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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큐어 하는 남자 : 강남순의 철학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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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강남순
  • 출판사 : 한길사
  • 발행 : 2018년 11월 30일
  • 쪽수 : 31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35668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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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만약 학교, 지하철, 길거리에서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남자와 마주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마도 자연스럽게 그 남자를 성소수자로 여기지 않을까? 그것은 올바른 생각일까?’ 이 책의 제목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단순히 성소수자만을 대변하는 책은 아니다. ‘매니큐어 하는 남자’는 억압적인 엄숙주의와 위계주의를 매니큐어라는 작은 몸짓으로 무효화시키고, 폭력적 젠더 고정관념을 자연스럽게 뒤집는 행위의 상징이다.
저자 강남순은 촛불혁명 이후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미래는 젠더ㆍ나이ㆍ성적 지향ㆍ장애ㆍ빈부ㆍ종교ㆍ인종 등 다양한 차별과 배제를 넘어 ‘모든’ 인간의 자유ㆍ평등ㆍ정의가 실현되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한다. 인류 역사에서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새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한 이들은 언제나 ‘소수’였으며 우리 안에는 세속적 이득을 넘어 인간됨을 지켜낸 ‘저항자’들이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자 강남순이 품은 ‘희망’이다.

출판사 서평

‘모든’ 인간의 자유ㆍ평등ㆍ정의를 위해 사유하고 실천하는 철학자 강남순
강남순 교수는 “페미니즘의 출발 지점은 ‘여성’이라는 젠더 문제지만 도착 지점은 젠더만이 아니라 인종ㆍ계층ㆍ장애ㆍ성적 지향 등 다양한 근거로 차별받으며 제2등 인간으로 살아가는 주변인과 소수자들이 온전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라고 말한다.
현재 강남순 교수는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재직 중이다. 학생 1만여 명과 교직원 2,000명은 미국사회의 주류에 속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여성ㆍ유색인종ㆍ성소수자ㆍ이슬람교도ㆍ이주민 등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학기 중에는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방학에는 한국에 들어와 강연으로 대중과 만난다. 쉴 틈 없이 바쁘지만 더 넓은 세상에서 학문적으로 폭넓게 교류하고, 다양한 모습의 학생들과 자유롭게 토론하는 철학자 강남순이다.

좋은 삶(A Good Life)을 향한 철학적 사유
인간이 지닌 공통점은 누구나 한 번은 태어나고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자신이 ‘죽음을 지닌 존재’라고 인식하는 순간 ‘행복한 삶, 의미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각자 다르겠지만, 저자 강남순은 ‘나’의 행복에서 시작해 타자와 ‘함께-살아감’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결국 우리를 ‘좋은 삶’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은 ‘좋은 삶’을 향한 강남순 교수의 철학적 사유를 생생하게 담은 에세이로, 그동안 SNS와 여러 매체의 칼럼을 통해 대중과 소통한 내용을 구성한 것이다. 강의실, 아침 산책길, 한국의 지하철, 세계 곳곳을 향하는 비행기 등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은 물론 우리를 둘러싼 사건과 사고가 모두 사유의 대상이 되었다. 책의 순서에 따라 ‘나’라는 하나의 세계(World)를 완성하고, 소외당한 사람들과 진정으로 연대하고,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을 꾸었다면 그것으로 독자들의 ‘좋은 삶’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하기
제1장 ‘낮꿈꾸는 사람들’에서는 ‘보다 나은 세상을 희망하기’에 대해 말한다. 독일의 철학자 블로흐(Ernst Bloch, 1885-1977)는 그의 저서 [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에서 새로운 세계를 향한 인간의 꿈을 ‘낮꿈’(Daydream)이라고 명명했다. ‘밤꿈’은 우리의 의지나 계획과 상관없이 구성되어 통제 너머에 있지만 낮꿈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미래를 보고자 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과 방향이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낮꿈을 꾼다는 것은 사유하고 희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 있음의 엄숙한 과제는 값싼 희망이나 성급한 절망이 아니다. 한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가 해야 하는 일은 거창한 희망도, 암흑 같은 절망도 아니다. 단지 이 땅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서, 자기만큼의 ‘한 걸음’을 떼는 일일 뿐이다.” -「한 번에 한 걸음씩의 삶」, 35쪽.

