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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시위 : 한 사람이 시로 할 수 있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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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과 미국의 두 현대시인이 벌이는 포에트리 슬램 배틀
그 미학적 전투에서 드러나는 한국사회의 민낯

낭독이란 원래 인간의 목소리로 전달돼온 공명
랩이란 고통 받는 삶 속 가장 현대화된 고백 양식
세상을 흔드는 목소리, 포에트리 슬램

시와 랩이 만나 폭발적인 힘을 분출한다. 얼핏 보면 내밀한 자기 고백을 진술하는 시와 솔직하고 분방한 언어로 행동하는 랩은 너무나 달라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언어예술의 최전방에서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운율을 실험해온 현대시는 ‘가장 현대화된 고백 양식’으로서의 랩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이러한 문학적인 랩, 혹은 비트 위의 시는 “포에트리 슬램”으로 불리며 미국과 유럽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인 셰인 코이잔Shane Koyczan이 집단 괴롭힘에 반대하는 내용의 포에트리 슬램을 낭독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은 2,00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고, 그의 영향으로 TED에서도 포에트리 슬램이 주효한 방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책은 포에트리 슬램 그룹 ‘포에틱 저스티스’가 한국사회 격변의 단면들을 시와 랩으로 포착해 퍼포먼스해온 캠페인 ‘일인시위’의 결과물이다. 현대시단과 힙합계의 최전선에서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동시에 받아온 김경주 시인과 MC메타, 그리고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과 미국의 현대시인 제이크 레빈이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기존의 시 낭송 형태와 완전히 다른 무대와 워크숍을 통해 시와 랩의 연결점을 모색해왔다. 이 책과 함께 MC메타가 직접 녹음해 한정 발매하는 《포에틱 저스티스 믹스테이프》는 4년의 퍼포먼스 끝에 얻은 텍스트와 시각 자료를 엮어낸 것이다.

출판사 서평

한국과 미국의 두 현대시인이 벌이는 포에트리 슬램 배틀
그 미학적 전투에서 드러나는 한국사회의 민낯

감각을 확장하는 언어적 전위를 계속해오며 문학과 음악의 경계를 자주 허물었던 김경주는 이번에는 예술가 그룹을 통해 시가 발화하는 새로운 양식을 실험한다. 이 책의 시 혹은 포에트리 슬램으로 불러야 할 텍스트들이 형식적인 면에서 랩의 라임과 플로우를 고려했다면, 시의 내용은 2016부터 2018년까지 촛불 혁명을 기점으로 거대한 정치적, 사회적 전환을 맞이한 한국사회를 관통한다. 용광로에 빠져 허망하게 삶을 마감한 청년을 다룬 <용광로에 빠진 눈사람>부터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노인의 고독사를 다룬 <단독생활동물>까지, 청년의 죽음부터 노인의 죽음 사이에는 소수자, 미세먼지, 취업, 젠트리피케이션, 동물복지 문제 등 현대사회의 틈에서 발견한 웃기고 슬프고 뻔뻔한 사건들이 펼쳐져 있다.
구성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주제를 놓고 한국과 미국의 두 현대시인이 포에트리 슬램 배틀을 벌이는 식인데, 열한 곳의 전선에서 벌어지는 미학적 전투에서는 예상치 못한 인식의 차이가 드러나기도 한다. 전선들이 한국사회에서 치명적이었던 것만큼 한 방향으로 굳어졌던 우리의 인식과는 다른 제이크 레빈의 관점과 표현은 흥미로운 지점들을 생성하고 있다. 가령 평창 롱패딩 열풍에서 착안한 <사라지는 엉덩이의 계절>에서 그는 롱패딩에 가려진 엉덩이에 집중한다. 레빈의 시어가 지니는 의미는 자주 그 대상을 훌쩍 뛰어넘는데, 유행에 맞춰 똑같은 패딩을 입는 행위는 저마다 무한하게 열려 있는 우리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과 같다며 이를 “엉덩이는 인간의 기회다.”라고 쓴다. 사라지는 엉덩이는 사라지는 자신이다.
시에서 랩으로의 전이
그것은 활자들이 연기처럼 소리가 되는 경험이다

