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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핑 도스토옙스키 : 대문호의 공간을 다시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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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석영중
  • 출판사 : 열린책들
  • 발행 : 2019년 03월 15일
  • 쪽수 : 44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32919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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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여행도 그랬다. 그는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달라졌다. 매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을 읽었다. 시베리아에서, 유럽에서, 광야의 수도원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삶도, 문학도 다시 태어남의 끝없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출판사 서평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베리아, 유럽 곳곳의 도시들에 이르기까지……
도스토옙스키가 실제로 머물렀던 공간을 직접 탐방하며 들여다보는, 대문호의 인생과 문학


노문학자 석영중 교수의 저서 [매핑 도스토옙스키: 대문호의 공간을 다시 여행하다]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오랜 세월 학생들에게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가르쳐 온 저자는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세계 곳곳에 남긴 흔적들을 두 발로 직접 탐방했던 경험을 토대로, 그의 삶과 문학 세계를 독자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소개하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베리아, 유럽 곳곳의 도시들에 이르기까지, 대문호가 실제로 머물렀던 지역과 장소들을 직접 보고 거닐면서 그의 정신적인 궤적을 따라가는 이 책은, 전문 연구자의 생생한 <도스토옙스키 기행>의 기록이자 그의 문학 세계로 흥미롭게 독자들을 초대하는 충실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석영중 교수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흔적을 찾아서 러시아는 물론 카자흐스탄과 체코, 프랑스, 독일,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를 아홉 차례 오가는 대장정에 올랐다. <계산해 보지 않았지만 아마 지구를 몇 바퀴 돌았을 것>이라는 저자의 술회만큼, 이처럼 한 연구자가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들을 전부 직접 찾아가 본 일은 전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후 저자는 이 여정의 기록을 토대로 2018년 1월 첫 주부터 12월 마지막 주까지 1년의 시간에 걸쳐 잡지 [중앙SUNDAY]에 총 48회의 칼럼을 연재했다. 이를 모아 6개의 부와 48개의 장으로 구성한 이 책은 각 장마다 하나의 도시와 관련된 하나의 주제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하여 마치 각각의 조각들이 하나의 장엄한 형상을 이루는 모자이크화처럼, 도스토옙스키의 생애와 문학과 관련된 거의 모든 주제를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임종의 순간까지 대문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죄와 벌],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악령], [백치], [미성년] 등 5대 대표 장편소설을 비롯한 그의 주요 작품들을 그 작품과 관련 깊은 장소와 연관하여 쉽고 재미있게 해설해 주고 있다. 자칫 어렵고 심오할 수 있는 내용까지도 이해가 쉽게 설명해 주고 있어서, 평소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해 온 독자들뿐 아니라 아직 그의 작품을 읽어 보지 못했거나 처음 그의 문학 세계에 접근하려는 독자들에게도,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 책이 좋은 입문서가 되어 줄 것이다.
또한 여행지에서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과 이미지 자료들, 도스토옙스키의 주요 이동 경로를 나타낸 지도 등을 함께 수록하여, 이 책을 통해 떠나는 <도스토옙스키 여행>에 독자들이 더욱 생생하게 빠져들 수 있도록 했다. 이중에는 전문가들도 쉽게 찾아가서 보기 힘든 희귀한 사진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러시아 곳곳과 카자흐스탄에 흩어져 있는 총 일곱 개의 도스토옙스키 기념관은 물론, 도스토옙스키가 이곳저곳을 떠돌며 머물렀던 셋집과 현판들, 그가 걷고 지나쳤던 유럽의 거리와 상점들, 삶의 나락에서 좌절하고 다시 태어났던 감옥과 수도원들, 그의 작품 속에서 영원의 공간으로 재창조된 도시의 골목길들, 그리고 그와 그가 사랑했던 이들이 잠든 무덤 등…… 그의 삶과 작품에 각인된 공간들을 저자와 함께 더듬는 여정은, 단순히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공간을 다시 여행하며> 그가 보고 듣고 숨 쉬던 삶의 순간들 속으로 흠뻑 젖어 들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역마살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그의 파란만장한 여정과 정신의 궤적을 함께 추적하다


