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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탑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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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유일한 SF

일시에 터진 국지적 핵전쟁 이후 인류는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기 위해 대출발을 준비한다. '선택받은 자' 100만 명은 새로운 지구로 향하지만 수십 억 잔류자들은 방사능에 오염된 지구에서 여전히 살아간다. 그로부터 10년 후, 대선단이 옛 지구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갖은 고생을 하고도 끝끝내 실패하여 돌아오리란 예상은 빗나가고, 오히려 그들은 대출발 당시보다 더 젊고 건강하고 생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새로운 지구에 있는 정체불명의 구조물, 치료탑. 암과 에이즈마저 치료해주는 힘을 가진 치료탑의 비밀을 수중에 넣으려는 과정에서 인류는 끔찍한 비극을 초래하는데....

출판사 서평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 중 SF가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도 각권 삼백 페이지가 넘는 SF 연작이다. 출간 연도가 1990년('치료탑')과 1991년('치료탑 행성')이니 잊히고도 남을 만큼의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일본에서 초판이 출간되었던 당시에도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한 듯하다. 2008년에야 발간된 문고판 후미에 첨부된 '작가 후기'에는 오에가 SF를 쓰기로 결심한 배경과 그 일을 전후한 저간의 사정이 간략히 드러나 있다.

오에는 당시 이와나미서점에서 발행하던 [헤르메스]라는 잡지의 편집을 맡고 있었는데, 편집위원 중 한 명인 작곡가 다케미쓰 도오루의 오페라 대본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라고 한다. 오에는 SF 마니아인 다케미쓰 도오루 오직 그를 만족시키는 작품을 쓰겠다는 일념 외에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 한 명의 독자는 이 소설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연재 종료 후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후로도 평자들의 특기할 만한 언급도 받지 못한 채('무플'이었던 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의 유일한 SF는 조용히 묻히고 말았다.

이번에 에디토리얼에서는 연작을 1부(치료탑)와 2부(치료탑 행성)로 나눈 합본으로 출간하며, 제목은 작품 전체의 핵심 메시지를 함축하는 '치료탑 행성'으로 채택했다. 초판 번역가였던 김난주 선생이 이번에도 번역을 맡아 새 출간에 걸맞게 전면적으로 재번역했다.

이 작품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근미래 SF이며, 핵전쟁 이후를 그리는 디스토피아 소설, 우주 탐사에 나서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는 '스페이스 오페라', 탐구대상이나 주제를 사건 중심으로 드라마틱하게 전개하기보다는 의식 내부에서 치밀하게 해명해가는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이다.

1부와 2부 전체의 서사는 리쓰코라는 여자 주인공이 1인칭 시점에서 써내려가는 기록이다. 특별히 2부는 리쓰코가 '그 사람'이라 지칭하는 미지의 존재에게 보내는 기도이자 사쿠(남편)에게 띄우는 편지다.

주요 사건
o 대출발: 작품 전체에서 시간적 배경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진 않는다. 전세기 중엽의 핵무기 발명 성공 같은 사건들을 통해 대략적인 시기를 추정할 뿐이다. '대출발'은 전세기 말, 인류는 전지구적 국지 핵전쟁을 일으켜 제 손으로, 인간이 살 수 있는 우주의 유일한 행성인 지구를 처참하게 망가뜨린다. 그후 인류의 생존과 문명의 존속을 위해 100만 명을 선발하고 이들을 다른 행성으로 이주시킬 우주선을 국가별 혹은 지역별로 건조하여 떠나기로 결정한다. 각국은 공히 '스타십공사'를 조직해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다음 세기 초엽 대출발에 성공한다.
o 대귀환: '대출발'의 실패와 동격인 사건. 대출발 10년 후 스타십공사 대선단이 일거에 옛 지구로 돌아온다. 1부 '치료탑'의 이야기는 이 시점에서 시작된다.
o 치료탑: '새로운 지구'라 명명된 외행성에서 발견된 구조물. 단순한 부상은 물론, 암과 에이즈 같은 불치의 질환을 고치는, 죽은 자도 살려내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 입구의 외벽 위에 사과나무 모양의 부조가 새겨져 있지만 누가, 언제, 왜, 무엇으로 이런 구조물을 만들었는지는 불가지의 수수께끼다.
o 타이탄 프로젝트: 옛 지구로 돌아온 스타십의 엘리트들은 지구에서의 권력을 완벽히 복원한 다음, 오염된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치료탑을 지구에 건설하는 수밖에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새로운 우주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토성의 위성 중 하나인 타이탄에 통신시설을 건설한다 하여 이른바 타이탄 프로젝트다. 이 통신시설은 새로운 지구로부터 전달되는 치료탑 연구 결과를 지구로 보내는 중계기지다. 이를 위해서는 선차적으로 한국인 이 씨를 새로운 지구로 먼저 파견하는 비밀 프로젝트가 수행된다.

