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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기 안내서 :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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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할머니들, 페르세포네, 정복자와 원주민, 펑크와 블루스,
도시의 폐허, 사막, 단층집, 테라 인코그니타……
리베카 솔닛을 만든 이야기와 장소들!

어떤 책은 ‘이 작가가 지닌 감성의 엔진이 여기 다 모여 있구나.’ 하는 은밀한 발견의 기쁨을 준다. [길 잃기 안내서]가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토록 멀리 있는 작가 리베카 솔닛과 바로 지금 여기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 정여울 / 작가

인생에서 방황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이 책은 끊어질 길의 운명을 두려워하지 않는, 언어도단의 길을 이으려는 솔닛의 사유이다. 그녀만의 생각의 힘, 표현력에 독자로서 감사와 부러움을 숨길 수 없다.
- 정희진 / 여성학 연구자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나는 이상하고도 먼 곳에 버려져 있었다. 길을 잃고서 얻는 기쁨. 이 이상하고 야릇한, 완전한 기쁨. 길을 잃어야만 조우할 수 있는, 거의 잃어버릴 뻔한 세계. 이것은 내가 알고 있던 기쁨이 아니라 내가 찾고 있던 기쁨이었다.
- 김소연 / 시인

출판사 서평

세계적 지성 리베카 솔닛을 만든 가장 내밀한 풍경들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로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작가이자 유튼리더가 꼽은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 특유의 깊은 사유와 아름다운 글쓰기로 한국에서도 수많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리베카 솔닛의 또 한 편의 본격 에세이 [길 잃기 안내서]가 출간되었다. “내 글은 걷지 않았던 곳으로 걸어가는 노력의 이야기, 가지 못한 길을 탐색하는 이야기다.” 스스로 이렇게 말했듯 솔닛의 에세이, 그중에서도 특히 한 호흡으로 써내려간 밀도 높은 에세이들은 언제나 방랑, 탐색, 모험 같은 주제를 주요하게 다루어왔다. [길 잃기 안내서]는 솔닛이 평생에 걸쳐 다뤄온 이와 같은 주제들을 ‘길 잃기’라는 키워드를 통해 포괄하는 책으로, 솔닛이 오랜 시간에 걸쳐 에세이스트로서 펼쳐온 풍경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작가로서 리베카 솔닛의 관점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했는지를 그간 소개된 어떤 책보다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솔닛은 이 책에서 자신이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교외와 도시라는 풍경을 재탐색하고, 이민자 출신인 자기 가계도의 할머니들과 고모의 역사를 더듬어보고, 서부 사막을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 또 자연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털어놓으며, 젊은 시절 예술에 대한 날카로운 감수성을 함께 길러온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술 비평가, 역사가, 페미니스트, 환경운동가라는 여러 정체성을 넘나들며 통찰력 있는 글을 쓰는 걸출한 에세이스트가 어떤 여러 갈래의 영향들 속에서 만들어졌는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책인 것이다. 이 책은 솔닛의 가장 내밀하고 도전적인 에세이인 동시에, 그렇기에 솔닛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미지를 향해 문을 열어두는 것, 어둠으로 난 문을 열어두는 것. 그 문은 가장 중요한 것들이 들어오는 문이고, 내가 들어왔던 문이고, 언젠가 내가 나갈 문이다. 삼 년 전 로키산맥에서 워크숍을 진행했을 때, 한 학생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메논의 말이라는 글귀를 가지고 왔다. 이런 말이었다. “우리가 그 속성을 전혀 모르는 무언가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 글귀를 적어두었고, 이후 이 글귀는 늘 내 마음에 있었다.
(/ pp.16~17)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무언가다. 그런데 우리는 변화의 건너편에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지 모르거나, 모르는데도 안다고 생각한다. 사랑, 지혜, 자비, 영감…… 이런 것들은 우리의 자아를 미지의 영역으로 더 확장시키는 일이자 우리를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일인데, 어떻게 우리가 그런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 p.17)

