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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심성과 일본 문화 : 융 심리학 석학의 현대 일본 깊이 읽기[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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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융 심리학을 바탕으로
일본 문화의 심연과 일본적 마음의 결을 논한
‘일본문화론의 도달점’


일본인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지성, 가와이 하야오가 자아, 가족, 교육, 노동, 과학, 예술, 종교, 죽음 등을 주제로 현대 일본의 내면 풍경을 담백하게 그렸다.
세계화의 해일 앞에서 일본 문화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저자는 가족, 교육, 고도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와 노동 형태의 변화, 새로운 예술 활동, 삶과 죽음, 종교, 윤리의 변화 등 현대 일본 사회의 각 분야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읽어낸다. 그리고 혼란한 현대 일본 문화의 방향성을 알기 쉬운 문체로 제시한다. 문제의 표층에 머무르지 않고 개별 문제의 내부에서부터 치열하게 펼쳐나가는 분석, 그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를 아울러 바라보는 보편화는 ‘융 심리학의 대가’인 가와이 하야오만이 펼칠 수 있는 독창적인 일본문화론이다.

출판사 서평

‘마음 선생님’ 가와이 하야오가 들려주는 일본인 이야기

"왜 그런지 가와이 하야오 씨만은 자연스레 ‘가와이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가와이 하야오 씨에게는 ‘가와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딱 들어맞는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나치게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중에서)

‘가와이 선생님’이라고 불리며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는 ‘지적 거인’ 가와이 하야오. 융파 심리학을 일본에 처음 도입한 심리학 석학으로 유명한 그는 임상심리학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 문학을 비롯해 아동문학, 그림책, 신화, 전래동화 등을 연구하고 음악과 악극에 대해 고찰하는 등 평생 문화 전반에 대한 열정적인 탐구를 이어갔다. 말년에 일본 문화청 장관을 역임한 그의 삶은 문화를 창조하고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정진의 길이었다.
가와이 하야오가 남긴 수십 권의 저작은 여러 차례 복간을 거듭하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일본 독자들에게 한결같이 사랑받고 있다. 문화의 씨줄과 날줄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독창적인 사유를 쉽고 편안하며 진솔한 문장으로 풀어내는 것이 그 사랑의 비결이다.
이번에 한국에 소개되는 가와이 하야오 문화론의 대표작, [일본인의 심성과 일본 문화](원제 ‘日本文化のゆくえ’) 또한 20세기 말에 쓰고 21세기 초입에 처음 출간, 2013년에 재출간되어 오늘날까지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21세기, 뉴스에는 연일 이런저런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가와이 선생님’이 20년 전에 쓴 글에 이미 그 답이 들어 있었다"라는 일본의 평이 거인의 지성으로 바라본 일본문화론의 보편적인 현재성을 웅변해준다.

한 편의 철학적 서사와도 같은 평론,
융 심리학 대가의 독창적인 일본문화론


-다신교를 마음의 바탕으로 두고 있는 일본인이 어떻게 ‘근대적 자아’를 확립할 수 있을까?
-서구인과 다른 마음 구조를 가진 일본인이 개인주의를 받아들이고 ‘자아 찾기’에 나서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본인에게 ‘윤리’란 무엇일까? 그것은 서구나 다른 아시아 나라의 윤리와 어떻게 다를까?
-‘나의 윤리관’이라는 말 대신 ‘나의 미의식’이라는 표현의 쓰는 일본인의 마음 깊은 곳은 어떤 모습일까? 그 미학적 윤리관은 어떤 개인과 사회를 낳았을까?
-‘죽음’과 ‘예술’에 관한 일본인의 독특한 관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리고 일본 문화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왔을까?

한국인에게는 비슷한 듯하면서 너무 다른, 알 듯 모를 듯한 ‘일본적 사고방식’을 융 심리학자인 가와이 하야오의 비평으로 풀어본다.
"사례 속에 들어가 고민하거나 사고해왔다"라는 그의 말 그대로, 가와이 하야오는 일본 현대 문화가 드러내는 현상에서 출발해 그 이면의 근본적 심성을 진지하게 탐사한다. 가족, 교육, 고도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와 노동 형태의 변화, 새로운 예술 활동, 삶과 죽음, 종교, 윤리의 변화 등, 사회현상 전반에 관해 대단히 폭이 넓으면서도 세심함을 잃지 않는 관찰력이 돋보인다. 그의 문화론은 뜬구름을 향해 손짓하는 형이상학적 ‘썰’이 아니라, 개인이 일상에서 겪는 생생한 구체성에서 출발하는 ‘임상적 문화론’이다. 특히, 그 자신이 군국(軍國) 소년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죽는 것이 몹시 두려워 견딜 수 없었다는, 전전 세대로서 품었던 마음의 그늘을 드러내는 노학자의 솔직함은 그의 학문적 비평에 진정성을 더하는 백미다. 그가 개인적인 체험을 사상 또는 학문으로 열매 맺어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기쁨 중 하나일 것이다.