주요 인물
o 리쓰코: 스위스의 기숙학교에서 유학하던 열서너 살 무렵, 중동에서 발발한 핵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한꺼번에 여의고, 자신은 국제범죄집단에 붙잡혀 한 달간 몹쓸 짓을 당한 끝에 도쿄로 돌아온다. 먼 친척이지만 한 집안 어른인 할머니와 시게 백부와 함께 살아간다. '선택받은 자' 중에서도 선택받은 자인 사쿠의 귀환 이후 그와 가까워지고, 후일 아들 '타이'를 낳는 중심인물.
o 사쿠: 일본스타십공사의 총재 다카시 백부의 아들. 대출발에 동참한 과학자이지만, 지구로 돌아온 후 다카시와는 다른 길을 간다. 새로운 지구에 있는 '치료탑'에 들어가 불가사의한 힘을 경험한 덕분에 하이브리드 아이를 탄생시키는 데 절반의 몫을 하게 된다. 한때 반스타십공사 지하운동 조직에 결합하기도 하지만, 리쓰코와 타이를 남겨둔 채 미국과 일본의 타이탄 프로젝트에 자원하여 토성으로 가서 치료탑의 비밀을 밝히고 뜻한 바를 이루려 한다.
o 타이: 리쓰코와 사쿠의 아들. 태를 끊고 나온 이후 단 한 번도 울지 않는 아이. 리쓰코는 감정 표현이 현저히 결여된 타이를 보고 정신적 결함을 의심하지만, 타이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은 오히려 보통 인간을 능가한다. 다카시 백부(타이의 할아버지)의 권유로 스타십공사의 영재학급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타이의 재능은 더욱 빛을 발한다. 다카시의 새로운 프로젝트인 '우주소년십자군'에 선발되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o 할머니: 인디언 부락 공동체의 지혜로운 연장자를 연상시키는 인물. 매사에 무심한 듯 말수도 적지만 언제나 상황에 꼭 필요한 충고과 조언을 슬며시 제시한다. 황폐한 지구, 흩어진 집안, 비정상적 가족 구성 내의 영적 구심으로서 리쓰코가 크게 의지한다. 큰아들(시게)과 둘째 아들(다카시) 그리고 손자(사쿠)가 모두 과학자로 장성하여 일본의 우주개발사업에 관여하고 있을 정도로 권력자 일족의 최정상에 있지만 시게와 함께 잔류자로 남고, 다카시의 냉정한 성품을 질책하기도 하지만, 두 아들의 화해를 끝까지 바라 마지않는다.
o 다카시: 일본스타십공사 총재. '대출발' 계획을 총지휘하고, 지구로 귀환한 이후로도 권력의 최상층부에 머문다. 남성과 문명의 특성을 상징하며 시게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
o 시게: 다카시의 형. 대출발 프로젝트에 가담하고도 지구에 남아 '이후'의 삶을 재건하는 데 헌신한다. 방사능 오염으로 지구에 만연한 신종 암에 걸려 사망한다.
o 코우 아저씨: 대출발에 반대하여 우주선 기지를 테러하는 인물. 이때 발생한 화재에서 중화상을 입는다. 시게 백부를 도와 재건운동에 한몫을 해냈고, 스타십 선단의 대귀환 이후로는 반스타십공사 운동을 주도하는 지하조직을 이끈다.
o 시모코베 씨: 시게 백부의 이념을 구현한 제1호 공장의 책임자. '새로운 암'에 아내와 딸을 잃었다. 할머니와 함께 리쓰코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조력자이자 대화상대다. 2부에서는 아빠 없이 자라는 타이에게도 마음을 쓴다.
o 한국인 이 씨: 한반도의 통일국가도 스타십을 쏘아 올렸다. 귀환 무렵에는 신냉전의 기류가 조성된 탓에 남과 북, 어느 쪽으로도 돌아갈 수 없어 사쿠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정착한다. 1부가 끝날 무렵, 지하운동 조직의 코뮌에서 리쓰코와 함께 머물고 있는 사쿠 앞에 나타나, 새로운 지구로의 단독 우주여행의 계획을 알리고 사라진다.
o 그라스 씨: 미국인으로, 코우 아저씨의 운동 조직과 연관된 코뮌의 수장.

