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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기 안내서 + 멀고도 가까운 + 걷기의 인문학 3권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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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품의 분류

    책소개

    '맨스플레인'의 작가이자 2010년 [유튼리더]가 꼽은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 한국 독자들에게도 깊은 공감과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리베카 솔닛 에세이의 정수. '걷기'라는 가장 보편적인 행위의 철학적이고 창조적이며 혁명적인 가능성을 탐색하는 책이다. 솔닛은 역사, 철학, 정치, 문학, 예술비평 등 인문학의 전통적인 방법론을 유려하게 엮어내는 동시에, 개인적 경험까지 녹여냄으로써 그 탐색의 여정을 인문학적 에세이의 전범으로 완성해낸다.? 1부에서는 걷기를 사유의 방법으로 택한 철학자와 작가를 통해 걷기와 사유 또는 육체와 정신의 관계를, 순례로서의 걷기를 통해 걷기와 종교의 관계를 다룬다. 2부에서는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자연 속을 걷는 행위가 문화적 관습이자 취향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행 문학, 여행 문학, 보행 모임 등을 통해 살펴본다. 3부는 익명성과 다양성을 지닌 20세기 도시에서의 걷기를 다룬다. 공적 공간에의 진입 가능성이 곧 시민으로서의 공적 생활을 영위하는 문제와 연결된다는 점을 짚어내고, 젠더, 인종, 계급, 성적지향에 따른 제약을 분석하는 한편, 행진, 축제, 혁명과 같은 걷기의 정치적 의미를 탐구한다. 4부에서는 걷기가 축소되어가는 오늘날의 변화가 야기하는 위기가 무엇인지 탐구한다. [걷기의 인문학]은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인물, 정전(正傳), 사상, 사건 등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여 통합적으로 재구성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정신 vs 육체, 사적인 것 vs 공적인 것, 도시 vs 시골, 개인 vs 집단 같은 전통적인 철학적 모티프에 대해 솔닛 식으로 소화된, 소수자의 관점과 목소리를 배제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답안을 얻을 수 있다.

    [멀고도 가까운]은 리베카 솔닛의 신간이자 전미도서상 후보작, 전비비평가협회상 최종후보작으로 오른 주저이다. 이 책의 주요한 주제는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 병과 돌봄, 삶과 죽음, 어머니와 딸, 아이슬란드와 극지방이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프로이켄의 [북극 모험],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그리고 [백조 왕자] [룸펜슈틸츠헨] [눈의 여왕] 같은 구전 동화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활용해 솔닛은 주변의 여러 삶들을 바라보고 사유하고 마침내 이해한다.

    출판사 서평

    세계적 지성 리베카 솔닛이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온 경의와 연대의 편지

    지난해 한국인들이 부정한 정권에 맞서 뭉치는 모습은 감동적이고 경이로웠습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습니다. 공적 공간으로 걸어 나오는 비무장 시민들이 엄청난 힘이라는 것, 때로 자치의 힘이기도 하고 때로 압제 정권, 불량 정권을 막아내는 힘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 책의 주제 중 하나입니다. [......] 민주주의란 종종 일종의 경험입니다. 공적 공간에서 육체적으로 한데 모이는 경험, 눈으로 확인하는 경험,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경험,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걸어가는 경험입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힘의 경험입니다. 정의와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힘이 반세계화 운동에서 최근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펼쳐지는 나라에서 이 책이 출간된다는 사실을 저자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리베카 솔닛, [한국의 독자들에게]

    ‘맨스플레인’의 작가이자 2010년 [유튼리터]가 꼽은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인 리베카 솔닛. 솔닛의 글은 한국 독자들에게서도 깊은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다. 각각 2015년과 2016년 한국에서 출간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멀고도 가까운]은 다수의 매체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렸다. 리베카 솔닛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외에도, 이미 국내에 활동가로서의 면모가 부각된 [이 폐허를 응시하라], [어둠 속의 희망], 에세이스트로서의 면모가 부각된 [멀고도 가까운]등의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솔닛의 고유한 사유와 방법론의 출발점이자 종합판으로서 더 특별하다. 여러 작가들과 독자들이 오랫동안 이 책의 출간을 기다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리베카 솔닛이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온 경의와 공감과 연대의 편지(저자가 이례적으로 보내온 한국어판 서문)다. 지난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광장에서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성취를 인상 깊게 지켜본 솔닛은, 펴낸 지 2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흐른 [걷기의 인문학]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를 하나 더 발견했다고 전한다. 이 책의 주요 주제이기도 한 ‘공적 공간으로 걸어 나오는 비무장 시민들의 힘’이 그것이다.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힘의 경험’을 아름답고 명료한 언어로 되살린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저자는 한국의 시민들에게 다시금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깊은 사유와 매혹적인 글쓰기, 리베카 솔닛 에세이의 정수
    역사, 철학, 정치, 문학, 예술비평을 아우르는 인문학적 에세이의 전범


    리베카 솔닛의 책을 또 다른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두 종류로 나뉜다. 여러 편의 짧은 시의적 에세이들을 묶어서 낸 책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써내려간 에세이. 그리고 이 책은 후자 중에서도 가장 밀도 높게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한 책이다. 솔닛은 역사, 철학, 정치, 문학, 예술비평 등 인문학의 전통적인 방법론을 유려하게 엮어내는 한편, 개인적 경험을 녹여내 보다 풍부한 여정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 책을 텍스트 연구와 고증뿐 아니라, 두 다리로 직접 걸어 다니고 경험하며 써 내려갔다. 걷는 사람들과 그 모임, 걷는 장소들, 걷기의 형태와 종류, 걷는 일을 담은 문학과 예술, 그리고 걷는 신체의 구조와 진화,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사회적 조건 등 걷기의 거의 모든 요소와 측면을 총망라하여 궁극적으로 걷기라는 행위가 인간에게 갖는 의미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요컨대 인문학적 에세이의 전범이다. [걷기의 인문학]이 다루고 있는 수많은 역사에 기록된 인물, 정전(正傳), 사상, 사건 등은 저자에 의해 충분히 소화된 후, 통합적인 의미로 해석되고 재구성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정신 vs. 육체, 사적인 것 vs. 공적인 것, 도시 vs. 시골, 개인 vs. 집단 같은 전통적인 철학적 모티프에 대해 솔닛 식으로 소화된, 소수자의 관점과 목소리를 배제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답안을 얻을 수 있다.

    걷기의 역사와 걷기의 위기

    *

    할머니들, 페르세포네, 정복자와 원주민,
    펑크와 블루스, 도시의 폐허, 사막, 단층집, 테라 인코그니타……
    리베카 솔닛을 만든 이야기와 장소들!

    장소와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고 나를 찾는 법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유난히 더 멀리 간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알맞은 자아, 혹은 적어도 의문을 제기받지 않는 자아를 생득권처럼 타고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든 만족을 위해서든 자신을 새로 만들어내려고 하고 그래서 멀리 여행한다. 어떤 사람은 가치와 관습을 상속받은 집처럼 물려받지만, 어떤 사람은 그 집을 불태워야 하고, 자기만의 땅을 찾아야 하고, 맨땅에서부터 새로 지어야 한다.”
    ‘맨스플레인’의 작가 리베카 솔닛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본격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은 리베카 솔닛의 신간이자 전미도서상 후보작, 전비비평가협회상 최종후보작으로 오른 주저이다. 솔닛은 2010년 한 칼럼에서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로 21세기에도 만연한 젠더 불평등의 핵심을 명쾌하게 요약하며 명성을 얻었다. 이 단어는 [뉴욕타임스] ‘2010 올해의 단어’에 선정되고, 솔닛은 같은 해 [유튼리더] 선정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로 선정되었다. 2015년에는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 온라인판에 등재되었고, 이 글을 수록한 칼럼집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가 한국에 소개되어 대부분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 외에도 [걷기의 역사] [이 폐허를 응시하라] [어둠 속의 희망] 등 작가의 다양한 관심과 면모를 보여주는 책들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데, 특히 [멀고도 가까운]은 그런 다양한 면모를 가장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본격 저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책의 주요한 주제는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 병과 돌봄, 삶과 죽음, 어머니와 딸, 아이슬란드와 극지방이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프로이켄의 [북극 모험],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그리고 [백조 왕자] [룸펜슈틸츠헨] [눈의 여왕] 같은 구전 동화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활용해 솔닛은 주변의 여러 삶들을 바라보고 사유하고 마침내 이해한다. 그것은 누군가를 변명하거나 누군가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 혹은 작가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이해이다. 작가는 이를 용서이자 사랑이라고 부른다. 작가는 이런 따뜻하고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내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세밀하게 관찰한다. 내밀한 회고록이지만 읽기와 쓰기가 지닌 공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유려하게 웅변하는, 솔닛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에세이이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나와 우리를 이루는 이야기들의 힘