목차

머리말

1장 ‘나’ 찾기
‘나’의 발견
‘나’를 떠받쳐주는 것
일본인과 개성
‘나’의 이중성
‘나 찾기’의 패러독스

2장 가족의 미래
‘가족적’이라는 것
가족 여
가족의 다양성
가족의 의미

3장 학교의 향방
일본의 학교
신분에 대한 고집
‘형(型)’으로 들어가기
‘싸움’에 대한 평가
이야기가 있는 교육
개인의 발견
앞으로의 학교

4장 일 만들며 살기
‘일’의 기원
사농공상의 역전
살아가는 것과 일
일과 놀이
일 만들며 살기

5장 풍족한 소비의 추구
쇼핑 중독
소비와 만족도
욕망의 안과 밖
물(物)과 마음
풍족함이란 무엇인가

6장 과학기술의 향방
일본인과 과학
종교와 과학
과학과 신체성
인간과학
과학기술의 미래

7장 이문화 체험의 궤적
자기 내부의 이문화
문화충격
아시아의 문화
일본 국내의 문화전쟁
이문화 체험과 자기실현

8장 꿈꾸는 미래
꿈과 놀이의 과거와 현재
현실의 다층성
영혼에 이르는 통로
꿈꾸는 힘
꿈과 놀이의 미래

9장 현대인과 예술
현대인과 불안
창조하는 것과 치유하는 것
‘형(型)’의 공죄(功罪)
일본인의 창조성

10장 ‘나의 죽음’과 현대
나의 죽음
현재의 죽음
삶의 질
사후의 생명
상(喪)
죽음의 수용

11장 종교와 종교성
종교성이란 무엇인가
어린이의 종교성
기독교 내부의 새로운 움직임
일본인의 종교성

12장 애니미즘과 윤리
글머리에
일본인의 윤리상 갭
윤리와 종교
미의식
영혼과 윤리
현대 일본인의 윤리

해설
옮긴이 후기

본문중에서

머리말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근래 일어난 소년범 사건들은 ‘요즘 젊은 것들’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일본 문화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 문제에 국한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일본인 전체의 문제로(무엇보다 나 자신의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작부터 문제가 된 ‘등교 거부 현상’이나 ‘이지메’에 대해서도 나는 그것이 ‘문화의 병’임을 강조해왔다. 앞서 얘기한 소년범 사건들은 그 병이 실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서 ‘병’이라는 표현을 아주 부정적인 의미로만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심리치료를 해온 나는 ‘병’이 종종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되는 것을 경험해왔다.
(/ p.8)

젊은이들만을 문제로 여기며 그 대책으로 ‘도덕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쟁 전에 ‘수신’ 교육을 주입받은 일본인들이 전쟁 중에 어떤 행동들을 했는지 잘 생각해주기 바란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적에게 저지른 행동은 이러쿵저러쿵 말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본군 장성들이 휘하 병사들의 목숨을 태연히 버리면서 자신만 살아남고 책임도 지지 않은 사례가 수없이 많다는 것을 인식해주기 바란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 와서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으며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무의미한 일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일을 생각해야 한다.
(/ p.9)

근대적 자아를 뛰어넘자고 말하기는 쉽다. 확실히 그것이 막다른 지경에 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동아공영권’을 운운하던 무렵에 ‘근대의 초극(超克)’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버블 경제가 시작되기 전 일본 경제가 잘나갈 때는 ‘일본적 경영’의 우수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이미 지적한 대로 통렬한 패전이었다(일본 경제의 붕괴를 ‘제2의 패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는 개개 일본인의 판단력과 결단력(근대적 자아의 특성)이 얼마나 약한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 p.11)

1장 나 찾기
일본은 현재 경제성장이 멈춘 상태다. 항상 ‘우상향의 성장’을 전제로 정책 방향을 잡았던 체제가 막다른 길에 들어선 형국이다. 지금까지 일본인들이 의지해온 기업들을 더 이상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 잇단 구조조정이나 파산 등으로 분명해졌고, 그러한 폐색(閉塞) 상황은 더욱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의지할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밖으로, 밖으로 향했던 관심이 급격히 안쪽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나 찾기’가 중요해졌다. 이럴 때 서양 근대가 확립한 개인주의가 우리의 지주(支柱)로서 유용할까?
(/ pp.21~22)

‘나 찾기’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하더라도 좀처럼 패러독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 찾기’는 마치 분실물을 찾듯이 어딘가에서 발견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나’를 찾기 위해서는 찾아지지 않는 가운데서도 계속 찾아나가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 pp.38~39)

