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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열녀 : 여자는 어떻게 열녀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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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홍인숙
  • 출판사 : 서해문집
  • 발행 : 2019년 04월 10일
  • 쪽수 : 38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74839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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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유교-가부장제가 2000년간 구축한 ‘열녀 서사’가 여자들의 다양한 삶을 어떻게 대상화하고 통제하려 했는지를 낱낱이 드러내는 책. 동아시아 여성 서사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열녀전에 숨겨진 여성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기원과 진화를 추적한다.
이 책은 중국 한나라 유향의《열녀전列女傳》과 조선의 ‘열녀전烈女傳’에 사용된 ‘모범적이고 순종적인 여자 만들기 전략’들을 정교하게 추출해 보여 준다. 19세기 한문 야담, 20세기 구전설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실제 열녀의 한글 유서까지 망라하며 가부장제의 존속을 위해 기획된 서사가 미처 은폐하지 못한 여성의 욕망과 진짜 목소리를 발굴하고, 여성이 자신의 입장에서 남긴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젊은 여성들의 성적 자유를 비난하고 그들의 고통과 죽음을 유희거리로 삼는 이야기, 어머니의 모성애와 아내의 희생을 찬양하는 수많은 말과 글은 21세기에도 여러 매체를 통해 새로운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다. 이 책은 남성 중심적 여성 서사들에 내재된 의도와 논리를 간파하게 해 주는 도구가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최근 대한민국 재판부는 성폭력 범죄를 고발하는 여성 피해자에게 ‘정조’를 운운했다. 신문기사에는 아직도 ‘미망인(未亡人,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인다. 일명 ‘돌싱’ 중에서 재혼의 명분을 굳이 한 번 더 고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들이다. 이젠 실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졌던 ‘열녀(烈女, 정절을 지킨 여자)’라는 오래된 신화가, 외피를 바꾸고 파편화된 형태로 한국 여성들의 평판과 선택에 유효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여성의 성적 자율성에 대한 근원적 억압의 상징, ‘열녀’. 이 기호는 어디에서 왔을까? 또 어떻게 21세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고전문학자 홍인숙은 2000년 동아시아 여성 서사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중국 한나라 유향의《열녀전列女傳》과 조선 시대의 ‘열녀전烈女傳’에 주목한다. 그리고 두 개의 텍스트를 겹쳐 읽음으로써 유교-가부장제가 구축한 남성 중심적 여성 서사가 여성의 말과 행동을 어떤 프레임으로 대상화하는지, 또 여성의 역할과 지위를 어떻게 통제하려 했는지를 포착해 낸다.