줄거리 소개

[1부 '치료탑']

'대출발' 후 10년이 지나 스타십 대선단이 귀환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선택받지 못해 이류 삼류라는 멍에를 쓴 채 낙오자라는 이름으로, 오염되고 자원도 고갈된 지구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대선단의 귀환이 못마땅한 한편으로 그립고 의아한 마음이기도 하다. 10년의 악연보다 아들, 연인, 조카, 친구 등등 더 오래된 인연의 끈들이 복잡한 심사를 자아내는 것이다. 리쓰코와 할머니는 다카시 백부와 사쿠를 기다린다. 아들 대신 손자인 사쿠가 매주 할머니를 찾아온다. 그러는 동안 사쿠와 리쓰코 사이에는 특별한 감정이 싹튼다.

사쿠는 리쓰코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예이츠의 시에 관해 자주 이야기한다.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예이츠의 시들은 복선과 비유적 암시라는 것이 드러난다. 사쿠와 리쓰코의 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사쿠는 발설이 금지된 비밀들을 리쓰코에게 들려주는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지구에서 선택받은 자들을 겪은 일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리쓰코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지난 10년 동안 지구의 잔류자들이 겪은 참상이 알려진다. 격리되어 있던 두 개의 시공간의 역사가 얽히는 순간이다. 사쿠가 리쓰코에게 결혼을 제안하자 리쓰코는 에이즈 검사를 받기로 결심한다. 다카시 백부는 1부 중간 즈음에 이르러서야 어머니(할머니)를 처음으로 찾아온다. 모자의 재회는 아름답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아들은 아들대로 형(시게) 편만 드는 어머니가 여전히 서운하고 못마땅하다.

이처럼 1부는 대선단의 귀환 이후 잔류자와 귀환자가 뒤섞이며 그들의 일상이 재조직되는 양상을 섬세하게 그려가는 가운데,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제시하고, 1부 후반부에서 개시되는 새로운 사건에서 이들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될지 독자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2부 '치료탑 행성']
다카시 백부의 면전에서 항명하고 사라진 사쿠는 어떻게 되었을까? 리쓰코는 무사히 출산했을까? 타이는 어떤 아이일까? 사쿠는 새로운 지구로 갔다가 타이탄을 경유해 리쓰코와 타이의 곁으로 돌아올 것인가? 등등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며 2부가 시작된다.

"이 편지를 보내게 될 상대방으로 지금 내 머리에 떠오르는 이들 중에는 생김새는 물론이고 그 이름마저도, 20세기가 먼 옛날로 지나간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우리로서는 행방을 추적할 수 없는 '그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이 편지를 받아볼 사람들의 임시 명단을 생각나는 대로 일람표로 작성한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쿠란 이름이 맨 처음에 올 것이다."
(/ p.247)

앞서 설명한 대로 2부는 모든 일이 완전히 종결된 후 리쓰코가(어쩌면 우리 누군가였어도 마찬가지로)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 즉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을 담아 발신하는 기도이자, 동일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미래의 '타이'들에게 남기는 기록이다.

가장 먼저 사쿠의 행방. 사쿠는 코우 아저씨의 운동 조직에 3년 가량 가담했다가 모종의 뜻을 품고 스타십공사로 복귀한다. 사쿠가 궁극적으로 실행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차차 밝혀진다. 하지만 모든 계획에는 우발적 뒤틀림이 생기는 법. 토성 타이탄에 통신 중계기지를 건설하려는 1차 목표는 무사히 달성된다. 문제는 치료탑의 비밀을 조사하기 위해 새로운 지구를 방문했을 때 발생한다.

