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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고 아픈 밤 : 죽음을 미루며 아픈 몸을 생각하다

원제 : Mes mille et une nuits: la maladie comme drame et comme come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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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어둠을 직시하는 용기, 철학자의 투병 일기
흔히 병은 극복해야 할 도전 또는 일단 넘어서면 내면을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는 경험이라고들 한다. 저자는 직접 암을 겪으면서 이러한 ‘고통효용론’과 ‘회복탄력성’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고통에서 발견할 미덕은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질병 그리고 아픈 몸과 함께 살다가 종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마지막 과정을 냉철하고 관조적으로 성찰하여 병과 죽음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 준다. 질병과 싸우는 환자의 일상과 사회적 위상을 예리하고 유머러스하게 서술하여 형이상학적 장식이 제거된 병과 죽음의 철학을 제시한다.

출판사 서평

철학자, 아프고 나서야 병과 죽음을 생각하다
신간 [나의 길고 아픈 밤―죽음을 미루며 아픈 몸을 생각하다](원제는 ‘천일야화, 비극이자 희극인 질병’)는 프랑스의 철학자 뤼방 오지앙이 췌장암과 투병하면서 쓴 철학 에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는 이 책이 출간되고 몇 개월 후에 세상을 떠나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에세이로 남았다. 독특하게도, 이 책은 병과 싸워 이긴 이의 투병 기록이 아닌 것이다. 그는 이 싸움에서 ‘패배’할 것을 예감한 것과 무관하게, 병을 둘러싼 기존의 불필요한 형이상학적 의미들을 비판적으로 해체하고 현대 사회에서 환자가 처한 사회적 위상을 성찰한다. 이러한 저자의 시도는 역설적으로 그가 지난한 투병 생활을 견딜 수 있는 일종의 ‘생존술’로 기능한다.
저자의 관조적이고 냉철한 관점 덕분에 환자가 보통 드러내기 마련인 자기 연민이나 현실 부정, 과도한 감상은 이 책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저자는 자신의 병명을 진단받은 이후 곧바로 병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또한 환자로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현대 의료 메커니즘에서 적응하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병에 대해 신화화된 관념들을 제거하여 고통을 미화하고 낭만화하는 관점을 버리고 의료 관련자와 간병인, 자신의 주변인 사이의 존재인 ‘환자’의 입장에서 죽음을 최대한 유예하는 것이다. 이 용감한 철학자의 태도를 모두가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렵겠지만, 병과 그로 인한 아픈 몸과 함께 살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대체로 겪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이 책은 병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줄 것이다.

고통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다

저자는 병이 주는 고통을 둘러싼 전통적인 관념들의 핵심을 ‘고통효용론’과 ‘회복탄력성’으로 요약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고통효용론은 신체 또는 정신의 병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개념으로, 질병이 인간을 더 풍요롭게 하는 일종의 도전이며 이러한 시련은 건강한 이는 결코 알지 못할 인식, 도덕, 실용 차원의 특혜를 준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보기에 이 개념은 절대자를 전제하는 무책임한 궤변(‘창조주가 우리를 위해 마련한 시련이다’)일 뿐만 아니라 환자에 대한 가혹 행위(진통제 처방을 최소화하는 등)를 긍정하게 될 우려가 있으며, 환자 본인의 도덕성이나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고통을 아는 자만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에도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긍정심리학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 가운데 하나인 회복탄력성 역시 고통과 불행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여 환자로 하여금 죄의식에 시달리게 만들고, 더 나아가 절망적인 싸움을 해 나가는 환자에 대한 사회적 가혹 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저자는 질병을 마주하면서 필연적으로 처하는 형이상학적 의문들(병이란 무엇인가, 왜 하필 지금 나인가, 아픈 나는 그 전의 나와 어떻게 다른가 등)에 대해 이러한 관념들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밖에도 임상의학에서 통설로 받아들이는 애도의 5단계 이론(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 역시 실제로 환자가 느끼는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역학을 간과함으로써 환자의 ‘정상성’을 규격화하는 기준(저자의 표현으로는 ‘의료 부권주의’)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불필요한 관념들을 소거해 나가면, 통념들과 달리 고통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병에는 어떠한 정당화나 찬사도 필요하지 않다. 즉 저자가 니체의 말을 패러디해 말했듯,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죽어 가는 이의 생존술, 아픈 몸과 함께 살며 죽음을 유예하다
저자는 현대 의료 체계에서 환자가 처한 위상에 주목한다. 현대 사회에서 환자는 ‘사회적 폐기물’이나 다름없는 입장에 처해 있다. 완치 가능성이 희박한 질환을 안고 있는 환자가 국가의 재정과 의료진의 수고가 투여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절한 환자의 이미지를 연출해야 하는데, 사회적 정상성의 범위 안에서 살아왔으며 의료진의 권고를 성실히 이행하여 다시 사회로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병 환자가 의료진과 주위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연출에 쏟아붓는 노력에서 저자는 [천일야화]의 모티프를 떠올린다. 죽음을 끝없이 미루기 위해 매일 밤 이야기를 지어내고 결말을 다음 날로 미루는 셰에라자드처럼 소비자이자 전문가, 그와 동시에 부적응자, ‘사회적 폐기물’인 환자라는 존재는 자신을 둘러싼 관계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죽음을 끝없이 미루어야 하는 것이다. 냉철한 지성과 비판 정신, 유머러스함으로써 병과 죽음이라는 어둠과 맞서 싸운 이 철학자는 비록 패배했지만, 우리는 그의 투병 기록인 이 책에서 병과 고통, 삶과 인간 조건을 마지막까지 성찰한 용기 있는 한 인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목차