나는 길을 벗어나기를 좋아하고, 내가 아는 것 너머로 나가보기를 좋아하고, 아마 몇 킬로미터쯤 더 걸어야 하겠지만 다른 길을 통해서, 지도와 다투는 나침반에 의지하여, 도중에 만난 낯선 사람들이 알려준 천차만별의 방향 지시에 의지하여 돌아오기를 좋아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서부의 외딴 마을에서, 내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채 홀로 모텔에서 보내는 밤들, 괴상한 그림과 꽃무늬 이불과 케이블 텔레비전과 함께하기에 나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시간이 되어주는 그 밤들, 베냐민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스스로 어디 있는지 알기는 해도 사실 길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 시간들. 걸어서 혹은 차로 어떤 산마루를 넘거나 어떤 굽이를 돌자마자 ‘여기는 난생 처음 보는 장소인걸.’ 하는 혼잣말이 튀어나오는 순간들. 어째서인지 그동안 내 눈길을 벗어났던 건축의 어떤 세부적인 면이나 어떤 경관이 문득 내게 말을 걸어와서, 그동안 내가 집에 있기는 했어도 사실 내가 있는 곳을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알려주는 순간들. 낯익은 것을 낯설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 이를테면 내가 사는 곳에서 지금은 사라진 풍경과 사라진 묘지와 사라진 동식물을 알려주는 이야기들. 대화하는 사람들만을 남긴 채 주변의 다른 모든 것을 사라지게끔 만드는 대화들. 온종일 잊고 있다가 늦게서야 그날 나의 모든 느낌과 행동에 영향을 미쳤음을 깨닫게 되는 간밤의 꿈들……. 이런 길 잃기들은 원래의 길이나 아예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시작이다.
(/ pp.28~29)

지금은 나도 안다. 그런 몽상이 사실은 나 자신이 기차에서, 차에서, 대화에서, 의무에서 훌쩍 내려서 상상의 선조에게 내가 부여했던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었음을. 나는 풍경에 마음을 기대고 자랐다. 내가 언제든 사회적 관계들이라는 수평의 세상을 탈출하여 땅과 하늘이,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수직으로 정렬된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기대고 살았다. 이런 갈망에 가장 잘 부응하는 공간은 광대무변의 탁 트인 공간들, 내 경우 처음에는 사막에서 찾아냈고 다음에는 서부 초원에서 찾아냈던 공간들이다.
(/ p.77)

내 가운데 이름이 증조할머니 이름을 영어화한 것이라는 사실은 늘 알았다. 하지만 발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내 성은 몹시 보기 드문 것인 만큼 굳이 가운데 이름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십 대 때부터 그 이름을 쓰지 않았다.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그 이름이 어느 증조할머니의 이름이었는지. 이 글을 쓰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 정체 모를 여자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또한 그 이름이 내 이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혹은 지금 내 이름과 성 사이에 있는 빈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 p.95)

우리가 1980년대에 종말을 상상했던 것은 돈과 권력과 기술이 가져올 이상하고 복잡한 미래, 벗어나기 어려우리만큼 얽히고설킨 미래보다는 종말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십 대들이 요절을 상상하는 것은 성인이 감당해야 하는 온갖 결정과 부담 때문에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변할지 상상하는 것보다는 죽음을 상상하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다.
(/ p.151)

그때도 의아했고 지금도 의아한 일인데, 나는 어떻게 그것들을 다 포기하고 그 대신 도시와 사람들이 주는 것을 택했을까? 동물들의 세상, 천상의 빛의 세상이 안겨주는 상징적인 질서 감각에서 벗어나느니 차라리 외로움을 느끼는 편이 덜 끔찍하지 않을까? 그러나 글쓰기는 그러잖아도 충분히 외로운 작업이다. 글쓰기는 즉각적인 대답이나 상응하는 대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먼저 고백하는 일이다. 상대가 영원히 묵묵부답일 수도 있는 대화, 아니면 긴 시간이 흘러서 글쓴이가 사라진 뒤에야 진행될 수도 있는 대화를 먼저 시작하는 일이다. 하지만 최고의 글은 꼭 저 동물들처럼 나타난다. 갑작스럽게, 태연자약하게, 모든 것을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 없음에 가까운 말로. 글쓰기는 자기 자신의 사막, 자기 자신의 야생일지도 모른다.
(/ p.186)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참 지났을 때, 내가 사막의 은둔자로부터 총 쏘는 법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꿈에서 내가 아버지에게 무장을 했으니 다가오지 말라고 말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게 몇 번 내가 이긴 뒤, 아버지는 무해한 존재가 되었다. 그 세월 동안 내가 조금씩이나마 진전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제일 큰 침실을 접수하여 내가 쓰겠다고 결정했고, 그다음에는 가족을 내 방에서 몰아냈고, 그러다 그 거북 꿈을 꾸었다.
(/ p.253)

언젠가 어떤 남자가 내게 내 글은 상실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고, 내가 세상을 생각하는 방식이 그런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의 의견을 이후 오래 곱씹었다. 이런 의미의 상실에서는 두 가지 흐름이 뒤섞인다. 하나는 내가 역사가로서 모든 것에 매달리고 싶고, 모든 것을 적어두고 싶고, 모든 것을 스르르 사라지지 못하도록 막고 싶은 갈망이다. 그리고 거의 잊혔던 무언가를, 영영 손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질 뻔했던 무언가를 자료와 인터뷰에서 도로 끄집어냈을 때 역사가가 느끼는 기쁨이다. 그러나 또 다른 흐름은 우리 시대에 너무 많은 것이 그것을 대체할 것도 없는 상황에서 속속 사라지는 현실을 내가 남들과 똑같이 겪는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이든 지상의 어느 곳에서는 태양이 지고 있고, 또 한 번의 하루가 대체로 기록되지 않은 채 스르르 사라지고 있고, 사람들은 깨어나서는 거의 기억도 못 할 꿈속으로 스르르 빠져들고 있다. 그런 상실이 지속 가능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되려면 반드시 풍부함이 면면히 지속되고 있어야만 한다. 태양은 앞으로도 뜨겠지만, 꿈도 언젠가는 바닥을 드러낼 수 있는 법이다.
(/ pp.261~262)

