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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서 사슴까지 : 김중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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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나는 죽은 이의 가슴을 사슴이라고 부른다”
    세계의 사각지대 속에서 환하게 눈뜨는 슬픔의 시


    산문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감각적인 이미지와 다채로운 비유가 돋보이는 독창적인 시 세계를 펼쳐온 김중일 시인의 네번째 시집 [가슴에서 사슴까지]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내가 살아갈 사람](창비 2015)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부조리한 세계의 사각지대와 비극적인 삶의 풍경들을 섬세하면서도 진지한 언어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슬픔 속에서 가장 환하게 눈을 뜨는” 주체가 되어 “존재의 가슴을 찢고 세계의 지평선을 뜯어낸 숭고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놓는”(김행숙 추천사) 애절한 애도의 시편들이 가슴을 저미는 고요한 떨림으로 다가온다. 웹진 ‘시인광장’ 선정 ‘2016 올해의 좋은 시’ 수상작 [눈썹이라는 가장자리]를 포함하여 74편의 시를 부 가름 없이 실었다.

    눈동자는 수년간 내린 눈물에 다 잠겼지만, 눈썹은 여전히 성긴 이엉처럼 눈동자 위에 얹혀 있다. 집 너머의 모래 너머의 파도 너머의 뒤집힌 계절.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바람의 눈썹이다. 바람은 지구의 눈썹이다. 못 잊을 기억은 모래 한알 물 한방울까지 다 밀려온다. 계속 밀려온다. 쉼 없이 밀려온다. 얼굴 위로 밀려온다. 눈썹은 감정의 너울이 가 닿을 수 있는 끝. 일렁이는 눈썹은 표정의 끝으로 밀려간다. 눈썹은 몸의 가장자리다. 매 순간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울음이 울컥 모두 눈썹으로 밀려간다. 눈썹을 가리는 밤. 세상에 비도 오는데, 눈썹도 없는 생물들을 생각하는 밤. 얼마나 뜬눈으로 있으면 눈썹이 다 지워지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밤.
    ('눈썹이라는 가장자리' 중에서)

    장이지 시인이 발문에서 “이번 시집은 ‘애도 일기’ 혹은 ‘상(喪)의 일기’와 같은 양상”이라고 썼듯이 시인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날 배웅해준”(시인의 말) 아버지의 돌연한 죽음 뒤에 ‘애도의 시간’에 젖는다. 그런데 부재의 존재가 되는 순간 오히려 아버지의 존재가 환기되고, 시인은 아버지를 자신의 삶 속으로 불러들인다. “내 가파른 수직 절벽의 몸 가장 높은 자리인 이마에 묻혀 있”([강호])는 아버지는 “조금씩 조금씩 내생에서/제 몫의 울음을 되찾아”가고 “앉고 서고 걷고 뛰고/말을 배우고 다시 웃음을 배”([숨 나누기])운다. 그리하여 시인은 “내 몸 구석구석이 서서히 녹슬어가는 모습을 늘 지켜보”([투명인간])는 “아버지의 울음을 대신 울고 있”([둥근 노래만이 입술을 들어올리네])는 것이다.

    내가 평생을 다 살아도 절반이다./그는 죽기 직전 생일케이크 위의 촛불처럼 훅, 나를 불어 껐다./암전, 그 순간 나의 반생(半生)이 시작됐다./그는 나의 반생을 살기 시작했다//(…)//그가 죽는 순간 시간이 정확히 반으로 쪼개졌다./두개의 낮과 두개의 밤,/어제의 어제와 오늘의 오늘,/그가 나의 반생을 살고 있다./그는 내가 미리 남긴 유언이다.
    ('반생' 중에서)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슬픔을 넘어서 시인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적인 죽음으로 다가가 아픔을 함께 나눈다. ‘사월’ 이후로 벌써 네번째 봄을 맞았건만 시인은 “못 잊는 게 많은 사람”([기습 폭설])이어서 “그 폭설을 뚫지 않고는 그날로부터 어디로도 갈 수 없”([그날의 눈송이와 오늘의 눈송이])기에 불면의 밤을 지새운다. 이 시집은 그래서 “눈사람처럼 얼어붙은 엄마들. 털실처럼 눈물이 줄줄 풀리는 엄마들. 점점 작아지는 엄마들”([일어서다, 그리고 가다]), “뒤따라 죽겠다며 오늘도 산 사람들”([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기억하여])을 위로하며 “자식 잃고 부모 잃고 울고 있는 몸의 리듬”([애도 일기])으로, “공중에 무릎이 깨지도록 꿇어앉아/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새가 되게 해주소서])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애도 일기’이기도 하다.