저자 강남순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인간은 ‘낮꿈을 꾸는 존재’라는 것이며, 역사에서 새로운 변화는 ‘낮꿈꾸는 이들’이 있어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환경ㆍ경제ㆍ인권ㆍ문명 간의 충돌 등 21세기 다양한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사랑ㆍ희망ㆍ자유ㆍ평등ㆍ정의ㆍ환대 등 인간이 인감됨을 지켜낼 수 있는 보편가치를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하기’다. ‘희망하기’는 자신과의 만남에서 시작해서 타자와의 연대를 통해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한 걸음을 떼는 일이다.

매니큐어 하는 남자는 누구인가
‘만약 학교, 지하철, 길거리에서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남자와 마주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마도 자연스럽게 그 남자를 성소수자로 여기지 않을까? 그것은 올바른 생각일까?’ 이 책의 제목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강남순 교수가 일하는 신학대학교 강의실에는 머리카락을 모두 자른 여학생, 몸 곳곳에 문신을 한 학생, 무신론자, 이슬람교도, 이성애자, 동성애자, 트렌스젠더 등 여러 가지 모습과 자기 정체성을 지닌 학생들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그들은 타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삶을 철저히 존중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매니큐어 하는 남자는 억압적인 엄숙주의와 위계주의를 매니큐어라는 작은 몸짓으로 무효화시키고, 폭력적 젠더 고정관념을 자연스럽게 뒤집는 행위의 상징”이다.

“한국사회가 지닌 심각한 ‘병’ 중 하나는 ‘획일화된 존재 방식의 절대화’다. 그 획일성의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갖가지 비난과 사회적 추방을 서슴지 않는 폭력이 자연스럽고 강력하게 작동된다. ‘획일화의 폭력성’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 개별인들의 다양한 존재 방식을 존중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매니큐어 하는 남자」, 149쪽

제2장과 제3장에서는 여성ㆍ어린아이ㆍ성소수자ㆍ장애인ㆍ난민ㆍ유색 인종ㆍ가난한 사람 등 사회의 ‘갓길’로 밀려난 약자의 인권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동정’과 ‘시혜’로 보장받아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의’ 구현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으며 이 부분에서 단호한 정치적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악은 비판적 사유의 부재를 통해 창출되고 지속된다“
제4장에서 저자 강남순은 신학자로서 기독교의 부패와 종교적 상품화에 대해 지적한다. ‘구원’을 담보로 권력의 중심에 선 대형교회 세습목사, 세월호 사건에도 신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남은 이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교회,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목회자를 이단이라고 박해하는 교단 등 신앙의 이름으로 물음표를 박탈하고 신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강요하는 종교를 내부자의 시선에서 날카롭게 비판한다.
강남순 교수는 실제로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고 한다. “신이 최초의 인간이라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을 때, 두 사람의 나이는 몇 살이었을까?” “그들의 피부색은 어땠을까?” “신은 그들과 어떤 언어로 소통했을까?” 성서에 대한 비판적 사유와 올바른 이해가 없다면 이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악’이란 악마적 품성을 지닌 특정 존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판적 사유의 부재’를 통해 창출되고 지속된다고 말한다. 또한 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정의ㆍ평등ㆍ평화를 위한 ‘사랑’이라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분명히 밝힌다.

촛불 혁명 이후의 민주주의
제5장에서는 우리 안의 작은 저항자들이 만들어내야 할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해 다룬다. 문제 많은 대통령을 파면시켰다고 해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제도화되는 민주주의가 자동으로 획득되는 것은 아니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포스트-탄핵의 한국이 당면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정의ㆍ평화ㆍ평등이 보다 확장되는 세계를 위한 새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한 이들은 언제나 ‘소수’였으며, 보이지 않고 보잘것없을 것 같은 작은 변화가 혁명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은 대부분 조금씩 이기적이고 계산적이지만 또 그런대로 괜찮은 존재다. 나는 여타의 ‘영웅적 서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변혁이나 저항 등의 역사적 사건을 가능하게 한 것은 굉장한 영웅이 아닌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 「우리 안의 ‘택시 운전사’」, 310~311쪽

우리 안에는 세속적 이득을 넘어 인간됨을 지켜낸 ‘저항자’들이 있다고 믿는 것.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좀더 따뜻하게 만들 것이라고 희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자 강남순의 ‘낮꿈’이다.