1. 고통효용론의 시체가 아직도 꿈틀댄다 7
2. 형이상학을 끌어들이지 않고 질병을 사유하다 11
3. 철학자도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건강 문제로 고민한다 17
4. 사회 폐기물로서의 병자 25
5. 나의 천일야화 30
6.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38
7. ‘회복탄력성’이 왜 필요한가? 43
8. 환자들의 왕국을 방문하다 48
9. 공포를 퍼뜨리는 단어 63
10. 애도의 5단계, ‘뉴에이지적’ 환상 71
11. 두 번째 의견의 철학 84
12.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87
13. 환자들은 건강한 사람들보다 지적,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92
14. 비극이자 희극인 질병 103
15. 만성 질환이 의료 이상(理想)에 끼치는 영향 118
16. 통증의 역사 137
17. 행복은 CEA 수치에 있다 149
18. 영구 화학 요법 173
19.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닌 고통 182
20. 병은 디테일에 숨어 있다 187
21. 만성은 시간 잡아먹기다 194
22. 질병 정책 198
23. “우리의 육체에게 동정을 구하는 건 낙지 앞에서 설교하기다.” 202

감사의 글 207
주 210
참고 문헌 232

본문중에서

진료를 받는 동안 ‘장기’ 환자, 다시 말해 현 조건에서 ‘완치’ 가능성은 없을 듯한 질환을 안고 사는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내가 너무나 무력하고 취약하다는 느낌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내가 나랏돈과 의료진의 노고가 깃든 치료를 받을 자격 없는 ‘쓰레기’로 보이고 싶지 않다면 ‘내보여야만’ 하는 나의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몸이 쇠약해지는 와중에도 꿋꿋이 버티는 사람, 의사들의 권고를 진심으로 따르길 원하는 사람, 지적으로 항상 믿을 만하고 여전히 사회에 ‘쓸모’가 있을 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 나는 다음번 ‘검사’ 때에는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은 구두를 신어야겠다, 코나 귀에 삐죽 튀어나온 털을 정리하고 와야겠다, 알 아라비아타 토마토소스가 묻은 바지는 입지 말아야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곤 했다.
(4. '사회 폐기물로서의 병자' 중에서 / p.28)

나는 중병 환자가 의료진과 주위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연출에 쏟아붓는 노력에서 [천일야화]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고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페르시아 왕 샤리아르의 사악한 계획을 저지하려는 셰에라자드처럼 매일매일 무모한 술책을 새로 지어내야만 하는 것 같다고.… 셰에라자드는 매일 저녁 재미난 이야기로 왕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로 이야기의 결말을 밝히지 않는다. 그래야만 왕이 적어도 이야기의 끝을 들을 때까지는 그녀를 살려 두고 싶어질 테니까.… 셰에라자드처럼 의료진들과 척지는 일 없이 유예를 끌고 나가기, 내가 내 병의 성격을 제대로 아는 거라면 이것이 앞으로 내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이다.
(5. 나의 천일야화' 중에서 / pp.34~35)

