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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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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1.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개요

    루이스 캐럴은 옥스퍼드 수학자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의 필명이다. 찰스 루트위지란 본명을 라틴어 카롤루스 루도비쿠스로 번역하고 그 순서를 바꿔서 영어로 재번역한 거다.
    루이스 캐럴은 성공회 신부 ‘찰스 도지슨’과 ‘프랜시스 제인 루트위지’ 사이에서 4남 7녀 가운데 셋째자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회 신부로, 리치먼드 대집사와 리펀 성당 참사관을 겸했다.
    캐럴 형제는 외딴 시골 마을에 살아서 친구가 거의 없어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지냈다. 캐럴은 재밌는 놀이를 만들어서 가족을 즐겁게 하는 실력이 어릴 때부터 탁월했다. 12세 때는 가족이 쓴 원고를 모아서 [사제관 잡지 Rectory Magazines]를 펴낼 정도였다. 그러나 [유익하고 교훈적인 시 Useful and Instructive Poetry](1845, 1954년 출판)를 시작으로 [사제관 잡지](대부분 출판되지 않았음)·[사제관 우산 The Rectory Umbrella](1850~53)·[Mischmasch](1853~62, [사제관 우산]과 함께 1932년 출판) 등 현재까지 남은 글 대부분은 사실 캐럴 혼자 썼다.
    캐럴은 요크셔 리치먼드 스쿨에 다닌 뒤(1844~45) 럭비 학교에 진학했다(1846~50). 하지만 천성적으로 수줍어하는 성격에 동료들도 괴롭혀서 공립학교 생활을 싫어했다. 게다가 잦은 병치레로 한쪽 귀가 먹고 말을 심하게 더듬어, 럭비 학교를 졸업하고 1년 동안 아버지에게 개인교습을 받다,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단과대학 입학을 허가받고, 1851년 1월 24일 학부생으로 입학했다. 1852년에는 수학과 고전 과목에 두각을 나타내 장학생으로 뽑혔다.
    1854년 수학 졸업시험을 1등하고, 그해 12월에 문학사 학위를 받고, ‘단과대학 학생장’이 되었으며, 이듬해는 특별연구원 자격을 획득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모교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당시에는 특별연구원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크라이스트 처치 장학금에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그리고 성직자가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캐럴은 1861년 12월 22일 영국국교회 집사가 되는데, 행여나 사제가 되려고 했다면 결혼도 하고 대학에서 교구도 배정받을 터였다. 하지만 결혼을 고려하다 자신은 사제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하고 독신을 선택했다.
    캐럴은 어린이를 위한 문학작품뿐 아니라 훌륭한 사진도 남겼다. 영화배우 엘런 테리, 시인 앨프레드 테니슨, 시인이자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등, 인물 사진이 많다. 어려서 화가가 되려는 꿈을 가졌으나 이루지 못하자 사진으로 전환한 거다. 그래서 어린애에게 다양한 옷을 입히고 다양한 상황을 설정해서 사진 찍기를 좋아했으며, 나중에는 알몸사진까지 연구했으나, 귀한 시간을 너무 뺏는다고 느껴, 1880년에는 사진에서 아예 손을 뗐다. 갑작스러운 결정에 대해, 알몸사진을 찍는 동기가 불순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이야기를 지어내기 전에 시와 산문을 재미있게 엮은 작품 여러 편과 진지하긴 해도 수준은 약간 낮은 시 몇 편을 출판했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발표했으나, 1856년 3월에 발표한 시 [고독 Solitude]부터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을 썼다. 그리고 대학에서 발표한 학술서 이외의 모든 글에 이 필명을 썼다. 수학책을 많이 발표했으나 [유클리드와 현대의 맞수들 Euclid and His Modern Rivals]이 역사적인 가치를 지닐 뿐,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해학적인 시를 수록한 [환영 Phantasmagoria and Other Poems](1869)은 나중에 증보해, [압운? 그리고 이성? Rhyme? and Reason?](1883)·[세 차례의 일몰 Three Sunsets and Other Poems](사후출판, 1898)로 나누어서 출판했다.
    말년에 앨리스 이야기와 비슷한 작품을 다시 쓰려고 했으나 [실비와 브루노 Sylvie and Bruno](1889) 및 ‘영문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실패작’이라는 속편 [실비와 브루노 완결편 Sylvie and Bruno Concluded](1893)을 쓰는 데 그쳤다.