    어느날 내 가슴이 불타면 어쩌나./내 사슴은 어쩌나./깡마른 사슴. 비 맞는 사슴. 눈물 맺힌 사슴. 다리 부러진 사슴. 멍투성이 사슴. 땅에 파묻힌 사슴. 아빠 없는 사슴. 엄마 없는 사슴./폐에 바닷물이 찬 사슴. 바다가 된 사슴. 자식 잃은 사슴/(…)/이 계절에 일어난 참혹한 사건으로 사슴은 태어났다. 누군가는 죽고, 사슴은 태어났다. 나는 죽은 이의 가슴을 사슴이라고 부른다./사슴은 태어나자마자 눈 뜨고, 일어섰으며, 매일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려 한다. 나는 그 여정을 가슴에서 사슴까지,라고 한다.
    ('가슴에서 사슴까지' 중에서)

    시인은 또한 “뽑힌 나무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봄밤의 낮잠])는 사람이다. “모두가 지구를 떠나고 버려진 지구에 나 혼자”([끝내 버려진 지구에 나 혼자 누운 꿈]) 살아남은 자로서 시인은 “어느날 한순간에 흠뻑 젖어버린 아이들”([마중 왔던 아이들])의 손과 “그 바다에서 나를 불렀던 목소리들”([목소리들])을 놓치고 만 아픔을 이야기한다. “생에 대한 아쉬움조차 가져보지 못한 나이”([외계인이 우리 가정을 지켜냈어요])에 “이유도 모른 채 꺾인”([바람이 친 텐트]) 아이들과 “인피를 뒤집어쓴 짐승들”의 세상에서 전쟁과 학살로 희생된 “선량한 사람들”([햇빛]), 그리고 세상 곳곳을 떠돌고 있을 무고한 희생자들의 넋을 호명하며 끊임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시인의 마음이 한없이 애잔하고 눈물겹다.

    날 한번도 만난 적 없이 떠나간 사람들에게/미안합니다, 잘해주지 못해서./(…)/내 머리를 모자처럼, 몸을 셔츠처럼, 다리를 바지처럼, 발을 구두처럼 공중에 벗어놓겠어요./내 손을 손수건처럼 공중에 건네겠어요./단 한번도 못 만나고 떠나보낸 이들에게 미안합니다./단 한번도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창문 속으로 빈방이 뛰어내리듯,/눈빛 속으로 사람이 뛰어내리듯,/오늘도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오늘도 사과' 중에서)

    우리가 “잠든 사이 지구상에서 또 몇명이나 떠났을까”([애도 일기]). 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린 채 “뼈만 앙상한 세상”([물고기와 산다는 것])을 살아가며 시인은 “서로 잊고 떠돌던 새털 같은 나뭇잎들이 한날한시 한곳에 다시 함께 모이는 꿈”을 꾸며 “죽은 사람 산 사람 다 같이 살아가는 이 시집 속을 한걸음도 나가지 않기로”([나무는 나뭇잎이 꾸는 꿈, 나는 네가 꾸는 꿈]) 다짐한다. 이 애달픈 사랑의 힘으로 시인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손을 꼭 잡고/꼭 손을 잡고”([꽃다발을 주고받듯])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위로하는 시를 써나갈 것이다. 그런데 “그저 눈물만 나는” 세상에서 “눈썹도 없는 개구리”([누군가에게])가 되어 울고 있는 이 여린 시인의 “오늘도 멈추지 않는 눈물”([꽃다발을 주고받듯])은 누가 닦아줄 것인가.