목차

프롤로그 좋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1. 낮꿈꾸는 사람들

상실의 시대, 그대는 어떤 낮꿈을 꾸는가
‘감히’ 불가능성의 낮꿈을 꾸는 사람들
살아 있는 죽은 자가 되지 않으려면
한 번에 한 걸음씩의 삶
‘아직 아닌 세계’에 대한 희망
21세기 변혁운동의 인식체계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가
탈일상성의 공간들
공부란 무엇인가
끝남, 새로운 시작의 창출
복 많이 받는 새해, 행복한 새해
새해 결심의 철학, 약속할 권리
육체의 죽음이 존재의 죽음은 아닐 때
우리는 걸어가는 사람

2. 페미니즘, 성숙한 민주사회를 위한 밑거름

페미니즘의 불편한 진실, 성숙한 민주사회를 향한 밑거름
미투운동과 페미니즘의 만남
미투운동과 미디어
미투운동, 사적 개인화를 넘어 사회적 변혁운동으로
유아인은 페미니스트인가
대통령의 배우자와 ‘의상의 정치학’
대통령 기자회견장, 은밀하고 강력한 젠더정치

3.함께 사는 세계를 향하여

매니큐어 하는 남자
일상화된 배제와 차별
획일성의 문화를 넘어서야
명절의 민주화를 위하여
트럼프-당선, 그 충격의 한가운데에서
아이도 인간이다
대통령의 존댓말
‘모든’ 인간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갓길에서 더욱 갓길로 밀려나는 존재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
강가에서 기타 치는 노숙인
당신은 ‘이성애 지지자’인가? 나는 ‘모든 인간 지지자’다
교수연구실에서의 특별한 결혼식
난민과 인류 공동체, 국민을 넘어 사람으로
지적 패배주의를 넘어서,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소수’들

4. 신의 이름으로

아담과 하와는 몇 살이었을까
종교, 그 ‘악의 평범성’
신의 이름으로 신을 배반하는 담론
부활 너머의 부활
‘메리 크리스마스’의 어두운 그림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성서와 함께 성서에 저항하라
한국의 크리스천이 ‘이단’이 되어야 하는 이유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5. 우리 안의 작은 저항자들

세월호 사건의 기억
우리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기억의 정치학
살려낼게, 민주주의
광화문은 시위의 극장이 아닌 사회정치적 혁명 공간
보수 또는 진보라는 개념의 한계
학회에 오는 아기들
스승도 인간이다
폭력의 다양한 얼굴들
영어 제국주의의 딜레마
상품화 시대의 비애를 넘어서
우리 안의 ‘갑을 멘탈리티’
들꽃 철학
살아남음은 애도의 또 다른 이름
우리 안의 ‘택시운전사’

본문중에서

살기 좋은 사회란 사회 구성원들 한 명 한 명이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사회다. 그런데 매우 상식적인 이 말이 현실세계에서는 참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어른이든 아이든, 여자든 남자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기혼이든 비혼이든,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사람은 각기 다른 존재의 향기를 지니고 살아간다. 어른이라고, 아이라고, 여자라고, 남자라고,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얼굴과 목소리가 다르듯, 개별인은 각기 다른 자신만의 존재 방식이 있다.
다양한 존재 방식을 그대로 인정하고 서로 포용하는 것은 삶을 보다 의미 있고 행복하게 만든다.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이슬람혐오, 장애혐오 등 다양한 얼굴의 혐오들은 각각의 존재 방식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가 있다면, 그것은 존재 방식의 획일성을 강요하는 폭력성을 넘어서 모든 개별인들이 서로를 온전한 존재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 p.7)

변혁적 낮꿈은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이 ‘상호연관된 존재’라는 인식으로 구성된다.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누군가가 배제되고 차별받는다면, 그 배제와 차별의 폐혜는 결국 나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에서 나온다. 나의 삶은 너의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살아감이란 결국 ‘함께-살아감’이기 때문이다.
(/ p.22)

학생이나 주변 사람들이 일을 시작할 때 내게 그 일이 실현 가능한지 불가능한지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 하면 해주는 말이 있다. 실현 가능성과 불가능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당신이 만들고 창출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실현 가능한지 아닌지를 묻기 전에, ‘왜’ 그것을 하고자 하며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 치열하게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열정이 포기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고 ‘선언’하라고 한다.
(/ p.26)

희망과 절망, 낙관과 비관은 서로 반대말이 아니다. 그 두 축은 나선형처럼 얽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존재와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희망이나 절망은 쉽사리 주어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살아 있음의 엄숙한 과제는 값싼 희망이나 성급한 절망이 아니다. 한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가 해야 하는 일은 거창한 희망도, 암흑 같은 절망도 아니다. 단지 이 땅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서, 자기만큼의 ‘한 걸음’을 떼는 일일 뿐이다.
(/ p.35)