똑똑하고 말 잘하는 못생긴 처녀, 난잡하고 음탕하지만 매혹적인 미녀
아버지의 권위를 수호하는 어머니, 남편만 바라보는 순종적인 아내…

여자의 욕망을 통제하기 위해
유교-가부장제가 고안한 강력한 편견들
그 틈새를 뚫고 나온 목소리를 찾아서

2000년 동아시아 여성 서사의 원형이 된 두 개의 텍스트,
한나라 유향의 《열녀전列女傳》과 조선의‘열녀전烈女傳’을 겹쳐 읽는다

‘열녀烈女’라는 억압적 여성상은 사실 ‘열녀(列女, 여자들)’라는 다양한 여성상에서 기원했다. ‘列女’라는 말은 사라지고, ‘烈女’라는 말만 살아남게 된 것은 전한 시대의 유학자 유향이 지은 104명의 ‘여자들 이야기(列女傳)’가 불과 몇백 년 전 조선 후기 사회에서 ‘정숙한 여자 이야기(烈女傳)’로 단일화된 결과다.
저자는 열녀전이라는 텍스트를 여성 서사의 다양성이 가부장제 하에서 어떻게 축소되며 그 과정의 역사적·정치적 의의가 무엇인지 되묻는 계기로 보자고 권한다. 이를 위해 먼저 유향의 《열녀전列女傳》을 압축적으로 소개하고, 바람직한 여성의 역할을 정의하고자 했던 원작자의 의도가 미처 은폐하지 못한 여성들의 뛰어난 능력과 솔직한 욕망을 엿보는 재미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천하를 제패한 왕과 현자들을 능가하는 높은 학식, 어리석은 남편을 깨우치고 가르칠 만큼 뛰어난 식견, 훌륭한 인재를 고르고 나라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판단력, 의로움과 명분을 동시에 지키는 고도의 윤리적 감각, 치밀하고 논리적인 말솜씨를 가진 여자들의 개성 넘치는 일화를 지금의 언어로 흥미진진하게 풀어 놓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조선 상층 양반들의 ‘열녀전烈女傳’을 일별하며 《열녀전列女傳》 속 다양한 여성상이 ‘남편 따라 죽는 여자’로 귀결되어 가는 흐름을 짚는다. 열녀문을 세워 주는 조선 조정을 향해 ‘이는 열烈이 아니요, 도량이 좁은 것’이라고 일갈한 정약용을 비롯한 박지원, 이옥 등 여러 실학파 지식인들의 열녀전도 함께 다뤄 더 단호하고 특별한 여성의 죽음을 찾아내고 평가하는 구도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19세기에 지어진 한문 야담, 1970~80년대에 녹취된 여성 제보자의 구전설화와 같은 하위 서사들을 발굴해, 천편일률적인 열녀전에 그려진 여성의 모습이 당대 여성들의 실제 삶과 얼마나 같고 달랐는지 조명하기도 한다. 백미는 한 열녀가 직접 남긴 한글 유서를 통해 가문의 재건과 가부장제의 존속을 위해 윤색되었던 여성의 진짜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동시에 열녀 서사에 사용된 ‘모범적이고 순종적인 여자 만들기 전략’들을 정교하게 추출한다. 여성 인물의 입으로 여성을 통제하는 규범 강조하기, ‘술 빚고 밥 짓는’ 영역을 넘어서는 능력을 가진 여자를 지칭하는 말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바꾸기, 말 잘하는 여성의 외모는 추하게, 아름다운 여자는 악하게 묘사하기, 잔혹한 신체 훼손에도 기쁨을 느끼는 여성 만들기 등이다.
젊은 여성들의 성적 자유를 비난하고 그들의 고통과 죽음을 유희거리로 삼는 이야기, 어머니의 모성애와 아내의 희생을 찬양하는 수많은 말과 글은 지금도 여러 매체를 통해 새로운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다. 가부장제의 확립과 유지를 위해 기획된 텍스트, 열녀전이 만들어 낸 여성의 허구성을 들추는 이 책은 남성 중심적 여성 서사들에 내재된 의도와 논리를 간파하게 해 주는 도구가 될 것이다.

목차

서문

1부
태초의 여자들
2,000년 동아시아 여성사의 시초, 한나라 유향의 《열녀전列女傳》

1장 신화가 된 모성 | 모의전母儀傳

● 천하의 주인을 결정하다 - 순 임금의 두 부인
: 어머니이자 열녀烈女,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의 원형
● 왕실의 기강을 바로 세우다 - 주나라 왕실의 세 어머니
: 삼대에 걸친 시어머니·며느리·손자며느리, 가부장적 모성의 전형
● 성인을 길러 내다 - 맹자의 어머니
: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권위와 예법의 수호자

2장 지혜로운 아내 | 현명전賢明傳
● 남편의 삶은 제가 잘 알지요 - 노나라 현인 유하혜와 검루의 아내
: 독립적이고 지적인 여성들, 그 사유의 ‘언어’를 보다
● 스승과 군자로서의 아내 - 초 장왕 부인 번희, 제나라 마부의 처
: 뛰어난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의 담지자
● 문밖의 수레 자국이 어찌 그리 깊습니까 - 초나라 은자 접여, 오릉자종, 노래자의 아내
: 현명한 여자는 사치하지 않는다

3장 미래를 읽는 여자 | 인지전仁智傳
● 제 아들은 그 아비만 못합니다 - 조괄의 어머니, 진나라 백종의 아내
: 정치적 현실과 권력 관계 분석에 기초한 ‘피화의 지혜’
● 충신을 분별하는 사려 깊은 안목 - 위 영공 부인, 노나라 칠실읍의 여자
: 나라를 염려하는 여성들의 행방

4장 열녀烈女의 기원 | 정순전貞順傳
● 부인의 도리는 오직 하나일 뿐입니다 - 채 나라 사람의 처, 여 장공 부인 , 초 평왕 부인 백영, 식 임금 부인, 양나라 과부 고행
: 여자의 자발적 선택은 어떻게 여성 억압의 도구가 되는가
● 예에 어긋난다면 죽는 것이 낫습니다 - 소남 땅 신씨의 딸, 제 효공 부인 맹희, 송 공공 부인 백희
: 남녀의 본분 차이를 교육하기 위한 롤 모델