그 집은 큰 장소 속에 든 작은 장소, 혹은 큰 이야기 속에 든 작은 이야기였다. 이야기들은 러시아 인형처럼 첩첩이 담겨 있었다. 그 집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그 일들은 더 큰 카운티에서 벌어지던 구원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구원은 또 온 나라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던 폭력적인 삭제에 대한 반응이었다. 나는 사반세기 전에 그 집을 영영 떠났고 꿈에서는 지난 일 년 안에야 비로소 벗어났지만, 그 카운티만큼은 내가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가기로 선택한 곳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돌아갔을 때야 비로소 몇몇 동물들이 다시 돌아온 것뿐 아니라 저 이야기들이 첩첩이 담긴 것을 보았다.
(/ p.285)

인간의 영혼은 길 잃기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 책은 ‘나’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인간은 삶 속에서 상실과 방황을 거쳐 어떻게 자기 자신을 찾아 나가는지 예리하게 성찰한 책이다. 이 책에서 솔닛이 제안하고 또 탐색하는 실제적, 비유적 의미에서의 ‘길 잃기’는 결국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경로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여러 번 길을 잃는다. 그것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익숙한 장소를 떠나가는 경험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상실하는 일일 수도 있고, 파괴적이고 야성적인 청소년기를 벗어나 성인이 되는 시기일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이 변화는 언제나 아름답고 순조롭게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고통을 동반하고, 때로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솔닛은 ‘길을 잃은’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역사 속에서, 예술 작품 속에서, 자신의 경험과 자연 속에서 길어 올림으로써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나’로 변신해왔는지, 정체성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설득력 있고 감동적으로 설명해낸다. 스페인 사람 카베사 데 바카는 정복을 위해 신대륙에 올랐지만 포로가 되어 먼 길을 걷고 원주민들의 환대를 받는 과정에서 정복자가 아닌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뀌는 ‘영혼의 변신’을 경험한다. 황금시대에 금을 찾기 위해 산맥 사이로 나섰다가 길을 잃은 ‘데스밸리 포티나이너스’는 식량도 물도 없는 그곳에서 처음의 목적을 잊고 ‘금 따위가 아닌 물을’ 원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솔닛은 빛바랜 가족사진들 속에서 자신의 할머니들과 증조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찾아낸다. 이민자의 후손으로서, 원래의 땅에서 뽑혀 나온 사람들 각자가 어떻게 적응하거나 또는 변화했는지를 자기 가족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들려주는 것이다. 솔닛이 풀어놓는 심리적, 문화적 변신의 이야기들 속에는 교외에서 도시의 폐허로, 도시에서 사막의 자연으로 바뀌는 풍경 속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던 솔닛 자신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 여정에는 청춘의 격동을 이겨내지 못해 잃었던 길을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친구도,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집’의 풍경과 다시 마주하며 증오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장면도 기록되어 있다.
때로는 문자 그대로, 때로는 비유적으로 펼쳐지는 ‘길 잃기’에 대한 이 모든 이야기는 솔닛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자아를 형성해나가는 여정에 관한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이는 에세이라는 장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솔닛은 이 책을 두고 자신이 “길 잃기에 사용하는 몇 점의 지도”라고 말하며, 독자들에게도 이 지도들을 활용해 길을 잃어보기를 제안한다. “길을 전혀 잃지 않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고, 길 잃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파국으로 이어지는 길이므로.” 솔닛이 펼쳐 보이는 이 지도들 속에서 어떤 독자들은 ‘나’라는 정체성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성찰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고, 어떤 독자들은 ‘나’를 찾기 위해 더 멀리 떠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기술이 있으니 바로 미지 속에서 편하게 느끼는 기술, 미지 속에 있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괴로워하지는 않는 기술, 길 잃은 상태를 편하게 느끼는 기술이다. 이 능력은 키츠가 말한 “불확실성, 미스터리, 의문을 수용할 줄 아는 능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p.25)

랜던은 아이들이 길 잃기에 유능하다고 말했다. “생존의 열쇠는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좀처럼 멀리 벗어나지 않고, 밤에는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에서 가만히 웅크려 앉아 있고,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 p.26)

