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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거리 [양장]

원제 : Quartier per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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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그 시절 파리는 내 심장의 고동과 일치하는 도시였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나’를 찾는 절망적 탐구


    무수히 변주를 거듭하면서도 끊임없이 독자를 사로잡는
    인상주의 화풍의 모디아노 소설


    바스러지는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으로 대표되는 생의 근원적 모호함을 탐색해온 현대 문학의 거장,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열번째 장편소설 [잃어버린 거리]가 문학동네에서 새롭게 출간됐다. [잃어버린 거리]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활동이 무르익기 시작한 80년대, 즉 1984년 발표된 작품으로, 1988년 책세상 출판사를 통해 맨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다([더 먼 곳에서 돌아오는 여자]). 그리고 2018년, 그동안 모디아노의 다양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온 문학동네에서 ‘현재’의 독자들의 감각에 맞춰 보다 산뜻하고 새롭게 번역을 다듬고 옷을 갈아입혔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과 닮은 데가 많다”고 번역자 김화영 교수는 말한다. 사물보다 빛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진 인상주의처럼, 모디아노의 소설에서는 인간의 행위보다 그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같은 대상을 각기 다른 시간에 반복하여 그리는 행위를 통해 항상 변하는 빛 그 자체를 그리려 노력했던 인상주의 작가들처럼, 모디아노 또한 비슷한 방법으로 시간과 공간을 포착해내려 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많은 작품 속에서 인물의 행위는 시간의 힘을 드러내고, 삶을 담는 그릇, 공간을 드러낸다. 소설 속 수많은 고유명사들은 “영혼의 주름 주름에 은연중 살며시, 그러나 깊숙이 스며들어 떨”리고, 그 떨림이 소설이라는 아름답고 슬픈 공간을 완성한다.

    모디아노의 많은 작품이 언뜻 엇비슷해 보이면서도,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저마다 마력과도 같은 고유의 힘을 갖는 이유는 모디아노가 “어떤 장소의 형언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살려내는 천재”(옮긴이의 말)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모디아노 특유의 나직하고 억제된 슬픔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세계”(옮긴이의 말)에 어느새 깊이 빠져들게 된다. 제각각 오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인상주의 회화 작품처럼 모디아노의 소설이 오랫동안 끊임없이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해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희미한 거리거리를 순례하며 소생시키는 빛나는 청춘의 공간
    무너져버린 폐허 속에 남겨두어야 했던 ‘나’를 찾는 먼 여행


    7월의 어느 일요일, 영국 국적의 한 남자가 프랑스 입국을 앞두고 세관 검사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여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어릴 적 발부받은 남색 표지의 프랑스 여권을 떠올린다. 분명 한때 프랑스인이었을 그가, 호텔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운전사가 프랑스어로 말을 걸까봐 겁을 내고, 공항에 도착해 프랑스어 말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모국어가 낯설어질 정도로 그는 아주 어릴 적, 아주 오래전 프랑스를 떠났던 걸까?

    그러나 파리 시내로 들어온 그에게 이 도시 풍경은 조금도 낯설지 않은 듯하다. 샹페레 시문, 말제르브대로, 카스틸리온가街, 튈르리공원, 콩코르드광장, 루아얄 다리…… 그는 한눈에 이 모든 지명을 자연스레 떠올리고, 오히려 세세하게 달라진 거리의 모습을 찾아낼 만큼 이 도시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다만 그는 센강 건너편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은 둘러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

    “인생이란 앞뒤로 이어진 여러 주기들의 연속이랄까요…… 그래서 이따금 ‘출발점’으로 되돌아와보기도 하지요. 파리에 돌아오면서부터 이제 앰브로즈 가이즈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에요.” (25쪽)

    그는 영국에서 앰브로즈 가이즈라는 이름의 추리소설 작가가 되었다. 여덟 편이나 되는 시리즈물을 여러 나라에 번역 출간할 만큼 작품은 성공을 거두었고, 드라마 제작 판권 등 계속해서 새로운 계약을 맺기 위해 그는 파리에 돌아온 것이다. 편집자를 만나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문득 자신이 스무 살 때까지 죽 이곳에 살았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편집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의 사연이 새겨진 이 도시에, 폭격을 피해 모두가 떠나버린 듯한 텅 빈 도시에 며칠 더 머물기로 마음먹는다.

    호텔로 돌아온 장 데케르는 이 도시에 살았던 자신의 유일한 흔적이라 할 수 있는 공책 한 권을 펼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옛 친구 다니엘 드 로크루아의 편지를 발견한다. 우연히 산 소설 뒤표지에서 그의 사진을 알아보고 십 년 전 출판사를 통해 보내온 편지였다. 로크루아는 그의 독자가 되었다며 영국으로 건너가 작가 앰브로즈 가이즈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를 축하했고, 그의 과거에 대해서 침묵하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인다.