포에트리 슬램은 시 낭독과 랩 공연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퍼포먼스의 한 형태로, 높낮이가 뚜렷한 강한 어조와 적극적인 몸짓, 여러 도구를 동원해 어떤 텍스트든 그 전달력을 놀랍도록 끌어올린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 안에 숨은 시적 리듬을 복원하고자 한다. 이 책에 수록된 시 역시 기존의 눈으로 읽는 방식에 머물지 않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낄 때 화자의 의도를 더욱 정확히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 실린 시들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장웹진>에 연재될 때, MC메타가 이 시들을 랩으로 바꿔 부른 영상도 함께 발표되었다. 시를 랩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대해 MC메타는 이렇게 말한다.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듯, 질서 속에서 로우raw한 에너지를 보듯 나는 단어와 문장을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때로는 더듬어도 보고 때로는 헤집어도 보고 철없는 아이처럼 여기저기 어떤 소리가 나는지 들쑤셔보았다. 그러다 통로를 찾으면 그대로 밀고 나갔다.”(본문에서)
물론 모든 시와 랩에서 공통분모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처럼 시인과 래퍼가 일상적인 공간에서 서로의 말들을 괜스레 들춰보고 자신의 운율이나 비트 위에 얹어보는 일이 반복될 때 또 다른 예술의 한 방식이 생겨나는 것일지 모른다. 형식과 권위에 매몰되지 않고 숨겨진 인간성과 그 리듬을 찾는 일에 헌신하는 예술가들의 서로를 넘나드는 실험,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목차

[들어가며] 새로운 시적 선언 - 김경주
[발문] 시는 늘 음악의 상태를 동경하는 문학인 것이다 - 김봉현
[시를 믹스테이프로 옮기며] 활자들이 연기처럼 소리가 되는 경험 - MC메타

1 용광로
용광로에 빠진 눈사람
앞이나 뒤나
The Snowman that Fell in the Blast Furnace
heads or tails

2 미세먼지
황사마스크를 쓴 무하마드 알리
나는 원해, 사랑해 먼지
Dust Mask Wearing Muhammad Ali
I Want You, Dear Dust

3 소수자
“바츠해방전쟁”의 내복단을 위한 선언문 - 소수자
마이너리티 리포트
“Lineage 2: Barth’s War of Independence” Underwear Declaration
Minority Report

4 취업난
캥거루족
어두움 주식회사 - 취업에게
Kangaroo Family
Darkness Inc.

5 디지털증후군
나는 수퍼 데드리프 8세트
픽셀이 죽었어 - 디지털 조현병에 대하여
I Am Super Deadlift 8 Sets
Generation Thigh Gap

6 월세
월세
고양이 천국에서
Monthly Rent
In Cat Heaven

7 계란파동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 계란 후라이에
동물 전시회 - 조류 독감에 관하여
To the Egg Fry, Everybody Fold Up Your Blankies and Eat
The Animal Exhibition - On Avian Influenza

8 롱패딩 열풍
날아라 거위
사라지는 엉덩이의 계절
Fly Goose Fly!
Season of the Disappearing Butts

9 비선실세
박근hell
박근헬, 삼성 왕국에 살고 있는 아마추어 시인이자 영어 선생님의 사랑 노래
Park Geun Hell
In Park Geun Hell, the Samsung Kingdom English Teacher / Amateur Poet

10 젠트리피케이션
빈방이씀 - 침수(沈水)된방에서
올리브영 짬뽕 - 고급화 바람
Room Vacancy - For a flooded room
Olive Young 짬뽕

11 고독사
DNR
단독생활동물
DNR
Solitary Animals

[해설] 시로 하고, 시가 되는 - 허희

본문중에서

글쓰기의 영역에서도 소리의 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가진 문학의 자장력이 눈으로만 읽는 문학에서 들리는 문학으로 열리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리가 살아 있지 않은 문학은 생명성이 사라지고, 제도나 권력의 산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슴의 것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문학은 늘 소외를 낳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는 애초부터 특정한 장르가 아니었다. 인류의 모국어이며 인간 안에 숨어 있는 리듬이기 때문이다. 포에트리 슬램 운동은 이러한 본래의 시적 리듬을 다시 복원하자는 뜻에 동참한다.(...)
낭독의 흐름을 현대적으로 이어왔다는 점에서 포에트리 슬램은 랩과 시의 연결 고리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이제 랩은 가장 현대화된 고백 양식이다. 현대의 시 낭독이 비트 위에서 출렁거릴 때 그것은 랩이기도 하며 이미 시(포에트리 슬램)이기도 하다.
_10~11쪽, 새로운 시적 선언 “포에트리 슬램”