울프에게 길 잃기는 지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체성의 문제, 열렬한 욕망의 문제, 심지어 다급한 필요의 문제였다. 아무도 되지 않는 동시에 아무나 될 수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나를 상기시키는 일상의 족쇄를 떨치고 싶다는 필요성의 문제였다. 이런 정체성의 용해는 낯선 장소나 외딴 은거지를 찾는 여행자가 빈번히 겪는 일이지만, 울프는 의식의 미묘한 뉘앙스를 예리하게 인식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낯익은 도시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안락의자에서 잠시 고독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었다.
(/ p.34)

고전 설화를 소개한 어느 책에 따르면, 정의의 여신은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옥의 문 앞에 서서 누가 그 속으로 들어갈지 결정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은 곧 고통과 모험과 변화를 겪음으로써 더 나아질 사람으로 선택된다는 뜻, 달리 말해 처벌의 길을 밟음으로써 변화된 자신이라는 보상을 받을 사람으로 선택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지옥행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정의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계산하기 어렵다는 뜻일 터였다. 정말로 그처럼 끝에 가서는 모든 것이 공평하게 맞춰지도록 되어 있다면, 그 끝이란 우리가 보통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며 우리가 보통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더 도달하기 어렵다는 뜻일 터였다. 게다가 안락한 곳에 머무르는 사람이 오히려 중도 실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뜻까지 암시했다.
(/ pp.40~41)

먼 곳의 푸름은 시간과 함께, 멜랑콜리의 발견과 함께, 상실의 발견과 함께, 갈망의 질감과 함께, 우리가 그동안 건넌 지형의 복잡함과 함께, 긴 여행의 세월과 함께 온다. 만일 슬픔과 아름다움이 하나로 얽힌 것이라면, 성숙이 가져오는 것은 나브한이 말한 추상이 아니라 어떤 미감, 시간이 가져온 상실을 일부나마 보완해주고 먼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미감일 것이다.
(/ p.66)

땅바닥이 옴폭옴폭 파인 곳마다 물이 말라붙어서 소금 결정이 되어 있었다. 어떤 결정은 장미 융단 같았고, 어떤 결정은 볏짚더미 같았고, 어떤 결정은 눈송이가 쌓인 것 같았고, 모두 소금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내가 연갈색 장미들을 조금 가져가려고 한 덩어리를 작게 떼어냈더니 갑자기 장미들이 덜 아름다워 보였다. 세상의 어떤 것은 영영 잃어버린 상태일 때만 우리가 가질 수 있고, 또 어떤 것은 멀리 있는 한 우리가 영영 잃지 않는다.
(/ p.68)

예술의 역사는 거의 구약성경의 족보처럼, 즉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말이 줄줄이 이어짐으로써 화가는 화가에게서만 태어난다고 말하는 듯한 방식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부계만 따지는 구약성경의 계보가 어머니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머니들의 아버지들도 누락하는 것처럼, 그런 단정한 예술사는 화가들이 다른 매체와 다른 접촉으로부터 얻은 자료와 영향을 누락하고, 시와 꿈과 정치와 의심과 유년기의 경험과 장소의 감각으로부터 얻은 자료와 영향을 누락하며, 역사는 직선보다는 교차로와 갈라져 나간 가지와 뒤엉킨 매듭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누락한다. 나는 그런 다른 영향들을 할머니들이라고 부른다.
(/ pp.90~91)

그는 멕시코의 스페인인 마을에 도착하고도 한참이 지난 뒤에야 옷 걸치는 일과 맨바닥이 아닌 곳에서 자는 일을 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까지 그는 맨몸으로 돌아다녔고, 뱀처럼 피부가 벗겨졌고, 욕심을 잃었고, 두려움을 잃었고, 인간이 잃고도 살 수 있는 것이라면 거의 모든 것을 버렸다. 하지만 여러 언어를 배웠고, 치유자가 되었고, 함께 살게 된 원주민 부족들을 존경하게 되었으며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었다. 요컨대 그는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그가 왕에게 보낸 보고서의 문장은 사적이지 않고 더없이 간명하다. 장소나 음식이나 만남 같은 구체적인 사항만을 서술문으로 적었고, 그마저도 묘사가 거의 없고 세부도 거의 없는 건조하기 그지없는 언어로 적었다. 제 영혼이 겪은 특별한 변신을 묘사할 언어가 적어도 그에게는 없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길 잃은 최초의 유럽인 중 하나였고, 돌아와서 이야기를 들려준 최초의 사람 중 하나였으며, 그중 많은 이와 마찬가지로 그가 길 잃은 상태에서 벗어난 것은 돌아옴으로써가 아니라 스스로 다른 존재가 됨으로써였다.
(/ p.106)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유난히 더 멀리 간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알맞은 자아, 혹은 적어도 의문을 제기받지 않는 자아를 생득권처럼 타고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든 만족을 위해서든 자신을 새로 만들어내려고 하고 그래서 멀리 여행한다. 어떤 사람은 가치와 관습을 상속받은 집처럼 물려받지만, 어떤 사람은 그 집을 불태워야 하고, 자기만의 땅을 찾아야 하고, 맨땅에서부터 새로 지어야 한다.
(/ pp.118~119)