러시아 문학사를 통틀어서 도스토옙스키만큼 여러 곳을 떠돌아다닌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60여 년의 생애 동안 도스토옙스키는 삶의 여러 운명과 부침의 길목마다 러시아와 유럽 곳곳의 다양한 지역들을 전전하면서 살아갔다. 그의 고향인 모스크바, 그의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 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감옥의 막사 안에서 30대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던 시베리아 유형지, 유럽 정신에 깃든 획일화와 전체주의의 악몽을 읽어 냈던 런던 만국 박람회장, 도박 중독에 걸려 배회했던 독일의 카지노들, 버거운 친척들과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쳤던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 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머물며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작품 집필에 몰두했던 작은 온천 마을 스타라야 루사 등에 이르기까지……. <역마살> 가득한 그의 생애는 그 바빴던 여정만큼이나 고스란히 그의 역동적이고 파란만장했던 삶의 과정을 대변한다. 그만큼 그의 생애는 끝없는 방황과 고뇌, 좌절과 갱생의 드라마틱한 과정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정과 함께 그의 문학과 사상도 무르익어 가며 새로운 국면들을 맞이하곤 했다. 그가 일생 동안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것은 대부분 그의 의사와 무관했으나, 이 숙명적인 이동은 예외 없이 그의 작품 속 서사의 일부로 굳어졌다. <시베리아는 [죽음의 집의 기록]과 [죄와 벌]에, 모스크바는 [백치]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가난한 사람들]에서 [미성년]에 이르는 수많은 소설에, 유럽은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백치]와 [악령]에, 트베리는 [악령]에, 스타라야 루사는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실제의 공간과 지명은 그의 문학 속으로 들어와 때로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때로는 저자의 의도를 전달해 주는 비유이자 상징이 되었다. 지도 위의 랜드마크는 시간 속의 사건으로 전이되었다. 특정 공간을 따라가는 저자의 이동 궤적은 소설 속에서 사상의 움직임으로 복제되면서 놀라운 역동성의 문학을 창출했다.>(「머리말」에서)
때문에 도스토옙스키의 물리적인 이동을 살펴보고 그의 발자취를 직접 따라가 보는 일은, 일생 동안 그의 문학 세계를 넓히고 형성해 온 그의 정신적인 궤적을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 석영중 교수는 이 책의 중요한 목적이 도스토옙스키의 <물리적인 이동과 함께 정신적인 움직임을 동시에 살펴보>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문호가 실제로 살았던 도시와 머물렀던 장소, 방문했던 나라들을 따라가면서, 국경을 넘고 교차로를 지나가고 다리를 건너, <시간, 공간, 인간>을 축으로 하는 도스토옙스키 <지도>를 그려 보고자 하는 것이다. 책 제목의 <매핑mapping>은 그래서 실질적인 지도와 형이상학적인 지형도 모두를 함축한다. 부제인 <대문호의 공간을 다시 여행하다>는 이 책에 인용된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말, <기억하는 것은 같은 공간을 다시 여행하는 것>이라는 문구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와 함께 대문호의 발길이 머물렀던 공간을 따라가는 여행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그의 정신과 문학을 아우르는 지형도가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자취를 남긴 것을 독자들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머리말 : 대문호의 역마살
도스토옙스키 이동 경로

1부 야망의 여정,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1장 모스크바 : 〈예언자〉의 탄생
화합에 굶주린 러시아를 울리다
2장 모스크바 : 고통을 보다
연민, 실존의 법칙
3장 모스크바 : 돈을 읽다
극빈자 병원과 거액 기부자, 돈의 두 얼굴
4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도스토옙스키의 도시
신기루가 빚어낸 견고한 문학
5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글 쓰는 인간
가난한 하급 관리의 존엄한 이미지
6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책 읽는 인간
책이 팔려야 입에 풀칠이라도
7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불안에서 분열로
나를 좀 인정해 달라
8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하얀 밤〉의 추억
사랑이여, 그 젊은 날의 아스라함이여