    2, 작품해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여자아이가 토끼굴 아래로 떨어져서 다양한 동물을 만난다는 내용으로, 어른과 어린이 모두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문화와 문학에, 판타지 장르에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영화와 연극과 그림과 발레와 컴퓨터 게임으로도 나왔다. 하지만 작가가 논리학과 수학을 활용해서 어린이를 즐겁게 한 이야기는 정말 우연히 생겨났다.
    캐럴은 동생이 여덟 명이나 되는 덕분에 어린애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자연스러웠다. 말을 심하게 더듬어도 아이들한테는 아니었다. 캐럴이 가깝게 지내던 아이들 가운데는 작가 조지 맥도널드 자녀와 시인 앨프레드 테니슨 아들도 있었다. 하지만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단과대학 학장 헨리 조지 리델의 세 딸 로리나·앨리스·에디스와 특히 가깝게 지냈다. 대학에선 학장만 결혼하고 교내에 거주할 수 있어, 크라이스트 처치에 세 여자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 여자애는 가정교사 프리킷에게 엄격한 예절교육을 받으며 자라, 가정교사를 ‘가시가 돋쳤다’는 뜻의 ‘프릭스(Pricks)’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루이스 캐럴은 프리킷을 [거울 속 여행]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모델로 삼을 정도였다.
    앨리스가 1932년에 회상한 내용에 따르면, 캐럴은 커다란 소파에 앉아서 연필이나 잉크로 그림을 쉴새 없이 그리며 이야기하고 세 자매는 양쪽에 앉아서 열심히 들었다. 늘 새로운 내용은 아니고, 옛이야기를 새롭게 바꾸거나 뒷부분을 이어갈 때도 잦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대목을 신선하게 추가해서 새 이야기처럼 들리곤 했다.
    1862년 7월 4일, 캐럴은 트리니티 칼리지 특별연구원인 친구 로빈슨 덕워스와 함께 세 자매를 데리고 템스 강에서 보트를 탔다. 노를 저어 옥스퍼드에서 가즈토까지 올라가 강둑에서 식사하고 저녁 늦게 돌아왔는데, 친구가 쓴 일기에 따르면, 캐럴은 보트에서 [앨리스의 땅속 모험 Alice's Adventures Underground]을 들려주고, 앨리스는 글로 써달라 부탁했다.
    캐럴은 1887년에 회상하길,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려고 머리를 짜내다, 여주인공을 토끼굴 땅속으로 무작정 내려보냈다. 뒷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지 아무런 구상도 못 한 상태였다." 그래서 앨리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그대로 적기도 하고, 전에 들려준 모험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써나갔다. 어설프지만 독특한 삽화도 직접 그려 넣고, 나름대로 완성해서 앨리스에게 별생각 없이 주었다. 그런데 소설가 헨리 킹즐리는 학장 관저를 방문했다가 거실 탁자에 놓인 원고를 우연히 읽고서 출판을 제안했다.
    캐럴은 얼떨떨한 마음에 훌륭한 동화작가며 친구인 조지 맥도널드와 의논했다. 맥도널드는 이것을 집으로 가져가서 자기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6세 아들 그레빌은 "6만 권짜리 이야기면 좋겠다"며 아쉬워했다.
    결국, 캐럴은 원고를 출판용으로 개작해, 소풍에 대한 부분을 서두 시 형식으로 간단하게 줄이고 리델 자매에게 다른 시기에 이야기한 내용을 덧붙였다.
    친구 덕워스가 제안해, 캐럴은 [펀치 Punch]지 만화가 존 테니얼을 소개받아 삽화를 부탁했다. 그래서 1865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탄생했다. 초판은 인쇄가 나빠서 회수하는 바람에 21부만 남아 19세기의 희귀본이 되었다. 재판은 발행연도를 1866년이라고 적었으나, 실제로는 1865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출판했다. 이 책은 느리긴 해도 꾸준히 팔려나가더니, 루이스 캐럴이 사망할 무렵에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책이, 루이스 캐럴 탄생 100주년인 1932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다.
    앨리스 이야기가 성공한 비결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논리학과 수학을 다양하게 녹여내, 해석도 다양하지만, "수수께끼는 만들 때부터 해답이 없다"는 모자장수처럼 모두 어림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루이스 캐럴이라는 수수께끼’ 자체를 풀려는 시도는 수없이 많았다. 캐럴이 어린 여자애들과 친하게 지낸 건 이성에 대한 욕구를 대리 충족하려는 무의식적 행위였다든가, 애정을 쏟던 아이가 결혼 계획을 밝히면 질투 증세를 보였다든가, 앨리스 리델을 비롯한 몇몇 소녀와 결혼까지 생각했다는 등, 주장은 다양하다. 그러나 입증할 증거는 거의 없다. 실제로 캐럴은 아이들이 크면, 앨리스 역시 12세가 된 다음부터, 더는 만나지 않았다. 리델 학장이 시도한 크라이스트 처치의 ‘개혁’을 캐럴이 풍자한 뒤로는 앨리스 동생 에디스조차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도덕을 중시하는 빅토리아 시대가 지나고 다양한 심리학 이론이 등장하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정말 이상하단 비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토끼굴과 옆으로 젖히는 커튼과 조그만 문은 여성의 신체를, 열쇠와 자물쇠는 성교를, 애벌레는 남근을 상징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앨리스 목이 기다랗게 늘어나는 건 남근숭배 현상이며, 부채를 부쳐서 줄어드는 것과 조그맣게 변해서 눈물이 턱까지 차는 건 자위행위를 나타낸다고 보는 비평가도 있다.
    애벌레가 버섯 꼭대기에서 물담배를 태우고 주변에 마법 버섯이 많다는 표현은 마약을 암시한다고 보기도 한다. 체셔 고양이가 순식간에 나타나거나 사라지고 공중엔 빙그레 웃는 얼굴만 남는 내용도 비슷한 사례라는 거다. 그래서 1960년대만 해도 히피들은 "파란 약을 먹으면 현실은 사라지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게 눈앞에 그대로 나타나고, 빨간 약을 먹으면 토끼굴에 깊이 빠져 이상한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저자가 마약을 했다는 증거 역시 어디에도 없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정치 우화로 보는 비평가도 많다. 앨리스가 하얀 토끼를 쫓아서 굴로 뛰어드니, 여왕은 마음대로 통치하고 백성은 벌벌 떠는 왕국이 나타나는데,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한 영국과 너무나 비슷하다.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고 고문당하고 죽어 나간다. 앨리스는 권위와 정면으로 부닥치고 독재권력 행태와 운동경기 규칙을 이해하려 애쓰고 다양한 모험을 겪으며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쳐서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러면서 몸이 극단적으로 변하니, 자아는 물론 존재까지 흔들린다. 앨리스는 이상한 왕국에서 원주민이 너무나 이상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황당하게 여기며 자신의 가치관을 주입하려 애쓰기도 한다. 영국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는 거다.

