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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성 없는 소립자들 : 전경린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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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전경린
  • 출판사 : 섬앤섬
  • 발행 : 2018년 07월 25일
  • 쪽수 : 256
  • ISBN : 9788997454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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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소설가 전경린의 단 하나뿐인 산문집!

아무것도 없음 위에 떠 있는 한 점의 실존이라 할,
그 검은 자유의 자리가 내 글쓰기의 시원이었다.

출판사 서평

훌륭한 작가가 되려 한 게 아니라, 나와 내 삶을 일치시켜 자신을 구하려 했다

소설가 전경린의 유일의 산문집《사교성 없는 소립자들》은 작가 활동을 하는 동안 잡지와 신문사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은 것으로, 53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언뜻 연관성 없어 보이는 글들을 이어보니 내 사색의 지도 같기도 하고 지나온 생활의 궤적 같기도 하다. 때로는 젊은 날의 푸른 호흡이 고스란히 담긴 문장들이 대견했고, 때로는 낡은 앨범 속에 들어 있는 빛 바란 젊음처럼 그때의 내가 지금보다 더 늙은 사람 같았다. 사람을 담는 시대란 그런 것일까. 그러니 새로움이란 얼마나 아픈 것인가. 또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다른 시간으로 건너가기 위해 우리는 늘 깎이고 잘리고 생채기가 나고 자기 상실을 겪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나이 들어가면서 동시에 새로워지는 중인 것이다.
_‘작가의 말’ 가운데

산문집《사교성 없는 소립자들》에는 소설 속에서는 독자들과 만날 수 없었던 작가의 체취와 육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문학이란 무엇이고, 글쓰기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불안정하고 일회적인 삶 속의 고민과 열정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작가는 상식을 넘어 새로운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으며, 삶의 깊숙이 들어가 잃어버린 우리의 욕망과 고통스런 진실에 마주한다. 불륜이 알려지는 날이 ‘생의 질서를 정직하게 재편하는 날’이 될 수도 있다는 작가의 말은 가식에 갇힌 세상의 진부함을 깨트리며 서늘한 진실을 우리에게 건넨다.

김훈의 추천사
아마도, 전경린의 글쓰기는 자신과 이 세계 사이에 직접성의 관계를 세우려는 소망이다.
전경린은 이 세계를 육체화해서 그 날것을 주무르고 끌어안는다. 전경린은 감각과 관능으로 세계를 만져서 그 내용을 사유하고 언어화하는데, 세계로 다가서려는 말의 길은 늘 우원迂遠한 것이어서, 전경린의 글은 만져지지 않는 세계의 슬픔을 토로한다.
전경린은 자신의 결핍을 스스로 느끼는 힘으로, 타자에게 건너간다. 이 길 위에서 마음의 소립자들은 서로 부딪쳐서 깨어지고 만나고 태어난다. 소립자들은 명멸한다. 전경린의 글 속에서 결핍과 충만은 같은 운명의 다른 표정이다. 전경린의 사랑은 갈애渴愛이다._김훈

문학은 삶의 고통과 상처를 뚫고 존재의 진실을 보려는 눈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어떤 지점

나는 삶 속에서 보다 지속적인 것, 보다 영원성에 가까운 것, 절대적이고, 결코 반복되지 않는 것을 찾아 방황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문학이었습니다. _〈검은 자유의 자리, 문학〉

문학은 현실의 지도를 따라 길고 어렵게 우회하는 동안 철저히 간접화법으로 본질의 그림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희망도 없이 과도한 허무도 없이 끊임없이 상실되어가는 현재를 담담하고 매혹적으로 그려내는 그것은 아마도 지성적 감수성의 힘일 것이다. _〈그 희미한 그림자가 정말 나였을까〉

삶의 한가운데서 이제 피하고 싶었던 불편한 질문을 해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피로와 숨 쉬는 아픔을 느끼며, 동시에 초연한 평화와 이상한 광휘 속에서 대답한다. 그것은, 이
제 나의 일이다.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객관화된 지점에 문학에 관한 새로운 고통과 의지가 자리한다. _〈글쓰기, 나와 내 삶을 일치시키는 일〉