2부 시베리아, 다시 태어남

9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두 번째 생
삶은 선물이고 행복이다
10장 옴스크 : 사람들 속으로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11장 옴스크 : 자유!
본능의 극복이 자유다
12장 다로보예 : 아, 불쌍한 아버지!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
13장 다로보예 : 나는 러시아인이다
민중의 내면을 보다
14장 세메이 : 한숨 돌리기
시베리아에서 만난 젊은 귀인
15장 세메이 : 별이 빛나는 밤
신과 화해하고 신의 의지에 복종하다
16장 노보쿠즈네츠크 : 미친 사랑
가난한 술꾼의 아내와 늙수그레한 로미오
17장 노보쿠즈네츠크 : 비참한 결혼
이 모든 상실에도 불구하고

3부 러시아와 유럽, 나의 〈정신〉과 남의 〈이론〉의 교차로에서

18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저널리즘의 시대
더 빨리! 많이! 재미있게!
19장 유럽 : 최악의 여행기
인간의 물질화를 거부하다
20장 런던 : 디스토피아의 비전
기술이 권력을 넘어 종교가 될 때
21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반역
냄새나는 〈지하실〉은 당신에게도 있다
22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더 미친 사랑
열여덟 살 연하의 〈팜파탈〉
23장 비스바덴 : 중독
그때 돈을 따지 말았어야 했다
24장 비스바덴 : 감각의 지옥
도박장에서 인간 본성을 읽다
25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인생 역전
26일 만에 완성한 소설과 결혼
26장 모스크바 : 범죄 소설의 태동
『죄와 벌』로 살인 사건을 예언하다
27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죄와 벌, 그리고 정의
라스콜니코프는 정의로웠나?
28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첫 문장
청년은 〈작은 방〉을 〈나왔다〉
29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형사와 매춘부
형사 콜롬보의 모델이 바로 그였다
30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어떻게 살 것인가
성장의 시간, 희망의 시간

4부 문학이 된 유럽

31장 유럽 : 삼십육계
절대적인 사랑의 절대적인 확신
32장 바덴바덴 : 인격 살인
도스토옙스키와 투르게네프
33장 바젤 : 실패한 그리스도
절망의 심연에서 담금질된 기쁨
34장 제네바 : 남자가 통곡할 때
소설을 써야 했기에 그 모든 걸 견뎌 냈다
35장 브베 : 보이지 않는 돈
나스타샤, 10만 루블 줄 테니 같이 떠나자
36장 피렌체 : 여인의 얼굴
보는 것이 아는 것이다
37장 피렌체 : 유한한 삶, 행복한 삶
순간을 1세기처럼 살 수 있다면
38장 드레스덴 : 〈악령〉들의 우두머리
지상 낙원과 절대 권력
39장 드레스덴 : 〈쓸모〉의 문제
쓸모없는 것들은 왜 필요한가

5부 다시 러시아, 영광을 향하여

40장 트베리 : 마음속의 〈변두리〉
당신은 중앙과 그물망에서 소외되어 있는가
41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소설가에서 〈멘토〉로
그는 1인 미디어의 선구자였다
42장 바트엠스 : 인간의 품격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43장 스타라야 루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 명성의 절정
문학의 땅에 한 알의 밀알로 죽다

6부 〈매핑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모든 길은 바다로

44장 매핑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① 아버지 죽이기
저 따위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 걸까
45장 매핑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② 열린 문
인생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46장 매핑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③ 두 가지 사랑
사랑을 실천하라
47장 매핑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④ 얼어붙은 손가락
무감각한 사회는 결국 무너진다
48장 매핑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⑤ 기억의 힘
〈착한 그 시절 서로를 잊지 맙시다〉, 대문호가 꿈꾼 공동체