    3. 편집자의 말

    번역은 원문에 담긴 내용과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글로 옮기는 과정이어야 한다. 찰스 디킨스 작품은 다양한 인물을 풍자와 유머와 화려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묘사하는 특징이 탁월하다. 따라서 문장은 어렵고 복잡한데, 지금까지 번역한 작품은 한글 어법을 무시한 영어 사대주의에다 오역까지 넘쳐서 극히 어렵고 난해했다.

    고전문학은 다양한 경쟁과 도전 속에서 독자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며 백 년 이상 살아남은 작품이니, ‘재미와 감동’은 물론 ‘술술 읽히는 느낌’ 역시 어느 작품보다 탁월할 수밖에 없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기능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엉터리로 번역해서 독자를 괴롭히며 쫓아낸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문학은 독서가 시작이다. 고전문학을 제대로 해석해서 한글 어법에 정확히 담아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가꿀 원형을 제시해야 한다. 광복 35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우리는 ‘일본어 중역 몰아내기 운동’을 했다. 35년이 또 지났다. 이제는 ‘우리말 살리는 번역운동’을 할 때가 왔다.

    ‘도서출판 비꽃’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어 어법에 합당한 번역을 추구하며, ‘찰스 디킨스 선집’을 필두로 고전문학을 새롭게 담아내,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면서 공동체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본문중에서