용광로에 빠진 눈사람
Poetry Slam Text by 김경주

1
내가 용광로에 빠진 날
내 몸은 사라졌어.
뜨거운 쇳물에 모두 녹아버렸지.
뼈 한 조각 남지 않았지 물론
내 이름도 남지 않았지 물론
너는 내 이름도 기억 못하겠지만
가슴이 아파. 어머니에게 머리카락 한 가닥 손가락 한 마디
남기지 못했으니까.
내 잘못은 이 세상에 나와 발을 헛딛었을 뿐
용광로에 빠진 눈사람이 되어버렸지.

2
나는 너무 뜨거워서 이제 눈사람이 되었어.
내 몸은 다 녹아내려서
당신이 밥 먹는 숟가락이 되었을까.
내가 일하던 공장은 철강공장.
나는 당신 집의 젓가락들이 되었을까.
내가 일하던 공장은 하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철강공장.
내 잘못은 이 세상에 나와 발을 헛딛었을 뿐.
내 심장의 용광로는 식어버렸어.

3
꿈속에서 어머니 나는 내 손가락들을 세어봐요.
당신이 내가 태어난 날 세어보던 그 손가락들을
나는 뼈까지 다 녹아서 사라졌으니까요.
어머니 당신과 함께 한 번만 더 숟가락을 쥐고 밥을 먹고 싶어.
꿈속에서 너무 무서운데 공장에 출근하는 꿈을 꿔.
눈물이 나오는데 공장에서 숟가락이 되어 나오는 꿈을 꿔.
꿈속에서 기계들이 눈사람들을 쇳물에 빠뜨리고 있어.
눈사람은 쇳물로 들어가서 철강제품이 되어 나와.
새벽에 일어나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는 그 사람들은
사람이 녹아 있는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국을 떠먹지.
어머니 당신의 용광로에서 나온 사람은
이제 숟가락이 되어 차갑게 부엌에서 뒤집어져 있어.
누군가의 밥에 닿아 누군가의 눈물에 닿아
조금씩 나는 다시 녹아내릴 테니까.
나는 조금씩 발을 헛딛었을 테니까.

_30~31쪽, 용광로에 빠진 눈사람

앞이나 뒤나 -거지같은 위험한 일을 하다가 사고로 녹아 죽어버린 청년을 위해서
Poetry Slam Text by 제이크 레빈

별들은 하늘을 늘려 칭칭칭
녹아내리는 동전 속 이순신들의 혀 위 돌기에 물이 증발하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 내가 탄 아궁이 속에서 배운 것이다.
내가 타 없어지면서 내가 태워 없앤 소리.
이 세상 반짝반짝이는 하늘의 어둠.
나는 내 눈을 녹이기 위해 필요한 온도와 눈을 마주쳤다.
전기가 모든 은행 스크린 속의 픽셀들을 스파크 하듯이
바닷가에서 타르를 쓴 채 타고 있는 물개들의 비명처럼
연기처럼
인간의 손이 처음으로 부딪힌 부싯돌처럼
번뜩임이 너의 얼굴을 각인시킨다.

내 삶의 헐떡임
잊기 위해 나는 연소한다.
공기 없이도.
나를 연소시킨 사람들을 잊기 위해
나는 연소한다.

_32쪽, 앞이나 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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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생년월일 19760714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다.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야설작가, 대필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면서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냈고, 이 시집으로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다'라는 평과 함께 문단과 대중에게 큰 바람을 일으켰다. 서강대 철학과 재학시절 친구들과 만든 독립영화사 '청춘'을 확장 개편한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츄리닝바람'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인디문화를 제작하고 개발하며 공연기획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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