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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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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소설가는 헤매고 또 헤매는 사람입니다”
    [침묵]의 엔도 슈사쿠가 쓰고 읽고 들려주는 구원의 소설, 소설의 구원

    그리스도교 문학의 정점 [침묵]의 작가, 일본의 대문호 엔도 슈사쿠의 강연집. 대표작 [침묵]을 비롯한 [사무라이] [스캔들] 등 자신의 작품에 얽힌 창작 비화와 집필 의도, 프라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와 그레이엄 그린의 [사건의 핵심],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등 20세기 유럽 문학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엔도 슈사쿠의 목소리로 듣는다.
    이 책의 원제 ‘인생의 후미에’에서 ‘후미에’는 에도시대 그리스도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예수상이나 성모 마리아상을 동판에 새겨 나무판에 끼워 넣은 것으로, 이를 밟으면 용서받지만, 밟지 않으면 곧바로 죽임을 당하거나 고문을 받는다. "인간은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다"며 엔도는 신념을 배반해야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약점과 슬픔을 위로하고, 자신의 인생관, 종교관, 문학관을 들려준다.

    출판사 서평

    엔도 슈사쿠가 쓰고 읽고 들려주는 구원의 소설, 소설의 구원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었다” 엔도 슈사쿠, [침묵]
    “모리아크는 테레즈를 구원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프랑수아 모리아크, [테레즈 데스케루]
    “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성인을 제외하면 죄인이다” 그레이엄 그린, [사건의 핵심]
    “인간 누구에게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 있다” 쥘리앵 그린, [모이라]
    “마지막 대사 ‘이제 잠에서 깨어나야 해요’는 어떤 의미인가” 앙드레 지드, [좁은 문]
    “예수는 무력한 남자였고,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의지가 강한 사람과 나약한 사람은 같은 곳에서 만난다” 엔도 슈사쿠, [사무라이]
    “사회에서 부정당하는 자신이야말로 신이 안아주려는 대상이다” 엔도 슈사쿠, [스캔들]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가 쓰고 읽은
    여덟 편의 소설 속 약하고 슬프고 더러운 인간, 그 구원의 가능성

    [침묵] [깊은 강] [바다와 독약] 등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강연집이 출간되었다. 그동안 우리에게 엔도 슈사쿠는 ‘신과 구원의 문제’, ‘그리스도교의 아시아적 수용’이라는 묵직한 주제의 종교소설을 주로 발표한 작가로 알려졌었고, 간간이 밝고 유머러스한 산문과 대중소설도 출간되었으나 강연집이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 강연집에서 엔도는 자신의 대표작 [침묵]을 비롯한 [사무라이]와 [스캔들]에 얽힌 창작 비화와 집필 의도를 밝히고,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와 그레이엄 그린의 [사건의 핵심],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등 20세기 유럽 문학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와 인간의 모습을 위트 있는 말솜씨로 풀어나간다. 1966년부터 1986년에 걸쳐 기노쿠니야 홀과 ‘스튜디오 200’에서 진행했던 아홉 차례의 강연을 엮었다. 특히 자신의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과 소통하려는 엔도 슈사쿠의 모습과 뜨거웠던 반응도 확인할 수 있어 마치 현장에 앉아 엔도의 강연을 듣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밟아야 살 수 있다면 여러분은 밟겠습니까?“
    _자신의 꿈과 신조, 동경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들려주는 위로와 지침

    이 책의 원제 ‘인생의 후미에(人生の踏絵)’는 [침묵]의 독자가 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따온 표현이다. ‘후미에’는 에도시대에 그리스도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예수상이나 성모 마리아상을 동판에 새겨 나무판에 끼워 넣은 것으로, 이를 밟으면 용서받지만, 밟지 않으면 곧바로 죽임을 당하거나 고문을 받는다. 독자는 편지에서, 후미에 이야기는 자신과 관계없는 먼 시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읽다 보니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나름대로 ‘시대의 후미에’, ‘생활의 후미에’, ‘인생의 후미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각자의 후미에가 있기에 소설을 자신의 인생이나 생활에 투영해서 읽고 감동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인간의 약점과 그로 인한 고뇌, 슬픔을 알아주는 엔도의 말은 자신의 꿈과 신조, 동경하는 삶을 배신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된다.

