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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흘리다 : 권혁재 시집[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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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권혁재
  • 출판사 : 지혜
  • 발행 : 2018년 06월 10일
  • 쪽수 : 13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57282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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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밤새 사색이 되어 떠난/ 컨테이너박스 숙소에 /티앤이 흘리고 간 보랏빛 안경// 햇빛이 와 닿을 때마다/ 간밤에 경황없이 떠나간/ 티앤의 두려운 얼굴빛으로 바뀐다/ 밤마다 문을 두드리는 손짓과/ 밤마다 몸을 더듬는 손짓을/ CCTV같이 녹화했을 티앤의 안경/ 주위를 서성거리던 바람소리에도/ 숙소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 문에 기댄 채 잠을 붙이는 티앤/ 소의 타액 같은 밤이 지나가고/ 공장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가다/ 다시 마주치는 손짓과 손짓들/ 엉덩이를 더듬은 손짓이/ 뱀으로 기어올라/ 터져 나오는 비명을 막는다/ 밤마다 기어드는 뱀을 피해/ 미처 챙기지 못하고/ 티앤이 흘리고 간 보랏빛 안경/ 마르지 않은 눈물을 흘린다.
('안경을 흘리다' 중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고부터/ 나오기 시작한 한숨은/ 스리랑카공항에 착륙하고도/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지독한 화기火氣가 남아있는지/ 폐 속에서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왔다/ 입국심사를 하기 위해 여권을 펼쳐든/ 문드러진 여덟 손가락/ 두 엄지마저 한국에 묻고 온 시레세나/ 다시 자라날 것만 같은 손가락이/ 아내를 피해 더 오그라들었다/ 아내의 눈물자국마다 드러나는/ 굳은 용암 같은 시레세나의 화상들/ 손을 잡으면서도 기막혀 하는 아내가/ 불이 난 새벽에 달려온 구급차 소리로 울었다/ 자야와르의 시골집까지 걸어가면서/ 아내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눈에 익은 길인데도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뎠다/ 참으로 어둡고 긴 밤길이었다.
('귀향 1' 중에서)

한국에서의 사고로 손가락을 잃은 ‘시레세나’에 대한 서사는 서정시의 본질 안에서, 이주 노동자의 현실이 보여주는 비극적 인식과 전망의 부재를, 인고해야 하는 비애를 안고 있다. 마치 1980년대 박노해의 [손무덤]과 같은 이러한 정서가 마냥 새롭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쟁점과 문제의 핵심은 그 너머에 있다. 시인은 서정시의 본질을 정서의 생생한 현실감에 두고 있는 듯 하다. 정서의 현실감은 ‘시레세나’의 한국 삶에 대한 압축적 제시에서 시작해 시골집을 찾아가는 “눈에 익은 길”에서 “몇 번이나 발을 헛”딛는 모습을 통해 극에 달한다.
문학의 다양한 장르 중에서 특히 시는 정서 혹은 감정의 표현과 밀착된 양식이다. 따라서 시의 국면에서 서정적 요소와 서사적 요소는 그저 정도의 차이이고 이 둘은 늘 삼투현상을 빚게 마련이다. 시인은 이때 무모하고 과장된 서정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재현’보다는 오히려 ‘반영’에 무게 중심을 두게 된다. 시인은 ‘시레세나’의 삶과 그 아내의 마음에 스며들어 ‘시레세나’에 대한 특수성을 통해 형상화된 이주노동자의 보편적 현실을 드러낸다. 그에게 ‘시레세나’라는 시적 인물은 시인의 창의력이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고, 시인의 절대적 영향권에 있는 특별한 개인이지만, 이는 일종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참으로 어둡고 긴 밤길이었다”는 마지막 시행은 시적 주체의 진실성이 진정한 삶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어둡고 긴 밤길’이 손가락 잘리고, 온몸에 화상을 입고 스리랑카로 돌아간 ‘시레세나’만의 길이었겠나. 시인은 내면 세계를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풍경을 매개로 한 비유적으로 표현에 주력하면서 사회현실의 문제에 순하면서도 강렬한 대응을 시도한다.

주머니를 털어 꺼낸/
뚜이의 구겨진 삼만 동/ 착한 한국 사장님,/ 국밥 한 그릇 주세요/ 겁먹은 표정으로 말하는/ 뚜이의 목소리에서/ 물소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애야, 육만 동이 더 있어야/ 국밥 한 그릇 값이 된단다/ 착한 사장님, 그래도/ 국밥 한 그릇만 주세요/ 돈 벌러 한국 갔다/ 프레스에 손목이 잘리고/ 돌아온 아버지가/ 저래도 한국, 음식이 좋은지/ 순대국밥을 찾아요/ 순댓국을 먹으면 아버지의 손목이/ 한국을 용서해 준만큼/ 어쩌면 조금씩 돋아날지도 몰라요/ 착한 사장님, 여북하면 아버지가// 손목을 자른 한국을 잊지 못하고/ 순댓국이 먹고 싶다 하겠어요/ 뚜이의 애틋한 눈망울 속으로/ 순댓국물이 펄펄 끓으며/ 소란, 소란거리는 하노이의 순대 국밥집.
('하노이의 순대 국밥집' 중에서)

