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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소금처럼 그대 앞에 하얗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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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가 조용히 사는 오늘이 켜켜이 쌓여 일생이 된다
백석의 「적경」부터 김소연의 「먼지가 보이는 아침」까지
삶의 끝, 인생의 완성을 노래하는 60편의 시

밥 시, 돈 시, 짧은 시 등 국내의 다양한 명시들을 소개해온 정끝별 시인이 ‘나이 듦’을 테마로 한 시 에세이 『삶은 소금처럼 그대 앞에 하얗게 쌓인다』를 출간한다. 시선평론집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가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가장 많이 사랑받은 시집 20권 안에 드는 등 문학평론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 2017년 1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조선일보≫에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일소일노)」라는 코너로 연재한 글 중 60편을 선정, 보완하여 엮은 이번 선집에는 김소월, 정지용, 백석 등 고전처럼 읽혀온 시인의 작품부터 황인찬, 박준, 김민정 등 젊은 시인의 작품까지 고루 담겨 있어 시인의 폭넓은 안목이 돋보인다.
시인은 시 속의 구절을 자유롭게 인용, 변주하며 각각의 시에 짧은 감상을 덧붙인다. 나이가 들면서 “피로를 알게 되고(김수영)” “슬픔의 글씨를 쓸 줄 알게 되는(이기성)” 낯선 시간들이 찾아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가장 적은 나이(황인숙)”이며 “나이 안 먹으면 죽는다(정양)”는 것,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정현종)”라는 시의 언어를 통해 여전히 빛나는 현재를 누리며 살아가야 할 것을 강조하는 시인은, 살아있는 것들은 하얗게 늙어가고 지나간 것들은 소금의 결정체처럼 하얗게 쌓인다는 시적 비유를 통해 세월을 지나온 사람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흰빛’에서 생의 신비로움과 존엄성을 찾는다.
전체 6개의 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제1부 모든 인간의 미래’에는 나이 듦의 풍경이, ‘제2부 뭘 해도 예쁠 나이’에서는 그 자체로 소중한 ‘삶’을 노래한다. ‘제3부 한 채의 집, 한 권의 책’에서는 우리 주변의 노인들을 돌아보고, ‘제4부 갔지만 남는 것’에서는 세월과 함께 마주하는 이별과 상실을 들여다본다. ‘제5부 예정된 답장’에서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단상들을, ‘제6부 배우는 중, 완성 중’에서는 잘 늙어가는 삶의 지혜를 소개한다. 각 부의 사이에 한 토막씩 들어간 산문 ‘시간을 넘어서는 것들’에는 시인의 자기 고백적 이야기와 함께 흐르는 시간에 호응하는 자세를 조언한다.
누구에게나 나이 먹는 일은 낯설고 두렵고, 때로는 사무치게 슬픈 일이기에 시인은 늙음과 죽음의 어두운 면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깊은 슬픔을 전달하는 시를 소개하며 직시하고 응시하게 한다. 동시에 그만큼 삶이 더 소중해지는 것임을, “늙은 꽃(문정희)”이 존재하지 않듯 살아있다면 여전히 한 꽃이라는 것 또한 잊지 말기를 당부한다. 60편의 시와 함께 “그득한 적막 속에서 겨울을 함께 저물어가는 공감의 쓰담쓰담!”을 외치는 시인의 응원은 아득한 미래에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제1부 모든 인간의 미래
모든 인간의 미래│장석주, 「무심코」
먹어야 산다│정양, 「그거 안 먹으면」
피로와 필요│김수영, 「달밤」
고였다 뻗어간다│조원규, 「주름」
늙어가는 일상│이기성, 「스틸 라이프」
물이 빠질수록│박준, 「파주」
적막 속의 어루만짐│김종삼, 「묵화」
아플 때 단풍 든다│기형도, 「병」
하얗게 이월하다│박상수, 「돌고래 숲」
생의 시작과 끝│이승훈, 「어머니」

시간을 넘어서는 것들 1_ 백련 아니 백년의, 약수터 길을 오르내리는

제2부 뭘 해도 예쁠 나이
시간이여 입을 열어라│정현종, 「벌써 삼월이고」
잉잉대고 앙앙대며│김민정, 「근데 그녀는 했다」
뭘 해도 예쁠 나이│황인숙, 「송년회」
피어있을 때 꺾으라│문정희, 「늙은 꽃」
절뚝대는 동행│손세실리아, 「진경」
사랑대는 춤사위│황동규, 「춤추는 은하」
죽기 살기로 해야 할 일│이영광, 「죽도록」
잘 익은 김치처럼│오세영, 「겨울의 끝」
고수의 위엄│김남조, 「노병」
사람이다, 사랑이다│김현, 「형들의 사랑」

시간을 넘어서는 것들 2_ 앙스트블뤼테와 말년의 양식

제3부 한 채의 집, 한 권의 책
누군가는 내린다│황인찬, 「서클라인」
고단함 속 작은 구원│최동호, 「파 할머니와 성경책」
혹독한 기다림│김윤배, 「헌 집」
모두를 아우르는 접두어│문태준, 「개복숭아나무」
한 채의 집, 한 권의 책│이정록, 「짐 ―어머니 학교 6」
입말이 꽃피운 경지│서정주, 「눈들 영감의 마른 명태」
마지막 유업│곽효환, 「벌초를 하며」
주저앉고 싶다│김명인, 「너와집 한 채」
노인의 겨울밤│박용래, 「월훈」
갈수록 부족한│이근배, 「많지, 많지 않다」