5장 정의로운 여협 | 절의전節義傳
● 의리를 잊고서 어찌 왕을 섬기겠습니까 - 초 성공 부인 자무, 초 소왕 부인 월희
: 완전무결한 도덕성을 추구하다
● 충성과 신의를 모두 지키다 - 진나라 태자의 비 회영, 주나라 대부의 충직한 시녀
: 명분을 실천하는 고도의 윤리적 감각
● 자식의 일은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 노 효공의 보모, 제나라의 계모, 노나라의 의리 있는 이모
: 타협 없는 선공후사의 화신

6장 뛰어난 변론가 | 변통전辯通傳
● 사람을 구하는 절묘한 설득의 기술 - 활 만드는 장인의 처, 나무를 꺾은 자의 딸
: 가문과 나라에 도움이 될 때 허용되는 여성의 말하기
● 국정의 폐해를 직언한 추녀 - 제나라의 종리춘, 숙류녀, 고축녀
: 똑똑하고 지혜로운 여성은 어떤 외모를 가졌는가

7장 아름다운 악녀 | 얼폐전孼嬖傳
● 악독한 미인들의 탄생 비화 - 하나라 말희, 상나라 달기, 주나라 포사
: 지배자를 위한 공물로서의 삶
● 권력과 성을 욕망하는 여자 - 진晉 헌공 부인 여희, 진陳나라 하희
: 남성의 질시와 공포, 살인과 배신을 은폐하는 ‘여화女禍’ 서사


2부
사死의 찬미
열녀列女에서 열녀烈女로, 조선에 울려 퍼진 레퀴엠의 메아리

1장 삼혼三婚 시대의 열녀 | 개가를 거부한 여자들

● 남편의 신주를 살아 있는 사람처럼 소중히 여기다 - 강희맹의 <홍절부전>
: 보기 드문 절부의 탄생
● 양반 남성에게 절의를 지킨 천민 여성 이야기 - 성혼, 송익필의 <은아전>
: 조선 전기 열행의 기준과 전파

2장 나라와 가문을 더럽히지 마라 | 전란과 정절의 문제
● 한 집안에서 세 열녀가 나게 한 왜란의 참상 - 이정암의 <삼절부전>
: 아내와 딸과 며느리를 버린 비겁한 가부장들의 초상
● 두 부인 중 누가 더 종용하게 죽음에 나아간 사람일까요? - 라해봉의 <이열녀전>
: 열의 순수성을 ‘평가’하기 시작하다

3장 강요된 자결의 풍경 | 순절 열녀 전통의 성립
● 남편 영전에서 목을 매고 ‘단정히’ 죽다 - 김간의 <열녀송씨전>
: 죽음을 미화하는 서사적 전략
● 아이 젖을 떼고 ‘기뻐하며’ 독을 마시다 - 유의건의 <열부유인하씨전>
: 간절히 죽기를 원하는 여성 만들기
● 장례를 치르고 9일 만에 따라 죽다 - 신광수의 <정열부전>
: 가난한 양반 여성이 열녀가 되기까지
● 동서의 감시를 피해 목을 매다 - 조호연의 <열부손유인전>
: 남성의 복화술을 위한 장르로서의 열녀전
● 칼로 목을 세 번 찔러 죽다 - 한경소의 <박열부전>
: 잔혹한 신체 훼손에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열녀의 등장
● 열흘 굶어 죽다 - 이야순의 <신열부이씨전>
: 더 단호하고, 더 특별하며, 더 의로운 죽음 찾기
● 50년 전의 열녀 발굴 - 유인석의 <열부양씨전>
: 가문의 회생을 위한 여성의 희생
● 돈이 없으면 죽어도 정려를 받지 못한다 - 곽종석의 <송열부전>
: 열녀 표창 제도를 둘러싼 뇌물 관행

4장 죽음의 무도를 멈추시오 | 소수 지식인의 열 비판론
● 과부 아들이 과부를 논한단 말이냐? - 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 병서>
: 소설로 되살려 낸 수절 열녀의 존재
● 제 다리 살을 베는 것이 죽기보다 어렵다 - 이옥의 <생열녀전>
: 조선 후기 열행 관습에 대한 통렬한 반어법
● 이는 열이 아니요 도량이 좁은 것이다 - 정약용의 <열부론>, 김택영의 <절부설>
: ‘따라 죽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논하다
● 어찌 재가의 혼례를 치르지 않는가 - 김윤식의 <개가는 왕정에서 금한 것이 아니다>
: 외손녀를 직접 개가시킨 대유학자의 주장