여기서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페미니즘은 이제까지 많은 사람이 절대적 진리라고 여겼던 것에 ‘근원적 NO’를 제기하는 것이기에 ‘불편한 진실’이라는 점이다. ‘진실’이지만 그 진실을 대하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불편을 느끼고, 거부하고 싶은 생각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논의할 때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은 ‘우리-그들’ 또는 ‘옹호자-적대자’라는 상충적 대립의 축을 굳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다 나은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각기 지니고 있을 ‘인식론적 사각지대’를 어떻게 일깨우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 p.103)

나는 늘 ‘평범한’ 모습이던 이 학생이, 자신의 열 손가락 손톱에 매니큐어를 하고 왔다는 사실보다 그것에 대한 주변 반응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 누구도 매니큐어에 대해 별다른 질문이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열두 명이 둘러앉아 있는 세미나 형식의 수업이니, 그들의 ‘무반응’은 매니큐어 한 남학생의 손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p.147)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이유가 경제적이든 또는 여타의 다른 이유에서든 주장의 정당성은 찾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생명과 연관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교육권 학습권과 연결된 ‘인권’의 문제이며, ‘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 물어야 할 것은 ‘토론의 주제’에 관한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토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주제는 토론을 거친 투표를 통해 그 의미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가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이들을 위한 교육시설의 문제다. ‘모든’ 인간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 p.174)

지하철 화장실 입구 한 귀퉁이에 서서 허공을 향해 빈 물병을 계속 휘저으며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는 여자가 있었다. 허공을 향해 반복하는 그 몸짓이 너무나 절절해 보여서 길을 가던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 절실한 몸짓을 통해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어떤 갈망을 간절하게 품고서 허공을 향한 몸짓을 반복하는 걸까. 끝없이 오고 가는 지하철역의 인파는 아무도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몸은 ‘이곳’ here에 있지만 ‘저곳’ somewhere else에 존재하는 사람, 그래서 그녀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 ‘살아 있는 죽은 자’다.
(/ p.181)

나는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신이 최초의 인간이라는 아담과 하와를 신이 창조했을 때, 두 사람의 ‘나이’는 몇 살이었을까?” “갓난아기였다면 누가 그들에게 젖과 음식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키웠을까” “아기가 아니라 성인으로 창조되었다면 도대체 몇 살이었으며, 그들의 피부색은 어땠을까?” “신은 그들과 어떤 언어로 소통했을까?” 대부분의 학생은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아본다고 한다. 물론 누구도 이 질문에 ‘절대적 답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성서는 ‘사실적 묘사’를 담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 p.210)

대형교회의 세습은 종교가 ‘구원 클럽’의 의미로 전락하였음을 의미한다. ‘구원’을 담보로 권력의 중심에 선 종교지도자나 단체는 자신들의 이득과 권력 확장을 ‘신神 사랑’으로 옷 입힌다. 정치인들이 권력 확장의 욕구를 ‘나라 사랑’으로 가장하는 것과 같다. 이 점에서 종교와 정치는 이란성 쌍둥이 같다. 종교는 선-악, 구원-심판, ‘신 사랑’을 창출해내고 정치는 친구-적, 평화-위기, ‘나라 사랑’의 서사를 지속적으로 창출해내면서 다층적 권력의 유지와 확장을 끈질기게 모색한다.
(/ p.215)

초·중·고·대학생 사이에서도 한 학년만 높아도 저학년에게 ‘갑질’을 서슴지 않는다. 교수는 학생에게, 선배는 후배에게, 남자는 여자에게, 직책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에게, 부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비장애인은 장애인에게, 어른은 아이에게, 아파트 주민은 경비원에게 다양한 얼굴로 ‘갑질’을 한다.
(/ p.298)

우리 인간은 대부분 조금씩 이기적이고 계산적이지만 또 그런대로 괜찮은 존재다. 나는 여타의 ‘영웅적 서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변혁이나 저항 등의 역사적 사건들은 사실상 소수의 ‘영웅’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부족한 개인들이 ‘인간됨’의 모습을 지켜내면서, 아주 작은 귀퉁이에서 자신과 타자들에 대한 책임을 다할 때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택시운전사」에서 나는 그러한 ‘탈영웅적 저항’의 일면을 볼 수 있었다.
(/ p.310)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3종
판매수 1,202권

현재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Texas Christian University Brite Divinity School)의 교수이다. 미국 드루대학교(Drew University)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부에서 가르쳤다. 2006년부터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에서 자크 데리다 사상, 코즈모폴리터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페미니즘과 같은 현대 철학적·신학적 담론들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임마누엘 칸트,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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