우리에게는 그런 퇴화의 단계, 물러남의 단계, 시작에 앞서 와야만 하는 끝의 단계를 제대로 표현할 언어가 많지 않다. 변신의 폭력성을 표현할 언어도 부족하다. 변신은 오히려 꽃이 피는 것처럼 우아한 일로 묘사될 때가 많다.
(/ pp.119~120)

지도에 그려진 미지의 땅은 우리에게 앎 또한 무지의 바다에 둘러싸인 섬임을 알려준다. 그 공간은 지도 제작자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음을 뜻한다. 그리고 무지를 인식하는 것은 무지가 아니다. 지식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 pp.227~228)

달리는 사람의 발걸음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도약이라서 그는 순간적으로나마 땅에서 완전히 떠 있게 된다. 그 짧은 순간, 그림자는 주자의 발에서 물이 흘러나오듯이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별도의 복사본처럼 떨어져서 땅을 맴돈다. 새의 그림자가 지표면을 기어가면서 그것을 만들어낸 새가 지표면에 더 가까워지거나 더 멀어지면 그에 따라 더 커지거나 더 작아지는 것처럼.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내 친구들의 경우에는 그 짧디짧은 공중 부양의 순간들을 다 더하면 상당한 시간이 된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몇 분 동안 공중에 떠 있는 셈이다. 어쩌면 몇십 분일 수도 있고, 수백 킬로미터를 달리는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길 수도 있다. 우리는 난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꿈꾼다. 우리는 크기를 잴 수도 없을 만큼 작은 조각으로 조금씩 천국을 삼킨다.
(/ pp.244~245)

예술, 자연, 풍경을 탐색하는 예리하고 아름다운 비평서

이 책은 개인의 경험, 예술, 역사, 철학을 넘나들고 탐험하는 솔닛 특유의 글쓰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훌륭한 비평 에세이이기도 하다. 특히 이 책에서는 예술 작품과 자연, 풍경을 다루는 솔닛의 예민한 감식안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솔닛의 글쓰기는 우리를 장미 모양의 소금 호수 결정으로, 르네상스 화가들이 매혹되었던 푸른빛 속으로, 반항적 젊음 또는 성년의 회한을 노래한 펑크와 블루스의 세계로, 멸종되어가는 동식물의 풍경으로, 거북과 뱀을 이웃처럼 만나는 사막의 전경 속으로 이끈다. 음악, 미술, 영화, 장소, 공간을 다루는 솔닛의 독특한 관점은 독자들이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세계를 낯설게 만나도록 도와주는 또 하나의 길잡이가 된다.
예컨대 솔닛은 “남부 고딕 이야기”로서 블루스와 컨트리라는 장르를 새롭게 해석하도록 이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가사들 속에서 솔닛은 상실 이후를 노래하는 장르로서 블루스를 발견한다. 또 히치콕의 「현기증」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다시 쓴 솔닛 자신의 각본 「슬립」을 통해서 이 영화를 재해석하는 동시에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와 그 도시를 음미하는 여성을 보여준다. 한편 사막의 밤을 작가의 고독과, 너른 초원을 인간의 마음과, 도시의 폐허를 소수자성이나 젊은이의 내면과 연결 지어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풍경 비평’ 또는 ‘장소 비평’이라고 할 만한 솔닛의 특기가 빛을 발한다. 비평 에세이로서 먼저 소개된 [멀고도 가까운]을 사랑했던 독자들이라면 이와 연관 지어 [길 잃기 안내서]에서 더욱 다채롭고 예리하게 빛나는 솔닛의 시선을 만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솔닛은 극지방으로 떠났던 것처럼 이번에는 사막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프랑켄슈타인] 같은 고전을 재해석했던 것처럼 페르세포네와 하데스의 신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다. [길 잃기 안내서]는 우리를 또 한 번 먼 곳으로 데려다줄, 리베카 솔닛이라는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에 공감해온 독자들을 위한 좋은 선물이 되어줄 것이다.