    이 책의 다양한 주제를 하나로 엮는 큰 주제는 이야기하기의 힘이다. 우리는 이야기들을 엮어서 정체성을 형성해낸다. 솔닛의 말대로 자아는 우리의 삶이 만들어내는 중요한 작품이자, 만인을 예술가로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가령 많은 동화들은 문제 해결을 다루는데 동화 주인공들은 그 문제 해결 와중에 ‘자신’이 된다. 이것은 이야기하기의 기본 원칙이다.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인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우리의 한계를 알아차리고 넘어서며 또 다른 누군가가 되어간다.

    우리의 이야기들은 도중에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만남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는 ‘자아’를 만들어내는 일에 근본적으로 ‘듣기’와 ‘읽기’의 능력, 타인에게 감정이입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프랑켄슈타인] 같은 고전이나 [백조 왕자] 같은 원형적인 서사뿐 아니라 극한의 추위에서 남편과 아이의 시체를 먹고 살아남은 에스키모 여인의 이야기, 그리고 전 세계가 방송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우물에 빠진 여자아이를 구하고 그 후유증으로 자살한 어느 소방관의 이야기,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북극곰을 잡아먹는 북극곰 이야기, 무엇보다 [신데렐라]의 음울한 버전이라 할 법한 솔닛 어머니의 이야기 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호출된다. 이런 이야기들이 솔닛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다시 우리 자신의 삶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친다. 솔닛의 이야기인 이 책은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서 그녀의 삶과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연결시킨다.

    질병과 고통에의 감정이입, 그리고 돌봄과 성찰이라는 노동을 통해 성취한
    아름다운 인격의 기록


    이 책은 무엇보다 어머니와 딸에 관한 이야기이다. 딸이 어떻게 어머니를 사랑하고 증오하고 넘어서고 이해하는지에 관한 서사다. 딸이 어떻게 자라나 마침내 뜻깊은 존재론적 성취를 이루는지 보여주는 서사다. 조금 과장하자면 여성주의적 성장 서사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에게 압도당
    하고 아버지와 경쟁하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하는 근대적인 남성적 성장 서사의 전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대안적인 성장 서사라 할 만하다.

    다른 사람(혹은 동물)을 돌보고 다른 이야기들을 읽고 듣고 또 글로 써내는 일은 이 책에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된 노동이다. 그것은 ‘감정이입’이라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능력을 요하는 노동이자 정직한 땀방울을 요하는 노동이다. 이런 노동을 통해 형성된 솔닛의 ‘자아’는 “궁전, 부자, 복수 같은 관습적인 것”들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풍요롭고 특별한 것일지도 모른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프랑켄슈타인]을 쓰면서 성취한 것만큼이나 말이다. 거기엔 진짜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신적인, 예술가다운, 부모다운 힘이 담겨 있다.

    아이슬란드로의 여행, 나를 떠나 세상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여행

    이 책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 서부 출신의 한 작가가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다녀오는 과정을 그린 여행 에세이기도 하다. 장소와 공간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닌 저자 덕분에 이 책은 특별한 깊이감과 공간감을 지닌다. 솔닛은 미국 서부의 친숙한 장소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머나먼 장소들에서 다른 이야기와 다른 자아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좋은 여행자다. 자아를 깊이 파고드는 일만큼이나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이 중요하듯,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려는 마음도 필요하다는 것, 양쪽 방향 모두로 떠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작가는 자신의 여행을 통해 효과적으로 납득시킨다. 가끔은 밖으로 나가는 일을 통해 붙잡고 있던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이국적인 정경에 대한 관찰과 묘사는 그곳의 여러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들과 어울려 더 빛을 발한다. 아이슬란드에서 솔닛은 독특한 시선으로 어둠과 빛, 그리고 냉기와 온기에 대해 사유한다. 그리고 그런 사유는 자연스럽게 동족을 잡아먹는 북극곰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우리가 살 수 없을 곳으로 만들고 있는 인간의 오만과 무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어진다. 에세이스트이자 역사가, 예술 비평가이자 환경 운동가, 그리고 누군가의 딸이자 형제, 혹은 친구로서의 다양한 면모가 어우러져 빛을 발한다. 걷기의 의미
    : 걷기가 왜 인문학적 탐구의 주제가 되어야 하는지 솔닛은 대단히 설득력 있는 근거들을 제시한다. 걷기는 생산 지향적인 문화와는 애초부터 거리가 있는 행위이며, 그 자체가 수단이자 목표인 행위이다. 이것은 인문학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특성이다. 솔닛에 따르면 마음을 가장 잘 돌아보는 길은 걷는 것이다. 이 책 전체는 "걷기의 역사가 생각의 역사를 구체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 전망을 발견하는 것은 큰 행복인데, 지금도 나는 이 행복을 언제라도 맛볼 수 있다."(19쪽)

    생산 지향적 문화에서는 대개 생각하는 일을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아무 일도 안 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 일도 안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슨 일을 하는 척하는 것이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 것이다.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숨을 쉬는 것, 심장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생각과 경험과 도착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육체노동이라고 할까.(20쪽)

    보행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여행인 동시에 목적지다.(22쪽)

    내가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느리기 때문이다. 마음도 두 발과 비슷한 속도(시속 5킬로미터 이하)가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생각이 맞다면, 현대인의 삶이 움직이는 속도는 생각의 속도, 생각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빠르다.(28쪽)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장소로 돌아가면 그 씨앗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32쪽)

    * 걷기와 철학자들: 걷기와 사유의 밀접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통상은 그리스 철학자들을 호출하지만 솔닛은 이것이 루소를 비롯한 동시대인들의 세팅이었음을 지적한다. 그리스인들이 많이 걸은 것은 사실이고, 소요학파와 스토아학파의 이름이 걷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본격적으로 철학적 사유를 걷기와 연결시킨 효시는 루소다. 솔닛은 루소와 키르케고르의 독특하고 힘있는 사유, ‘잡종 철학자, 철학적 작가’로 불리는 루소와 키르케고르의 특성이, 걸으면서 사유하고 구성한 저작들 때문임을 강조한다.

    보행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도 길다. 하지만 보행을 단순히 수단으로 보는 대신 모종의 의식적 문화 행위로 본다면, 보행의 역사는 불과 몇 세기 전에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원에 루소가 있다. 그 역사는 18세기 다양한 사람들의 발로 만들어졌지만, 그중에서도 좀 더 학예적인 사람들은 보행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에서 찾음으로써 보행의 위대한 전통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스의 습속들을 기쁜 마음으로 숭배하고 왜곡하던 시대였다.(33쪽)

    루소의 글이 철학적 보행을 다루는 문헌의 효시라면, 그것은 루소가 자기의 사색이 어떤 정황 속에 행해지는지를 상세히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최초의 저술가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루소가 과격파였다면, 루소의 가장 과격한 행동은 (보행, 고독, 자연 등을 기반으로 조성되는) 개인적, 사적 경험의 가치를 재평가한 일이었다.(45쪽)

