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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속임수 : 인공지능이 따라하지 못할 인문학적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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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권택영
  • 출판사 : 글항아리
  • 발행 : 2018년 07월 20일
  • 쪽수 : 38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6735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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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문학적 뇌와 로봇의 뇌

학문이 지적 세계를 북돋우고 세계를 좀더 명징하게 보여준다는 목적에서 조금 내려오면 삶과 학문은 분리되기 어렵다, 학자든 독자에게든. 이런 깨달음이 일찍 오면 좋을 텐데 나이 먹어 내공이 쌓인 뒤에야 툭 터놓게 된다. 마침내 공적인 영역에서 한 계단 내려온 학문은 학자 개인의 기억과 경험, 생각 및 추론과 뒤섞여 육화된 면모를 드러낸다. 지난 수십 년간 문학, 심리학, 철학, 과학을 차례로 연구하다가 그것들이 서로 다른 차원이 아닌 한가지임을 이 책은 입증해낸다.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학문은 한곳에 고여 있지 않고 시간과 문제의식의 흐름에 따라 진화하기 마련이므로 종국에는 잘 짜인 내러티브가 되고 삶을 통찰하는 도구가 된다. 노년에 다가서고 있는 이 책의 저자가 마침내 의식과 감각의 아슬아슬한 균형 속에서 단련된 문체로 글을 써내려간 이유다.
포문은 무엇으로 여는가. 소포클레스의 비극이지만 그 문을 닫는 것은 인공지능이다. 이 책을 꿰뚫는 주제는 인문학적 뇌와 로봇의 뇌(인공지능)를 대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한가운데에 ‘의식’을 성배처럼 품고 시간의 흐름을 통과한다. 그런 와중에 겪는 경험은 수시로 망각과 왜곡을 일으키면서 기억의 넝마들을 이어붙인다. 기억의 넝마는 흔히 왜곡을 일으킨다. 그러니 나쁜가? 그렇게 말할 순 없다. 기억과 생각은 모두 사적인데, 가령 애착과 절제, 공포, 기쁨의 감정을 겪으면서 인간은 미묘한 허구성을 키워가며 대상과 관계를 맺는다. 즉 기억과 인지와 공감은 개인의 과거 경험의 흔적들에 뿌리내리며 그것의 균형은 삶의 축복이 되기도 한다.
감각과 의식은 어느 한쪽도 쉽게 물러나지 않는 쌍두마차다. 감각은 먼저 자리잡은 뇌의 핵이고 의식은 이 핵을 둘러싸고 진화해왔다. 의식은 곧 자의식으로, ‘내 안의 또다른 나’를 인식하는 것이다. 감각과 의식의 이중 구조 때문에 나의 뇌는 이야기를 꾸미는 천부의 능력을 타고나며, 성공적인 삶 역시 이 이중 구조를 존중해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얼마나 지혜로운 타협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공지능은 어떨까. 애착을 알까? 우선 공감과 인지 공감이 동시에 있어야 ‘인간다움’의 생각을 구성하는데, 이런 이중 마음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만약 로봇의 기능이 효율성과 정확성에 있다면 이중 구조는 효율성을 낮추고 허구성을 높이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2년 전 숀 갤리거가 "우리가 현재 만드는 로봇들은 감각이 제외된 어떤 상태, 공감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 것을 보면 로봇의 뇌는 우리 뇌의 보조 수단일 뿐이다.

출판사 서평

‘생각’이 지배해온 삶, 하지만 그 아래에 꿈틀대는 ‘감각’,
이 이중 구조가 균형을 이뤄야 하는 삶은 녹록지 않다
닳고 닳은 언어를 줄이고 친밀함의 감각을 키우며 느낌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인문학과 뇌과학의 아우름으로 터득된 요령!
삶은 어떻게 문학이자 과학이 되며 미적 경험이 되는가