    “에도시대 기리시탄의 후미에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 우리 역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기는 신조, 동경하는 삶, 그런 것을 흙 묻은 신발로 짓밟듯이 살아야만 했습니다. 전후(戰後) 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 역시 많든 적든 간에 자신의 ‘후미에’를 갖고 살아왔을 겁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 p.17)

    “우리는 순교한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배교한 사람들을 경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밟았을지 모르니까요.”
    (/ p.25)

    “저는 소설가라서 작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습니다”
    _소설가의 일과 고민: 진정한 인간을 그릴 것, 거짓 심리를 그리지 않을 것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저는 대설가(大說家)가 아니라 소설가라서 작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소설가 나부랭이’라 부르는 엔도 슈사쿠가 하는 이야기는 결코 작지 않다. 아니, 작기 때문에 커다란 의미와 울림이 있다. 소설가는 대설가가 아니기에 [침묵] 역시 타인이나 사회를 판단하는 것도 아니고 신학도 아니라고 한다.

    “역사가 침묵하고 교회가 침묵하고 일본도 침묵하는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생명을 주고, 그들의 탄식에 목소리를 주고,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조금이라도 말하게 하고, 다시 한 번 그들을 걷게 하며 그들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정치가나 역사가의 일이 아니라 역시 소설가의 일입니다.“ (25쪽)

    소설가 역시 보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알 수 없고, 인생의 수수께끼에 다가가고 싶어서 소설을 쓴다며 그는 소설가를 ‘헤매고 또 헤매는 사람’이라 부른다. 그렇게 헤매는 목적은 ‘인간의 진실’을 그리기 위함이며, 소설가가 어떤 주의나 사상의 올바름을 증명하기 위해 작품을 쓴다면 소설가의 의무를 등지는 것이라고 한다. “작중인물은 소설가가 조종하는 인형이 아니다”라는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말을 소개하며 엔도는, 그 말은 옳지만 현장에서 소설을 쓰는 소설가로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털어놓는다.

    “아무래도 제가 “우향우”라고 말하면 역시 작중인물은 오른쪽으로 향합니다. 제가 “좌향좌”라고 했는데도 작중인물이 “아니, 난 싫어. 여기서 왼쪽으로 도는 것은 인간의 심리에서 보면 거짓이야”라고 선언하며 멋대로 다른 방향으로 자꾸 가버리는 느낌은, 글쎄요, 서너 번밖에 경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 p.49)

    “그 함정의 일부분만이라도 소설에 쓸 수 있다면
    그 소설은 그리스도교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_그리스도교 문학이란 무엇인가

    엔도 슈사쿠는 소설가로서 진정한 인간을 그리기 위해서는 인간 내면의 어둡고 지저분한 부분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소설가가 그리스도교 신자인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에서 금기시하는 죄와 악도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자신을 우선시하여 그런 부분을 피해버리면 ‘그리스도교는 좋은 것’이라고 선전하기 위한 소설밖에 쓸 수 없다. 하지만 소설가의 의무로 그런 부분을 깊이 파고들면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자신이 파괴될지도 모른다. 소설을 쓰다보면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간접적으로 많이 맛보게 되며, 때로는 스스로 확실히 죄를 범했다고 느끼는 경우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작가들의 고민과 갈등이다.

    “만약 그리스도교 작가가 있다면, 그 또는 그녀는 인간의 아름답고 깨끗한 부분만 쓰는 게 아닙니다. 보통의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더러운 부분, 추한 부분, 눈을 돌리고 싶은 부분을 씁니다. 보통의 소설가와 다른 것은 그 작품 안에서 악이나 죄에 빠진 인간을 고독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돌파하고 지양해서 더욱 절대자로 향하는 지향을, 얽히고설킨 인간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 그리스도교 작가의 한 가지 일입니다.”
    (/ p.99)

    엔도의 말처럼 그리스도교 소설가라는 게 있다면, 자신의 주인공을 고독과 어둠 속에 내버려두지 않고 구원의 길, 빛의 세계로 이끌려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작가는 구원의 가능성을 어렴풋이, 신중하게, 상징적으로 한두 줄이라도 써넣기 마련이다. 엔도는 청중들과 함께 그런 부분을 찾아 읽어나간다. 행동으로 드러나는 심리보다 더 깊숙한 곳, 무의식을 넘어서는 내면이 바로 그런 부분에 나타나 있기에, 그렇게 깊숙한 내면까지 그려내 교향악적인 울림을 주는 작품이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교 문학이라고 이야기한다. 같은 맥락에서 죄나 악, 세상이 부정하는 자신의 모습 역시 신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려는 함정이라고 말한다.