    "그 정도로 사색하고 그 정도로 존재하고 그정도로 경험하고 그 정도로 나다워지는 때는 혼자서 걸어서 여행할 때밖에 없었던 것 같다. 두 발로 걷는 일은 내 머리에 활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할까, 몸이 움직여야 마음도 움직인다고 할까. 시골 풍경, 계속 이어지는 기분 좋은 전망, 신선한 공기, 왕성한 식욕, 걷는 덕에 좋아지는 건강, 선술집의 허물없는 분위기, 내 예속된 상태와 열악한 상황을 생각하게 하는 것들의 부재. 바로 이런 모든 것이 내 영혼을 속박에서 풀어주고, 사유에 더 많은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나를 존재들의 광활한 바다에 빠지게 해준다. 그 덕분에 나는 그 존재들을 아무 불편함이나 두려움 없이 마음껏 결합하고 선택하고 이용할 수 있다."(41쪽)

    논문 같은 엄격한 형식, 또는 전기문이나 역사서 같은 연대기적 형식과는 달리, 여행기는 탈선과 연상을 장려한다. 루소가 세상을 떠나고 거의 한 세기 반 후, 마음의 작동 방식을 그려내고자 한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문체를 발전시킨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와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서 주인공들의 머릿속에 뒤죽박죽 뭉쳐 있는 생각들, 기억들은 그들이 길을 걸을 때 가장 잘 풀려나온다. 바꾸어 말하면, 보행이라는 비분석적, 즉흥적 행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유는 이런 비체계적, 연상적 유형의 사유다.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바로 사유와 보행의 이러한 관계를 그려 보여주는 최초의 그림 중 하나다.(44쪽)

    * 진화론적 관점, 걷기의 과학: 걷기를 둘러싼 고인류학의 논의를 통해 진화 과정에서 직립보행이 인간의 육체와 사회 형성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고, 진화사에 스며 있던 백인 중심,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반박되어온 내용을 다룬다.

    필트다운인에 환호했던 영국 전문가들은 타웅 아이(Taung Child)라는 이름의 그 어린아이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데 의혹을 품었다. 그 시대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조상이 아프리카인이라는 것도 싫었고, 뇌는 작으면서 두 다리로 서서 걸어 다닌 때가 있다는 증거, 즉 우리가 머리가 좋아진 게 진화의 초기가 아니라 후기였으리라는 증거를 받아들이기도 싫었던 것이다.(65쪽)

    요즘 논의에서 직립보행은 진화하는 종이 다른 영장류들과 완전히 구분되는 인류가 되기 위해 건넌 루비콘 강이다. 우리는 직립보행으로 수많은 근사한 결과를 얻었다. 몸에 고딕건축과도 같은 아치들이 생겨났고 몸 전체가 위아래로 길어졌다. 밑에서부터 올라가자면, 발가락이 한 방향을 향하면서 발바닥 안쪽에 아치가 생겼다. 두 다리가 길게 뻗으면서 대둔근이 볼록하게 발달했다. 배는 납작해지고 허리는 유연해지고 등뼈는 곧게 펴지고, 두 어깨는 낮아지고 목은 길어지고 머리는 똑바로 들렸다. 똑바로 서 있는 몸을 보면, 마치 기둥처럼 각 부분이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66쪽)

    인간 진화 관련 문헌에는 여자가 보행에 더 서툴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여자 때문에 인간이라는 종 전체에 치명적 저주가 내려졌다느니, 진화 과정에서 여자는 남자의 조력자에 불과했다느니, 보행은 사유에 관련돼 있으니 여자는 사유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느니 하는 믿음은 창세기가 남긴 또 하나의 유물인 듯하다. 인간이 보행을 배우면서 안 가봤던 곳에 가볼 자유, 안 해봤던 일을 해볼 자유, 사유의 자유를 얻었다면, 여성들의 자유는 섹슈얼리티, 정확히 말해 통제와 봉쇄가 필요한 섹슈얼리티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논의는 이미 생리학이 아니라 윤리학이다.(78쪽)

    보행과 진화를 말하는 과학자들은 그 주장이 아무리 시시껄렁하다 해도 한 가지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것은 보행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논의를 시도한다는 점, 다시 말해 우리가 보행을 어떤 행위로 만들 것인지가 아니라 보행이 우리를 어떤 존재로 만들었는지를 질문한다는 점이다.(79쪽)

    * 순례: 치마요 성지 순례를 함께한 경험, ‘평화 순례자’로 알려져 있는 반전 활동가의 글과 삶, 마틴 루서 킹이 전통적인 순례를 민권운동 행동으로 조직한 버밍햄 행진을 아우르며 ‘고행을 자초하는 걷기’로서 순례가 인간 역사에서 가져온 의미를 짚어낸다.

    순례길에 오르는 것이 몸의 움직임을 통해 영혼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일이라면, 순례란 정신과 물질을 화해시키는 일이 아닐까. 순례가 믿음과 행동의 결합, 생각과 실천의 결합이라는 생각은 성스러운 것이 물질적 현존, 물질적 자리를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모든 신교도와 일부 불교도, 유대교도가 성지순례를 우상 숭배의 일종으로 보고 반대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90쪽)

    순례는 스포츠가 아니다. 순례자들이 종종 고행을 자초하는 것도 스포츠와 다른 점이지만, 순례의 목적이 많은 경우 치유(자기의 병이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병이 낫는 것)라는 것도 스포츠와 다른 점이다. 스포츠에서는 준비를 최대한 면밀히 하는 반면에, 순례에서는 준비를 최대한 허술하게 한다.(96쪽)

    그녀는 순례라는 종교적 형태를 차용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순례가 전통적으로 순례자 자신이나 순례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면, 그녀는 전쟁과 폭력과 증오가 세상을 망가뜨리는 전염병이라고 보았다. 그녀의 순례에 동력이 되었던 정치적 메시지, 그리고 그녀가 치유와 변화를 모색한 방식, 즉 신에게 호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같은 인간들에게 감화를 주는 방식은 그녀를 오늘날 무수히 생겨난 정치적 순례자들의 선구자로 만들었다.(101쪽)

    킹은 압제 세력에게 요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하기로 했다. 이것이 흑인 민권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을 버밍햄 투쟁의 전략이었다. 최초의 행진은 1962년 성금요일에 시작되었고, 그 후로 무수한 행진이 이어졌다. 이 버밍햄 투쟁에서 대단히 유명한 사진들이 쏟아졌다. 고압 소방 호스로 물 폭탄을 맞는 사람들, 경찰견에게 공격당하는 사람들이 찍힌 사진이 전 세계의 분노를 자아냈다. 킹을 비롯한 수백 명의 시위자들이 버밍햄을 걸었다는 이유로 체포당했다.(103쪽)

    * 미로와 크루즈: 크루징(라틴아메리카 청년들이 산책하는 속도로 자동차를 몰며 추파를 던지거나 싸움을 거는 관습)에 쓰이는 자동차에 그려진 그림, 미로와 미궁의 의미, 정원과 수도원 회랑의 종교적 조각상 등 두 발을 통해서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의 사례로부터 걷는다는 육체적 행위와 글쓰기, 읽기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개조 자동차는 예술품이기도 하지만, 옛 에스파냐에서 라틴아메리카로 이어져오는 광장 산책 관습인 파세오 또는 코르소의 최신 버전이기도 한다. 수백 년 전부터 에스파냐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도심의 광장을 산책하는 것이 사회적 관습으로 자리 잡아왔다. [......] 광장 산책은 느리고 의연한 움직임, 사교 생활, 자기표현 등을 강조하는 유형의 보행으로, 어딘가로 가는 방법이 아니라 어딘가에 있는 방법이다. 걷는 산책이든 자동차 산책이든 광장 산책의 동선은 본질적으로 순환적이다.(113쪽)

    미로와 미궁은 두 눈으로 읽어나갈 수 있는 동시에 두 발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이야기, 즉 몸이 차지할 수 있는 이야기다. 십자가의 길이나 미로 같은 상징적인 길들 간에 어떤 유사성이 있듯, 모든 이야기와 모든 길 사이에도 어떤 유사성이 있다. 넓은 길, 좁은 길, 산길, 숲길, 그리고 모든 길이 공유하는 독특함 가운데 하나는 직접 걸어보지 않고서는 총체적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121쪽)