맺음말 : 끝나지 않은 여행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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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나는 이 책에서 저자의 물리적인 이동과 정신적인 움직임을 동시에 살펴보고자 했다. 대문호가 실제로 살았던 도시, 머물렀던 지역, 방문했던 나라를 따라가면서 그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던 생각과 그의 펜 끝에서 흘러나온 글을 추적하고자 했다. 국경을 넘고 교차로를 지나가고 다리를 건너가며 시간, 공간, 인간을 축으로 하는 도스토옙스키 〈지도〉를 그려 보고자 했다. 그래서 제목에 <지도map>에서 파생된 단어 <매핑mapping>을 집어넣었다. 이 책의 <매핑>은 실질적인 지도와 형이상학적인 지형도 모두를 함축한다.
('머리말' 중에서/ pp.6~7)

그가 살 당시 이 지역의 이름은 〈신의 집〉이라는 뜻의 〈보제돔카Bozhedomka〉였다. 그것은 반어적으로 버림받은 영혼을 위한 마지막 안식처, 즉 극빈자 묘지를 지칭했다. 18세기 말까지 그 일대에는 행려병자와 무연고자와 자살자를 위한 빈민 공동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빈민 병원 건물을 번듯한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것은 이런 지역적 특성을 희석시키고자 하는 정부의 속내를 반영한다는 게 역사가들의 얘기지만, 실제로 가보면 오히려 생뚱맞게 위풍당당한 그 건물 때문에 주변 분위기가 더욱 스산하게 느껴진다.
따뜻하고 안전한 방 안에서 날마다 빈곤과 질병과 죽음을 내다보면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불쌍하다는 생각은 나중에 들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무섭고 싫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타인의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척, 타인의 고통을 못 본 척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어느 순간엔가는 자신의 상대적으로 풍족한 삶이 다른 누군가의 고통 덕분에 가능한 게 아닐까라고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그의 마음속에 바윗덩어리처럼 무겁게 들어앉은 저 비참한 무리의 모습이 훗날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고통받는 어린아이의 형상으로 응축되었을지도 모른다.
('2장 모스크바: 고통을 보다' 중에서/ p.37)

라스베이거스가 환영의 빈 공간을 엔터테인먼트로 채웠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문학으로 채웠다. 처음에는 괴담과 신화가 역사의 빈자리를 채웠지만 곧 진지한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 19세기에 대거 등장한 문호들은 정체성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시켜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표트르 대제가 도구로만 취급했던 문학은 이제 그가 창조한 이 기이하게 멋지고 환상적인 도시의 본질이 되었다. 그리고 물론 그 문학을 대표하는 것은 도스토옙스키였다. 페테르부르크는 그래서 〈도스토옙스키의 도시〉인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마셜 버먼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그 자체의 음울한 대기 속으로 계속해서 녹아들어가게 되는 신기루〉라고 불렀다. 도스토옙스키는 신기루에서 가장 견고한 것을 빚어냈다. 문학이라는 이름의.
('4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도스토옙스키의 도시' 중에서/ p.56)

악(惡)이 러시아 전역에서 붙잡혀 온 살인범, 도둑놈, 강간범, 아동학대범의 모습으로 그를 에워쌌다. 죄수들은 범죄에 무감각했고 동물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서슴없이 했다. 그들은 〈이빨과 위장을 가진 고깃덩어리〉였다. 곱게 자라 온 중산층 귀족 지식인에게 그들과의 공동생활은 그냥 지옥이었다.
(……) 도스토옙스키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심지어 〈동지〉였던 두로프와도 같은 막사에 있으면서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웃음도 잃었다. 그저 묵묵히 노역에 임했다. 침묵, 육체노동, 성경 독서 등 종교적 수행과 다를 바 없는 일상 속에서 그는 내면을 돌아보는 여행을 시작했다.
입을 꾹 다문 창백한 사나이의 마음속에서는 거대한 탄생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후 20년 동안 쏟아져 나올 대작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판에 박힌 듯 똑같은 감옥의 일상, 절대적인 고독과 침묵, 정지된 시간 속에서 그의 내면은 용광로처럼 끓어 넘치고 있었다.
('10장 옴스크 : 사람들 속으로' 중에서/ pp.109~110)