    오랜 침묵이 흐르고, "당연히 나는 그러고 싶지 않네요, 주인님, 조금도!" "내가 시킨 대로 해, 겁쟁이야!"하는 소리만 간혹가다 조그맣게 들리는 거야. 앨리스는 손을 다시 펼쳐서 공중을 낚아챘어. 이번에는 비명을 조그맣게 내지르는 소리가 두 번 들리고, 유리 깨지는 소리도 다시 들렸어.
    ‘오이 온실이 많은 모양이야! 저들이 이번엔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나를 창문에서 잡아빼겠다면, 나로서도 바라는 바야!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거든!’
    앨리스는 이렇게 생각하고 가만히 기다리는데, 한동안 아무 소리도 안 들리더니, 결국에는 조그만 수레가 덜커덩덜커덩 다가오는 소리와 함께 여러 목소리가 왁자지껄 대는 거야. 이런 소리였어.
    "다른 사다리는 어디에 있지?......나는 하나만 가져왔어. 또 하나는 빌한테 있어......빌! 이리 가져와, 꼬마!......자, 여기 구석에 세워......아니야, 두 개를 하나로 묶으라고......그래도 절반 높이밖에 안 돼......아! 충분하니까, 유별나게 굴지 마......자, 빌! 밧줄을 잡아......지붕이 견딜까?......기와가 느슨하니까 조심해......맙소사, 기와가 떨어진다! 아래쪽, 머리 조심해!"
    우당탕.
    "아니, 누가 저런 거야?......빌이 그런 것 같아......굴뚝을 누가 내려가지?......싫어, 나는! 네가 내려가!......내려가는 건 나도 싫어! 빌을 내려보내......어서, 빌! 주인님이 너한테 굴뚝을 내려가래!"
    ‘아! 그럼 빌이 굴뚝으로 내려오는 건가? 저들은 일만 생기면 빌한테 덮어씌우는 것 같아! 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빌처럼 당하지 않아. 벽난로가 좁긴 하지만 발로 내찰 순 있겠어!’

    앨리스는 잠시 쉬려고 미나리아재비에 등을 기댄 채 나뭇잎 하나로 부채질하며 중얼댔어.
    "강아지가 정말 귀엽고 예뻤어! 묘기를 많이 가르치고 싶어, 만일, 만일, 내가 적당한 크기라면! 맙소사! 내가 다시 자라나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어! 가만있자......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을까? 뭔가를 먹거나 마셔야 하는 것 같아. 하지만 정말 커다란 문제는, 그게 뭐냐는 거야!"
    맞아, 정말 커다란 문제는 그게 뭐냐는 거야. 앨리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꽃과 풀잎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이런 상황에서 먹거나 마실만 한 건 하나도 안 보이는 거야. 근처에 커다란 버섯이 하나 자라는데, 키가 앨리스랑 비슷해, 앨리스는 그 밑을 살피고 양쪽을 살피고 뒤를 살피더니, 버섯 꼭대기도 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어. 그래서 발가락 끝으로 최대한 일어나 버섯 모서리 너머를 살피다, 파란색 커다란 애벌레랑 시선이 마주쳤어. 애벌레는 꼭대기에 앉아서 양쪽 팔을 팔짱 낀 채 기다란 물담배를 조용히 태울 뿐, 앨리스든 누구든 모르는 척했지.

    "너! 너는 누구냐?"
    애벌레가 깔보는 어투로 다시 묻자, 대화는 처음으로 돌아왔어. 앨리스는 애벌레가 너무 짧게 말하는 어투에 약간 짜증 나서 몸을 앞으로 쭉 내밀며 진지하게 말했지.
    "제 생각엔 선생님 먼저 누군지 말하는 게 좋겠어요."
    "왜?"
    이것 역시 어려운 질문이라서 적절한 이유를 떠올릴 수 없는 데다 애벌레 기분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아, 앨리스는 발길을 돌렸어. 그러자 애벌레가 뒤에 대고 소리쳤지.
    "돌아와! 말할 게 있으니까!"
    그럴싸한 말에 앨리스는 몸을 돌려서 돌아왔어.
    "성질 좀 죽여라."
    "그게 전부에요?"
    앨리스가 물었어. 속에서 치미는 분노를 꾹 눌렀지.
    "아니다."
    애벌레 말에 앨리스는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 어차피 할 일도 없는 데다 애벌레가 중요한 내용을 말할 수도 있거든. 그런데 애벌레는 아무 말 없이 담뱃대만 뻐끔거리다, 마침내 팔짱을 풀고 입에서 담뱃대를 다시 빼내더니, 이렇게 물었어.
    "그래, 너는 자신이 여러 차례 변했다고 생각해, 그지?"
    "맞아요, 선생님. 예전에 알던 내용도 기억이 안 나요...... 몸뚱이가 늘었다 줄었다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어떤 게 기억이 안 나지?"