    네가 떠다 준 물이/내 입술을 적시고 온몸 구석구석에 스미는 건/키스를 하는 것./너와 내가 공원에서 서로 입김을 불어넣으며/언 손을 비비는 건, 뜨거운 혀처럼 빨간/손과 손을 맞대고 엎치락뒤치락 서로 쓰다듬는 건/키스를 하는 것./그러다가 서로를 아무 말 없이 끌어안는 건/너와 나의 몸이 윗입술 아랫입술처럼/하나의 커다란 입술이 되는 것./침묵의 입술이 되어 달리는 시간을 잠시 돌려세워놓고/키스를 하는 것./마음에 없는 말을 내뱉었던 내가/없는 너와 빈 길을 걷는 건/키스를 하는 것
    ('키스를 하는 것' 중에서)

    추천사

    어느날 이 세계에서 당신이 사라졌다. 인생을 그 이전과 그 이후로 가르는 당신의 죽음 속에서 폐허의 주체는 탄생한다. 이 시집은 그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폐허의 주체’가 써내려간 ‘이후의 시’다. 시인은 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린 주체, 슬픔 속으로 가장 깊이 눈을 감은 주체, 그리하여 슬픔 속에서 가장 환하게 눈을 뜨는 주체다. 죽음의 구멍을 경유하여 비로소 세계의 사각지대가 드러나고 우주의 암흑물질이 살갗을 스친다. 죽은 자들은 햇빛이 되어 강물에서 반짝이고 우주먼지로 떠다니다가 내 책상 위에 내려앉는다.
    죽은 자들은 ‘온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날 배웅해준”(시인의 말) 아버지가 돌아오고, 봄날 참혹하게 떠나보낸 아이들이 온다. “나는 죽은 사람 산 사람 다 같이 살아가는 이 시집 속을 한걸음도 나가지 않기로 한다.”([나무는 나뭇잎이 꾸는 꿈, 나는 네가 꾸는 꿈]) 왜냐하면 “죽은 사람 산 사람 다 같이 살아가는” 이 시집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김중일의 ‘애도의 시’는 존재의 가슴을 찢고 세계의 지평선을 뜯어낸 숭고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놓는다.
    - 김행숙 / 시인

    목차

    어깨에서 봄까지
    가슴에서 사슴까지
    오늘도 사과
    흐르는 빈자리
    매일 무너지려는 세상
    마중 왔던 아이들
    우리 산 들 바다 하늘 사이
    지구를 끌어안다가 가슴이 꿰뚫린 하늘
    끝내 버려진 지구에 나 혼자 누운 꿈
    외계인이 우리 가정을 지켜냈어요
    애도 일기
    일어서다, 그리고 가다
    다녀가다
    불어가다
    우리의 얼굴
    누군가에게
    목소리들
    창문에서 죽다
    자는 사람 작은 사람 뛰는 사람
    최선을 다해 하루 한번 율동공원 돌기
    평일의 대공원 1
    평일의 대공원 2
    기습 폭설
    숨 나누기
    반생
    투명인간
    투명한 문장
    내가 돌아갈 곳
    둥근 노래만이 입술을 들어올리네
    바람이 친 텐트
    루틴
    너의 나라의 나
    새가 되게 해주소서
    깊은 높이로 날아오른 새
    떠나는 꽃
    초극단의 눈사람
    초록의 눈사람
    높은 집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자국이 소리내는 밤이다
    먼지가 쌓이는 공중
    우리는 산다
    웃음 기르기
    주신의 술잔
    마스크
    얼굴로 떠내려가다
    안다
    지평선
    기다림
    키스를 하는 것
    나는 네가 뛰어내린 절벽
    붉은 바통
    옛날에는 시라는 것이
    저녁 커피 한잔
    체념의 생명력
    봄밤의 낮잠
    강호
    지구만 한 공중 한바퀴
    햇빛
    비를 흠씬 얻어맞다가 보았다
    영혼한 풍경
    그날의 눈송이와 오늘의 눈송이 사이
    눈썹이라는 가장자리
    등을 떠미는 일
    등을 안는 일
    꽃다발을 주고받듯
    처음 만난 사람
    이 산이 작은 파도였을 때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기억하여
    고인 하늘
    고인들의 생일 식탁
    장미와 산다는 것
    물고기와 산다는 것
    나무는 나뭇잎이 꾸는 꿈
    나무는 나뭇잎이 꾸는 꿈, 나는 네가 꾸는 꿈

    발문|장이지
    시인의 말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8종
    판매수 355권

    1977년 서울 출생.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 『가슴에서 사슴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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