여섯 개의 질문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여섯 가지다. 고독, 착각, 후회, 집착, 공감 등을 차례로 다뤄나간다. 이들 주제는 기억과 인지라는 뇌의 작용, 문학과 영화 이야기를 통해 삶의 신비를 푸는 열쇠가 될 것이다. 즉 프로이트와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은 책의 기반이 되며, 헨리 제임스와 나보코프, 피츠제럴드, 멜빌, 조이스는 우리 삶에 서사를 부여하는 기폭제로서 역할한다. 니체와 하이데거 등 자의식과 시간의 중요성을 논한 철학자들이 빠질 리 없다. 그런 가운데 뇌과학을 학문의 최전선에 내세운 다마지오, 에덜먼, 캔델 등은 이 책이 심리학에서 뇌과학, 인공지능의 주제로 넘어가는 데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내가 본 것, 기억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객관적이지 않고 ‘속임수’를 품고 있다. 게다가 나를 가장 정교하게 속이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책은 속임수를 중심에 두고서 속임수를 모르는 이유, 알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의 긍정적 힘을 모색하지만 끝내 베일을 걷어 인간의 파충류적 면모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만 속임수를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힘든 삶을 조금 쉽게, 덜 후회하며 살 수 있게 만들므로, 잘만 하면 창조력의 근원까지 돼주기에 베일을 조금만 들춰보려는 것이다.

기억이라는 넝마를 끌어안고 사는 늙은이

생각하기는 기억하기다. 기억한다 함은 과거의 사건을 정확히 되새기는 게 아니며 추억을 더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험의 저축에서 끄집어내는 기억하기는 허구가 깃들기에 문학의 행위이며 생각하기도 문학이다. 생각하는 것은 추억을 더듬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그만큼 허구는 더 늘어난다. 이처럼 강력한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기억’이라는 신비한 문을 이 책은 문학, 심리학, 뇌과학을 통해 열어젖히려 시도한다. 기억은 비유하자면, 이 색 저 색 이어붙인 넝마를 꼭 끌어안고 먹을 것을 내던지는 미친 늙은이, 물구덩이고 진흙바닥이고 아무데나 철썩 주저앉는 개, 쓸모없는 지푸라기다.
그런데 이런 기억에서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의 힘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점을 놓치지 말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즉 뇌의 하부 구조, 바로 감각을 담당하고 있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저자의 경험 하나를 들어보자. 그녀는 결혼하고 얼마간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어른들이 아무리 다정하게 대하고 깊은 배려를 해줘도 늘 변비를 앓았다. 그러다가 남편과 주말에 근교 야산을 나가면 언제나 급한 신호가 찾아왔다. 의식은 편안하다고 나를 속이려 하지만 몸은 결코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 중 어떤 게 더 강한가.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느끼는 것일 테지만, 의식은 몸을 억누르고 자신이 더 강하고 순수한 것처럼 행세한다.
그러니 뇌의 하부가 상부보다 더 강하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감각을 억압하면 생각이 맑고 판단이 뚜렷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생각이 끝없이 지연된다. 예컨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애러비]를 보면 주인공 소년은 한 누나를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자기 의식이, 그가 사는 사회가 머릿속에서 사랑을 단념하라고 말하자 그의 몸은 반대로 더 활활 타오르고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사랑이 그토록 힘든 것은 내가 하는 말과 내 몸이 원하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애러비]의 사랑에 빠진 소년은 그것을 표현할 길을 찾지 못한다. 언어는 해답이 못 된다. 여러 사람이 오랫동안 사용하다보니 닳고 닳아 누더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너를 보는 것은 언제나 느낌이다. 너를 사랑할 때도 느낌이고 너를 증오할 때도 느낌이다. 다만 생각이라고 착각할 뿐이다.
한편 일상의 수면 위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견고한 의식이다. 의식은 감각보다 늦게 진화했는데도 원래부터 있던 몸의 감각들을 베일로 감추고 혼자 일을 다 처리하는 척한다. 진화는 진실을 감추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땅속은 부글부글 끓는 용암으로 가득 차 있다고 진실을 알려주어도 금방 잊는다. 그것을 매 순간 의식하면서 어찌 땅에 발을 굳건히 딛고 그 위에 집을 짓고 살겠는가. 의식의 속임수가 생각의 속임수를 낳는 이유다.