    비둘기는 못 들은 척하면서 계속 흐느꼈어.
    "나무뿌리에도 둥지를 틀고 강둑에도 둥지를 틀고 산울타리에도 둥지를 틀었지만, 나쁜 뱀이 가득하다고! 도무지 피할 방법이 없다고!"
    앨리스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비둘기가 계속 말하는 사이로 끼어드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어.
    "알을 품는 것만 해도 힘들어 죽겠는데, 밤낮으로 쳐들어오는 뱀까지 감시해야 한다고! 아아, 삼 주 내내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그렇게 힘들었다니, 정말 안타까워."
    앨리스가 위로했어. 이제 비로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거야. 하지만 비둘기는 목소리를 날카롭게 키우며 계속 소리쳤지.
    "그래서 숲에서 제일 높다란 나무에 이제 막 둥지를 틀었는데, 그래서 마침내 뱀한테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하늘에서 꿈틀꿈틀 내려오다니! 웩, 나쁜 뱀!"
    "하지만 나는 뱀이 아니라고 했잖아! 나는...... 나는......"
    "그래? 그럼 너는 누군데? 거짓말하려고 애쓰는 거 다 보인다고!"
    "나는...... 나는 여자아이야."
    앨리스가 대답하는데, 의심스러운 어투야. 그날 하루 동안 자신이 여러 차례 변한 사실이 떠올랐거든.
    그러자 비둘기는 정말 경멸스럽다는 어투로 소리쳤어.
    "거짓말이 그럴듯하군! 여자아이를 숱하게 보았지만, 목이 이렇게 기다란 아이는 없었다고! 거짓말, 거짓말! 너는 나쁜 뱀이야. 부인해도 소용없어. 이제 알을 먹은 적이 없다는 말까지 늘어놓겠구나!"
    하지만 앨리스는 솔직한 아이라서 정직하게 대답했어.
    "알은 많이 먹었어. 하지만 여자아이는 알을 뱀처럼 많이 먹는다고."
    "못 믿겠어. 하지만 네 말이 진짜라면, 여자아이랑 뱀이랑 다른 게 뭐야?"

    식탁이 꽤 널찍한데도 3월 토끼와 모자장수와 겨울잠쥐는 한쪽 구석에 비좁게 앉았다, 앨리스가 다가오는 걸 보고서 "자리가 없어! 자리가 없어!"라고 소리쳤어.
    그래서 앨리스는 불끈 화내며 "자리는 많아요!"라고 소리친 다음, 식탁 맞은편 끝으로 가서 커다란 안락의자에 철퍼덕 앉았어.
    "포도주를 마셔."
    3월 토끼가 권하듯 말해, 앨리스는 식탁을 둘러보는데, 차 말고 아무것도 없는 거야. 그래서 말했지.
    "포도주가 안 보여요."
    "없으니까."
    3월 토끼 말에, 앨리스는 화가 치솟았어.
    "없는 걸 권하다니, 정말 예의가 없네요."
    "초대도 안 받고 자리에 앉다니, 정말 예의가 없군."
    3월 토끼도 말했어.
    "이게 당신네 식탁인지 몰랐어요. 자리도 넉넉하고."
    앨리스가 받아치자, 모자장수도 끼어들었어.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다 처음 말한 거야.
    "머리칼을 잘라야 하겠어."
    "개인적인 문제를 말하다니, 예의가 없네요. 정말 무례해요."
    앨리스가 신랄하게 말했어. 그러자 모자장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게 전부야.
    "까마귀랑 책상은 무엇이 똑같을까?"
    ‘그래, 수수께끼를 내다니, 정말 다행이야! 이제 재미나겠어!’
    앨리스는 가만히 생각하다, 커다랗게 덧붙였어.
    "내가 알아맞힐 것 같아!"
    그러자 3월 토끼가 물었지.
    "네가 답을 찾아낼 것 같다는 뜻이니?"
    앨리스가 대답했어.
    "당연하지요."
    "그렇다면 네가 생각한 걸 말해야지."
    3월 토끼가 계속 묻자, 앨리스는 허둥지둥 대답했어.
    "말하잖아요, 어차피 내가 말하는 게 내가 생각한 거니......똑같은 거라고요."
    "하나도 똑같지 않아! 네 말은 ‘나는 먹는 걸 본다’와 ‘나는 본 걸 먹는다’가 똑같다는 거라고."
    모자장수가 반박하자, 3월 토끼가 거들었어.
    "네 말은 ‘나는 가진 걸 좋아한다’와 ‘나는 좋아하는 걸 가진다’가 똑같다는 거라고."
    "네 말은 ‘나는 잠잘 때 숨 쉰다’와 ‘나는 숨 쉴 때 잠잔다’가 똑같다는 거라고."
    겨울잠쥐도 거드는데, 잠꼬대하는 것 같았어.
    "너한테는 똑같은 거잖아, 겨울잠쥐."
    모자장수가 받아치면서 대화는 끊기고, 다과회 자리엔 순간적으로 침묵이 깔려, 앨리스는 그 틈을 이용해서 까마귀와 책상에 대해 기억나는 걸 하나씩 따져보는데, 맞물리는 게 없었어.
    마침내 침묵을 깨뜨린 건 모자장수야. 앨리스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물었거든.
    "오늘이 며칠이지?"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불쾌한 표정으로 쳐다보다 이리저리 흔들기도 하고 귀에 대기도 하던 참이야.
    앨리스는 가만히 생각하다 대답했지.
    "4일."
    "이틀이나 틀려!"
    모자장수가 한탄하더니, 3월 토끼에게 화내며 소리쳤어.
    "버터를 발라도 소용이 없을 거라고 했잖아!"
    "제일 좋은 버터였다고."
    3월 토끼는 힘없이 대답하고, 모자장수는 투덜댔어.
    "그렇긴 해도 빵가루가 쓸려서 들어간 게 분명해. 빵 자르는 칼로 버터를 바르는 게 아니었다고."
    3월 토끼는 시계를 받아서 울적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자신이 마시던 찻잔에 풍덩 넣었다 빼서 다시 쳐다보았어. 하지만 처음 한 말보다 더 좋은 말을 떠올릴 순 없었지.
    "너도 알다시피, 제일 좋은 버터였다고."
    앨리스는 호기심이 일어서 3월 토끼 어깨너머로 살피다 말했어.
    "시계가 참 웃기네요! 날짜는 나오는데 시간은 안 나와요!"