회복탄력성은 ‘긍정’심리학을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심리학은 볼테르가 조롱했던 라이프니츠의 사상과도 비슷하게, 아둔하리만치 낙관적인 면이 있다. 지난한 실패와 고초로 점철된 삶을 위태위태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눈에는 그런 면이 같잖아 보일 법하다.
긍정심리학은 사유의 패배주의자들에게 죄의식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절망을 극복할 힘이나 의욕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유죄다.
우리의 실존적 질문들에 고통효용론이 주는 대답들이 그렇듯, ‘긍정’심리학은 피폐한 삶을 사는 환자들에게 여전히 자행되는 사회적 가혹 행위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더없이 고약한 질병들을 긍정적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는 이 심리학을 참기가 힘들다. 질병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며 우리 자신과 인간 조건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는 ‘도전 과제’라느니, 질병이 우리의 진가(우리의 ‘용기,’ 우리의 ‘회복탄력성’ 등)를 드러낼 수도 있는 중요한 시험이라느니 하는 개수작 말이다.
(‘회복탄력성’이 왜 필요한가?' 중에서 / pp.46~47)

환자는 “그가 영위하던 활동을 박탈당하면서부터 질병을 ‘파괴적인’ 것으로 경험한다. 여기에는 타자들과의 관계 파괴, 다양한 기존 역할과 능력의 상실이 수반된다. 그는 사회적 편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자기 정체성을 회복할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안간힘을 다해 그 같은 상황과 맞서 싸우고, 필요하다면 병의 존재마저 부정할 것이다. 반면, 자신의 개인성을 억누르던 사회적 역할을 회피할 가능성이 질병으로 인해 생긴다면 질병을 오히려 ‘해방’처럼 여길 수도 있다. 이런 의미일 때 질병은 파멸의 연속을 나타내기는커녕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 준다. 사회적 차원에는 존재하지 않는 삶의 의미 말이다. 병은 어떤 계시의 가능성, 나아가 자기 초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중증 질환을 경험한 일부 사람들에게는 병이 일종의 ‘직업’이다. 이들의 경우에는 병이 자기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병마와 싸움으로써 자기 역할을 인정받고 사회적 정체성을 보존한다. 투병은 그들의 삶에서 핵심 요소, 어엿한 직업 활동, 조금 특수하긴 하지만 확고한 사회적 편입 기반에 상응한다.”
그렇지만 부자든 빈자든 건강과 질병에 대한 생각에는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보는 편이 현실에 더 가깝지 싶다. 어쨌거나 부자와 빈자가 완전히 분리된 사회적 풍토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그들이 어떤 기준, ‘가치,’ 실존적 불안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터무니없다.
(10. '애도의 5단계, ‘뉴에이지적’ 환상' 중에서 / pp.75~76)

고통효용론은 인간의 ‘본성,’ ‘본질,’ ‘조건,’ ‘운명,’ ‘근원적 불완전성,’ 그 밖에도 얼핏 그럴싸하게 들리는 별의별 일반성을 이유로 들어 인간이 필연적으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친다.
고통효용론은 이 주장을 근거로 가장 약한 자, 가장 의존적인 자, 가장 빈곤한 자, 가장 심각한 병을 앓거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자를 숙명론으로 인도한다. 다시 말해, 사회 안에서 빚어진 가혹한 운명조차도 그 사람 팔자려니, 그가 바랄 수 있는 최상의 몫이려니 믿고 살아가라는 얘기다!
고통효용론에 따르면, 질병과 그에 따르는 고통에서 ‘인식론적 장점’과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우수성’이 나올 수 있다.
고통효용론이 질병에 주목하면서 바닥에 깔고 들어가는 이 주장이 내가 보기에는 하등 근거가 없다.… 고통을 겪어 보았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인종주의, 여성 혐오, 혹은 그 밖의 모든 불쾌한 편견들을 품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고통이나 현재의 고통이 반드시 인식론적 장점이나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우수성을 안겨 주지는 않는다.
(13. '환자들은 건강한 사람들보다 지적,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중에서 / pp.98~99, p.101)

질병을 ‘일탈’의 한 형태로 취급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놀랍다. 일탈은 그 정의상 일반적인 규범에서 벗어남을 뜻하므로 그런 경우가 수적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질병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조건 아닌가. 더욱이 작금의 고령화 사회에서 만성 질환은 그 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대다수가 겪을 수 있는 부침을 ‘일탈’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병을 앓는 것보다 언제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일탈’이라고 부르기에 더 적합하지 않을까!
(15. '만성 질환이 의료 이상에 끼치는 영향' 중에서 / p.127)

