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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미스테리아]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단편 만화의 주인공이 된 노상호의 [THE BLIND]는 마녀의 저주에 걸려 평생 눈을 감고 살아야 하는 어떤 마을에 도착한 안경 장수가 겪는 상황을 따라간다. 잔혹하고 음울한 동화이자, 기만과 환상의 경계에서 길을 잃게 만드는 작품이다. 성장소설과 좀비 스릴러가 결합된 첫 장편 소설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을 펴낸 김보현의 단편 [블러디 마더]는 뱀파이어가 된 중년 여성의 눈을 통해 "기록될 수 없는, 기록에 남지 않는 여성 연쇄 살인범"에 대한 구전 설화 같기도 하고, 기나긴 악몽 같기도 한 기록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1956년 잡지 [희망]에서 실시한 문예작품 모집 탐정소설 부문 가작으로 선정되어 1956년 7월 호 같은 잡지에 실린 이녹석의 [삽]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호하게 위장된 사건을 해결하는 비교적 단순한 구성 속에서 빠른 진행과 깔끔한 결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기획기사]

창간 3주년 기념호인 [미스테리아] 19호는 표지부터 내지까지 새롭게 단장했다. 창간 2주년 기념호였던 [미스테리아] 13호에서 한국 미스터리/범죄소설의 역사를 돌아보자는 취지하에 ‘1930년대 범죄도시 경성’이라는 특집을 꾸린 것과 동일선상에서, 이번 3주년 기념호에서는 1945년 일제강점기로부터의 해방에서 시작하여 한국전쟁을 거쳐 1950년대 말까지의 시기를 주목했다. 1940년대에서 1950년대로 이어지는 그 시기는 ‘전쟁’이라는 한 마디로 정리되는 ‘암흑기’로 상상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바로 그 무렵부터 대중매체들은 독자들이 고단한 삶에서 기어이 즐겁게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하도록 즐길 거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중에는 장르로서의 추리소설의 지분도 상당히 컸으며, 순수문학 작가들 역시 격동기의 범죄자적 인물의 입체성에 일제히 주목했다. 손소희의 [그 전날]과 최정희의 [녹색의 문]이 당대의 중요한 형상인 스파이 혹은 간첩을 어떤 식으로 묘파했는지, 이근영과 김영수, 엄흥섭 등의 작가가 해방 직후의 소란스런 현실과 백색 테러를 어떻게 관찰했는지, 그리고 김내성과 방인근, 조흔파, 허문녕 등의 작가들이 [신태양], [아리랑], [야담], [명랑] 등의 대중잡지들과 함께 상호적으로 인기를 상승시키며 독자에게 스릴 넘치는 즐거움을 제공했는지 뒤늦게나마 그 흔적을 더듬어본다. 당대의 거리 풍경을 놀랍도록 세련되고 낯선 시선으로 관찰한 한영수 작가의 사진들 역시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1950년대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증거한다.
영화감독이자 영화 평론가 정성일의 특별한 연재 ‘SESSION’에서는 넷플릭스의 드라마 [마인드헌터]를 세 번째로 살펴본다. 특히 시즌1의 충격적인 엔딩, FBI 요원 홀든 포드가 어떻게 스스로가 놓은 덫에 걸려들었으며 연쇄살인범 에드 캠퍼가 혼란스러워하는 홀든 포드를 왜 포옹하는지, 그 음산한 지식의 부등가교환을 치밀하게 추적한다.
‘NONFICTION’ 코너에선 유성호 법의학자가 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에 대해, 이주현 프로파일러가 CCTV에 남아 있던 수수께끼 같은 이별 장면이 수사에 혼선을 주었던 사건에 대해 소개한다. 정은지 작가의 ‘CULINARY’는 대프니 듀모리에의 [레베카]에서 되풀이 등장하는 음식을 향한 주인공의 양가감정을 다룬다. 음식의 낭비야말로 ‘권태로운’ 특권처럼 여겨지는 상류층에 입성한 초라한 주인공이 어떻게 음식의 압박을 이겨내는가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 돋보인다. 홍한별 번역가의 ‘MIRROR’는 1920년대 말, 대공황 직전의 미국을 발칵 뒤집었던 ‘루스 스나이더―헨리 저드 그레이 사건’을 주목한다. 욕망에 눈이 멀어 시작된 범죄가 두 공모자의 파멸로 끝나는 어떤 ‘전형성’을 확립한 사건이며, 제임스 M. 케인의 소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과 [이중배상] 및 이들을 스크린으로 옮긴 동명영화들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기도 하다. 곽재식 작가의 ‘PULP’는 무수한 ‘선지자’들의 출현 속에서도 단연 오랜 세월을 버텨왔던 [정감록]과 ‘황제’를 자처한 사나이에 관한 기이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그 외에도 주목할 만한 미스터리 신간 서평 코너에선 진 필립스의 [밤의 동물원], 하라 료의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도로시 죽이기], 김수안의 [암보스] 등을 소개한다.

Editor’s Letter
소문과 실화
LIST
READING DIARY

SPECIAL 1945년~1959년, 전율의 시대
-1950년대 대중잡지의 현황 : 이봉범
-1950년대의 어두운 뒷골목 이야기 : 최애순
-1950년대 한국 추리소설사의 조각맞춤 : 박광규
-백색 테러리즘의 기원 : 송효정
-해방 공간의 스파이와 불온의 운명 : 조윤정-간첩 서사가 젠더와 결합하는 방식 : 김복순

SPECIAL 움직이는 남자들의 맹렬한 고독, 다카무라 가오루의 세계 : 심정명

SESSION 지식과 욕망의 부등가교환, [마인드헌터](3) : 정성일

취미는 독서
[밤의 동물원]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사흘 그리고 한 인생]
[디렉터스 컷]
[드롭]
[작가 형사 부스지마]
[암보스]
[허풍선이의 죽음]
[도로시 죽이기]
[젤프의 기만]

MYSTERY PEOPLE
이사카 고타로와 세 번역가의 만남

CULINARY 음식을 낭비하는 상류층의 특권, [레베카] : 정은지
NONFICTION
술이 사람을 마신다 : 유성호
엘리베이터 속 마지막 인사 : 이주현
MIRROR 불완전 범죄의 결말 : 홍한별
PULP 황제가 된 전당포 주인 : 곽재식

SHORT STORY
노상호 [THE BLIND]
김보현 [블러디 마더]
이녹석 [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