    “어떤 죄 안에도 신을 지향하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고, 어쩌면 어떤 죄 안에도 신이 그 인간을 바로 옆으로 끌어당기려는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좀처럼 알 수 없지만, 작가가 그 함정의 일부분만이라도 쓸 수 있다면 그 소설은 그리스도교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 p.99)

    번역에 들어가기 전 이 책을 검토한 일본 인문, 소설 분야의 대표 번역가 송태욱은 “지금껏 많은 책을 검토해왔지만, 이 책만큼 망설이지 않고 추천하기로 한 책은 별로 없었다”며 “이 책의 내용 자체로 번역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내용이 많지만 이 강의를 즐기는 데 신앙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스도교 신자에게는 문학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일반 문학 독자에게는 소설을 맛있게 읽는 법과 창작의 비화를 듣는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또한 대략의 줄거리를 말해주며 이야기를 전개해가고 있어 이 책에서 소개된 작품들을 읽지 않았어도 강의를 즐기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진지한 자세로 소설을 읽어나가려는 독자들에게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목차

    인생에도 후미에가 있으니까 - [침묵]이 완성되기까지
    문학과 종교 사이의 골짜기에서
    | 첫 번째 강의 | 교향악을 들려주는 것이 종교
    | 두 번째 강의 | 사람이 미소 지을 때
    | 세 번째 강의 | 연민이라는 업
    | 네 번째 강의 | 육욕이라는 등산로 입구
    | 다섯 번째 강의 | 성녀로서가 아니라
    | 여섯 번째 강의 | 그 무력한 남자
    의지가 강한 자와 나약한 자가 만나는 곳 - [침묵]에서 [사무라이]로
    진정한 ‘나’를 찾아서
    옮긴이의 말

    본문중에서

    예수상이 새겨진 동판인 후미에를 밟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당시의 기리시탄에게는 자신이 가장 믿고 있는 사람의 얼굴,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 자신이 이상으로 여기는 사람의 얼굴을 밟는 일이었습니다. 예컨대 연인의 얼굴을 밟으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습니까? 안 밟으면 고문하고 죽여버리겠다고 한다면 밟겠습니까? 저라면 아내의 얼굴을 밟겠지만요.(강연장 웃음) 여러분, 지금 웃었습니다만, 이 부분이 이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에도시대 기리시탄의 후미에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 우리 역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기는 신조, 동경하는 삶, 그런 것을 흙 묻은 신발로 짓밟듯이 살아야만 했습니다. 전후(戰後) 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 역시 많든 적든 간에 자신의 ‘후미에’를 갖고 살아왔을 겁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 p.17)

    우리 소설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알 수 없고, 인생에 대해 결론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손으로 더듬듯이 소설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인생에 대해 결론이 나오고 미혹이 사라졌다면 우리는 소설을 쓸 필요가 없겠지요. 소설가는 헤매고 또 헤매는 사람입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고 손으로 더듬어가며, 인생의 수수께끼에 조금씩이라도 다가가고 싶어서 소설을 쓰는 겁니다.
    (/ pp.18~19)

    우리는 순교한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배교한 사람들을 경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밟았을지 모르니까요.
    그들도 인간인 이상,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을 침묵의 재 안에서 불러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침묵의 재를 긁어모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침묵’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아울러 저는 박해 시대에 그렇게 많은 탄식과 피가 흘렀는데도 왜 신은 침묵했을까, 하는 ‘신의 침묵’과도 겹쳐놓았습니다.
    (/ p.25)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아름다운 것이나 매력 있는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바보라도 가능하지만 퇴색한 것, 낡아빠진 것, 많이 봐와서 싫증난 것에 마음이 끌린다거나 계속 갖고 있는 데에는 재능과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잖아요.(강연장 웃음) 아니, 웃으면 안 됩니다. 인생은 모두 그런 것입니다. 인생은 매력 있는 것, 아름다운 것, 반짝이는 것이 아니기에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버린다는 것에는 자살이나 자포자기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만, 그런 식으로 인생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 p.28)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면 싱글벙글 히죽거리고 있지만 집에서는 가끔 ‘가스나 틀어놓고 죽어버릴까’ 생각합니다. 어차피 저는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고, 너무 오래 살아도 재미없을 겁니다. 하지만 자살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단 무섭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비겁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비겁하달까, 인생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p.29)

    우리가 함께 읽으려는 그리스도교 작가들, 프랑수아 모리아크와 그레이엄 그린, 조르주 베르나노스, 쥘리앵 그린은 어떤 주의나 사상의 올바름을 증명하기 위해 소설을 쓸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보통의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보통의 인간을 그리기 위해 소설을 썼습니다.
    (/ p.46)