‘만성 질환’, 다시 말해 3~6개월이 지나도 낫지 않는 병이 사실상 어떤 의미인가를 내 체험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의학은 현 상태에서도 이미 광대한 지식의 보고이지만 나에게 삶을 연장해 주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내가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통계적으로 예측되는 사망 시기를 뒤로 미루어 주는
것이 현 의학의 최선이다.
비록 비공식적이지만 점점 공식적인 성격을 더해 가는 의료 지침이 있다. 환자의 남은 삶을 ‘양적으로’ 최대화하기 위해 지식, 치료, 금전을 투입할 때에는 반드시 삶의 일정한 ‘질’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지침이 그것이다.
하지만 ‘삶의 질’이라는 개념에 뚜렷한 내용을 부여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이 비공식적인 지침은 원칙상의 이유에서 반박에 부딪힐 수 있다.
(18. '영구 화학 요법' 중에서 / p.175)

환자의 연약함이라는 새로운 윤리가 발달했다. 이 윤리는 환자의 타인들에 대한 의존 상태, 신체적 쇠약, 병에 걸렸을 때 더욱 악화되는 자연스러운 정서적 인지적 한계를 강조한다.
새로운 윤리는 환자의 자율성이라는 원칙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듯 보인다. 이로써 자율성의 도덕적 가치와 실제 가능성이 근본적으로 재고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윤리 개념에 회의적이다. 새로운 고통효용론이 이런 식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윤리는 고통, 연약함, 의존성에 ‘인간 조건’의 구성 요소라는 위상을 부여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기 결정이라는 이상들을 환상 수준으로 깎아내린다.
그뿐 아니라, 의료나 의학적 연구 결과에 대한 접근의 불평등, 다시 말해 건강과 관련한 ‘사회 정의’의 문제는 현재 의학철학의 중심 과제가 되고 있다.
(22. '질병 정책' 중에서 / p.200)

거창한 실존적 정당화 없이 신체적 고통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은 폭력적인 추락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묘사는 이 인정사정없는 추락을 더없이 강렬하게 환기한다.

병들고 나서 비로소 우리는 우리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 연결되어 산다는 것을 깨닫게 마련이다. 우리 사이를 심연으로 떼어 놓는 존재, 우리를 모르고 우리를 이해시킬 수도 없는 존재, 그것은 우리의 육체다. 길에서 아무리 무서운 강도를 만나더라도 우리의 불운에 동정하게 만들 수는 없을망정, 강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타일러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에게 동정을 구함은 낙지 앞에서 설교하기다. 낙지에게 우리의 말이 물소리만큼의 뜻이 있을까. 우리가 이 낙지 같은 육체와 평생을 함께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칠 것이다.

우리는 이 놀라운 일련의 은유들을 일종의 철학적 입장 취하기로 이해할 수 있다. 독창적이고 심원한, 육체와 정신의 이원론의 한 형태를 지지하는 ‘모럴리스트적인’ 입장이라고 할까.
육체는 단지 정신과 구분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육체와 정신은 서로 분리된 두 실체로서 그 속성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을 철학적 테제(육체와 정신의 ‘모럴리스트’ 이원론)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육체적 고통이 아무 의미 없는 날것 그대로의 사태라는 직관이 시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본다. 육체적 고통은 원인을 따져 설명할 수 있을 뿐, 이유를 들어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라는 직관 말이다.
(23. “우리의 육체에게 동정을 구하는 건 낙지 앞에서 설교하기다.' 중에서 / pp.205~206)

저자소개

뤼방 오지앙(Ruwen Ogie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2종
판매수 83권

프랑스 현대 철학자. 유럽 최고의 연구기관인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연구 국장이자, CNRS의 자매 연구기관인 파리 5대학 감성·윤리·사회 연구소(CERSES)의 일원이다. 브뤼셀과 텔아비브, 파리, 케임브리지 대학, 컬럼비아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철학 박사학위와 사회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철학에서는 분석철학과 도덕철학을 주요 연구 분야로 삼고 있으며, 사회 인류학 분야에서는 가난과 이민에 관한 방대한 양의 글들을 집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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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랭스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마르타 아르헤리치』, 『니체와 음악』, 『외로움의 철학』, 『반 고흐 효과』, 『앵그르의 예술한담』, 『피카소의 맛있는 식탁』, 『내 친구 쇼팽』, 『수학자의 낙원』, [돌아온 꼬마 니콜라] 시리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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