스리랑카의 ‘시레세나’는 베트남 하노이에도 있다. 언뜻 김종삼의 [장편(掌篇) 2」]가 떠오르기도 하는 작품이다.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갔다가 손목을 잃은 아버지가 “손목을 자른 한국을 잊지 못하고/순댓국이 먹고 싶다”고 하자, 그의 아들 ‘뚜이’가 하노이 순대 국밥집에 와 순댓국을 사정하고 있다. 시적 자아에 과중한 비중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시인의 온갖 쇄사에 걸러지고 감수성 혹은 세계관으로 집약되는 이 풍경은 시인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시적 주체가 아니라면 작위성을 노출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된다. 신분의 차원을 넘어 시적 주체의 진실성을 확보하면서 시인은, 시적 주체를 온전히 감당해내고자 하는 자세를 취한다.
한국 사장님 앞에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국밥 한 그릇을 사정하는 “뚜이의 애틋한 눈망울”은 시적 화자와 세계 현실 사이의 긴장관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시인은 시적 주체인 ‘뚜이’가 지닌 주관성이나 정서의 일방적 통행을 허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현실에 대한 창작적 대응으로 ‘뚜이’와 그의 아버지가 맞서고 있는 피폐한 현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뚜이’를 시적 주체로 전면에 부각시키기 보다는 진퇴의 정도를 조절하면서 세계현실과의 상관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상관 관계에서 형성된 긴장은 시구에 배어 있는 호흡이나 기운으로 뿜어져 나오기 마련인데, “순댓국을 먹으면 아버지의 손목이”, 아버지가 “한국을 용서해 준만큼” “돋아날지도 몰라요”고 말하는 ‘뚜이’는 시적 주체로서 자신의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즉 현실과의 상관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형성해내는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시인은 ‘뚜이’의 호흡을 급박하게 하거나 세차게 이끄끌지 않고, 오히려 현실에 대해 은근하면서 간절하게 대응하게 함으로써, 시의 주제적 효과를 배가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바로 이러한 점이 권혁재 시인의 시적 가능성의 근거라고 할 수 있겠다.

목차

시인의 말 5

1부

흐엉 1 12
흐엉 2 13
풍등風燈 1 14
풍등風燈 2 16
치앙마이의 달 17
파이어 하우스 19
귀향 1 20
귀향 2 21
소금쟁이 22
워킹 홀리데이 24
신례원 25
키아마의 고래 26
보령여자 27
청진여자 28
복무원 동무 29
타이 누들 하우스에서 30
물끄러미 31
하노이의 순대 국밥집 33
수난이대 35
율리아는 없다 37
불심검문 38
농카이에서 오다 39
파라마타 40
물양귀비 41

2부

우체국의 새 1 44
우체국의 새 2 46
눈물이 떠나갔다 47
공기는 차갑다 49
화살 무덤 51
국화도菊花島에서 국화도菊花圖를 보다 52
어쩌다 54
나나 피신기 56
루카가 되다 58
저비스베이의 능소화 59
다낭의 목마 60
도라지꽃 61
타인의미로 1 62
타인의 미로 2 63
나이키처럼 65
올리 체류기 66
게스트 하우스 67
간도間島 1 68
간도間島 2 70
팽목항 풍경風磬 71
거진 다방 72
통리재 73
지문 74

3부

안경을 흘리다 76
줌 아웃 78
부재중 79
오늘도, 80
블랙 스완 81
바닷가 세관 83
부석사 다원에 앉아 84
한 톨의 쌀들 85
마지막 때밀이 87
하버 브리지를 걸으며 88
미아 같은 너에게 89
나무의 날개 90
노크도 없이 92
첫, 93
맷돌포에서 울다 94
평택여자 96
간월도 98
마지막 가이드 99
애월, 100
카페 고흐 101
달의 집 102
때늦은 유산 103
산골散骨 105
환절통 107

해설서정의 순수한 의무김병호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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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평택
출간도서 6종
판매수 25권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고,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투명 인간], [잠의 나이테], [아침이 오기 전에], [귀족노동자],[고흐의 사람들]이 있고, 2009년 ‘단국대학교문학상’을 수상했다. 권혁재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인 [안경을 흘리다]는 ‘이백만 이주노동자들’에게 바친 시집이며, 인간의 실존적의 관점에서 이주노동자의 삶을 서정적 풍경과 능숙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티앤이 흘리고 간 보랏빛 안경, 이 안경은 노동력 착취와 성적 착취와 함께, 이주노동자의 미래를 착취한 범죄의 증거라고 할 수가 있다. [안경을 흘리다]는 ‘이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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