글을 쓰면서 나이 드는 동안 나도 이제 이치의 지엄함과 만인만상의 가치와 존재의 끝없는 무게와 살아 있는 것들 사이의 다정함을 알게 되었다. 이 질기고 무상한 삶은 욕구로 사는
것도 아니고 왜, 무엇을 위해서, 같은 질문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생명 가진 것들의 끌어당김으로 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삶이란 외지면서도 따스하고 아름답고도 힘겹다.
_〈글쓰기, 나와 내 삶을 일치시키는 일〉

소설은 한마디로 이 삶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욕망과 세계 사이의 긴장과 미궁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과 시각과 문체로 질서화하여 보편적 진실을 얻어내는 언어예술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존재의 고통이 가장 첨예한 현실의 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의심하고 구체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극복하거나 부정하거나 초월하면서, 방황하는 존재의 새로운 자리를 모색하는 작업, 그를 통해 세계의 부조리와 불가능성, 혹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세계의 전혀 새로운 모습, 새로운 가능성을 감동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인 것입니다.
_〈검은 자유의 자리, 문학〉

글쓰기란, 그 무엇보다도 이 세계의 중력을 전신으로 마주서서 버티는 한 개인의 흐트러지지 않는 고독한 자세,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_〈검은 자유의 자리, 문학〉

만유인력의 지배 아래 있는 이 삶을 어쩔 것인가. 그게 없으면 삶도 사라지는 이 세계의 불가피한 가난도 이제는 긍정한다. 우리는 누구나 삶에 눌리는 힘으로 살면서 동시에 이 삶을 초월해서 살 수 있는 통로를 구하려 한다. 신이든, 사랑이든, 이타적 헌신이든, 업무를 업적으로까지 발전시키는 열정이든, 그것은 삶을 넘어가기 위해 의지하는 저마다의 방법이다. 우리는 땅바닥에서 생존하는 것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생존이라는 목을 죄는 짧은 사슬을 잊을 수 있는 저마다의 초월이 필요하다. 내게 그것은 글쓰기였다. 그 외에 삶은 저절로 되는 것이어야 했다. 그토록 자연스럽고 그처럼 쉽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당위적인 것이어야 했다. _〈글쓰기, 나와 내 삶을 일치시키는 일〉

글쓰기란 내 속의 잠자리 맹수를 건드리는 것과 비슷하다. 나를 매혹시키는 어떤 점 때문에 나는 공포를 느끼면서 짐승을 건드릴 것이다. 일단 짐승이 깨면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워야 하고 싸우면 이기는 수밖에는 없다. 지면 영영 그의 배 속에서 나오지 못할 테니까.
_〈내 가슴의 장미를 심어〉

삶에 구멍을 내기, 삶을 비우기, 삶에 바람을 지나가게 하기, 삶을 가볍게 하기

나는 원래 삶을 최소한만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는
형편껏 사회에 거리를 두고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을 축복이라 여긴다. 이제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때이고 자기 느낌에 충실할 수 있는 때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필요와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조용히 일을 할 수도 있는 때이다. _〈11월에〉

가다 보면 약수터를 만나 목을 축이기도 하고 졸음에 겨우면 늙은 나무에 얼굴을 대고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한다. 그런 때 문득 삶이 내게 허용해줄 절대량을 알 것 같고 머릿속이 맑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어떻게 행복해져야 할지도 저절로 깨닫게 된다. _〈내 곁의 아주 먼 곳〉

긴장감이 가장 적으면서 생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고, 가장 간소하면서 결코 남루하지 않고, 나 자신을 즐기면서 불안 없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생활의 견고한 바탕을 정하고 싶다.
그래서 결코 상대적으로 마음과 몸이 가난해지고 초조해지는 일이 없는 자긍심을 가진 삶을 살고 싶다. 때로 결핍을 느낄 때면 무엇을 더 가지려고 하기보다 차라리 먼 곳까지 교신하는 혼신의 춤을 추어서 떨칠 수 있으면 좋겠다. _〈생에 대한 자존심〉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역할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존중할 것이다. 이토록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고 폭력적인 삶 속에서 그런 인내와 의지와 자기 단념은 종교적인 원죄의식과 희생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자기의 욕망을 따라 다른 삶의 방법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도 있고 나는 그 역시 존중한다. 어느 쪽이든 흔들리지 않고 흐느끼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사는 인간은 없다. 어느 쪽이든 고독하지 않은 인간도 없다._〈생의 방향을 바꿀 때〉