    지금까지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당신이 앰브로즈 가이즈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오. 프랑스의 어떤 계몽철학자가 말했듯이 “우리들은 종종 어떤 침묵 덕분에 살아가고 있소.” 나의 침묵을 믿어 의심치 마시오.(37쪽)

    다니엘 드 로크루아의 편지를 통해 독자는 이십 년 전 장 데케르라는 이름의 스무 살 프랑스 청년이 어떤 특별한 사연을 안고 프랑스를 떠나 자신의 과거를 지운 채 앰브로즈 가이즈라는 영국 작가가 되었음을 짐작한다. 하지만 장 데케르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소설 속에서만큼은 과거 파리에서의 경험과 그곳에서 알고 지낸 인물들을 등장시킨 듯하다. 로크루아는 소설 속 자신을 닮은 인물을 언급하며 ‘자신은 아직 소설 속 그 변호사처럼 자살하지는 않았다’는 말을 편지에 적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받고 오 년이 지난 어느 날, 앰브로즈 가이즈는 로크루아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다시 오 년 후 이곳 파리에서 또다시 그 신문기사 조각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소설에서처럼 스스로 생을 마감해버린 옛 변호사 친구 다니엘 드 로크루아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이십 년 전 장 데케르가 되어 과거에 누비던 이 도시의 거리거리를 순례하며 자신의 과거를 추적해나간다. 그리고 옛 추억을 더듬던 그에게 파리의 수많은 거리와 얼굴들이 찾아들고, 반딧불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십 년 전 청춘의 시절, 장 데케르에게 어떤 사연이 있어 “돌아오게 되리라는 생각은 못한 채” 떠나버렸던, 이제는 아무도 남지 않은 폐허와 같은 공간으로 돌아와 그토록 망각하려 애쓰던 지난 시절을 되살려내려는 것일까. 그가 빛나는 청춘을 함께 보냈던 수많은 인물들―다니엘 드 로크루아, 기타 바티에, 베르나르 파르메르, 탱탱 카르팡티에리, 조르주 마요, 헤이워드 부부, 뤼시앵 블랭과 카르멘 블랭―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가 그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공간 속에서 찾아내려 하는 것은 결국 ‘장 데케르’라는 자기 자신뿐인지도 모른다.

    모디아노는 초기작에서부터 한결같이 ‘아이덴티티’에 천착해왔다. ‘나’의 정체를 묻는 집요한 질문은 추리소설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독자의 관심을 잡아둔다. 다만 범행 동기나, 범죄자를 쫓는 보통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추적의 대상은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 속 ‘나’의 아이덴티티인 것이다. [잃어버린 거리] 역시 ‘나’의 아이덴티티를 탐구한다. 소설 속 장 데케르라는 화자 역시 “스스로 수사관이 되어” “기억이라는 자신만의 영역에서” 과거를 추적한다.

    “당신의 인생 초년기를 지켜봐온 그 모든 사람들이 차츰 사라져가고 있어요. 당신은 아주 젊을 때 그 사람들을 알게 되었지만 그들은 그때 이미 인생의 황혼기였으니까요……”(163쪽)

    이 탐구의 과정은 시간의 파괴력 때문에 곧잘 ‘절망적’인 것이 된다. 이십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파리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앰브로즈 가이즈는 문득 장 데케르의 모습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재와 과거라는 두 시점 사이에는 이십 년이라는 긴 세월이 가로놓여 있고, 그의 잃어버린 과거에 대해 증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조차 남아 있지 않은 삭막한 도시에서 이 거리를 건너지르는 행위는 때때로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아득하다.

    추천사

    모디아노의 소설은 나직하고 끊어져 쉬는 데가 많은 옛 노래, 지금은 다 잊은 줄 알았다가도 다시 들으면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마음의 현이 오래오래 진동하는, 그런 노래와도 같다.
    - 김화영(옮긴이)

    모디아노의 작품 속에서 공간은 놀랄 만큼 자세한 반면 시간은 매우 흐릿하고 불확실하다. 이 작품 속에서 모디아노는 거리를 거닐고 모든 것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기억이라는 자신만의 영역에서 그 스스로 수사관이 된다.
    - 베르나르 피보(문학평론가, 공쿠르상 심사위원)

    목차

    잃어버린 거리 _009

    옮긴이의 말 - 밤의 어둠 저편에 떠오르는 성(城) _241
    파트릭 모디아노 연보 _265

    본문중에서

    대로에는 7월의 햇빛이 쏟아질 뿐 인적이 없다. 혹시 폭격을 맞고 주민들이 모두 다 흩어져 떠나고 난 유령 도시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건물 벽 뒤에는 무너져버린 폐허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p.10)