    한 편의 이야기와 한 번의 여행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 이야기가 있는 글을 쓰는 일이 걷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은 상상의 영토에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 혹은 익숙한 길 위에서 새로운 면들을 가리켜 보이는 일이다. 글을 읽는 일은 저자라는 가이드를 따라가는 일이다. 우리가 그의 말에 항상 동의하거나 그를 항상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이드가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주리라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122쪽)

    르네상스 정원에는 신화나 역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조각상이 정교하게 배치돼 있었다.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에 글이 추가될 필요는 없었지만, 정원을 걸으면서 조각상을 둘러본다는 것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떠올리는 일,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듣는 일이었다.(126쪽)

    * 자연이라는 유행, 정원에서 공원으로: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자연스러워 보이는 감수성이나 가치관을 역사화해서 그것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것은 공식화된 역사를 신화화하지 않는, 주변화된 시선에 의해 가능한 미덕이기도 하다. 역사상 자연 속을 걷고 싶어 하는 마음은 300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신념과 취향의 조합이다. 영국식 정원이 ‘자연주의’를 최신 트렌드로 받아들이면서 사유지였던 정원이나 산책로는 점점 공적인 공간이 되었고, 공원이나 들판도 생겨났다. 나아가 이러한 감성은 유년 시절과 자연과 민주주의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낸 워즈워드의 시기에 이르러 더 강력한 정치적인 힘까지 갖추게 된다.

    12세기 문화 혁명이 낭만적 사랑을 제작해 문학적 주제로 제시했듯, 18세기 문화 혁명은 자연 취향을 제작, 출시했다. [......] 18세기 문화 혁명이 자연 취향과 보행 취향에 끼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8세기 문화 혁명은 정신세계와 현실세계를 재구성하면서 무수한 여행자들을 외진 곳으로 떠나보내기도 하고 무수한 공원, 자연보호 구역, 여행 코스, 여행안내서, 여행자 모임이나 단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141쪽)

    자연 감상을 좋아한다는 것은 세련된 취향의 소유자라는 표시였고, 세련된 취향을 원하는 사람은 자연 감상법을 배우고자 했다. [......] 자연 정원은 그저 극소수의 사람들이 조성, 사용할 수 있는 호화 시설이었지만, 영원한 자연은 모두에게 공짜였다. 길이 덜 위험해지고 덜 험난해지면서 여행 경비는 더 저렴해졌고, 여행 자체를 취미로 즐길 수 있는 중간계급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자연 취향은 배워야 하는 그 무엇이었고, 길핀은 많은 사람들의 스승이었다.(156쪽)

    이런 방식으로 걷는 것은 미덕과 단순 소박함과 어린 시절과 자연 간의 복잡한 루소의 등식을 떠올리는 일이었다. [......] 18세기가 끝날 무렵에 루소와 낭만주의는 자연이 곧 감정이고 감정이 곧 민주주의라는 등식을 성립시켰으며, 사회질서를 극히 인위적인 것으로 서술하고 계급 특권에 반기를 드는 일이야말로 ‘유일하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 워즈워스의 업적은 루소의 과제를 이어받아 더 발전시켰고, 유년과 자연과 민주주의 삼자의 관계를 밝히되 논리로 증명하는 대신 이미지로 그려 보였다는 것이다.(180쪽)

    잉글랜드에서 걸어서 여행한다는 것은 긴 여행이든 짧은 여행이든 철학적 급진주의자의 행동이자 비인습성의 표현이며, 가난한 이들을 알아보고 싶고 자기가 가난한 이들과 한편임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179쪽)

    * 보행문학과 등반문학: 18세기에 예술적 종교가 되고, 18세기 말 급진적 종교가 된 자연은 19세기 중반에는 중간계습의 종교로 자리 잡았다. 솔닛은 본격적인 여행 문학이 등장해서 중간계급의 오락거리가 된 상황을 존 뮤어부터 최근의 작품들까지 살펴보면서 개괄한다. 또 걷기의 조금 더 센 버전인 등산도 다룬다. 산에 오르는 행위와 문학의 관계가 동양에서는 오래된 것이긴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등반이 생겨났던 것은 낭만주의가 자연 숭배를 되찾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이런 문학들이 만들어낸 걷기와 등반에 관한 이미지들 덕분에, 사람들은 걸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게 되고 그런 주장을 관철시킬 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보행 수필은 육체적, 정신적 자유를 찬양하는 장르였을 뿐, 자유로운 세계를 혁명적으로 열어 보이는 장르는 아니었다. 그 혁명은 이미 일어난 후였다. 보행 수필이 한 일은 자유가 얼마나 허용될 수 있는가를 서술함으로써 그 혁명을 길들이는 것이었다.(200쪽)

    내가 이 보행 문학 작가들에게 신사라는 명칭을 부여한 이유는 그들이 전부 한 보행 클럽의 회원들인 것 같아서다. 실제로 그런 보행 클럽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비슷한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들은 대체로 특권층이고(잉글랜드 작가들은 독자가 모두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이라고 가정하는 듯한 글을 썼고, 미국의 소로마저 하버드 출신이었다.), 희미하게나마 성직자 성향이 있으며, 남자 일색이다. 위에서 인용된 글들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듯, 그들은 춤을 추는 시골 처녀도 아니고 보폭이 좁은 젊은 처자도 아니다. 그들이 떠날 때 뒤에 남는 것은 처자식이지 남편이 아니다.(202쪽)

    보행을 중요한 행위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불순함이다. 보행이 풍경, 생각, 만남과 불순하게 뒤섞일 때, 걸음을 옮기는 육체는 마음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그럴 때 세상이 마음에 스며든다. 이런 책은 역설적으로 보행이라는 주제가 다른 주제로 미끄러지기 쉽다는 것, 걷는 것 자체에 집중하면서 다른 것들을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걸어가는 사람의 성격, 걸어가면서 만난 사람들, 걸어갈 때 보이는 자연, 걸어가는 길에 해낸 일 등을 담고 있는 보행에 대한 글은 다른 어떤 것에 대한 글일 때가 많다. 보행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는 글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을 걸어 다니는 이유들의 역사, 또한 구불구불 이어져온 200년의 역사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보행 수필과 여행 문학의 정전들로 구성되어 있다.(217쪽)

    앞서 주장한 것처럼 보행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면, 등산이라는 보행은 더 드라마틱한 인생의 축소판이다. 등산은 더 위험하고 죽음이 더 가깝고 결과가 더 불확실하다. 또 등산은 도착의 개념이 더 분명하고 도착했을 때의 성취감이 더 크다.(225쪽)

    등산의 역사는 최초 사건, 최대 사건, 조난 사건으로 점철돼 있지만, 그런 사건들에 등장하는 몇십 명의 유명인 뒤에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보상으로 만족해온 무수한 등산가들이 있다. 역사는 전형을 담아내는 일이 거의 없고, 전형은 (문학으로 표현되는 일은 종종 있겠지만) 역사로 표현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이항대립 구도는 등산책의 두 장르에 어느 정도 나타나 있다. 그 두 장르는 일반 독자들이 많이 읽는 등산 서사시와 독자층이 훨씬 적지 않나 싶은 등산 회고록이다.(235쪽)

    보행을 위해 단체를 조직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이상하다. 실제로 보행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자주 언급하는 독립, 고독, 자유는 조직과 통솔이 없는 데서 온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즐거움을 얻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자유로운 시간, 자유롭게 걸을 장소, 질병이나 사회적 속박에서 자유로운 육체가 그것이다. 이 기본적 자유는 무수한 투쟁의 목적이 되어왔다. 힘든 투쟁을 통해서 자유로운 시간(8시간, 또는 10시간 노동, 그리고 이어서 주 5일 노동)을 쟁취해낸 노동자 단체들이,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273쪽)

    * 도시에서 걷기: 현대적인 대도시가 출현함으로써 도시가 제공하는 익명성, 다양성, 혼합성의 속성은 점차 두드러져왔다. 도시는 길거리, 고층건물, 곳곳의 카페나 술집, 상점들 사이를 활보하는 도시 산책자에게 도시의 미지와 가능성을 즐길 수 있는 곳인 동시에, 범죄, 가난, 위생 문제의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솔닛은 이처럼 불균형을 품고 있는 도시, 공적 공간을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경험하는 일이 도시가 주는 영감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것뿐 아니라, 공적 생활에 참여할 권리, 나아가 시민으로서의 삶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이와 함께 작가가 중점을 두는 것은 도시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일은 인종, 계급, 종교, 민족, 성적지향으로 인한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차이는 이를테면 흑인 게이 시인이었던 제임스 볼드윈의 시에 드러나는 뉴욕 거리가 휘트먼, 긴즈버그 등 동시대 뉴욕에서 활동한 여타 게이 시인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통해서 드러난다.

