, 매사에 긍정적이었다. 젊은 시절 자전거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뇌진탕을 입게 된 일을 이야기하면서도 “어디 가서 손금을 봐도 내가 명은 길다네”라며 엷은 미소를 띠었다.
    (/ p.52)

    집에 가고 싶은 게 최고의 꿈이었어요. 그 꿈도 결국에는 내가 능력이 됐을 때 꿀 수 있는 게 여기의 꿈이야, 선감학원의 꿈. 내가 능력이 안 되는데 꿈을 꾸면 불행해져요. 수영도 못하는데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불행해지지.
    (/ p.69)

    나는 가끔 우리 애들한테도 얘기해요. 나 퇴학시킨 선생 얼굴 좀 한번 보고 싶다고. 그때는 공부를 하려고 노력도 엄청 했어요. 선생이 칠판에 뭘 쓰면 내 필기가 더 앞서서 쫓아가고 그랬어요. 국민교육헌장도 내가 제일 빨리 외웠고. 그런데 그것도 다 옛날얘기지 뭐. 제일 중요한 건 배움의 기회를 빼앗은 것, 그거에 대해 사과를 받아야 해요.
    (/ pp.106~107)

    여덟 살이 되면 학교에 가고, 성인이 되면 군대에 가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해 아이 낳고 사는 삶. 그런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제일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버린 것 같다. 그래, 살려고 산 게 아니라 ‘살아’진 거였다. 내 삶에,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개입해서 나를 이 꼬 라지로 만들었을까. 나이만 먹은 바보가 되어버렸다.
    (/ pp.135~136)

    이렇듯 그의 어린 시절은 ‘그나마’ 존재하는 기록에서도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다. 그 커다란 공백에는 거리에서 마주친 날것의 폭력과, 선감학원 등에서 자행된 각종 시설 폭력이 들어앉아 주인 노릇을 했다. 앞서도 말했듯, 그가 증언해준 이 이야기가 나에게는 과장 섞인 무용담으로 들리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가, 유년기 내내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박탈당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 p.156)

    32명의 원생을 그리기 위해 같은 그림을 반복적으로 그렸을 그를 생각한다. 식판 32개를 반복해서 그리는 그를 생각한다. 네모를 그리고, 더 작은 네모를 그리고, 그 안에 또 더 작은 네모를 그리는 그의 모습을. 그림을 그리고 남은 공간엔 머릿속 기억들을 글로 옮겨 적는 그를 생각한다. 이 그림들을 그리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림 속 32명의 원생 중 그는 누구일까. 오뎅 속 구더기를 대수롭지 않게 치워내곤 꾸역꾸역 밥을 삼켰을 오광석은.
    (/ pp.191~192)

    선감학원에 들어가면서 잃어버렸던 가족들을 나중에 다시 찾기는 했어요. 동생은 정말 우연히 만났어요. 내가 선감도에서 나와서 여기저기 떠돌며 살 때였어요. 오산 비행장 인근의 쑥고개라는 곳에 ‘미군홀’이 있거든요. 거기서 내가 구두닦이를 했어요. 큰 음식점에서 나오는 찌꺼기 받아다 식사해결하고 그럴 때예요. 거기서 동생을 우연히 만났는데, 동생이 흑인들 모여 사는 동네에서 양색시로 있는 거예요. 동생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 p.215)

    선감도하고 형제원에서 살았던 거 합치면 한 11년 정도 됩니다. 아무리 부모 없이 살았다고 해도, 11년이면 사람 일은 모르는 거 아닙니까. 거기 들어가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더 잘될 수 있었을 겁니다. 진상을 규명해서 우리 누명도 좀 벗었으면 좋겠습니다. 죄 없이 잡혀간 거, 쓰레기 취급 받은 거, 11년이나 노역하고 보상도 못 받은 거, 생각하면 너무 억울합니다.
    (/ pp.249~250)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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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회가 쓸모없다고 여겨 내다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쫓아다니는 ‘이야기의 넝마주이’를 꿈꾸는 사람. 장애인야학 교사, ‘비마이너’ 기자 등을 거쳐,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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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 그 자체보다 그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 차별받던 인간이 저항하는 인간이 되는 이야기를 수집한다. 《노란들판의 꿈》을 썼고 《금요일엔 돌아오렴》 《숫자가 된 사람들》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를 함께 만들었다.

    스물셋, 방황하던 대학 4학년 시절 노들야학을 처음 만났다. 매일매일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그 진폭을 에너지 삼아 교육을 하고 투쟁을 하는 노들야학에 홀딱 반해 버렸다. 취미도 특기도 노들야학에, '노들에 최적화된 인간형'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다. 내가 노들인지 노들이 나인지 헷갈려서 어디까지가 노들이고 어디부터가 나인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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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기자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종종 연극을 하며, 기억과 이야기, 고통과 함께 사는 삶에 관심이 있다. 《섬과 섬을 잇다 2》를 만드는 데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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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공부하다가 장애인이동권투쟁을 접하면서 사는 게 많이 바뀌었다. ‘비마이너’에서 일했고,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소식지 《노들바람》을 만든다.

    기획 비마이너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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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장애언론을 표방하며 2010년 1월 15일 창간했다. 장애운동의 현장을 기록하고 이에 대한 담론을 생산해왔다. 현재는 장애 이슈뿐만 아니라 빈곤, 소수자 문제를 당사자 목소리에 기초해 보도하는 언론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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