    나는 파리에서 한 번도 이처럼 무더운 밤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유령 도시 한복판에서 느끼는, 꿈인가 생시인가 싶은 감정이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었다. 혹시 유령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p.12)

    나는 망원경을 밀어놓고 유리창 너머로 파리 시가를 응시했다. 도시가 돌연 망원경으로 관찰한 어떤 별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pp.21~22)

    “인생이란 앞뒤로 이어진 여러 주기들의 연속이랄까요…… 그래서 이따금 ‘출발점’으로 되돌아와보기도 하지요. 파리에 돌아오면서부터 이제 앰브로즈 가이즈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에요.”
    (/p.25)

    지난 이십 년 동안 몸을 파묻어 감춰왔던 영국 작가라는 두꺼운 갑옷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꼼짝 말 것.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듯 오랜 세월의 층을 거쳐 마침내 낙하가 완료되기를 기다릴 것. 옛 파리에 다시 착지할 것. 폐허를 찾아 살펴보고 거기에서 자신의 자취를 발견하도록 노력할 것.
    (/p.35)

    나는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등뒤로 문을 쾅 닫으며 들어서는 순간, 밖의 직사광선과 강한 대조를 이루는 현관의 어둠과 서늘한 기운 때문에, 유독 로크루아의 아파트에서만 나는 가죽냄새 때문에, 나는 과거 속으로 다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갑작스럽게 우물 밑바닥이나 에어포켓 속으로 빠져내려가는 기분이었다.
    (/p.60)

    “그 여자를 모르시나요?”
    “네.”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정말로 알고 싶은 질문에는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 스스로도 카르멘이 어찌되었는지 알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랬다, 꼭 이런 별 볼 일 없는 조역의 도움이 있어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pp.96~97)

    봄날에 파리를 가로질러갈 때의 그 인상을 그때 이후 나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때 내게는 바야흐로 인생이 시작된다는 느낌이었다.
    (/pp.99~100)

    그러나 나는 미리부터 내가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내내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고 반복하는 저 부드럽고 싸늘한 목소리에 그저 귀를 기울이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110)

    밖에, 저 뜰의 철책 뒤에는 알마광장, 그리고 내가 오후 줄곧 정처 없이 걸어다니다 앉아 있었던 카페테라스. 나는 이 도시와 나를 혼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저 나뭇잎이었고 빗물로 번들거리는 도로에 비친 그림자였고 웅성대는 목소리였으며 거리의 저 수십 수백만 개의 먼지들 중 하나였다.
    (/pp.154~155)

    그 시절 파리는 내 심장의 고동과 일치하는 도시였다. 나의 인생은 그 도시의 거리에 새겨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저 혼자서 기분 내키는 대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기만 해도 행복했다.
    (/p.170)

    그리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지’라는 말이 그 떠도는 미국 자동차 안에서는 기이하게 울렸다. 나는 밝은 대낮에 만나는 헤이워드 부부, 푸케, 그 밖의 모든 사람을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새벽의 첫 서광이 밝아오기만 하면 분명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대낮에 뤼도 푸케가 무엇을 하겠는가? 그리고 장 테라유는? 그리고 마리오 P.는? 파바르는? 그리고 회색 눈의 그의 아내는? 마치, 그 시절에 이미 그들이 유령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그들을 오로지 밤에만 알아볼 수 있었다.
    (/pp.213~214)

    저자소개

    파트릭 모디아노 (Patrick Modiano)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45~
    출생지 프랑스 불로뉴
    출간도서 19종
    판매수 11,202권

    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 바스러지는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으로 대표되는 생의 근원적 모호함을 신비로운 언어로 탐색해온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1945년 불로뉴 비양쿠르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해 1968년 소설 [에투알 광장]으로 로제 니미에 상, 페네옹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외곽 순환도로]로 1972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슬픈 빌라]로 1976년 리브레리상을, 1978년에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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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41~
    출생지 경북 영주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대학교 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프랑스 액상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 평론가, 불문학 번역가로 활동하며 팔봉 비평상, 인촌상을 받았고,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되었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여름의 묘약], [문학 상상력의 연구], [행복의 충격], [바람을 담는 집], [한국 문학의 사생활] 등 20여 권, 옮긴 책으로 미셸 투르니에, 파트리크 모디아노, 로제 그르니에, 르 클레지오 등의 작품들과 [알베르 카뮈 전집](전 20권), [섬], [마담 보바리], [지상의 양식], [어린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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