저녁 6시 30분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 다시 열차를 타고 비스바덴에 도착해 중앙역 근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쿠어하우스 카지노를 방문해 카운터 직원에게 도스토옙스키 흉상에 대해 물었더니 건물 바깥쪽 공원을 가리킨다. 그러면서 건물 안에는 대문호의 도박을 기념(?)하는 〈도스토옙스키 홀〉이 있다며 직접 안내해 준다. 카지노와 대문호의 결합이 재미있는지 사뭇 히죽거린다. 기념 홀은 평소에는 비워 두고 특별한 행사 때만 사용한단다. 도박장 내부는 천정이 높고 벽면마다 장방형의 거울이 붙어 있어 분위기가 몽환적이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사람은 많지 않다. 안색이 백지장 같고 배가 많이 나온 몇몇 도박사들이 19세기 소설책에서 빠져나온 유령처럼 무표정하게 룰렛 판을 응시하고 있다.
얼마나 도박을 했으면 유명 카지노에 흉상과 〈기념 홀〉까지 남기게 되었을까. 두 번째 부인의 회고를 들어 보자. 〈그는 창백한 얼굴에 간신히 몸을 가눌 정도로 녹초가 되어 도박장에서 돌아왔다. 그러고는 내게 돈을 달라고 애원했다. 다시 나갔다가 30분 만에 더욱더 낙망한 모습으로 돈을 가지러 돌아왔다. 이런 일은 우리가 가진 돈을 다 잃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룰렛을 하러 갈 돈이 바닥나고 어디서도 돈을 구할 수 없게 되자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비탄에 잠겨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비행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23장 비스바덴: 중독' 중에서/ pp.210~211)

결혼의 행복과 불행은 부부 모두의 책임이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의 경우, 연구자 거의 전원이 부인 안나에게 공로를 돌린다. 안나는 도스토옙스키 인생에서 가장 〈센 여성〉이었다. 나이도 성별도 교육도 다 초월하는 타고난 어떤 우직함으로, 그녀는 자기보다 나이가 25살이나 많은 천재 작가의 인생을 단박에 〈평정〉했다. 그녀는 그의 마지막 사랑이자 궁극의 사랑이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안나는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변화와 불행을 꿋꿋하게 견뎌 냈다. 대문호는 이 착하고 강인한 여성에게 언제나 〈충성〉을 다짐하며 행복하게 살다가 죽었다.
(……) 한 가지 에피소드만 예로 들어 보자. 결혼식을 치른 후 도스토옙스키는 첫 번째 결혼 때처럼 심한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하루에 두 번이나 그랬다. 너무 흥분한 데다 분위기에 휩쓸려 샴페인을 몇 잔 거푸 마신 것이 원인이었다. 안나 부인의 태도는 놀라웠다. 〈난생처음 간질 발작을 보았음에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나이 어린 신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대신 쓰러져 입에 거품을 물고 경련을 일으키는 늙은 남편을 끌어안았다. 더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25장 상트페테르부르크 : 인생 역전' 중에서/ pp.2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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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밀착된 시공간 덕분에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소설의 경계를 뚫고 나온다. 후대의 열혈 연구자들은 스톨랴르니 골목과 스레드냐야 메샨스카야 거리가 만나는 지점의 한 건물을 〈라스콜니코프의 집〉이라 지명했다. 도스토옙스키 〈순례자〉들이 반드시 들렀다 가는 곳이다. 건물 외벽에는 도스토옙스키의 부조가 붙어 있고, 표석에는 〈이 지역 거주민의 비극적인 운명은 도스토옙스키에게 공동선을 향한 열정적인 가르침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라는 상당히 거창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허구의 인물과 그의 하숙집이 버젓이 역사성을 획득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전당포 노파의 집도 특정했다. 라스콜니코프는 작은 방에서 나와 코쿠시킨 다리를 건너 〈730걸음〉을 걸어가 노파의 셋집에 도착한다. 〈한쪽 벽면은 시궁창을 향해, 다른 벽면은 거리를 향해 나 있는 아주 큰 건물〉의 현재 주소는 〈그리보예도프 제방길 104번지〉다. 호기심에서 2015년 어느 더운 여름날 〈라스콜니코프의 집〉에서부터 〈노파의 집〉까지 걸어가 보았다. 1천 걸음 넘게 걸어가도 건물이 안 나오기에 세는 것을 포기했다. 소설과는 달리 평일 오후의 제방길은 햇살만 뜨거울 뿐 한산하고 괴괴했다.
('28장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첫 문장' 중에서/ pp.153~155)