그리고 본질적으로 황무지인 이 세계에서 등에 진 짐을 내리고 생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는 40대에도 50대에도 다시 온다. 어느 날부터 한 발도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때, 정신 차려보니 사면 벽에 홀로 갇혀 있을 때,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더 이상 몸과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을 때. 그런 때에 사람은 바깥이 아니라 자신의 안쪽에 귀를 기울여 욕망의 뿌리에서 꿈을 건져 올린다. 잔인한 봄인 줄 알면서도, 다시 움직이기 위해, 밭을 갈아엎고 욕망을 깨워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욕망이 아니고서는 이 잔인한 삶의 중력을 이기고 다시 가벼워질 방법이 없다. 욕망이란 다름 아닌 자기 안의 능동성이다.
_〈생의 방향을 바꿀 때〉

근본적으로 폭력적이며 생로병사가 들끓는 이 상처투성이 삶 속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들과 자족을 아는 유목민들은 거창하거나 세속적인 꿈을 꾸지 않는다. 오히려 무언가를 버리는 것 같은 가볍고, 단순하고, 영속적이고 상처에 붕대를 감는 것 같은 평화로운 소풍을 꿈꾸는 것이다. 우리의 꿈이, 마음속의 무언가를 버리는 데 있다는 역설이 이마를 서늘하게 한다. _〈생의 질서를 정직하게 재편하는 날〉

이제는 진실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견딜 수만 있다면 살아가는 동안 차례차례 오는 타협과 단념과 평화가 진실일지도 모른다. 도면 위의 납작한 진실이 아니라, 삶이라는 입방체의 진실이란 균열을 안고 가는 안간힘이라고. 종종 어둠 속에서 깨어나면 깊은 틈의 이쪽과 저쪽을 본다. 그 사이에는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이 있다. 나는 심연을 안고 나아가야 한다. 양쪽 팔이 떨어져나갈 것만 같다. _〈진실한 것은 시간과 경쟁을 벌인다〉

목차

작가의 말

1 새들도 비를 맞고 있구나
K에게 보내는 편지 -13 / 생의 방향을 바꿀 때 -19 / 폐왕성지 -22 / 내 곁의 아주 먼 곳 -29 / 상실과 부재의 공포 -32 / 생의 질서를 정직하게 재편하는 날 -37 / 눈물의 냄새 -41 / 이 숲 속의 나뭇잎 중에 흔들리지 않는 나뭇잎이 있을까요 -44 /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고요 -48 / 아프게 피어난 봄꽃들 -52 / 누구의 삶이든 -55 / 내 속의 동반자 미스타페오 -58 /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적 -62

2. 세상이, 물에 젖은 얄팍한 비스킷 같아
에치고유자와 그리고 ‘눈바램’ -69 / 글쓰기, 나와 내 삶을 일치시키는 일 -74 / 카프카, 내 문학의 신화 -80 / 진실한 것은 시간과 경쟁을 벌인다 -84 / 그 희미한 그림자가 정말 나였을까 -87 /
내 가슴에 장미를 심어 -93 / 오직 삶에서만 너의 영감을 이끌어내고 -97 / 한 남자의 뒷모습 -99 / 욕망이 데려다준 인생의 낯선 장소 -102 / 검은 자유의 자리, 문학 -109

3 아직은, 아무도 나를 보았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서랍 속의 꽃들 -123 / 생에 대한 자존심 -129 / 고요한 내면의 폭풍 -138 / 여름날 해 뜨기 전에 쓴 편지 -142 / 사람이 살고 지나가는 장소는 바람에 펄럭이는 천막 무대처럼 아프다 -146 /
조나단의 방 -150 / 아름다움과 서정 -153 / 우리의 머릿속을 춤추게 하는 것 -156 / 11월에 160 / 미소가 떠올랐던 평범한 순간들 -165

4 우리가 가만히 포개어졌을 때조차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어떤 것의 시작 -175 / 최후의 식민지 -179 / 아름다운 여자, 케테 -183 / 모래의 여자 -188 / 바그다드 카페 -191 / 여자 정혜 -194 / 프리다 칼로, 고통을 그리다 -198 / 여성성의 시간 -201 / 바다의 선물 -205 / 모르는 곳으로 가기를 원해 -208 /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211 / 카페의 가수 -213