5장 ‘미망인’들의 또 다른 선택 | 한문 야담 속 열녀와 개가 인식
● 재상이 과부 딸을 무관에게 부탁하다 - 상녀
: 양반가 미망인의 헛장례와 몰래 개가
● 기이한 인연으로 가난한 선비가 두 여인을 얻다 - 태학귀로
: 가문의 힘으로 새 삶을 개척하는 청상 판타지
● 편지글을 내려 노부인이 가르침을 베풀다 - 유훈
: 여성의 욕망을 긍정하는 목소리를 봉합하는 가부장제

6장 술장사하는 열녀, 두 남편을 둔 열녀 | 20세기 구전설화 속 다양한 열녀상
● 꿈쩍 않는 철못을 뽑을 수 있는 진짜 정절녀는 누구인가? - 고모와 아내
: ‘열녀 시험형 설화’의 웃음 섞인 질문
● 열은 열이지만 칭송하기는 어렵다 - 유씨 집안 며느리, 남편 살해범과 결혼한 여자, 문둥병 걸린 남자의 아내
: ‘열불열 설화’의 처절한 모순어법
● 여성이 말하는 열불열 설화 - 동생 병 고쳐 준 제수
: 남녀 구연자의 해석 차이

7장 열녀 자신의 목소리 | 신씨부의 한글 유서가 보여 주는 열녀전의 허구성
● 그저 가지가지 불샹타 - 양자인 ‘돌놈’에게
: 위로 속에 드리운 설움
● 봄의 네 얼골을 보니 든 얼골리너라 - 딸 내외에게
: 홀로 남을 자식에 대한 애끓는 안타까움
● 못슬 거시 녀동니로소니다 - 오라버니 내외에게
: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의 다단한 상념들
● 쥭은 식니라고 저바리지 마시고 - 시부모님께
: 친정에 남긴 유서와 시집에 남긴 유서의 온도 차


참고문헌

본문중에서

‘열녀烈女’라는 기호는 지금도 우리 삶에서 작동하고 있다. 여성의 성적 정숙함 혹은 정조와 순결 같은 개념 때문에 어떤 여성들이 자신의 평판에 치명적인 흠을 입거나, 고통을 겪거나, 완전히 자유롭고 자기중심적인 선택을 할 수 없다면 말이다. 여성의 성적 자율성에 대한 근원적인 억압의 상징, 그것이 바로 열녀다.
(/ p.4)

지금 우리가 열녀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열녀전 서사의 이데올로기성이 던져 주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 때문이 아닐까. 남성 지배 담론은 여성들을 어떤 프레임으로 대상화하는가? 남성 지배 서사는 여성의 말과 행동을, 또 여성의 역할과 지위를 어떻게 통제하려 하는가?
(/ p.24)

(인지전)의 ‘칠실녀’ 이야기는 ‘정치에 대한 관심과 재능’을 가진 여성상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변형을 거치게 되는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고사성어 ‘칠실지우漆室之憂’의 뜻이 현대에 들어와 전혀 다르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칠실읍 여자의 걱정’이라는 이 성어는 ‘지혜롭고 사려 깊은 생각’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요즘 이 말은 ‘분수에 맞지 않는 쓸데없는 생각’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다. 고대 문헌인 《열녀전》에서는 분명 ‘어질고 지혜로운 여성상’으로 제시되었던 칠실읍의 여자가, 시간이 흐른 이후에는 ‘처지와 분수를 모르고 쓸데없는 걱정이나 하는 사람’의 대명사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정치와 권력에 관심을 갖는 여성이 극단적인 조롱과 비난의 대상으로 변화했음을 단적
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과정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증거는 후대에 편찬된 ‘열녀전’ 류의 책들에 (인지전) 이야기가 단 한 편도 인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칠실읍의 여자 이야기가 ‘어짊과 지혜로움’의 대명사에서 ‘분수에 넘는 오지랖’으로 변질된 것이나, (인지전) 전체 인물들의 이야기가 후대로 가면서 그 존재 자체가 아예 사라진 것은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하나의 흐름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닐까. ‘술 빚고 밥 짓는’ 영역을 ‘넘어서는’ 능력을 가진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의 배제의 역사 말이다.
(/ pp.91~92)