    도시 보행은 호객, 크루징, 산책, 쇼핑, 폭동, 시위, 도망, 배회 등, 아무리 즐거워도 자연을 향한 사랑 같은 고고한 도덕적 울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행동들로 쉽게 바뀐다. 그러니 도시공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그런 주장을 펴는 얼마 되지 않는 자유주의자들과 도시이론가들조차 보행이 공공장소를 사용하고 공공장소에서 거주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라는 점을 거의 인지하지 못했다.(281쪽)

    하지만 공공장소가 없어진다면 결국은 공공성도 없어진다. 개인이 시민, 즉 동료 시민들과 함께 경험하고 함께 행동에 나서는 존재가 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시민이 되려면 모르는 이들과 함께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토대는 모르는 이들에 대한 신뢰이잖은가. 공공장소란 바로 모르는 이들과 차별 없이 함께하는 장소다. 공공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 현실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공동체적 행사들을 통해서다.(348쪽)

    자기 도시를 능숙하게 자기 영토(상징적 영토이자 실질적 영토)로 삼을 수 있는 시민들, 자기 도시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어 다니는 데 익숙한 시민들이라야 반란을 도모할 수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적 권리로서 출판의 자유,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와 함께 "사람들이 평화롭게 한 장소에 모일 권리"가 보장돼 있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다른 권리들에 대한 침해는 쉽게 인지되는 반면, 자동차 위주의 도시설계, 보행 환경 악화 등 집회 가능성을 차단하는 요소들은 인과관계를 추적하기도 어렵고 시민권의 사안으로 떠오르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공공장소가 없어진다면 결국은 공공성도 없어진다. 개인이 시민, 즉 동료 시민들과 함께 경험하고 함께 행동에 나서는 존재가 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시민이 되려면 모르는 이들과 함께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토대는 모르는 이들에 대한 신뢰이잖은가. 공공장소란 바로 모르는 이들과 차별 없이 함께하는 장소다. 공공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 현실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공동체적 행사들을 통해서다.(351쪽)

    뉴욕의 게이 시인들을 다룬 대목에서 할렘 태생의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을 다루지 않았다. 휘트먼이나 긴즈버그와는 달리 볼드윈에게 맨해튼은 감미로운 해방감을 안겨주는 장소가 아니라 자기의 현실을 수시로 떠올리게 하는 위협적인 장소였다. [......] 그에게는 모두 위협적인 존재들이었다. 그는 게이 남자이기도 하고 흑인 남자이기도 했지만, 그의 글에 등장하는 도시 보행자는 게이 남자이기보다 흑인 남자였다.(388쪽)

    * 여성들의 걷기(성과 걷기): 특히나 이 책은 여성이 자유롭게 도시의 거리, 도시의 밤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누릴 수 없다는 문제, 즉 여성의 공적 공간 진입 가능성을 중요하게 다룬다. 공적 공간을 제약 없이 이동하고 이용하는 것은 곧 시민으로서의 공적 생활을 영위하는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나 실비아 플래스가 남긴 기록을 통해 공적 공간에서 여성이 겪는 경험을 논하고, 도심을 활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조르주 상드가 택한 남장의 의미를 분석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이 개혁을 요구하고 이룩해온 곳은 주로 실내(가정, 직장, 학교, 정치조직)에서의 상호 관계였다. 하지만 사회적, 정치적, 실용적, 문화적 목적에서 공공장소에 접근하는 것도 시골과 도시를 막론하고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여자들에게는 이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 폭행과 추행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384쪽)

    내가 밖에 나가면 살아 있을 권리, 자유로울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없어지는구나, 세상에는 생판 남인데도 내 성별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미워하고 내가 괴롭기를 바라는 것 같은 사람이 많구나, 성은 이렇게 금방 폭력이 되는구나, 이런 상황을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로 보는 사람은 나 말고는 거의 없구나 하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386쪽)

    온갖 충고들이 쏟아졌다. 밤에 밖에 나가지 마라, 헐렁한 옷을 입어라, 모자를 쓰든지 머리를 짧게 잘라라, 남자처럼 하고 다녀라, 비싼 동네로 이사를 가라, 택시를 타라, 자동차를 사라, 혼자 다니지 마라, 에스코트해줄 남자를 구해라. 현대판 그리스 돌벽. 현대판 아시리아 베일. 사회가 나의 자유를 지킬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의 행동과 남자들의 행동을 통제할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충고들이었다.(386쪽)

    보행의 역사를 통틀어 주요 인물은 모두 남자들이었다. [......] 실비아 플래스가 그 이유를 일기에 적은 것도 열아홉 살 때였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건 내 끔찍한 비극이다. 길에서 일하는 사람들, 선원들과 병사들, 술집 단골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은데, 익명의 존재가 되고 싶은데, 경청하고 싶은데, 기록하고 싶은데, 다 망했다. 내가 어린 여자라서. 수컷으로부터 습격당하거나 구타당할 가능성이 있는 암컷이라서. 모든 사람과 최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천에서 자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서부로 여행을 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밤에 마음껏 걸어 다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374쪽)

    도시 탐험가 가운데 하나였던 조르주 상드는 남장을 하고 도시 탐험의 대열에 합류했다. 처음 남자 옷을 입어본 그녀는 거동의 자유를 느끼면서 그 느낌에 탐닉했다. "새로 생긴 장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에 든다. [......] 작은 뒤축에 쇠를 박아서 발을 보도 위에 단단하게 디딜 수 있었다. 나는 파리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세계 일주를 떠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입은 옷도 똑같이 튼튼했다. 나는 날씨에 상관없이 외출했고, 시간에 상관없이 귀가했고, 극장에 상관없이 바닥 좌석을 샀다."(329쪽)

    * 행진, 축제, 혁명: 시민들이 함께 걸어 나가는 거리가 민주주의의 가장 훌륭한 무대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걷기가 발신하는 정치적 의미를 다룬다. 솔닛은 1989년 무너진 ‘베를린 장벽’,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 정치적 경험이 전혀 없는 전업주부였던 여자들이 수년간 함께 걸음으로써 군부정권에 의해 실종된 아이들을 세계에 알리고 개인의 기억을 역사에 남긴 ‘5월광장어머니회’, 작가 자신도 참여한 반전‧반핵 시위의 성과를 ‘두 발이 쓴 역사’로 연결해낸다.