대선단이 지구로 귀환할 때 이에 불복하고 새로운 지구에 잔류한 '반란군'(스타십공사의 입장에서)이 있었다. 이들은 새로운 지구의 혹독한 환경에 맞서 생존할 수 있는 거주구역을 만들어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자체 방어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어 살고 있다. 하지만 거주구역 외곽은 아웃사이더들의 무법천지다. 이들은 '치료탑에 들어가 생명을 갱신하지 않고 산다'는 반란군의 원칙에 동의하지 않아 집단에서 거부된 자들이다. 반란군은 아웃사이더들에게 정기적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것으로 일종의 신사협정을 체결하여 평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바로 이 아웃사이더들의 망동으로 인해 사쿠팀은 임무을 수행하는 동안 비극적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사쿠는 새로운 지구에 머무는 동안 통신기지에 수신된 먼 우주의 신호를 해독하는데, 그 메시지는 사쿠로 하여금 예이츠의 시를 읽으면서 예감했던 일을 결행하게 한다.

오에와 반핵운동
오에는 '전후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1세대 작가로서 핵문제에 대해서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행동해왔다. 1963년에 처음 히로시마를 방문하고 그후로도 수차례 여행을 거듭하며 쓰게 된 에세이를 모아 '히로시마 노트'라는 기록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일본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반핵평화캠페인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헌법 제9조의 개정을 반대하는 '9조의 모임'에도 참여하면서 일본이 윤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고령의 작가가 활동을 재개케 했다. 같은 해 7월, 그는 '사요나라 원전 집회'의 발기인에 이름을 올리며 탈원전 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원자폭탄은 세기의 대전에 종지부를 찍음과 동시에 인류의 운명도 바꿔놓았다. 오펜하이머의 비유처럼 핵무기를 갖게 된 인류는 '병 속에 든 두 마리 전갈'의 운명에 처했다. 전갈은 살기 위해 다른 한 마리를 죽일 수 있지만 자기 목숨 역시 걸어야 한다는 딜레마가 인류의 운명이라는 것. 냉전이 끝나고 일상의 뿌리를 송두리째 위협하는 핵무기의 존재를 잊고 지낼 수 있게 된 건 다행스런 일이다. 현실적으로도 핵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졌지만, 핵의 공포는 핵무기의 변형된 형태인 원자력발전소로 고스란히 이전된 상태이기도 하다. 핵에너지 발전이 생태적 의미에서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 선구적 국가들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한국의 정부가 탈핵을 언급한 것은 2017년 5월 새 정부가 들어선 최근의 일이다. 인류는 히로시마, 체르노빌, 쓰리마일 그리고 후쿠시마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오에는 작품 안에서 사쿠의 입을 통해 말한다. 인류는 어쩌면 치료탑을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수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여성 SF의 가능성을 모색한 실험
2008년 이와나미서점에서 문고판 '치료탑'과 '치료탑 행성'이 출간되었을 때 이 작품에 해설을 썼던 SF 작가 고타니 마리는 "외계인 아닌 외계인으로서의 에일리언상을 탐구하는 여성 SF와 연동되는 이 소설의 스토리에 크게 감동받았다."고 했다. 고타니 마리는 영미권 여성 SF 작가들이 쓴 사변소설의 수작들과 오에의 작품을 대등하게 비교한다.

"이 소설의 재미는 그런 권력구조에 관한 탐구가 리쓰코라는 여성의 서술에 의해 명확하게 의식된다는 점에 있다."
- 고타니 마리

'치료탑 행성'에서 지구를 망가뜨린 핵전쟁은 소규모 국지전이었지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탓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 상황은 20세기 말이다. 20세기는 근대문명의 폭력성과 야만성이 적나라하게 민낯을 드러냈던 때가 아닌가. 쿠바 사태 같은 아슬아슬했던 장면도 있었지만 핵억지력은 힘겹게나마 작동했기에 전지구적 재앙은 면했다. 오에는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공동체(문명 혹은 인간)의 모순, 즉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타자(에일리언)를 조작해내고 이들에게 폭력(전쟁)을 행사하는, 기묘한 공동체의 생리를 바로 이 SF 안에서도 잘 보여준다.

이처럼 문명은 본질적으로 폭력을 필요로 한다. 그 폭력을 행사할 때는 정당한 명분이 사후적으로 주어진다. '치료탑 행성'에서의 핵전쟁은 남성 중심적 원리로 작동하는 근대문명이 '억지력'을 포기하고 그 본성을 적나라하게 표출해 끝장을 본 결과다. 결과는 자신의 파멸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인류의 생존과 문명의 보존을 약속하겠다며 스타십공사를 만들어 행성 이주 계획을 실행한다. 이 같은 대프로젝트의 거창한 명분하에 무수한, 실상은 대부분의 지구인들이 타자로 낙인 찍혀 배제된다.