윈투족은 자기 몸을 말할 때 ‘오른쪽’이나 ‘왼쪽’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동서남북 방위를 쓴다고 했다. 나는 그런 언어가 있다는 사실이 뛸 듯이 기뻤고, 그런 언어의 이면에는 자아란 세상과의 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이기에 만약 산과 태양과 하늘이 없다면 자아도 없다고 보는 문화적 관념이 깔려 있다는 점이 기뻤다. 도러시 리에 따르면, “윈투족이 강을 따라 올라갈 때 산이 서쪽에 있고 강이 동쪽에 있고 모기가 그의 서쪽 팔을 물었다면, 그가 거꾸로 내려올 때 산은 여전히 서쪽에 있지만 이제 그가 모기 물린 데를 긁으면 동쪽 팔을 긁는 셈이다.” 이런 언어에서 자아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서 길 잃는 것처럼 길을 잃을 일이 없다. 방향을 모르는 상태, 산길뿐 아니라 지평선과 빛과 별들과의 관계를 추적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 일이 없으니까.
(/ p.35)

펑크록, 슬램 댄싱을 하고 진탕 취하고 무대에서 다이빙하고 스피커 앞에서 몸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는 펑크록, 정치적 분노를 노래에 담았고 극단적인 상태를 선동하고 표현하려고 했던 펑크록은 그런 사회에 대항하는 집단 반란이었다. 그러나 실은 폐허처럼, 사회도 황야가 될 수 있다. 그 속에서 영혼도 야성적인 것이 되는 공간,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상상력을 넘어선 것을 추구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야성 중에서도 특수한 종류가 하나 있으니, 에로틱한 것과 취하는 것과 위반하는 것에 관련된 야성, 야생의 자연보다는 도시에서 더 쉽게 터를 잡는 야성이다. 그런 야성에게 어울리는 시간도 따로 있으니, 바로 젊음의 시간, 밤의 시간이다.
(/ pp.129~130)

펑크록의 전성기에 성년을 맞았던 우리에게는 우리가 무언가의 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 보였다. 모더니즘의 끝, 아메리칸 드림의 끝, 산업 경제의 끝, 특정한 형태의 도시화의 끝. 사방에 널린 도시의 폐허들이 증거였다. 브롱크스는 몇 블록씩 몇 킬로미터씩 펼쳐진 폐허였고, 맨해튼의 몇몇 동네도 그랬으며, 전국 곳곳의 공공 주택 단지 사업은 붕괴한 상태였고,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경제의 핵심이었던 선적 부두들은 버려진 곳이 많았으며, 샌프란시스코의 널찍한 서던퍼시픽철도회사 조차장과 가장 눈에 띄는 두 양조장도 마찬가지였다. 빠진 이 같은 공터는 우리가 자주 오가던 거리에 거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폐허는 어디에나 있었다. 부자들이, 정치가, 미래의 전망이 도시를 버렸기 때문이다. 도시의 폐허들은 그 시기를 상징하는 장소였고, 펑크록 미학의 일부를 제공한 장소였다. 그리고 대개의 미학이 그렇듯이 이 미학에도 고유의 윤리가, 즉 어떻게 행동하고 살 것인지를 지시하는 세계관이 담겨 있었다.
(/ pp.126~127)

어쩌면 세 특징이 아니라 세 장소로 마린을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를 형성했으나 우리가 비웃고 달아났던 교외 주거 지역, 마린이 불완전하나마 집으로 삼았던 밤의 도시, 서정적 유럽 문화의 세상이자 우리의 유년기 뒷마당 너머에 펼쳐져 있던 언덕의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원.
(/ p.140)

첼시 부두의 웹사이트는 1976년부터 현재 단계가 시작된 1992년 사이의 역사는 소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첼시 부두는 운명이 다시 부를 때까지 항구의 바람을 맞으면서 그저 가만히 녹슬어가고 있었습니다.” 웹사이트는 그렇게만 말하지만, 사실 부두는 그저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특별한 성적 지향을 갖고 있거나 사회에서 따돌림 당하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가죽옷을 입은 사도마조히스트나 그물 옷을 입은 크로스드레서나 부랑자나 중독자가 임시 자치 구역이 된 그곳을 제 집으로 삼았다.
(/ p.149)

교외 지역은 내 앞 세대에게 일종의 진정제였다. 획일적인 랜치하우스들, 완만하게 굽어서 막다른 골목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곡선의 거리들, 그 동질성, 반복성, 예쁘지만 공허한 지명들은 모두 가난과 갈등의 절박함을 지우고자, 공동 주택과 군대 막사와 이민자 수용소와 소작인의 판잣집을 지우고자 설계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우기를 바랐던 것을 우리는 도로 발굴해서 우리의 지하 세계 문화로, 은신처로, 정체성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부모 세대의 최면을 떨쳐버리고 조부모 세대의 세상을 찾아 나섰으니, 사실 우리도 사라진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에서, 절박함과 결핍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시가 우리에게 제공한 것이 바로 날카로운 해독제, 모든 가능성 속에서 말짱하게 깨어 있을 가능성이었다.
(/ pp.152~153)