    도시가 업무나 차량을 중심으로 삼는 장소에서 길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보행(언론 자유의 가장 육체적인 형태)을 중심으로 삼는 장소로 재편되고 있었다. 길거리가 가정, 학교, 사무실, 상점 등의 실내공간으로 가는 이동로가 아닌, 하나의 거대한 원형극장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애초에 왜 시위를 하고 행진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그런 시간이 미국 도시의 길거리가 완벽한 보행 공간이 되는 유일한 시간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자동차에 치일 걱정도 없고 낯선 이를 경계할 필요도 없다.(365~366쪽)

    시장 여자들의 베르사유 행진은 평범한 시민들의 평범한 몸짓이 역사가 된 경우였다. 수천 명의 여자들이 베르사유까지 걸어가던 그 순간은 모든 권위에 순종해왔던 과거가 극복되는 순간이었고, 트라우마를 남길 미래는 아직 시작되기 전이었다. 그날, 세상이 그들 편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357쪽)

    잡종 행사인 것은 카스트로 스트리트의 핼러윈도 마찬가지다. 기념행사지만 정치적 발언으로 시작된 행사이기도 하다. 퀴어 정체성을 천명하는 것 자체가 대담한 정치적 발언이니까. 퀴어 정체성을 천명하는 일은 성이란 은밀한 것이고 동성애는 부끄러운 것이라는 유구한 전통을 신명나게 전복하는 일이다. 소외의 시절에는 모이는 일 자체가 반란이듯, 따분한 시절에는 즐거움 그 자체가 반란이잖은가.(344쪽)

    대부분의 퍼레이드나 행진은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서 한다. 과거의 시간을 기념하기 위해 도시공간을 걸으면서 시간과 장소가 맺어지고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가능성이 맺어지고 도시와 시민이 맺어짐으로써 하나의 살아 있는 전체, 역사가 만들어질 수 있는 기념의 공간이 생겨난다. 과거가 미래의 초석이 된다는 뜻이요, 과거를 기릴 줄 모르면 미래를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346~347쪽)

    * 걷기의 위기: 걷기의 위기는 공적 공간의 위기이자 아날로그의 위기, 또 사변적 사유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다. 솔닛은 도시의 교외화와 러닝머신으로 축소된 운동 등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를 예로 들어, 일상에서 걷기를 점점 몰아내면서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짚는다.

    생태주의 용어로 보행은 ‘지표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표종은 생태계 건강의 지표이고, 지표종이 위험해지거나 감소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다는 것은 생태계에 문제가 있다는 초기 경고 신호다. 보행은 여러 가지 자유와 기쁨, 예컨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 닫혀 있지 않은 멋진 공간, 구속받지 않는 육체라는 생태계의 지표종이다.(400쪽)

    자동차들이 공간의 분산과 사유화를 조장함에 따라 쇼핑가 대신 쇼핑몰이 들어서게 되고, 공공장소는 아스팔트의 바다에 떠 있는 건물이 되고, 도시 설계는 한갓 교통공학이 된다.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는 일은 점점 덜 자유로워지고 점점 드물어진다. 길거리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보장된 표현과 집회의 자유가 적용되는 공공장소인 데 비해, 쇼핑몰은 그런 공공장소가 아니다. 사람들이 공공장소에 모일 때 민주적·해방적 가능성이 생긴다면, 모일 만한 데가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가능성이 없다.(408쪽)

    공장이 생산 속도를 높였다고 해서 노동 시간이 단축된 것은 아니었듯 차량이 이동 속도를 높였다고 해서 사람들이 차를 타는 시간이 단축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수시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게 됐다.(예를 들어 현재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날마다 서너 시간을 출퇴근 운전에 소비한다.) 사람들이 안 걷게 된 것은 걸을 만한 장소가 없어져서이기도 하지만 걸을 시간이 없어져서이기도 하다. 생각과 연애와 몽상과 구경이 펼쳐지던 자유분방한 사색의 시공간이 이제 없어졌다. 기계는 더 빨라지고 있고, 삶은 열심히 기계를 따라가고 있다.(414쪽)

    카지노들과 클라크카운티 당국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보장된 활동(종교, 섹스, 정치, 경제에 대한 발언)에 참여하는 사람들,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관광객들이 누리도록 되어 있는 쾌적한 경험을 거스르는 사람들을 기소하거나 몰아낼 근거를 마련할 목적으로 인도를 사유화할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펙은 말해주었다.(마찬가지로 현재 투손 당국은 인도에서 노숙자를 몰아낼 목적으로 노점에 인도를 1달러에 임대하는 방식으로 사유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453~454쪽)

    누구를 걷게 할 것인가, 어떻게 걷게 할 것인가를 통제하려는 노력들을 보면, 보행이 아직 어떤 면에서 전복적 행동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적어도 보행은 철저한 공간 사유화의 이상, 대중 통제의 이상을 전복하고 지출이 필요 없는 오락, 소비가 아닌 오락을 제공한다.(456~457쪽)

    상상력의 풀밭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척박해지고 아둔해지고 길들여진다. 길들여지지 않은 장소와 공공장소라는 자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는 그 공간을 거닐 자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 수반되어야 한다.(463~464쪽)

    추천사

    나는 나쁜 이야기의 독소를 정화시켜 끝내 아름다운 이야기의 강물로 흘러가게 만드는 더 큰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솔닛은 더 강력한 이야기를 창조함으로써 자신에게 강요된 나쁜 이야기의 마법과 싸워 마침내 승리하는 이야기의 전사다.
    - 정여울 / 문학평론가

    제가 읽은 가장 구체적인 잠언이에요. 허공에 뜬 구절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글은 노동하는 여성만이 쓸 수 있어요. 지성과 통찰은 약자가 가질 수 있는 힘입니다. 읽기가 사는 고통을 덜어 준다는 말은 사실이에요. 외로움도, 죽고 싶은 마음고 진정시켜 줍니다. 읽기만으로 연대할 수 있다고 믿어요.
    - 정희진 / '정희진처럼 읽기' 저자

    장르를 뛰어넘는 놀라운 책이다. 이전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강력한 힘은 서사의 미세한 신경세포들을 배치하는 데서 나온다.
    -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서정적인 산문의 대가 솔닛은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의 가족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책 읽기에 대해 써내려 간다. 그러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낸 신화들과 사유들을 다시 음미한다. 뉴요커

    이 책을 읽으면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든다. 훌륭한 정신이 부단히 노동한 결과다. 독자들은 하나의 이야기 안으로 엄청나게 많은 가닥들을 짜 넣을 수 있으며, 그로써 우리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서로 잘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 북포럼

    우리가 왜 창작을 하는지, 우리가 왜 이야기를 만드는지에 대한 심오하고 감동적인 설명이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흡인력 있는 문학적 논픽션을 본 적이 없다.
    - 아메리칸스콜라

    솔닛은 우리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계속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힘들고 가장 운명적인 시기에도 마찬가지다.
    - 오프라.com

    솔닛은 우리가 더 대담하고 창조적인 사상가가 될 것을 요구한다. 겉보기에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주제들 사이의 연결고리들을 직관적으로 간파해 내고,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길을 따라오도록 격려한다.
    - 데일리비스트

    대작이다. 솔닛은 자아를 만들어내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작업에서 우리를 인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들 중 한 명이다.
    - 닉 플린

    솔닛의 책을 들고 자리에 앉으면 변화가 일어난다. 세상이 조금 더 명확하면서 동시에 조금 더 신비로워지는 것이다. 여기 우리가 아는 가장 진실한 목소리가 있다. 솔닛이 내는 책 한 권 한 권은 세계를 보는 새로운 지도가 된다.
    - 마크 도티

    어떤 책은 ‘이 작가가 지닌 감성의 엔진이 여기 다 모여 있구나.’ 하는 은밀한 발견의 기쁨을 준다. [길 잃기 안내서]가 바로 그런 책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젊은 시절 폭발했던 솔닛의 감성과 재능, 그녀와 함께 열정을 불태운 친구들의 소중한 이야기, 그 안에서 비 온 뒤의 찬란한 무지개처럼 피어나는 풍요로운 사유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토록 멀리 있는 작가 리베카 솔닛과 바로 지금 여기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 정여울 / 작가

    길을 잃는 것이 낯선 것들과 만남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제는 길이 없다는 절망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결사적으로 읽었다. 길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길임을 깨달았다. 추구와 계속적인 실패, 다른 길의 모색. 어차피 인생에서 방황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이 책은 끊어질 길의 운명을 두려워하지 않는, 언어도단 / 言語道斷의 길을 이으려는 솔닛의 사유이다. 그녀만의 생각의 힘, 표현력에 독자로서 감사와 부러움을 숨길 수 없다.
    - 정희진 / 여성학 연구자, [낯선 시선: 메타젠더로 본 세상]