사랑, 미적인 경험

독자는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의 감정을 깔아놓았다는 데 감탄할지도 모른다. 노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으라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저자는 자식을 둔 지 오래된 어머니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남녀 간의 사랑은 그에게도, 독자에게도 여전한 관심사다. 이 책이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은 근대가 강조했던 ‘이성’과 ‘사고’에서 벗어나 그 밑에 꿈틀대는 ‘감각’을 더 존중하자는 것이다. 생각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속임수이니 친밀함의 감각을 키우며 느낌의 영역으로 들어가자고. 저자는 잘 짜인 형식을 갖춘 사랑은 예술작품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주관적 보편성이며, 사적인 정의에 이르는 미적 경험이다.
나는 사랑에 빠졌을 때 내가 누구인지 가장 정확하게 안다. 그동안 숨어 있던 키 작은 감각이 자라나서 내 눈의 콩깍지를 두껍게 만들면 비로소 나를 파악하게 되는데, 곧 내가 생각하는 곳은 순수 사유가 아니라는 것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랑은 생각과는 아주 먼 거리에 산다. 라캉은 데카르트를 뒤엎으면서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어 뒤에 달라붙은 감각이라는 잉여 때문에 끝없이 계속되는 대화가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감각의 영역을 언어로 표현하기에 모호하고, 그렇기에 지속된다. 거기엔 참모습이 아닌 오직 내가 보는 너가 있다. 사랑이 끝날 때 동물적 감각은 낮아지고 대신 언어의 힘이 커진다. 동물적 감각은 언어에 달라붙어 다니며 사랑에 빠졌을 때는 몸집을 불리고 사랑이 끝나면 몸집을 줄인다.

타인과 너무 어울리지 않으면: 친밀함이 삶을 구원한다

나이 들어갈수록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렇다면 시간을 길게 늘려 사는 방법이 있을까? 사실 삶의 밀도는 객관적 시간의 길이와 큰 상관관계가 없다. 우리 뇌는 양적으로 풍부했던 어떤 기간들은 전혀 기억 못하기도 하고, 친밀했던 어떤 시간들은 뇌에 깊숙이 새겨넣고 회상하며 자꾸만 부풀려간다. 이 책은 몇몇 문학작품 속으로 들어가 타인과의 거리 조절에 실패한 인생들이 어떻게 부서지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 나오는 바틀비는 타인과 자아 사이에서 균형이 깨진 인물이다. 오랜 고립에 처한 그에게 같은 사무실에 있는 변호사는 무언가를 해보고 다가가보려 시도하지만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어요"라는 혼잣말만 중얼거리는 그를 자아라는 우물 속에서 구원하기란 불가능했다. 고립은 인간의 내적 에너지를 밖으로 들락날락하지 못하고 한쪽에 고이게 하면서 인생을 사막같이 만들어버린다.
필요한 것은 오아시스이고, 오아시스는 바로 타인이다. 만약 타인에 대한 따스한 친근감이 없다면, 그날 일어난 일들은 기억에 저장되지 않고 흩어져버린다. 헨리 제임스의 단편 [정글 속의 짐승]에 나오는 마처도 바틀비만큼 고독한 성에 갇힌 인물이다. 가족이나 친척, 친지도 없는 그는 10년 전 함께 시간을 보낸 여인을 우연히 맞닥뜨린다. 지난 10년간 그녀 이후 단 한 명의 사람도 사귀지 않았던 그와 그녀(메이)는 서로에게 사랑을 느낀다. 다만 상대방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조차 그런 감정을 숨긴 채. 마처는 두려움에 압도당해 어떤 것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불행한 인물이다. 그가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헌신, 열정, 희생, 용기, 사랑, 시간, 그리고 죽음...... 소설 속에서 그 접근 불가한 대상의 의미는 계속 달라진다.
따스한 친밀감이 없는 마처에게는 과거의 기억이나 다른 사람들과이 추억이 결여되어 있다. 과거의 기억이 없으면 현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현재는 언제나 미래의 알 수 없는 염려에 자리를 내주기에 경험은 종잇조각처럼 얇고 마음의 저장고는 텅 비어 있다. 왜 친밀감이 없으면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친밀감이 강할 때 주의력이 집중되고 이런 일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감정에 의해 기억이 좌우된다는 것은 판단 역시 감정에 의해 좌우됨을 의미한다. 경험이 개인적이기 때문에 생각도 개인적이다.
이를 뇌과학적으로 따져보자. 진화를 뜻하는 뇌의 상부는 의식이 기억을 저장하고 인출하는 곳이다. 기억, 판단, 인지가 일어나는 곳이다. 그리고 하부는 진화의 계열에서 상위에 속하는 동물들과 공통되는 부분으로 감각과 슬픔, 두려움, 기쁨, 공포 등 감정이 자리 잡은 곳이다. 그런데 하부의 감정emotion은 반드시 상부를 거쳐야 느낌feeling으로 의식된다. 상부와 하부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은 하부다. 그 부분은 생명에 관계되는 뿌리이기 때문이다. 상부는 손상을 입으면 판단이나 인지에 부분적 장애가 일어나지만, 하부가 손상되면 몸 전체가 부서진다. 그만큼 감각이 더 중요하다.
마처라는 남자는 생애 전체에 걸쳐 마음이 흩어지는 것을 거부하며 한쪽 경향으로 스스로를 몰고 갔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결핍으로 인한 삶의 피폐함은 사랑하는 그녀가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이후에야 깨달아진다.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마처는 삶의 화려한 잔치에서 쫓겨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런 경험이 없는가. 저자는 기억 속을 더듬어 가슴 아픈 이야기 몇 개를 꺼낸다. 지금은 치매로 대전의 어느 요양소에 계신 어머니를 그 전에 더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것, 아버지를 잃고 혼자 산 긴 시간들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미처 느끼지 못하는 후회, 그 긴 시간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뇌종양으로 세상을 일찍 뜬 아버지만을 그리워했던 것......