예술의 용도에 관한 그의 생각은 [백치]에서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무려 세상을 구원한다니, 이보다 더 큰 쓸모가 어디 있겠는가!
(……) [백치]와 [악령]이 쓰이고 1백 년이 흐른 뒤인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솔제니친은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되새기며 연설의 실타래를 풀어 갔다. 〈물론 아름다움은 고상하고 숭고한 것이다. 하지만 미가 언제, 누구를 구원했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에서 노벨상 수상 작가는 대문호의 의중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다. 정치 연설과 사회 강령, 그리고 철학 체계는 때로 진리가 아닌 것 위에 구축될 수 있다. 진리가 아닌 것들은 예술로 전환되는 시험을 견뎌 내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난다. 〈그러나 진리를 퍼내어 생생하고 압축된 형태로 우리에게 제시하는 작품들은 우리를 휘어잡아 강렬하게 끌어당긴다. 아무도, 절대로, 설령 수세기가 지난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반박하지 못한다.〉
예술은 직설적인 사상과 직설적인 도덕이 제 구실을 못할 때 진과 선의 역할까지 대신한다. 〈진과 선의 지나치게 분명하고 지나치게 올곧은 가지들이 부러지고 잘려 나가 자라지 못하게 된다)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하고 예기치 못한 미의 가지들이 살아남아 《바로 그곳》까지 쑥쑥 자라나서 세 그루 나무 모두의 작업을 완성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은 그냥 튀어나온 말이 아니라 예언이 될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문학과 예술은 정말로 오늘의 세상을 도와줄 수 있지 않겠는가.〉
('39장 드레스덴: 〈쓸모〉의 문제' 중에서/ pp.349~350)

그러나 영광과 더불어 죽음이 소리 없이 찾아왔다. 1881년 1월 26일 그는 각혈을 시작했다. 의사는 곧 나을 거라고 했지만 그는 신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인에게 유형 생활 이후 평생 동안 지니고 살았던 성경책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 펼쳐 보았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오 복음 3장 15절)
그는 이 대목이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시종일관 침착하게 지상에서의 삶을 마무리했다. 사제를 청해 종부 성사를 받았고, 아이들에게 축복을 해주었고, 상냥하고 부드럽게 부인을 위로해 주었다. 〈언제나 뜨겁게 사랑했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에 감사한다〉는 것이 오열하는 부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1881년 1월 28일 저녁 8시 30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가족의 품에서 고통 없이 평화롭게 세상을 하직했다.
('43장 스타라야 루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 명성의 절정' 중에서/ p.385)

사실 여행은 완결보다 시작에 더 가깝다. 여행이란 어떻게 보면 탄생이다. 모든 여행은 어느 정도 지도 위의 여행이자 내면 여행이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여행도 그랬다. 그는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달라졌다. 매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을 읽었다. 시베리아에서, 유럽에서, 광야의 수도원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삶도, 문학도 다시 태어남의 끝없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도스토옙스키 기행에서 돌아온 나도 조금은 달라졌기를 소망하며 여행기를 마무리 짓겠다. 도스토옙스키의 말이 생각난다. 〈영원한 추구, 우리는 이것을 인생이라 부른다.〉
('맺음말' 중에서/ pp.423~424)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9.03.24~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슬라브어문과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도스토옙스키 강의를 해왔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한국슬라브학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인간 만세: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읽기], [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우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도스토옙스키의 [분신],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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