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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소설 : 양선형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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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1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양선형의 첫 소설집 『감상 소설』. 현실과 환상이 이중 삼중으로 착종된 문장을 정교하고 세련되게 구사한다는 평을 받았던 등단작 「스나크 사냥」을 포함하여 그가 4년여간 쓰고 다듬은 10편의 단편소설이 고스란히 묶였다. 그는 기존의 소설 작법을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답습하고 철저하게 모방함으로써, 그 궤적을 가속화하고 과잉 활용함으로써 폭주, 오류를 유발시키고자 한다. 기존 언어 체계를 탈주하기보다 내파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는 것이다. 양선형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는다고 쓰는 방식을 통해, 정확히는 아무것도 쓰지 않음을 쓰는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끈기 있게 개척해나가는 중이다.

출판사 서평

불능의 폭주를 지속하는 글쓰기-기계
쓰지 않음을 씀으로써 가능한 언어의 출구를 향하여

201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양선형의 첫 소설집 『감상 소설』(문학과지성사, 2018)이 출간되었다. “현실과 환상이 이중 삼중으로 착종된 문장”을 “정교하고 세련되게” 구사한다는 평을 받았던 등단작 「스나크 사냥」을 포함하여 그가 4년여간 쓰고 다듬은 10편의 단편소설이 고스란히 묶였다.
양선형은 언어를 끊임없이 직조해내는 기계처럼 일종의 반복 놀이, 자동적 글쓰기?criture를 통해 작가의 고유성을 무화시키는 문체를 구사한다. 서사적 글쓰기가 아닌 망상과 환각을 적극 동원하여 해석과 의미가 부재하는 사고실험을 지속한다. 그렇다면 양선형이 이토록 위태로운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기존의 소설 작법을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답습하고 철저하게 모방함으로써, 그 궤적을 가속화하고 과잉 활용함으로써 폭주, 오류를 유발시키고자 한다. 기존 언어 체계를 탈주하기보다 내파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는 것이다. 양선형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는다고 쓰는 방식을 통해, 정확히는 아무것도 쓰지 않음을 쓰는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끈기 있게 개척해나가는 중이다. 그는 글쓰기를 실험한다기보다 기꺼이 실험에 응하는, 글쓰기라는 필연적 허무에 스스로 투신하는 작가이다.

제 입장에서 소설이란 일종의 함정입니다. 이 함정은 ‘경험’과 ‘현실’에 에러를 일으키려고 작정을 한 것처럼 보이구요. 스스로 판 함정 때문에 자가당착에 빠지거나 미끄러져 고립되거나 함정을 넘어서고 작위적으로 메워버리기도 하면서 소설 쓰기가 진행되는 것 같아요.
―「이달의 소설」 인터뷰 중 양선형의 말(『제7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양선형이 이야기를, 언어를, 서사를, 인물을, 그리고 의미를 부정한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는 그것들을 모두 과도할 정도로 사용함으로써, 언어를 실제처럼 오인함으로써, 그 모든 것을 소모시키고, 고갈시키고, 탕진시킨다. [……] 작가는 초현실, 환상, 망상 속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환상과 현실의 경계선을 따라가면서 실험하는 존재이며, 소설을, 예술을, 글쓰기를 실험하는 존재가 아니라, 글쓰기 속에서 자기 자신의 실험됨을 감당하는 존재이다._강동호(문학평론가)


무의미를 되풀이하며 나아가는 인간

『감상 소설』의 단편소설 10편은 상호텍스트적으로 연결된 동시에 내적으로 낱낱이 분해되어 있다. 이는 소설에서 초점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의 기능적 모호함에서 비롯한다. 등장인물 ‘그’는 어떤 의미로서 고정되기보다 무한히 나열된 메시지와 맥락에 의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존재이다. 언급되고 지시될 수는 있으나 고정이 불가능한, 그래서 무의미한 서술 자체와 다를 바 없다. “서술은 그를 운반하는 사람들의 정체를 밝혀주지 않는다”(「사살 없음」)와 양선형의 소설이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을 계속해서 교란시키고픈 욕망을 동력으로 삼아 진행”되는 듯하다는 문학평론가 이경진의 말처럼 ‘그’라는 인물은 일반적인 서술의 기능을 어지럽히고 해체하는 데 기여한다. 자기 자신의 기원과 목적을 잃어버린 자, 한마디로 ‘그’는 언어 체계 내부에 있으나 기대되는 역할을 상실한, 양선형이 탄생시킨 ‘불능의 인간’인 것이다.

나는 원래 이렇듯 멀쩡하게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아주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세우는 사람이었고…… 그 시절의 내가 그저 몰매를 맞아도 가만한 자, 마비된 자라면 둔감하게 무뎌진 감각 다발 속에 납작 엎드려 가쁜 숨을 내뱉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 스스로의 불능을 방벽처럼 쌓은 다음 그러한 부동성을 향해 투명하게 내리꽂히는 빛이 냉혹하게 굴절되는 모습을 통해 개인의 취미라는 것을 실감하는 사람에 불과했지요. (「종말기 의료」, p. 174)

양선형이 그리는 ‘불능의 인간’은 결여 자체다. ‘그’는 일시적으로 역량을 상실한 주체가 아니라 불능이라는 사태에 사로잡힌 인질에 가깝다. 또한 글쓰기라는 사태 속의 작가 자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양선형은 ‘불능의 인간’이 자발적으로 소진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의미가 불분명한 언술을 멈추지 않는 방식을 통해서 “고갈된 역량의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욕망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쓰기를 그만두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문장처럼 불능의 되풀이를 기꺼이 감내하는 것이다(「감상 소설」).