그러던 어느 해 봄, 그 음악이 느닷없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그 장르에서 가장 유명한 곡들은 에드거 앨런 포나 캐서린 앤 포터의 단편들처럼 비극이나 지형과 사랑에 빠진 일종의 남부 고딕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충격 받았다. 생각해보면, 상실의 쓰라림을 노래하는 그런 곡들이 전파를 지배했던 시절은 어땠을까? 어쩌다 그런 노래들이 그야말로 진부한 오늘날의 밝은 컨트리 음악으로 슬며시 변했을까?
(/ pp.159~160)

세상에는 반항적인 힘을 가진 노래들이 있다. 그 점에서 최고는 역시 블루스에서 파생된 장르인 로큰롤이다. 그런 노래는 젊음의 노래이자 세상이 시작되는 시점의 노래, 자신의 잠재력을 똑똑히 아는 노래다. 반면에 컨트리 음악은, 적어도 옛 컨트리 음악은 주로 어떤 일이 끝난 뒤 남은 여파를 노래했다. 그런데도 계속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노래했고, 아니면 자신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은 순간을 노래했다. 블루스가 록보다 더 깊다면, 그것은 실패가 성공보다 더 깊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훈을 얻는 것도 주로 실패에서다.
(/ p.167)

「현기증」은 남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될 때는 낭만의 안개가 짙게 낀 이야기이지만, 여자의 시점에서는 오히려 사라지도록 강요받는 이야기다. 종탑 꼭대기에서 사라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연이어 만난 두 연인이 둘 다 제 목적을 달성하고자 여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려 한다는 점에서 여자는 제 삶으로부터 사라지도록 강요받았다. 이런 비극은 현실에서도 흔하다.
(/ pp.197~198)

당신이 눈앞의 가파른 비탈길만 바라보며 걸을 때도 있지만, 그러다가도 뒤로 빙글 돌거나 잠시 멈추면 세 방향으로 펼쳐진 광활함을 볼 수 있다. 당신이 전진할 때 당신의 등을 덮고 있던 무한한 공기의 망토를 볼 수 있다. 해발 3900미터쯤 오르면 마침내 도달하는 곳은 그다지 극적인 변화라고 할 수 없는 산 정상이 아니라 산등성이다. 휘트니산은 긴 산등성이 중 가장 높은 지점일 뿐이다. 능선에 발을 올리는 순간, 눈앞에서 갑자기 서쪽 세상이 펼쳐진다. 동쪽보다도 더 멀고 더 야생적인 광활한 영역이 놀라움으로, 선물처럼, 계시처럼 펼쳐진다. 세상이 갑자기 두 배가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볼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 p.213)

단어들 사이에는 침묵이 있고, 잉크 주변에는 공백이 있고, 모든 지도의 정보 이면에는 지도로 그려지지 않았고 그려질 수 없어 누락된 정보가 있다. 요즘 특정 지역이나 나라를 심층적으로 보여주는 지도들, 가령 인종 분포나 교육 수준이나 주요 작물이나 외국인 인구를 알려주는 지도들은 어떤 장소이든 무한히 다양한 방식으로 지도화될 수 있다는 사실과 모든 지도는 대단히 선택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라스베이거스는 매달 새 도시 지도를 발행한다. 도시가 워낙 빠르게 성장하는 터라 배달원들이 지속적으로 거리 정보를 업데이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지도는 대상에 완벽하게 상응할 수 없다는 사실, 설령 풀잎 한 장까지 정확하게 그린 지도라도 풀잎이 베이거나 짓밟히는 순간 정확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 p.226)

클랭은 이전에도 늘 구별하고 나누는 행위에 반대했고, 회화에 쓰이는 선조차 비난했으며, 그 대신 모든 것을 통합하는 색의 힘을 칭송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배와 용이 그려진 옛 지도들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결국 그것들은 제국과 자본의 도구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내 친구 하나가 했던 말을 빌리자면, 과학은 자본주의가 세상을 아는 방식이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구분과 세부는 무엇보다도 먼저 상인과 군사 원정을 위한 것이었다. ‘미지의 땅’으로 표시된 곳은 아직 정복되지 않은 곳이라는 뜻이었다. 클랭은 온 세상을 파랗게 칠함으로써 세상을 더 이상 나눌 수 없고 정복할 수 없는 미지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격렬한 신비주의적 행위였다.
(/ p.236)

추천사

어떤 책은 ‘이 작가가 지닌 감성의 엔진이 여기 다 모여 있구나.’ 하는 은밀한 발견의 기쁨을 준다. [길 잃기 안내서]가 바로 그런 책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젊은 시절 폭발했던 솔닛의 감성과 재능, 그녀와 함께 열정을 불태운 친구들의 소중한 이야기, 그 안에서 비 온 뒤의 찬란한 무지개처럼 피어나는 풍요로운 사유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토록 멀리 있는 작가 리베카 솔닛과 바로 지금 여기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 정여울 / 작가