낙오자들의 대명사인 리쓰코. 그는 잔류자이고, 여성이고, 대출발 후 혼란기에 고아가 되었고, 유럽에서 일본으로 돌아가는 도중 남자들에게 붙잡혀 성적 노리개가 되어야 했다. 전쟁 같은 공동체 파괴 행위에서 여성들이 겪는 이중적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기파괴적 삶을 살 수도 있었을 리쓰코를 재생시킨 것은 할머니와 암코양이 마스 선장과 시게 백부다. 시게 백부로 말하면 다카시로 상징되는 근대문명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뛰어난 과학자이지만 오염된 지구에 잔류하기를 자처하고 황폐해진 터전을 재생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생명을 보호하고 기르는 속성을 여성성의 일면으로 볼 때 그 역할을 수행한 셈이 된다. 주지하다시피 여성성이란 생물학적 성별과는 관련이 없다.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났던 '선택받은 자'들은 마술적인 힘을 가진 치료탑이 있는데도 새로운 지구를 버리고 낡은 지구로 되돌아온다. 대지이자 어머니로 비유되는 지구의 품으로. 귀환자들은 어머니의 품에서 혹독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치유한다.

치료탑은 진정 불가사의한 존재(?)다. 여느 SF라면, 새로운 지구에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설정했을 법한데, 이 행성에서는 오직 치료탑만이 에일리언으로서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치유와 재생의 힘을 지녔다. 선택받은 자들은 낡은 지구에서건, 새로운 지구에서건 자신들이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지복을 주는 것은 외부에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항시 떠난다, 이아손처럼, 성배를 찾는 기사처럼. 새로운 지구를 정복하여 문명을 건설할 수 없다면 치료탑의 비밀을 캐내야 한다. 방사능에 망가진 지구에서 살아갈 인류에게는 치료탑이 없어선 안 된다. 치료탑은 어쩌면 지구가 가진 생명력의 총화가 응축적으로 구현된 건조물이지 아닐까.

디스토피아에서도 일상은 지속된다
문학은 모름지기 인간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SF 안에 그 어떤 하이테크놀로지가 등장해도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치료탑 행성'은 과학기술의 진보 양상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이진 않는다. 새로운 지구에 건설된 거주구역을 방어하는 레이저포, 유인 우주왕복선, 인간의 몸을 통신기기로 이용하는 처치 기술, 외계의 언어(전파)를 해독하는 기술 정도가 전부다. 과학기술의 여백을 채우는 것은 대출발을 전후로 사회와 개인들에게 일어난 일상적 변화의 면면들이다. 어떤 큰 사건이 터진 후라면 '그래서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데?'라는 질문이 아주 자연스럽기도 하다. 오에는 이런 요소들에 대해서도 성실하게 상상했던 것 같다. 묵직한 분량으로 써낸 오에 겐자부로의 유일한 SF는 두 개의 지구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어떤 일들을 벌일지 기대 이상으로 치밀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목차

1부 치료탑
2부 치료탑 행성
작가 후기
역자 후기

저자소개

오에 겐자부로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5
출생지 일본 남부 시코쿠의 에히메 현
출간도서 32종
판매수 5,862권

1935년 일본 남부 시코쿠의 에히메현에서 일곱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도쿄 대학교 불문과 재학 중인 1957년에 〈기묘한 일〉을 대학 신문에 발표해 일본 문단의 찬사를 받았고, 1958년에 〈사육〉으로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해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1967년 《만엔 원년의 풋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1973년 《홍수는 나의 영혼에 이르러》로 노마 문예상, 1982년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고, 199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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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58~
출생지 부산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한 후, 1987년 쇼와 여자 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오오츠마 여자 대학과 도쿄 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했다. 현재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겐지 이야기』『창가의 토토』『냉정과 열정 사이』『박사가 사랑한 수식』『먼 북소리』『7월 24일 거리』『내 남자』『시간이 스며드는 아침』『다잉 아이』『오 해피 데이』『뻐꾸기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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