    거듭 말하지만 진정한 인간을 그리고, 거짓 심리를 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모리아크는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진정한 인간을 그리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말하면 ‘어둡고 지저분한 부분’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소설가라면 그런 부분을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자신을 우선시하여 그것을 피해버리면 팸플릿 소설, 호교 소설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소설가의 의무로 깊이 파고들면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자신이 파괴될지도 모릅니다.
    (/ p.50)

    그레이엄 그린이 “성인을 제외하면 죄인이 바로 사물의 본질이다”라고 단언한 것은, 더러워진 인간의 행위, 죄를 범한 인간의 마음에 신이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종교가 아니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그레이엄 그린도 그런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신은 죄인에게 대답해줄 거라는 희미한 희망을 갖고 있었겠지요. 조르주 베르나노스는 “진정한 신앙은, 확실히 말하자면 99퍼센트의 의심과 1퍼센트의 희망이다”라고 썼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p.100)

    신은 결코 우리에게 안심입명(安心立命) 같은 걸 주지 않습니다. 싱글벙글 웃는 아버지 같은 얼굴로 안심입명해서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며 살고 싶다면, 그렇게 살 수 있는 세계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는 게 낫습니다.
    (/ p.101)

    인생은 결코 기쁜 것도, 즐거운 것도, 매력적인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닙니다. 실은 비루한 것이지요. 여러분도 여러 가지 경험을 해서 아시겠지만, 인생은 지저분해서 눈을 돌리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결코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맛보라고 하지요. 그것이 ‘예수를 본받는’ 일이며 인생이라고 보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근본 개념입니다.
    (/ p.110)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충동이 아닙니다. 정열이라든가 연민의 정이라든가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납니다. 그리스도교 용어로 그것을 ‘상태이지 행위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충동은 상태입니다. 선도 악도 아니지만, 사랑도 아닙니다.
    (/ p.116)

    육욕에 시달리는 남자든, 질투에 고심하는 여자든, 인색한 아저씨든, 많이 먹는 아주머니든, 사디스트나 마조히스트든 자신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부분에서 신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자신을 돌아보게 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저는 곧바로 교회의 목사님이나 신부님들로부터 야단을 맞을 겁니다. 아니, 물론 좋은 부분에서도 신은 여러 가지로 말을 걸어오겠지만 적어도 지금 제 생각으로는 인간의 가장 비루하고 약한 부분, 어떻게도 해볼 수 없는 부분을 통해 신은 말을 걸어옵니다.
    (/ p.138)

    그래도 계속 성서를 읽어오며 제가 깨달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첫 번째는 예수라는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굉장히 무력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분이었다는 생각이 성서에 일관되게 나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수가 활동했던 기간은 불과 3년 정도인데, 그 시기에 많은 사람의 찬양을 받던 때도 있었지만 결국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친했던 그의 친구나 제자들도 그와 그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성서가 말하려는 것은 이 두 가지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p.162)

    환자의 손을 어루만지는 행위에는 위로하는 마음이나 다정함과 동시에 자기현시나 자기만족, 허영심 같은 것도 섞여 있습니다. 그것은 수녀분 자신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결코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인 이상 좋은 일을 자기만족 없이, 완벽하게 사심 없이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나는 사심 없이 하고 있어. 자기현시욕 같은 건 전혀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쟁이일 겁니다. 사람이 훌륭한 일을 할 때 에고이즘은 반드시 섞이겠지요. 이는 인간의 업 같은 것으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건 틀림없는 일이고, 그래서 저는 존경합니다.
    (/ pp.207~208)

    보디랭귀지로 나오는 무의식은 간단합니다. 좀 더 깊은 데서 작동하는 무의식이 있습니다.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자신이 있는 거지요. 그런 자신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를 불행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 자신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고, 정의의 편이라고 믿을 수 있고, 타인이나 사회를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뭐, 그런 점이 없으면 비판 같은 걸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 p.210)

    저자소개

    엔도 슈사쿠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23.03.27~1996.09.29
    출생지 일본 도쿄
    출간도서 32종
    판매수 9,756권

    1923년 도쿄 출생. 게이오대학 문학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리옹대학에서 현대 가톨릭 문학을 공부했다. 폐결핵으로 인해 귀국한 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해 1955년 [하얀 사람]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1966년 [침묵]으로 다니자키준이치로상, 1978년 [예수의 생애]로 국제다그함마르셀드상, 1980년 [사무라이]로 노마문예상 등을 받는 한편 대다수의 작품이 전 세계에 번역돼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마틴 스콜세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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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대학에서 강의하며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을 비롯해 『환상의 빛』『십자군 이야기』『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세설』『말의 선물』『금수』 등이 있다. 2016년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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