5 잠든 씨앗처럼 사랑을 기다릴 때
물의 정거장 -217 / 생애 최고의 업적 -223 / 순간에 완성되는 사랑이 있을까 -227 / 운명은 파멸로부터 시작한다 -230 / 완전한 사랑의 내부 -237 / 신의 지붕 위로 오르는 황금 사다리 -240 / 우리 존재의 우울한 주소 -244 / 돌이킬 수 없는 단어 -248

Epilogue
숨은 연못 속에 나 홀로 -253

본문중에서

문학은 삶의 고통과 상처를 뚫고 존재의 진실을 보려는 눈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어떤 지점

나는 삶 속에서 보다 지속적인 것, 보다 영원성에 가까운 것, 절대적이고, 결코 반복되지 않는 것을 찾아 방황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문학이었습니다. _〈검은 자유의 자리, 문학〉

문학은 현실의 지도를 따라 길고 어렵게 우회하는 동안 철저히 간접화법으로 본질의 그림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희망도 없이 과도한 허무도 없이 끊임없이 상실되어가는 현재를 담담하고 매혹적으로 그려내는 그것은 아마도 지성적 감수성의 힘일 것이다. _〈그 희미한 그림자가 정말 나였을까〉

삶의 한가운데서 이제 피하고 싶었던 불편한 질문을 해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피로와 숨 쉬는 아픔을 느끼며, 동시에 초연한 평화와 이상한 광휘 속에서 대답한다. 그것은, 이제 나의 일이다.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객관화된 지점에 문학에 관한 새로운 고통과 의지가 자리한다. _〈글쓰기, 나와 내 삶을 일치시키는 일〉

글을 쓰면서 나이 드는 동안 나도 이제 이치의 지엄함과 만인만상의 가치와 존재의 끝없는 무게와 살아 있는 것들 사이의 다정함을 알게 되었다. 이 질기고 무상한 삶은 욕구로 사는 것도 아니고 왜, 무엇을 위해서, 같은 질문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생명 가진 것들의 끌어당김으로 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삶이란 외지면서도 따스하고 아름답고도 힘겹다.
_〈글쓰기, 나와 내 삶을 일치시키는 일〉

소설은 한마디로 이 삶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욕망과 세계 사이의 긴장과 미궁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과 시각과 문체로 질서화하여 보편적 진실을 얻어내는 언어예술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존재의 고통이 가장 첨예한 현실의 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의심하고 구체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극복하거나 부정하거나 초월하면서, 방황하는 존재의 새로운 자리를 모색하는 작업, 그를 통해 세계의 부조리와 불가능성, 혹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세계의 전혀 새로운 모습, 새로운 가능성을 감동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인 것입니다.
_〈검은 자유의 자리, 문학〉

글쓰기란, 그 무엇보다도 이 세계의 중력을 전신으로 마주서서 버티는 한 개인의 흐트러지지 않는 고독한 자세,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_〈검은 자유의 자리, 문학〉

만유인력의 지배 아래 있는 이 삶을 어쩔 것인가. 그게 없으면 삶도 사라지는 이 세계의 불가피한 가난도 이제는 긍정한다. 우리는 누구나 삶에 눌리는 힘으로 살면서 동시에 이 삶을 초월해서 살 수 있는 통로를 구하려 한다. 신이든, 사랑이든, 이타적 헌신이든, 업무를 업적으로까지 발전시키는 열정이든, 그것은 삶을 넘어가기 위해 의지하는 저마다의 방법이다. 우리는 땅바닥에서 생존하는 것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생존이라는 목을 죄는 짧은 사슬을 잊을 수 있는 저마다의 초월이 필요하다. 내게 그것은 글쓰기였다. 그 외에 삶은 저절로 되는 것이어야 했다. 그토록 자연스럽고 그처럼 쉽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당위적인 것이어야 했다. _〈글쓰기, 나와 내 삶을 일치시키는 일〉

