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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다가서는 질문같이 : 김명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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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존재의 집에서 걸어나와 역사의 광장에 서기까지…
    언어와 세계에 대한 웅숭깊은 성찰을 담은 단정한 시편들


    시력 42년, 종심(從心)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빛나는 시작활동을 하고 있는 김명수 시인의 열번째 시집 『언제나 다가서는 질문같이』가 창비시선 422번째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197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빼어난 서정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아동문학가로서도 탁월한 문학적 성과를 일구었다. [곡옥](문학과지성사 2013)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언뜻번뜻 예사롭지 않은 기상(奇想)”이 돌올한 시세계를 펼치며 “시의 으뜸가는 경지”(이종욱, 추천사)를 보여준다. 명징하고 절제된 언어에 실린 간명한 묘사와 선명한 이미지가 어우러진 단정한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폭넓고 깊이있는 사색이 깃든 시편마다 만사만물을 포용하며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꿰뚫어보는 시적 직관력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습니다/나무와 풀잎과 이슬과 바람/황무지 흙먼지 별빛의 언어/대지와 지평선 새들의 말//물결은 뭍으로만 치지 않지만/바다에 출렁이는 물결같이/기슭에 휩쓸리는 파도같이/세계는 그대 앞에 펼쳐졌건만//부서진 파도는 되밀려가네/허공에 입 맞춘 타는 그 입술/메마른 입술이 입 맞춘 허공/병사들, 병사들 모든 병사들//언제나 무거운 물음같이/원방(遠方)의 어두운 그림자처럼/언제나 다가서는 질문같이/어제도 오늘도 모든 병사들
    ('언제나 다가서는 질문같이' 중에서)

    김명수의 시는 쉽게 읽히지만 곰곰이 새길수록 언어철학적 사유의 깊이와 무게가 도드라진다. 문학평론가 류신이 해설 말미에서 “존재의 집을 꿋꿋이 파수하는 언어의 집사”라고 비유했듯이, 단어 하나하나에 들이는 정성이 지극하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 눈여겨볼 장시 「금성과 더불어」에서 시인은 우주적 상상력을 통해 언어와 세계의 관계에 대한 웅숭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시인은 “대체로 어둠속에 잠겨 있는”([금성과 더불어]) 존재들을 “모두 다 아는 이름”이자 “차별 없는 이름”([아는 이름들이])으로 새롭게 명명함으로써 존재와의 온전한 합일을 소망하며 이렇게 말한다. “다가가서 불러보아요!/다가가서 말해보아요”([아침 밥상]), 그리고 “당신이 말해줘요/무수한 공중/무수한 볕/노을을 향해/노을을 향해”([노을을 향해]).

    생각이란 어떤 하나의 실체가 또다른 실체 속에/한순간 함께 현현되어 나타나는 것일진대/삼라만상 또한/내가 지금 나이기에 존재하는 것일진대/다시 그리하여/나와 메마른 별/황막한 침묵의 별이라는 금성이 서로 그 폐허에서/하나의 예감을 일깨운다면//삶과 죽음에 무관할 천공의 별이여/내가 새롭게 너를 일러/이 지구에서, 지상에서 너를 일러/우리가 자주 일컫던 샛별이라/샛별이라 새롭게 부를지니/거기 옛날 우주의 영속하는 시간 속에/나와 같은 한 생명이 너일지도 모른다는
    ('금성과 더불어' 중에서)

    그렇다고 해서 시인은 시작(詩作)을 위해 언어를 제 뜻대로 무람없이 부리지 않는다. ‘세계 내 존재’의 언어를 온전히 받들어 섬기는 것이야말로 시인이 “언제나 무거운 물음같이”([언제나 다가서는 질문같이]) 붙잡고 고민하는 화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 언어’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시인은 뭇 존재들과 교감하면서 “어느 편 어느 쪽에 속하지 않”([소속])고 “소리의 고향”([사랑하는 가슴])에서부터 자신에게 밀려오는 절대 자유의 언어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이때 시인의 언어는 “기린잠자리”([노을을 향해]) 같은 참신한 발상과 통찰력으로 생명과 영원의 무한 공간을 더듬는 ‘새로운 언어’로서 탄생한다.

    에저또라는 말 우쿠리라는 말/눈효마라는 말 숭다롱이란 말/무슨 말이냐고요/해마 말입니다/햇살 알갱이 분홍가슴파랑새/내성천(乃城川) 금모래 흰수마자 말입니다/소나무말 장수하늘소/녹고 있는 빙하 빙산/원자력발전소 사용 후 핵연료/악마가 되기 싫던 오갈 데 없는 그들/입 봉해진 그들의 언어입니다/(…)/귀 기울여봐요/선시표라는 말 가스리라는 말/라옹세라는 말 휴미쓰라는 말/그렇게 말해요 말 없는 그들/에저또라고 숭다리라고/가스리라고 라옹세라고/같이 말해봐요 그렇게 말해봐요
    ('새로운 언어' 중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듯하기 그지없으나 시인은 당대의 어두운 현실을 냉철히 응시하며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무기는 영원히 잠들지 않”([지중해 두만강])는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갈등의 희생자인 약소자들, 확고한 ‘신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지금 군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돌진하고 파괴하고 불을 지”를 수밖에 없는 ‘병사들’의 입을 빌려 시인은 “이념이나 정치, 세계 질서 따위/그걸 왜 물어봐요?”([병사들 병사들]) 되묻는다. 그리고 “전쟁을 막아낼 힘이 있다면/아마도 그 힘은 나무들이 지녔으리”([탄도미사일])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상상 속에서 “또다른 나”와 “또다른 너”([아셨나요, 언제까지])가 “모든 어둠 품어 안은 하나가 되”([금성과 더불어])는 세상을 그려본다.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흰 백합 피었어요/푸른 풀밭 펼쳐져/맑은 시내 흘러가요/꾸란과 성경 사이/들려오는 노랫소리/아이들이 즐겁게 공놀이를 즐겨요/허리에 폭탄 감은 소년 병사 아니에요/덧니가 정겨운 소년 소녀들이에요/초승달과 십자가 사이/양들과 흰 구름/오색 칠색 무지개가 피어났어요/이승과 저승에 다리를 놓아/눈부신 빛깔을 펼쳐놓아요/상투적 풍경이라 말하지 마시길/익숙한 광경이라 타박하지 말아요/익숙한 광경이 낯설었지요/달리 무슨 말 할 수 있겠어요
    ('상상이 상상을 초월한다면……' 중에서)