타인과 너무 어울릴 때 어떻게 망가지는가: 자의식과 집착

나는 그러나 사랑하는 타인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가령 사랑하는 여자에게 폭행을 하는 이는 타인을 인정할 관용이나 사회적 자신감이 없을 때 그런 양상을 보인다. 타인과 거리감이 없으면 집착을 낳는다. 저자도 거리두기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녀는 자기 곁을 졸졸 따르던 딸애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방문 앞에 ‘노크’라고 써 붙이자 꽤 충격을 받았다. 순간적으로 아이에게 분노했고, 그녀는 이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프로이트가 논하듯이, 유아기 몸은 보살핌을 원하지만(애정 성향) 사춘기가 되면 성본능으로 다시 찾아온다(관능 성향). 이제 아이는 부모와의 밀착에서 벗어나 성적 욕망으로 옮겨가는 단계다. 이것은 비로소 아이에게 자의식이 싹트고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는 증거인데, 부모 된 자들은 섭섭해한다.
부모의 사랑은 책임감이나 소유욕보다는 자식의 경험 수준을 가늠하는 지혜에 있을 것이다. 집착은 감각과 의식 사이의 텅 빈 공간, 혹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이 책은 되풀이하여 강조한다. 나의 의식은 경험을 기억의 저장소에 저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거를 기억하며 대상을 인식하고 판단한다. 기억의 흔적은 몸이자 감각이고 물질이다. 그러므로 개인마다 기억이 다른 만큼 생각도 다르다. 또한 환경과 나이에 따라 경험이 다르다. 문제는 모두 자기 생각으로 세상을 보고 타인을 본다는 것이다. 경험의 차이를 잊고 내 위치에서 대상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는 한계다. 특히 애착이 강할수록 자기 눈으로 아이를 보고 자기 소망과 생각을 불어넣는다. 원래 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자식은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 겪어본 적이 없어서 의식으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세계가 아이의 저장고 안에 있을 리 없다. 자식은 경험하고 싶어한다. 비록 그 길이 실패로 가는 것이더라도 스스로 맛보려 한다. 그렇지만 아이가 혹시 낭패를 당할까봐 부모는 두고보지 못하는 것이다.
고독한 자의식을 갖고 있는 인간이 오히려 타인에게 가져야 할 것은 공감능력이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진화의 필수 조건이다. 언어의 발달 역시 거울뉴런 덕택이고 사회적 소통 역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가능하다. 거울뉴런에 손상이 생긴 경우에 공감의 능력이 없는 자폐아가 되기 쉽다. 인지와 판단 역시 공감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고독과 공감은 같은 자의식에서 나타나는 증상이기에 마음의 건강지수와 사회의 건강지수는 같다.

