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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뒤에 기대면 어두워진다 : 위선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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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물의 노래, 나무의 노래
    - 위선환 시집 [나무 뒤에 기대면 외로워진다] 편집 후기


    1
    “장흥 간다”는 문장과 “탐진강 간다”는 문장, 두 문장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으라면 좀 뜬금없겠다.
    “물은 흐르며 비우고 흘러서 채운다”는 문장과 “나무는 뻗어 별에 닿고 뿌리는 내려 지구의 중심에 닿았다”는 문장, 두 문장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으라면 이번에도 또 뜬금없겠다.
    처음 두 문장의 공통점은 내게 위선환이라는 시인이 되겠다.
    나중 두 문장의 공통점은 내게 위선환 시인의 시(집)이 되겠다.

    20여 년 전 처음 위선환 시인을 만났다. 등단 30년 만에 시라는 세상으로 다시 발을 디뎠다 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첫 시집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를 내셨다. 그때 선생께서는 자신의 언어가 아직 태부족하다 하셨다. 그리고 다시 얼마 후 두 번째 시집 [눈 덮힌 하늘에서 넘어지다]를 지으셨다. 그때 선생께서는 아직 갈 길이 참 멀다고 하셨다.
    그 무렵 선생과의 소식이 끊겼다. 나는 생업에 쫓겼고, 선생께서는 언어에 더 몰두했던 탓이 아닐까 나 혼자 그리 생각하기도 한다.

    2
    십여 년 만에 선생께서 연락을 주셨다. 이런저런 사정은 굳이 밝히지 않겠지만, 선생의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을 하나로 묶어서 한 시집으로 다시 내었으면 좋겠는데, 박 시인이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고소원(固所願)이나 불감청(不敢請)이라 했던가. 내가 그랬다. 언젠가 선생의 시집을 내고 싶었는데, 차마 말씀을 드리지 못했던 차에 선생께서 직접 연락을 주셨다. 책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아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이 있다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암튼 그렇게 해서, 이번에 달아실시선으로 선생의 시집을 묶게 되었다.

    3
    이번 시집은 당연히 신작 시집은 아니다. 선생의 첫 번째 시집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과 두 번째 시집 [눈 덮힌 하늘에서 넘어지다]의 합본 시집이다.
    이 두 시집 이후 선생께서는 최근에 낸 시집 [시작하는 빛]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더 지으셨지만, 앞으로 더 몇 권의 시집을 지으실 테지만, 이번 시집이 갖는 의미는 무엇보다 위선환 시인께서 걷고 있는 언어의 먼 길을 따라가기 위한 그 시작점이란 점이다.
    특정 지을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서정시 중에서 오직 ‘위선환의 서정’과 ‘위선환의 서정시’를 만들어내고 있는 위선환 시인. 그의 첫 발자국이 그려낸 서정을 일러 김형중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제기랄, 말을 다루어 업으로 삼는 이치고 제 말보다 더한 말을 보고 질투하지 않을 이 몇 없을 터이니, 나는 부르르 오금이 저렸다. 우주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초라한 추구와 경외를 이슬을 향해 턱 밑에 바친 손바닥 두 개로 이처럼 아름답게 묘파해 놓았으니 내 말이 그의 말을 당할 재간은 없어보였다. 이럴 땐 고개를 숙이는 게 상책이다.
    몇 십 년을 숨어 지내던 천재가 이제 시집을 냈는데, 그 시집 또한 우레와 같으니, 장담컨대 당분간 문단이 좀 떠들썩하겠다. 지금 누리고 있는 저잣거리의 명성과, 내놓은 시집의 권 수, 혹은 인연의 색안경으로 시를 보지 않는 이들이 아직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더 보태겠는가. 그저 독자들께 맡길 따름이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해안선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사람들
    그늘에
    눈짓
    이슬
    정적
    날개
    골짜기
    등허리
    그림자를 밟다
    조막손
    거미
    서풍부西風賦
    전조前兆
    우수절
    빈 가지를
    먼지바람 같은
    추락
    볕쬐기
    모를 일이다
    웅덩이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갔는가
    그 겨울의 거처
    겨울비
    들샘
    세한도
    해빙기
    별무덤
    사온일四溫日
    사과나무밭
    풀꽃
    제비꽃
    들찔레
    저물녘에
    뼈가 따뜻하다
    단풍
    도깨비바늘
    눈을 기다린다
    달빛 1
    달빛 2
    달빛 3
    긴 강으로 흐르는
    가을
    장날
    날마다 날씨는 좋고
    물독 바닥에다 맷돌로 눌러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하늘 가운데에 떠 있듯
    이미 반쯤은 먼지가 되어서
    바닷놀
    오체투지五體投地
    별로 건너다
    만척간두萬尺竿頭
    보았는가
    눈썹바위에서 노을을 보다
    비 갠 뒤
    썰물
    다도해
    서해는 만조다
    북한산 소묘
    청신암 일지
    덕유산 설화
    눈이 내리면