사라지는 궤적을 사랑하기

그렇다면 양선형이 기존의 서술과 의미 체계를 비껴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양선형이 글쓰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전무하다는 사실에 있다.

소설은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삶은 피규어가 아니니까. 나도 그것은 안다.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글쓰기는 도박장의 망가진 슬롯머신이지. 그것은 아무리 코인을 넣어도 참된 행운, 또한 도저한 불행에도 가까워지지 않는 아둔한 반성이란다. 이제 내겐 코인을 넣는 순간만이 남지. 짤막한 기척. 코인을 움켜쥐는 순간. 코인을 잃는 순간. 꼬리를 자르는 순간의 잘린 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분할하는 순간. 공허와 코인을 교환하는 바로 그 순간을 쉽게 망각할 수는 없는 거야. (「감상 소설」, p. 261~62)

롤랑 바르트는 서사물이 탄생하는 근본적인 욕망을 설명하는 가운데, 그것이 교환 욕망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언어를 통한 의미 교환 체계로의 진입이며, 이는 결국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욕망의 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양선형이 글쓰기로 얻고자 하는 것은 공허의 순간 혹은 순간의 공허뿐이다. 그러므로 실패가 예견된 도박을 반복하는, 부질없음이 명백한 시도를 되풀이하는 그의 노력은 ‘도박가는 곧 혁명가’라는 벤야민적 알레고리를 연상시킨다.

모든 것이 공허하거나 허무하다는 사실을 자각한다고 해도 용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용기는 허무와 부재 속에서 실험되는 것이다. 용기는 허무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다시 뒤척일 수 있는 움직이는 잿더미가 된다는 것이다. 폐곡선이 예고된 허약한 궤적에 몰두하는 것이다. 좌절될 갱생을 끊임없이 모방하는 것이다. 빈한한 결락인 기척의 변주에 불과한 지속을 그만두지 않는 것이다. 용기는 사라지는 궤적을 사랑하는 것이다. (「현상 소설」, p. 338)

이렇듯 양선형은 “움직이는 잿더미”가 되어서도 몰두와 지속을 포기하지 않는, 보기 드문 야심을 지닌 신인이다. 『감상 소설』은 그런 작가가 문학이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궤적을 향해 열렬히 헌신을 쏟아부은 결과이다. 불가해하고 무한한 영역에 한 걸음 다가서게끔 이끄는 책으로, 독자들에게 독특한 독서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목차

해변생활자
스나크 사냥
생활과 L의 유령
표범의 사용
수은의 시도
종말기 의료
사살 없음
모빌 트리
감상 소설
현상 소설

해설 | 불능의 시뮬라크르_강동호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지금, 모든 먹이를 한꺼번에 해치워야 한다. 시간이 없다. 남아도는 죽음을 청산해야 한다. 배를 불려야 한다. 뚜껑을 덮듯이, 턱을 덜그럭거리며, 구멍을 향해, 수많은 포크를 촛대처럼 치켜든 채, 식탁 위에서, 혹은 변기 위에 앉아, 모든 먹이가 고갈될 때까지, 더 이상 아무것도 삼킬 수 없을 만큼, 넘어오는 구역질을 끈질기게 집어삼키며, 스나크들의 씨가 마르고, 위장이 짓무른 홍시처럼 부어터질 때까지.
그리고 우리는 스나크들 전부를 잃게 된다.
―「스나크 사냥」

그림자들만으로 한 권의 삶을 마련할 수 있을까?
그림자가 있다면 그림자의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의 그림자가 있으면 그림자의 그림자의 그림자가, 겹쳐진 그림자들이, 복수의, 두꺼운, 그것은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라 그림자들이 겹겹이 쌓인 책이다. 낱장들을 엮어 만든 책, 그림자를 읽으면 그림자가 나타나는 책, 그림자들을 무한히 넘기는 방식으로 지속되는 삶.
―「표범의 사용」

그는 있다. 그는 앉아 있다. 그렇게 보인다. 그는 단위가 아니다. 묶음이 아니다. 소설은 나아가지 않는다. 인물은 사람처럼 걸어보지 못한다. 이제 그는 그녀가 돌보는 한 대의 의자이다. 의자 위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다. 세계는 인간이 결박된 한 대의 휠체어다. 나는 저지당한다.
―「사살 없음」

그는 줄곧 가짜 처소 안에 머무르고 있다. 가짜 믿음 속에. 가짜 권태 속에. 가짜 진술, 가짜 사건, 가짜 위기들, 가짜 감정들 속에. 서술은 그에게서 비껴 서 있다. 서술은 그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를 인도하지 못한다. 손을 잡아주지도 않는다. 애초에 손바닥이 없다. 그는 무기력하기도 하고 때때로 불만스러운 기분을 느낀다. 어쩌면 그는 무감한 앵무새처럼 보인다. 그는 어떤 감정에도 합치되지 못하는 나약한 표현이다.
―「모빌 트리」

저자소개

생년월일 1990

1990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1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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