    "모두 자기 자리로 가!"
    여왕이 벼락같이 소리치자, 모두 이리저리 달리느라 서로 부닥치며 뒹굴었어. 하지만 결국에는 모두 자리를 잡아, 경기를 시작했어. 앨리스는 이렇게 이상한 크로케 경기장은 난생처음 보는 것 같았어.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공은 산 고슴도치고, 방망이는 산 홍학이고, 골대는 병사가 허리를 구부린 채 두 발과 두 손을 바닥에 대서 만든 거야.
    앨리스가 맞닥뜨린 제일 커다란 문제는 홍학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거야. 다리를 거꾸로 잡아서 그 몸통을 겨드랑이에 간신히 꼈는데, 그 목을 쭉 펴서 머리로 고슴도치를 치려고 할 때마다 홍학이 목을 동그랗게 구부리며 정말 곤란하단 표정으로 쳐다보아, 앨리스는 폭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거든. 그러다가 그 머리를 다시 내려서 공을 치려고 하면 이번에는 고슴도치가 몸을 쭉 펴고 슬금슬금 기어서 도망가니, 짜증이 절로 났지. 게다가, 앨리스가 고슴도치를 보내려는 곳마다 바닥은 울퉁불퉁한 데다, 허리를 숙인 병사는 툭하면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사라지니, 결국 앨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경기라고 결론 내렸어.
    선수는 차례도 안 기다리고 한꺼번에 달려들어 경기하고, 끊임없이 다투고, 고슴도치를 차지하려 싸우니, 얼마 안 가서 여왕은 화가 잔뜩 치밀어 발을 동동 구르며 일 분에 한 번씩 "저놈 머리를 베라!"거나 "저년 머리를 잘라라!"고 소리쳤지.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832.01.27~1898.01.14
    출생지 영국 체셔
    출간도서 213종
    판매수 197,375권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으로, 1월 27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을 위한 잡지를 발행하는 등 창작과 편집에 소질을 보였다. 1856년부터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이야기되는 앨리스 리델을 만난다. 이 책은 <지하 세계의 앨리스>라는 이름의 자필로 쓴 이야기 책이었으나 후에 맥밀런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로 하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제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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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에서 태어나 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저작권 중계회사 ‘임프리마 코리아’ 영미권 담당부장, 도서출판 ‘사람과책’ 편집부장 등을 역임했다. 약 300여 종에 달하는 영서를 번역했다. 학계에서 발표한 다양한 ‘번역방법론’ 및 ‘한글 특징’ 백여 편을 정리하고 25년에 걸친 번역 경력을 접목해,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번역방법론을 강의하며 검증해서 ‘한글을 알면 영어가 산다’로 발표했다. ‘비꽃’에서 천민자본주의를 화려하게 풍자한 ‘찰스 디킨스 선집’을 필두로, 파시즘을 파헤치는 ‘조지 오웰 삼부작’을 우리말 어법에 맞게 새롭게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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