추천사

음미하고 메모하고 줄을 치며 몇 번을 읽었다. 인간의 의식과 감정에 대해 함께 고민해오던 오랜 스승을 만난 듯했다. 인문학의 도서관에서 심리학 거장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듯, 심리학자인 나의 두뇌가 저자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혜안으로 발화되는 듯했다. 이 책은 영화·시·문학·철학 그리고 심리학을 재료로 절정의 셰프가 요리한 진정한 융합의 결실이다. 심리학 필독서를 만났다.
- 최기홍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다양한 아우름. 저자가 일궈온 ‘비평적 영토’의 풍경이다. 이 책은 문학·철학·정신분석·심리학·뇌과학·대중문화를 아우르는 인문학 에세이다. 가령 김소월, 프로스트, 워즈워스의 시詩, 헨리 제임스의 소설이 윌리엄 제임스, 라캉, 영화 몇 편 그리고 저자 자신의 경험과 만난다. 이러한 아우름이 난삽하지 않고 요령要領을 충분히 득得했다는 점이 큰 미덕. 우리의 일상과 삶을 음미하도록 돕는 통찰이 책 곳곳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고독, 착각, 후회, 집착, 공감, 행동, 윤리의 문제까지 인간의 자기 이해를 성찰한다는 점에서 명실상부 ‘인문학’이다. 게다가 그 자기 이해의 논쟁적 최전선, 인공지능이 결론에 나온다. 이 책의 시효가 매우 길 것이며 새로운 통찰의 출발이 될 것이라고 감히 말하는 이유다.
- 표정훈 / 출판평론가

목차

글을 열며-나는 누구인가

1장 나는 왜 고독한가
2장 나는 왜 착각하는가
3장 나는 왜 후회하는가
4장 나는 왜 집착하는가
5장 나는 어떻게 공감하는가
6장 나는 왜 알면서 하지 않는가

글을 나오며: 윤리적 속임수

본문중에서

타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 관용을 의미한다. 자의식은 전혀 없으면 양심에 털이 나는 것이고 지나치면 고독의 성에 갇히게 된다. 이런 양면성 때문에 너무 어울려도 안 되고, 너무 안 어울려도 안 된다. 너무 어울리다보면 세상이 너를 삼켜버리고, 너무 안 어울리면 술이 너를 삼킨다.
(/ p.86)

타인에 대한 따스한 친밀감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와도 연결 고리를 맺지 못하고 아름답거나 아픈 기억이 없는 텅 빈 허수아비처럼 지난 일들을 저장하지 못한 채 고독한 사람이 될 것이다.
(/ p.88)

언어는 여러 사람이 오랫동안 사용하다보니 닳고 닳아 누더기가 되었다. 그래서 몸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맨살이 여기저기 삐죽삐죽 튀어나온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길은 감각을 살려주고 생각은 조금 덜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생각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고 믿는 세상에서는.
(/ p.94)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종
판매수 82권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경희대 영문과에서 가르쳤다. 14권의 학술저서, 문학작품과 비평 이론에 관한 7권의 번역서를 출간했고, 많은 국내 논문과 국제 1급 논문(A&HCI)을 게재했다. 이청준 소설에 대한 평론으로 평론가로 등단한 바 있다.
1990년대에 국내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본격적으로 소개해 반향을 일으켰으며, 라캉을 번역해 정신분석을 소개했고, 이후 프로이트 전집이 번역·소개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비평 이론과 한국문학 평론을 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여성 평론가로서 최초로 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김환태 평론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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