글쓰기란 내 속의 잠자리 맹수를 건드리는 것과 비슷하다. 나를 매혹시키는 어떤 점 때문에 나는 공포를 느끼면서 짐승을 건드릴 것이다. 일단 짐승이 깨면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워야 하고 싸우면 이기는 수밖에는 없다. 지면 영영 그의 배 속에서 나오지 못할 테니까.
_〈내 가슴의 장미를 심어〉


삶에 구멍을 내기, 삶을 비우기, 삶에 바람을 지나가게 하기, 삶을 가볍게 하기

나는 원래 삶을 최소한만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는 형편껏 사회에 거리를 두고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을 축복이라 여긴다. 이제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때이고 자기 느낌에 충실할 수 있는 때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필요와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조용히 일을 할 수도 있는 때이다. _〈11월에〉

가다 보면 약수터를 만나 목을 축이기도 하고 졸음에 겨우면 늙은 나무에 얼굴을 대고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한다. 그런 때 문득 삶이 내게 허용해줄 절대량을 알 것 같고 머릿속이 맑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어떻게 행복해져야 할지도 저절로 깨닫게 된다. _〈내 곁의 아주 먼 곳〉

긴장감이 가장 적으면서 생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고, 가장 간소하면서 결코 남루하지 않고, 나 자신을 즐기면서 불안 없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생활의 견고한 바탕을 정하고 싶다. 그래서 결코 상대적으로 마음과 몸이 가난해지고 초조해지는 일이 없는 자긍심을 가진 삶을 살고 싶다. 때로 결핍을 느낄 때면 무엇을 더 가지려고 하기보다 차라리 먼 곳까지 교신하는 혼신의 춤을 추어서 떨칠 수 있으면 좋겠다. _〈생에 대한 자존심〉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역할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존중할 것이다. 이토록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고 폭력적인 삶 속에서 그런 인내와 의지와 자기 단념은 종교적인 원죄의식과 희생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자기의 욕망을 따라 다른 삶의 방법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도 있고 나는 그 역시 존중한다. 어느 쪽이든 흔들리지 않고 흐느끼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사는 인간은 없다. 어느 쪽이든 고독하지 않은 인간도 없다._〈생의 방향을 바꿀 때〉

그리고 본질적으로 황무지인 이 세계에서 등에 진 짐을 내리고 생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는 40대에도 50대에도 다시 온다. 어느 날부터 한 발도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때, 정신 차려보니 사면 벽에 홀로 갇혀 있을 때,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더 이상 몸과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을 때. 그런 때에 사람은 바깥이 아니라 자신의 안쪽에 귀를 기울여 욕망의 뿌리에서 꿈을 건져 올린다. 잔인한 봄인 줄 알면서도, 다시 움직이기 위해, 밭을 갈아엎고 욕망을 깨워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욕망이 아니고서는 이 잔인한 삶의 중력을 이기고 다시 가벼워질 방법이 없다. 욕망이란 다름 아닌 자기 안의 능동성이다.
_〈생의 방향을 바꿀 때〉

근본적으로 폭력적이며 생로병사가 들끓는 이 상처투성이 삶 속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들과 자족을 아는 유목민들은 거창하거나 세속적인 꿈을 꾸지 않는다. 오히려 무언가를 버리는 것 같은 가볍고, 단순하고, 영속적이고 상처에 붕대를 감는 것 같은 평화로운 소풍을 꿈꾸는 것이다. 우리의 꿈이, 마음속의 무언가를 버리는 데 있다는 역설이 이마를 서늘하게 한다. _〈생의 질서를 정직하게 재편하는 날〉

이제는 진실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견딜 수만 있다면 살아가는 동안 차례차례 오는 타협과 단념과 평화가 진실일지도 모른다. 도면 위의 납작한 진실이 아니라, 삶이라는 입방체의 진실이란 균열을 안고 가는 안간힘이라고. 종종 어둠 속에서 깨어나면 깊은 틈의 이쪽과 저쪽을 본다. 그 사이에는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이 있다. 나는 심연을 안고 나아가야 한다. 양쪽 팔이 떨어져나갈 것만 같다. _〈진실한 것은 시간과 경쟁을 벌인다〉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21126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62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여 경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사막의 달』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소설집으로 『염소를 모는 여자』『환과 멸』『물의 정거장』 등이 있으며, 『내 생에 곡 하루뿐인 특별한 날』『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열정의 습관』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한국일보문학상, 문학동네소설상, 21세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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