    시인은 맹목적인 이데올로기의 깃발이 펄럭이는 시대, “여전히 증오의 꿈과/피의 난취에서 깨어나지 않았고/전쟁의 번갯불과 살인의 소음에 지쳐 있”([없습니다])는 세계의 한복판에서 “순결한 세계의 순간들”([금성과 더불어])이 숨쉬는 참다운 시대가 도래하기를 꿈꾼다. 이를테면 단지 색채일 뿐인 “빨간 풍선 같은 빨강”이 “태양 불 피 혁명/이념/흥분 광기(狂氣) 방화”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볼그레하다/발가우리하다/발긋하다/발그스레하다와 같은”([빨강에게 물어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를 바라며 “맑은 영혼들이 다가가고 싶은 곳”([작은 마을])이 되살아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별이 빛날 때 쇠붙이는 불타리라”(시인의 말)는 믿음을 간직하고서 “또 하나의 싱싱한 폐”([7번국도])를 떠올리며 오늘도 내일도 역사의 광장에 오롯이 서 있을 것이다.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백 되고/백이 천이 만이 십만 백만 되고 천만 되는/다시 천만 백만이 이윽고 하나 되는/덧셈도 뺄셈도 곱셈도 나눗셈도 아닌 이것/그 어느 교과서 셈법책에 없는/하늘의 별 하나가 깜빡거리자/열개의 별이 같이 깜빡이고/열개의 별이 백개가 천개가 만개가 십만개가/일제히 반짝이고/백만개가 천만개가 일제히 반짝이고/다시 천만개의 별이 백만개로 십만개로 만개로 천개로/이윽고 하나로 타올라 찬란하게 반짝이는/덧셈도 뺄셈도 곱셈도 나눗셈도 아닌 이것/그 어느 교과서 셈법책에 없는/(…)/이것은 순결/위대한 인간의 순결이라네/그대 가슴조차 열어젖히는/이것은 가슴과 가슴의 간곡한 연대/인간이 내디딘 장엄한 행렬/서기 2016년 인간의 역사/12월 위대한 인간의 역사
    ('촛불 셈법' 중에서)

    추천사

    김명수의 새 시집은 맑고 밝고 투명하다. 단순하고 평이하며, 시원하고 산뜻하다. 무념무상이 여미어 있다. 잔뜩 찌푸린 날에 펼쳐지는 푸르름이 읽는 이의 가슴에 어린다. 시의 으뜸가는 경지는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짬짬이, 언뜻번뜻 예사롭지 않은 기상(奇想)이 두드러졌다가 경쾌하면서도 울림, 떨림이 있는 시어와 어울려 묘연히 가물거린다.
    이미지는 명징하면서도 간혹 아련하기도 한데, 여기에는 의도적 고의가 엿보인다. 의미의 중첩과 속내가 또렷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곰곰이 읽어내는 묘미가 있다. 가장 돋보이는 장점은 만물, 만사에 대한 포용력이다. 자연계는 물론 이웃, 세상, 세계에 대한 애정의 폭이 깊고 넓다. 오롯이 우뚝한[금성과 더불어]에는 그러한 색채들이 온전히 결집, 농축되어 있다.
    - 이종욱 / 시인

    목차

    제1부
    현(弦)
    축(軸)
    탄환
    초대
    소속
    노을을 향해
    허공의 입장
    아이와 강
    거대한 혹

    새로운 언어
    7번국도
    나비 표본실
    별들은 이름이 필요 없는데 사람들이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셨나요, 언제까지

    제2부
    여음(餘音)
    모자
    앵두
    언제나 다가서는 질문같이
    병사들 병사들
    라기보다
    아침 밥상
    사랑하는 가슴
    구름 사막
    옥수수밭
    금성과 더불어
    목련 생일
    꽃잎을 어루만지는 친구들

    제3부
    전쟁이 그 꽃을 심어주었다
    글자를 새긴다
    눈여겨 나를 보려 했다면
    달 두개
    아는 이름들이
    소리 씨앗
    호적
    아들아, 넌 어떻게 살래?
    걸음 멈춰
    초보 운전
    바다 무덤
    배열
    시멘트
    햇잔디

    제4부
    미생(未生)
    없습니다
    잔고(殘高)
    우리를 너희를
    포도주잔
    그때 가만히 두었더라면
    탄도미사일
    지중해 두만강
    움직이고 움켜잡는
    상상이 상상을 초월한다면……
    쇠들의 행로
    불암 암벽에 가랑비 내려
    빨강에게 물어라
    작은 마을
    촛불 셈법
    키 큰 떡갈나무 물참나무 아래 지날 때

    해설|류신
    시인의 말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5~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
    출간도서 24종
    판매수 3,029권

    1945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7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월식」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월식] [하급반 교과서] [피뢰침과 심장] [침엽수 지대] [바다의 눈] [아기는 성이 없고] [가오리의 심해] [수자리의 노래] [곡옥]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해양문학상, 창릉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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