    2부.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

    새소리
    자벌레 구멍
    먹골배
    빈 새
    뻗침에 대하여
    이명耳鳴
    새의 비상
    댕기
    고삐
    공동空洞
    일모日暮
    솔방울
    가지치기
    미루나무
    교외에서
    반쪽이 비어 있다
    돌밭
    하늘 건너기
    어둠
    하늘빛이 되는
    전경 1
    전경 2

    파랑나비
    나무 뒤에 기대면 어두워진다
    동행
    임곡역林谷驛
    길목
    새의 묘지
    대설大雪
    재채기소리
    연비燃臂
    천관산 오르는 길에는
    공중에
    눈초리
    이슬방울
    구멍
    풀밭에
    그림자뿐인
    가을날
    귀향
    그리움
    소금쟁이
    눈 오는 날
    하루살이
    그늘빛
    점멸
    숙업宿業
    알을 슬다
    굴뚝새
    통증
    삼동
    나뭇가지길
    정상론
    적막
    툇마루
    바람 속에서
    남한강
    지리산
    상수리나무에 기대다
    둥지
    겨울잠

    해설
    적막, 혹은 무한의 깊이 / 오형엽

    본문중에서

    첫 시집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와
    둘째 시집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의
    합본合本이다.

    두 시집에 실었던 「탐진강」 연작시 17편은
    따로 발간한 시집 [탐진강]에 모았으므로 뺐고,
    더하여 교정하고, 몇 편의 시를 지우는 등
    개정했다.

    시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시사랑’을
    사랑한다.

    2019년 2월 1일
    위선환
    (/ '시인의 말' 중에서)

    위선환은 오랜 기간 시를 떠나 있다가 2001년 첫 시집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로 독자들을 놀라게 하며 시의 마을로 귀향하였다. 도시의 어느 한 모서리에서 은둔하며 배회하고 있었을 그의 시정신은, 오랜 세월의 강물을 훌쩍 건너 뛰어 우리에게 선연한 자연의 순결을 가져다주었다. 이 순연한 자연의 원형적 모습에는 기나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누적된 고독과 아픔이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고, 그 고독과 아픔을 견디며 그 무엇을 기다리는 인고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 위선환의 시에서 오랜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주름으로 남은 고독과 아픔은 무엇이고, 그 닳음과 무너짐의 와중에서도 변함없이 견지되어 온 시정신의 지향은 무엇일까?