포나라 임금이 종주국인 주나라에 인질로 붙잡혀 있게 되자 나라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구해 공물로 바치고 왕을 풀려나게 하려고 했다. 그렇게 진상된 공물, 그녀가 바로 포나라의 여자라는 이름의 ‘포사’였다. 이러한 이야기는 포사가 ‘웃지 않는 인물’이 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 준다. 왕실 남성들이 행사하는 일방적인 폭력에 노출되었던 젊은 궁녀의 딸, 그리고 왕을 위해 뽑혀 나가 물건처럼 바쳐지는 약소국 여성. 이것이 바로 포사의 배경담이 보여 주는 여성의 역사 아닌가.
… 유왕은 포사의 환심을 사려고 유흥의 나날을 이어 갔지만 포사는 ‘웃지 않았다’. 포사는 남성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감정적 봉사인 ‘웃음’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런 포사가 웃음을 보였다고 기록된 상황 역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바로 여러 제후국들의 최고 수장들이 군대를 이끌고 달려왔다가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남성들이 ‘기만당한’ 순간, 수많은 군대가 허수아비처럼 쓸모없는 ‘무력한’ 존재가 되어 버린 순간, 그것만이 포사에게 진정한 웃음의 희열을 줬던 것이다.
(/ pp.159~161)

이 시기 열녀전에서는 남편을 위해 여성이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斷指나 허벅지 살을 잘라 내는 할고割股와 같은 신체 훼손의 행위를 예사롭게 하며,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그 여성이 ‘작은 고통도 호소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여성의 몸은 흔히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묘사되곤 했던 것이다. 핵심은 잔혹성이었다.
… 이날 밤 자정 무렵 어머니가 막 깊은 잠이 들려는데 문득 창밖에서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 일어나 불을 켜고 보니 열부가 칼을 쥐고 땅에 쓰러져 있었다. 온몸은 피로 흥건했고 턱 밑에는 구멍이 세 군데 있는데 헐떡이는 소리는 바로 그 세 구멍에서 나고 있었다. … 벽을 보고 누워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으니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목숨을 이어 보려고 억지로 약초 달인 것을 마시게 하였다. 겨우 한 번 마시자 목구멍이 부풀어 올라 세 구멍에서 나란히 솟아나오며 연적과 벼루가 엎어진 듯 계속해 흘러내렸다. …
목을 찌른 상처 세 곳에서 피가 솟구치는 소리의 묘사,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박씨의 모습, 모친이 억지로 흘려 넣은 약이 다시 줄줄 새어 나오는 장면은 말 그대로 처참하다. 그러나 박씨의 고통은 서사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가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 어머니를 위로하고, ‘벽을 보고 누워 죽을 때까지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이 열녀전은 ‘동네 부녀자들’이 나서서 박씨의 죽음을 더없이 훌륭한 일로 칭송했다고 마무리된다. 한 여성의 끔찍한 자해와 죽음을 풍속 교화의 모범이자 덕행으로 포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조선 후기 열녀전의 이데올로기적 면모였다.
(/ pp.247~249)

하봉연이라는 75세의 여성은 두 번째 유형의 ‘남편의 복수를 위해 개가한 이야기’를 하면서 후남편 살해, 후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 살해, 스스로 자결하는 결말 등을 모두 없앤다. ‘이 도독뉨이 내 남편을 죽ㅤㅇㅔㅆ구나’ 하고는 당장 돌아서서 떠나는 것이 전부이며, 결말도 ‘옛날에는 머 희한한 게 다 있어요’ 하면서 이야기의 의미 자체를 전남편을 위한 ‘열’이나 ‘복수’로 끌고 가지 않고 ‘이상한 이야기’로 마무리할 뿐이다. … 많지 않은 여성 제보자들의 열녀 구전설화가 보여 주는 이 특별한 ‘변이’는 ‘열’이라는 남성 중심적 윤리를 바라보는 보통 민간 여성들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정절 잃는다고 꼭 제 몸을 불에 지질 것까지는 없다. 개가했다고, 두 남편 봤다고 굳이 죽을 필요 없다. 남편 복수한다고 살인까지 저지를 일 없다. 전남편, 후남편, 양쪽 자식들과 다 같이 잘 살아도 괜찮다…….’ 구전설화가 전해 주는 열녀 이야기는 결국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전달하는 주제’가 달라질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pp.322~323)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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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고전과 여성을 연결하는 공부 를 하고 학위를 받았어요. ‘여자라서 못하거나 안 되는 것’이 없는 곳이어서 공부가 신나고 재미있었어요. 지금은 선문대 교양학부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어요. 가르치면서 ‘읽기, 생각하기, 쓰기’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음을 확인할 때마다 뿌듯해지곤 해요. 지은 책으로는 《여성 예술가 열전-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근대계몽기 여성 담론》, 《책읽기, 나, 그리고 세상》 등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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