    길을 잃었다고 낙담하며 지냈다. 길을 잃게 된 것을 받아들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 책을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나는 이상하고도 먼 곳에 버려져 있었다. 아주아주 먼 곳에 남겨진 것 같았다.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몸에 피가 돌고 심장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길을 잃고서 얻는 기쁨. 이 이상하고 야릇한, 완전한 기쁨. 길을 잃어야만 조우할 수 있는, 거의 잃어버릴 뻔한 세계. 이것은 내가 알고 있던 기쁨이 아니라 내가 찾고 있던 기쁨이었다.
    - 김소연 / 시인
    "솔닛의 글쓰기를 훔치고 싶었다. 현장에서 길어 올린 용감한 언어, 오래 들여다본 자의 통찰, 성실함으로 쌓아올린 단단한 지성, 행간마다 일몰처럼 번지는 수려한 감성으로 빚어낸 글에 나는 매번 압도당했다. [걷기의 인문학]을 읽고 나니, 그 비결이 조금은 짐작된다. "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통해 몸을 인식"하는 걷기가 그 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직 몸으로 밀고 나가는, 걷기라는 곡진한 행위는 어떤 사람을 환경운동가로, 철학자로, 페미니스트로, 예술가로, 명상가로 만들어줄 수 있음을 이 팽창하는 텍스트는 증명한다. 그것을 증명하면서 솔닛은 그 모든 존재가 된다."
    - 은유 / 작가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에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멋진 무기가 있음을 깨닫는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걸으면서 나 아닌 다른 것과의 소통을 꿈꾸는 나, 걸으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걸음으로써 걷기 전과는 분명 달라진 나. 리베카 솔닛은 이 책을 통해 눈부시게 증언한다. 더 많이, 더 오래, 더 깊이 생각하며 걸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인간의 힘을."
    - 정여울 / 문학평론가

    "리베카 솔닛이 말하는 걷기란 이 세계를 좀 더 높고, 먼 곳으로 보내는 일, 즉 ‘진보(進步)’를 뜻한다.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은 인종과 남녀의 차별을 메우기 위해 걷고 있다. 걷기의 역사를 말하는 리베카 솔닛의 목소리에서 희망의 역사를 듣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김연수 / 소설가

    목차

    추천의 말

    1 열린 문
    2 먼 곳의 푸름
    3 데이지 화환
    4 먼 곳의 푸름
    5 방치
    6 먼 곳의 푸름
    7 두 개의 화살촉
    8 먼 곳의 푸름
    9 단층집

    참고 자료
    옮긴이의 말

    살구, 거울, 얼음, 비행, 숨, 감다, 매듭, 풀다, 숨, 비행, 얼음, 거울, 살구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추천의 말
    한국의 독자들에게

    1부 생각이 걷는 속도
    1 걸어서 곶 끝까지: 서론
    2 정신의 발걸음
    3 직립보행의 시작: 진화론의 요지경
    4 은총을 찾아가는 오르막길: 성지순례
    5 미로와 캐딜락: 상징으로 걸어 들어가다

    2부 정원에서 자연으로
    6 정원을 나가는 길
    7 윌리엄 워즈워스의 두 다리
    8 두 발이 감상에 빠지면: 보행 문학
    9 역사가 산으로 간다: 등산 문학
    10 보행을 위한 모임들, 통행을 위한 투쟁들

    3부 길거리에서
    11 혼자 걷는 도시
    12 플라뇌르, 또는 도시를 걷는 남자
    13 큰길의 시민들: 축제, 행진, 혁명
    14 도시의 밤거리: 여자들, 성(性), 공공장소

    4부 길이 끝나는 곳 너머에서
    15 헬스장에 가는 시시포스, 신도시에 사는 프시케
    16 보행 예술
    17 라스베이거스, 혹은 두 점 간의 최장 거리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걸어가는 인용문의 서지 사항

    본문중에서

    동화에서 힘 자체가 살아남기에 적합한 수단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보다는 힘없는 이들이 연합하여 성공을 이룰 때가 많은데, 이는 종종 서로에 대한 친절한 행위에서 비롯된다. 망가뜨리지 않은 벌집, 죽이지 않고 풀어 준 새, 존경의 마음으로 맞아준 노파 같은 존재들이 그 행위를 되갚아준다. 미약한 존재에게 씨앗처럼 뿌렷던 친절이 동화헤서 그리고 가끔은 현실에서도, 위기의 순간에 결실을 맺는다.
    (/ p.28)

    그 시기에 어머니의 상태는 어떤 것으로도 풀 수 없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동화 속의 저주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살구는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대상이었다. 과일 자체를 처리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무언가 오래된 유산과 임무를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비유 같았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비유였을까?
    (/ pp.29~30)

    나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여러 여인에게서 들어 왔던 이야기의 또 하나의 변주이다. 그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 모든 이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내어 준 다음, 딸에게서 자신을 되찾으려 노력했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 pp.36~37)

    나는 친구나 스승을 발견하기 전에 책과 장소를 먼저 발견했고, 사람이 주는 것과 똑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들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어린 시절에 나는 문제가 있을 때면 밖으로 튀어나오곤 했다. 그렇게 안과 밖이 뒤집힌 세상에서는 집만 아니면 어디든 안전했기 때문이다. 행복하게도 그곳엔 참나무들이 있었고, 언덕, 시내, 작은 숲, 새, 오래된 목장과 마구간, 툭 튀어나온 바위가 있었다. 그렇게 열린 공간이 나에게 개인적인 것에서 튀어나와 인간이 없는 세상을 껴안으라고 부추겼다.
    (/ p.54)

    그때 “안 갈래요.”라고 대답했더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영원히 궁금해했을 것이다. 우리의 것이 될 수도 있었을 보물을 거절한 듯한 느낌,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한 것 같은 느낌을 계속 지닌 채 살아야 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험에 대해, 미지의 것과 가능성에 대해 “네”라고 대답했다는 점이다.
    (/ p.59)

    여성이 거의 아무런 권력도 가지지 못했던 시절에 젊고 가난한 여성이었던 메리는, 자신의 작품 안에서 전지전능한 지위에 오른다. 자신의 용어로 세상을 묘사하고, 잘못돼 버린 세상에 대한 자신의 전망을 그리고, 집단적 상상력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이라는 면에서 다른 낭만주의 시인 모두를 작아 보이게 만들어 버리는 걸작을 써 낸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마치 전설이나 동화처럼, 상상력을 이야기할 때 꼭 떠오르는 어떤 원형이자, 인간 조건의 일면을 축약해 보여 주는 상징이 되어 버린, 예외적인 작품이다.
    (/ pp.79~80)

    부모, 예술가, 신이라는 세 부류는 뭔가를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소설은 창조자가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가지는 책임이라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제시한다. 그것은 또한 인간들이 서로에 대해 가지는 책임이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프랑켄슈타인]은 사실 보수적인 작품인데, 관습적 규범을 옹호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개인적 목표의 추구보다 의무감과 애정으로 묶인 유대감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그 안에는 작가의 남편이자 고집 세고 활동적이며 종종 이기적이었던 시인을 향한 보이지 않는 원망도 담겨 있었다.
    (/ p.81)

    작가가 된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책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마치 숲 속으로 달려 들어가듯 그 안으로 사라졌다. 나를 놀라게 했고, 지금까지도 놀라게 하는 것은 이야기의 숲과 고독 그 너머에 건너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건너편으로 나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직업의 특성상 고립되며, 또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 가끔 재능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재능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희귀하지 않다. 오히려 그 재능은 많은 시간 동안의 고독을 견디고 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독자이며, 책 속에서, 책을 가로지르며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또한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서, 매우 친밀하지만, 지극히 외롭기도 한 그 행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 p.96)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진짜 책이 아니라, 그 책이 지닌 가능성, 음악의 악보나 씨앗 같은 것이다. 책은 읽힐 때에만 온전히 존재하며, 책이 진짜 있어야 할 곳은 독자들의 머릿속, 관현악이 울리고 씨앗이 발아하는 그곳이다.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 p.100)

    마치 책이 하나의 문이 된 듯했다. 사람들이 책을 통해 들어와 내 삶에 발을 들이고 나를 그들의 삶으로 이끈다. 예상도 못 했던 표가 생긴 셈이었다. 실제로 그곳에 발을 디디기까지 7개월 동안, 아이슬란드는 내게는 하나의 부적이자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창이었다. 내게 벌어진 모든 문제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곳이 있다는, 나 또한 머지않아 이 문제들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p.115)