    (중략)

    뻗친 것이라 한다
    나무가 뻗쳐서 가지가, 이파리가 되고
    사람이 뻗쳐서 그리움이 된다 한다
    어떤 사람은 뻗쳐서 나무에, 하늘에 닿는가
    어떻게
    사람과 나무가 한 몸이 되어 하늘로 뻗치고
    하늘이 되고
    온 하늘에 뻗친 가지가 되고
    하늘의 가지에다 온갖 별자리를 매다는가
    어떤 그리움이 뻗쳐서
    그리 많은 별빛을 켜는가
    하늘은 어떻게 길을 내주고
    한 사람은 공중에서 길을 비치며
    별빛을 데리고
    지상으로 내려오는가
    (/ '뻗침에 대하여' 중에서)

    ‘나무’의 뻗침은 가지와 이파리를 통해 ‘하늘’에 닿으려 하고, ‘사람’의 뻗침은 그리움이 되어 ‘하늘’에 닿으려 한다. 그러므로 ‘나무’와 ‘사람’은 동격이다. “사람과 나무가 한 몸이 되어 하늘로 뻗치고 / 하늘이 되고”에는 위선환 시의 중심 구도를 이루는 ‘나무’와 ‘하늘’의 수직적 관계망과 그 지향성이 선명히 제시되어 있다. 드높은 하늘을 향해 시종일관 추구되는 그리움과 염원은, 위선환의 시를 우리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서정성의 원형을 간직한 작품으로 기억되게 한다. 그리움이 뻗쳐서 하늘에 많은 별빛들을 켜는 모습은, 위선환 시인이 견지하고 있는 서정의 세계가 얼마나 맑고 깨끗한가를 잘 보여준다.

    (중략)

    위선환 시에서 ‘물’은 시적 자아와 동격인 ‘나무’나 ‘새’를 적시며 메마른 살과 뼈의 폐허를 위로하는 이미지로 등장한다. ‘물’의 근원은 지상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하늘이 내리는 은총이기도 할 것이다. 인용 시에서 구름 속에 든 새가 젖어서 햇살보다 푸르게 초록 이파리에 내리고 맺혀서 한 방울 이슬이 되는 장면은 이를 선명히 보여준다. 이 장면을 비유하는 대목 “잔가지에 내려앉은 박새가 /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잘게 떨다가 / 초록 이파리 한 잎으로 갓 피어났듯이”는 서정시인으로서 위선환의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문장이 전달하고 있는 섬세한 떨림과 여운은 그 자체가 바로 제목인 ‘새소리’의 청각적 울림이기 때문이다.

    (중략)

    나무가 맨몸으로 잎을 벗는 일이나, 벌레들이 흙속에서 숨을 묻는 일이나, 사람이 오래 걷고 야위는 일들은 모두 자기를 비워서 하늘에 닿는 길을 여는 것이다. 하늘에 닿아서 깊어지며 푸르러져서 마침내 하늘빛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위선환 시에 나타난 ‘허물어짐’과 ‘묻힘’과 ‘잠김’은 그 ‘깊어짐’이라는 적막의 깊이를 통해 무한의 높이로 상승하려는 시도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눈, 비, 강, 바다, 이슬 등의 ‘물’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추위’와 ‘아픔’은 그 ‘젖음’을 통해서만 깊어지고 푸르러져서 하늘의 높이에 닿을 수 있는 매개체가 됨을 알게 된다. 결국 위선환 시의 중요한 자세를 이루는 ‘기다림’과 ‘견딤’, ‘건너감’과 ‘넘어짐’은 자기를 다 헐고 비워내는 적막의 깊이를 통해 무한의 높이에 이르는 길을 열고 있다. 이 지점에서 위선환 시의 적막은 무한의 깊이와 하나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 오형엽 - 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의 해설 '적막, 혹은 무한의 깊이'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1 - ?
    출생지 전남 장흥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시인 위선환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으며, 1960년에 서정주, 박두진이 선(選)한 용아문학상을 받으면서 시인이 되었다. 1970년 이후 30년간 시를 끊었고, 1999년부터 다시 시를 쓰면서,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2001, 현대시),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2003, 현대시), [새떼를 베끼다](2007, 문학과지성사), [두근거리다](2010, 문학과지성사), [탐진강](2013, 문예중앙), [수평을 가리키다](2014, 문학과지성사), [시작하는 빛](2019, 문학과지성사) 등 시집을 냈다. 현대시작품상, 현대시학작품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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