길을 잃는 것이 낯선 것들과 만남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제는 길이 없다는 절망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결사적으로 읽었다. 길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길임을 깨달았다. 추구와 계속적인 실패, 다른 길의 모색. 어차피 인생에서 방황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이 책은 끊어질 길의 운명을 두려워하지 않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길을 이으려는 솔닛의 사유이다. 그녀만의 생각의 힘, 표현력에 독자로서 감사와 부러움을 숨길 수 없다.
- 정희진 / 여성학 연구자, [낯선 시선: 메타젠더로 본 세상]

길을 잃었다고 낙담하며 지냈다. 길을 잃게 된 것을 받아들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 책을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나는 이상하고도 먼 곳에 버려져 있었다. 아주아주 먼 곳에 남겨진 것 같았다.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몸에 피가 돌고 심장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길을 잃고서 얻는 기쁨. 이 이상하고 야릇한, 완전한 기쁨. 길을 잃어야만 조우할 수 있는, 거의 잃어버릴 뻔한 세계. 이것은 내가 알고 있던 기쁨이 아니라 내가 찾고 있던 기쁨이었다.
- 김소연 / 시인

사적 회고록, 철학적 사색, 자연에 대한 전래의 지식, 문화사, 그리고 예술 비평이 결합한 흥미로운 글.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길 잃기의 즐거움과 두려움에 관한 명상인 이 책은 그 자체 방랑의 연속으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경치들이 펼쳐지는 길로 우리를 이끈다.
- [뉴요커]

이 책은 자신을 잃는 일, 그럼으로써 익숙한 것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 발견하는 일을 이야기한다. 솔닛에게 길 잃기는 단순한 육체적 상황만이 아니다. 길 잃기는 우리가 받아들이고 탐사해야 할 마음의 상태이고, 세상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좀 더 많이 발견하도록 해주는 문이다.
- [댈러스 모닝 뉴스]

상실이 발견이 된다는 역설, 자신을 잃음으로써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역설, 이것이 이 책의 주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책을 낳은 계기다. 솔닛의 글은 묘사적이면서도 명상적이다. 서정적이거나 시적이고, 가끔은 감동적일 만큼 환기적이다.
- [샌디에이고 유니언 트리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이 캘리포니아 작가가 지금까지 쓴 책 중 가장 개인적인 책이다. 솔닛은 늘 그렇듯이 자연의 미묘한 뉘앙스를 한없이 예민하게 감각하지만, 이 책에서는 솔닛 자신의 마음과 역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떤 풍경에 대해서든(심지어 아무 풍경이 없는 풍경에 대해서도) 펼쳐지는 솔닛의 지성에 감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이 풍기는 연기를 조금만 맡고도 며칠 동안 길을 잃을 것이다.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이 책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것에서 실체적인 것까지 모두 아우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스러운 글들은 솔닛 자신의 경험이라는 거친 땅에서 나온다. 솔닛은 개인적 상실을 뿌리 덮개로 잘 덮어 멜랑콜리와 자기 성찰로 키워낸 뒤, 그것을 다른 곳에 옮겨 심어서 뜻밖에도 하늘을 찌를 만큼 높은 나무로 길러낸다. 우리가 자신을 잃기 위해서 맨 먼저 가야 할 곳은 우리의 마음속 미지의 땅이라고, 솔닛은 거듭 말한다. 비실용적이지만 아름다운 이 책은 그 여행의 나침반이 되어준다. 주머니에 쑤셔 넣어 가져갈 가치가 충분하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타임스]

솔닛은 이전에도 정치적 경험으로서의 걷기에 대해 썼고, 사막에 대해 썼고, 자신을 잃고 길을 잃는 것에 대해서도 썼지만, 서로 연관된 에세이들로 구성된 이 책은 유년기 장소, 가족, 우정, 도시의 폐허, 광기 혹은 사막의 사랑 등 자신의 상징적인 이야기들이 더해져서 더 높이 날아오른다. 그리하여 이 책은 몇 번이고 거듭 마음을 열고 미지를 만나는 회고록이 된다.
- [오리거니언]

목차

추천의 말

1 열린 문
2 먼 곳의 푸름
3 데이지 화환
4 먼 곳의 푸름
5 방치
6 먼 곳의 푸름
7 두 개의 화살촉
8 먼 곳의 푸름
9 단층집

참고 자료
옮긴이의 말

저자소개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1~
출생지 -
출간도서 11종
판매수 2,820권

예술평론과 문화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1980년대부터 환경·반핵·인권운동에 열렬히 동참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으로 [멀고도 가까운] [걷기의 인문학] [어둠 속의 희망] [이 폐허를 응시하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등이 있으며, [그림자의 강]으로 전미도서비평가상, 래넌문학상, 마크린턴역사상 등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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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카이스트 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환경정책을 공부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편집팀장을 지냈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로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비커밍]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면역에 관하여] [휴먼 에이지]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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