    질병은 또 다른 방식으로,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가 홀로, 자족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깨뜨림으로써 외로움을 달래 주기도 한다. 당신은 타인의 골수나 혈액이 필요하다. 전문가와 사랑하는 이들의 보살핌도 필요하다. 당신이 병에 걸린 이유는 모기에 물렸다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거나, 돌연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혹은 이런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생물학적인 존재라는 사실, 유한하며, 타자와 상호 의존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 p.191)

    썰물 때의 단단하고 축축한 모래 위로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다시 밀물이 들어와 지나온 흔적들을 깨끗하게 지우기 전까지는 그렇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각자 뒤에 남긴 그 긴 선을 바라보는 걸 나는 좋아한다. 가끔은 나의 삶도 그런 식으로 상상해 본다. 마치 한 걸음 한 걸음이 바느질의 한 땀 한 땀인 것처럼, 마치 내가 바늘이 되어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내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세상이 꿰매지고 있는 것 같은 상상. 다른 이들이 만들어 내는 길과 교차하기도 하면서, 비록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방식으로 그 모든 길이 누비이불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로 엮인다. 마치 그 걸음이 바느질이고, 바느질은 곧 이야기를 하는 과정이며, 그 이야기가 바로 당신의 삶인 것 같다.
    (/ p.192)

    몇 인치에 불과한 가닥들이 서로 꼬여 한 줄의 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마치 단어들이 모여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그 실이 한없이 길어질 수도 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은 거미줄이나 지푸라기, 쐐기풀 등을 가지고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 낸다. 셰에라자드는 끊어지지 않는 실 같은 이야기들을 이어감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미연에 방지한다. 그녀는 자아내고 또 자아내며, 새로운 조각들, 인물들, 사건들을 자신만의 끊어지지 않는, 끊을 수 없는 서사의 실에 덧붙여 간다. 그와 반대로 페넬로페는 몰려드는 구혼자들과의 결혼을 피하고자, 낮 동안 짰던 시아버지의 수의를 밤이면 다시 풀어 버린다. 실을 잣고, 천을 짜고, 다시 그 천을 풀어 버리는 과정을 통해 이 여성들은 시간 자체를 정복했다. 비록 ‘정복자’라는 단어 자체가 남성명사이기는 하지만, 이 정복은 여성적인 것이었다.
    (/ p.194)

    ‘스핀스터(spinster)’라는 단어가 ‘노처녀’라는 경멸적인 의미를 가지기 전에, 물레 가락이 곧 집 안에서 여성의 영역을 상징하던 시절에, 모든 여성은 곧 스핀스터, 즉 실을 잣는 사람이었다.
    (/ p.194)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늙음과 병, 죽음을 완전히 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일부러 혹은 다른 이유로 어느 정도는 그것을 잊고 지낸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는 있지만, 어떤 결정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그 사실을 생생하게 실감하거나 상상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일단 그것을 실감하고 나면 그게 우리든 당신이든, 모든 것이 달라진다. 나이 든 어머니가 아프고, 곧이어 나까지 병원 신세를 지고, 친구 앤이 죽어가고, 넬리의 딸이 위험한 상태로 태어났던 그해 살구 수확기에, 나는 그 점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 p.222)

    거의 20여 년 전부터 자웅동체의 북극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식이 불가능한 변종이었다. 이런 변화 때문에 북극곰은 멸종 위기에 처한 상태다. 조류에 떠밀려 오거나 철새가 옮겨 온 오염 물질이 체내에 쌓여서 생긴 결과였다. 이어서 곰이 익사하는 일도 벌어졌다. 삶의 터전이었던 얼음이 녹아 사라졌음에도 그 주변을 떠나지 못하던 곰들이 그 희생자였다. 메리 셸리의 소설에서 비정상적인 자연은 예외였을 뿐, 나머지 세계는 대부분 야생이나 질서 정연한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는 우리 모두가 프랑켄슈타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주변 풍경이 모두 괴물이 되어 쫓고 쫓기는 상황, 오염 물질이 우리 몸 안에서부터 세상 끝까지 모든 곳에 퍼져 있는 이런 상황 말이다.
    (/ p.230)

    어둠 속에서는 여러 가지가 하나로 섞인다. 그렇게 열정은 사랑이 되고, 사랑을 나누는 행위의 결과로 모든 자연과 형체가 생겨난다. 섞이는 것은 위험하다. 적어도 자아를 규정하는 경계의 차원에서는 그렇다. 어둠은 무언가를 낳고, 그렇게 생겨나는 것은 그것이 생명이든 예술이든, 미지의 것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요구한다. 그것은 당신 스스로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어떤 영역, 다음에 무슨 일이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는 언제나 어둠 속에서 일어난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을 때만 일어난다. 빛이 비치면 생각의 구체적인 생김새나 그림자가 드러나고 다른 이들도 알아보겠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곳은 그 빛 속이 아니다.
    (/ p.272)

    그 안에서 나는 집에 온 것처럼 편안했고, 아이슬란드의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바로 그곳에서 나 자신이 되는 것 같았다. 아이슬란드에 관한 쥘 베른의 소설 제목이 [지구 중심으로의 여정]이었는데, 바로 그 미로 속 경험이 그 ‘여정’이나 그 ‘중심’인 것만 같았다.
    (/ p.276)

    감정이입(empathy)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살짝 나와서 여행하는 일, 자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진정으로 타인의 현실적 존재를 알아보는 일이며, 바로 이것이 감정이입을 탄생시키는 상상적 도약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 p.286)

    물론 내가 당신의 어머니인 것 같다는 어머니의 농담에는 날이 서 있기도 했다. 한편으로 어머니는 이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진 건지,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늘 헷갈려 하셨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겐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데, 그 점을 감안하면 내가 어머니의 어머니였을지도 모른다. 정말 나는 가끔씩 엄마 역할을 맡아야 했다.
    (/ p.329)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이 지닌 매력 중 하나는 게르다가 카이를 눈의 여왕으로부터 구출해서 다시 우정을 되찾는다는 점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많은 미국 원주민 이야기는 도무지 끝나는 법이 없다. 동물 세계로 들어갔던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고, 조상이나 창시자, 무언가 베푸는 이가 되어 여전히 어떤 힘으로 작용한다. 부유하고 풍족하고 사랑받고 보호받고 특혜를 받던 싯다르타가 그 모든 것을 떨치고 나가는 과정은, 마치 이야기를 거꾸로 진행시키는 것만 같다. 그는 마치 모범답안처럼 태어나서, 그 안전한 항구를 버리고 끝나지 않는 질문들과 일들이 있는 바다로 나아갔다.
    (/ p.363)

    저자소개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1~
    출생지 -
    출간도서 11종
    판매수 2,979권

    예술평론과 문화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1980년대부터 환경·반핵·인권운동에 열렬히 동참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으로 [멀고도 가까운] [걷기의 인문학] [어둠 속의 희망] [이 폐허를 응시하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등이 있으며, [그림자의 강]으로 전미도서비평가상, 래넌문학상, 마크린턴역사상 등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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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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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비교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역서로 [스티븐 킹 단편집] [행운아] [고딕의 영상시인 팀 버튼] [G] [로라, 시티]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A가 X에게] [벤투의 스케치북]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그레이트 하우스] [우리의 낯선 시간들에 대한 진실] [킹] [아내의 빈 방] [사진의 이해] [스모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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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문학 박사.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발터 벤야민 평전],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벤야민 또는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 [역사: 끝에서 두번째 세계],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자살폭탄테러], [죽은 신을 위하여], [붉은 죽음의 가면], [동화의 정체],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 [걷기의 인문학], [프리다 칼로], [동물들의 신], [코끼리에게 물을], [날고양이들], [3기니](근간), [센티멘탈 저니](근간), [프닌](근간)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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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스트 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환경 정책을 공부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편집팀장을 지냈고, 지금은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로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경험 수집가의 여행] [비커밍]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면역에 관하여] [틀리지 않는 법] [지상 최대의 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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