시간을 넘어서는 것들 3_ 백 년이나 이백 년 후면

제4부 갔지만 남는 것
빈 젖 빠는 소리│박형준, 「달 속에 두고 온 노트」
금세 슬픔이 번식한다│진은영, 「인공호수」
죽을 곳을 선택할 수 있다면│장철문, 「다시 바라나시에 와서」
옆구리에 찬샘 파이듯│송재학, 「천남성이라는 풀」
엇박자의 맞물림│최정례, 「회생」
타들어가는 시간│허수경, 「포도나무를 태우며」
피안의 강가│박목월, 「이별가」
서쪽 바다에서│안도현, 「줄포만」
늘어가는 상실│김병호, 「잘 모르는 사람」
하나둘 떠난 자리│홍신선, 「가을 맨드라미」

시간을 넘어서는 것들 4_ 모든 인간의 미래는 노인의 미래다

제5부 예정된 답장
홀로 죽지 않는다│백석, 「적경」
예정된 단 하나의 답장│이장욱, 「우편」
지독한 참상│이진명,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갔지만 남는 것│박인환, 「세월이 가면」
숨 공동체│김혜순, 「질식 ―마흔엿새」
최후의 보루│김소월, 「삼수갑산」
벼랑을 감추기 위해│천수호, 「하관」
바람이 불면│허연, 「바람의 배경」
사각사각 차오르는│남진우, 「달이 나를 기다린다」
가지 않은 발│문혜진, 「빈」
일상처럼 살가운 죽음│최승자, 「가봐야 천국이다」

시간을 넘어서는 것들 5_ 백세시대, 백발성성

제6부 배우는 중, 완성 중
모르고 사는 게 제값│최일화, 「나잇값」
발끝에서 오는 극락│김소연, 「먼지가 보이는 아침」
감자 한 알의 한 소식│조오현,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마침이 좋다│이희중, 「끝나지 않는 노래」
미리미리 준다│정호승, 「사랑」
하이얀 단단함으로│정지용, 「인동차」
언 밥 한 그릇의 삶│신달자, 「서늘함」
따지지 말고 누리길│김행숙, 「노인의 미래」
배우는 중, 완성 중│심보선, 「말년의 양식」

나오는 말
작품 출처

본문중에서

벌써 삼월이고
벌써 구월이다.

슬퍼하지 말 것.

책 한 장이 넘어가고
술 한 잔이 넘어갔다.

목메이지 말 것.

노래하고 노래할 것.
―정현종, 「벌써 삼월이고」 전문

삼월이 넘어간다. 이제 곧 장미도 밤꽃도 필 것이고, 금세 구월도 넘어갈 것이다. 휘리릭 휘리릭, 술 술. 우리에겐 늘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고, 사랑할 사람도 많지 않다. 사랑을 노래하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시간, 그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인 까닭이다. 그러니 김수영의 시를 빌려 이렇게 얘기하겠다, 시간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나는 사랑의 노래를 발견하겠다!
―「시간이여 입을 열어라」 중에서

삶은 소금처럼
그대 앞에 하얗게 쌓인다

삶은 소금처럼
그대 앞에 하얗게 쌓인다

쭈글거리는 내 몰골이 안돼 보였던지
제자 하나가 날더러 제발
나이 좀 먹지 말라는데
그거 안 먹으면 깜박 죽는다는 걸
녀석도 깜박 잊었나보다
―정양, 「그거 안 먹으면」 부분

아, 나이를 먹지 않으면 죽는 거였다! 약도 그렇고. “그거 안 먹으면” 죽는 거, 또 뭐가 있지?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고, 꿈도 무럭무럭 먹어야 하고, 마음도 매일매일 다잡아먹어야 하고, 때로는 화장도 겁도 물도 좀 먹어야 한다. 그게 사는 일이다.
그러나 ‘그거 많이 먹으면’ 진짜로 죽는 것들도 있다. 뇌물이나 검은돈이 그렇고, 연탄가스가 그렇고, 벌점이나 경고나 욕이나 주먹이 그렇다. 그거 먹지 않고 사는 거, 그게 또 나이 먹는 기술일 것이다.
―「먹어야 산다」 중에서

겨울이 오자
풀잎들이 서둘러 사후 시신기증서를 써서 내게 전해준다
시든 꽃잎들도 사후 각막기증서를 써서 어머니에게 전해준다
나도 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들에게 사후 시신기증서를 써서 건네준다
―정호승, 「사랑」 부분

세상에서 사랑이 제일인 것은 줄 수 없는 것을 주고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혹은 그 무엇에게 마음을 기증하고 몸을 기증하고, 시간을 기증하고 기억을 기증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기증이든 증여든, 장기든 시신이든, 살아있든 죽든, 전해주든 건네주든, 사랑은 주는 것이다. 죽음이야말로 완벽하게 주는 것이다.
꽃이, 봄이, 삶이, 사랑이 아름다운 건 다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할 때, 살아있을 때 미리미리 주고 죽고 나서 줄 것들로 미리미리 서약해두어야 한다.
―「미리미리 준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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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정끝별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641128

1964년 11월 28일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 시 부문에,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각각 당선돼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과 시론/평론집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시선해설집 '시가 말을 걸어요', '밥',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등이 있다. 유심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명지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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