2장 가족의 미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인들은 일본의 ‘가문’이 대단히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하여 그 구조를 파괴하는 데 힘을 쏟았다. 새로운 사고방식을 담은 헌법은 가문에 대한 철저한 파괴를 그 내용으로 했다. 그런데 일본의 ‘가문’은 혈연을 중시하지 않는 점이 특징이었다. 바로 그러한 특징을 잘 살려 가문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 일본의 기업들이다. 따라서 ‘가족적’으로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많은 일본인들은 그 가문을 대신한 것들에 귀속됨으로써 정체성을 보증받을 수 있었다.
(/ p.49)

서양의 ‘홈’이 일본에 들어와 ‘가정’이 되자, ‘가문[家]’의 구조를 부정하면서 가족이 자유롭고 평등해진 데다가 일본인 특유의 ‘달착지근함’이 가미되면서 상당히 처치 곤란한 끈적끈적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즉, 엄마와 자식의 관계가 일체화되어 타자가 들어갈 틈이 없게 된 것이다. 회사라는 ‘가문’에 소속되어 있던 아빠가 돌아와 ‘홈’에 들어가려 하나, 그는 이제 대형 쓰레기 이상의 무엇이 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 p.50)

3장 학교의 향방
현재를 한탄하는 사람들은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기 쉽다. “옛날 선생님들은 훌륭했다”, “옛날 학교는 정말 좋았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좋았을까? 그중에 훌륭한 선생님도 계셨고 좋은 학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냉정히 현재와 비교하여 그렇게나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야기가 그 정도로 간단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 p.64)

경제에서의 따라잡기·추월하기 도식에 내포된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듯이, 사실 교육에서도 간단하게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한때 미국이나 구소련 등을 이상형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현실을 잘 들여다보면 그들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 없다. 청소년 흉악 범죄라든가 마약 상용자 등을 조사해보면 미국 쪽이 일본보다 훨씬 더 많다. 미국에서 폭력이 발생한 고등학교에서는 권총을 소지한 경찰관들이 상시적으로 교내를 순찰하고 있다. 미국 중학교에서 일본식 제복 제도를 받아들이려 한 적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 p.66)

4장 일 만들며 살기
일본 이외의 동아시아 나라들에서는 혈연에 기반을 둔 ‘가족’이 개인의 정체성 준거가 되고 있다. 개인주의를 토대로 한 서양의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는 하나의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일본은 혈연을 그렇게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회사가 일종의 의사가족적(疑似家族的)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일본인들의 그런 사고방식에 의거한다. 일본인들은 ‘일을 좋아한다’거나 ‘지나치게 일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한 면이 확실히 있고 그에 대해 숙고할 필요도 있지만, 노동시간이 긴 요인으로 ‘회사 내에서의 가족적 일체감의 유지’가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 p.92)

5장 풍족한 소비의 추구
일본은 극히 단시간에 부자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50년 동안 일본인의 생활양식이 급격히 변화했다. 패전 때에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빈곤국이었다가 일거에 경제 대국이 되었기에 ‘벼락부자’라 할 수 있다. 나만 하더라도 문자 그대로 먹을 것이 없는 상태부터 포식 상태까지 체험했는데, 한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생활양식의 변화에서 이만큼 폭이 큰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벼락부자들은 일반적으로 돈이 있어도 언제나 구두쇠로 지내거나 갑자기 돈을 쓰고 싶어 하는 등의 특징이 있는데, 요컨대 돈을 잘 쓰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오늘의 일본인이나 일본이라는 나라를 보고 있으면 다분히 그런 생각이 든다.
(/ p.106)

무기력은 무욕망(無慾望)이다. 무엇에도 흥미가 없고 욕망이 솟지 않는다. ‘성’이라든가 ‘힘’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살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할 정도다. 자살을 하지 않는 것은 그조차 번거롭기 때문이라고까지 말한다. 무슨 일에 대해서건 ‘별로’라는 것이 그들의 반응이다.
근원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던 ‘욕망’이 없어지는 현상은 현대 일본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일종의 병리 현상이다.
(/ p.113)

이제 인간은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다. 그런즉 경쟁이 일어난다. 미국에서는 경쟁 원리를 높이 평가한다. ‘올바른 자가 이긴다’라는 법칙이 언제부터인가 ‘이긴 자는 올바르다’로 이해되어온 것 같다. 경쟁은 능력 있는 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능력 없는 자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를 가져온다. 미국의 높은 범죄율이 이를 반영한다.
요컨대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란 인간에게 전락하거나 파멸할 기회들을 풍부하게 제공하는 사회인 것이다.
(/ p.121)

6장 과학기술의 향방
자연과학의 법칙은 처음에 억단(臆斷)에 의해 발견된다고 할 수 있다. 사실들을 열심히 수집함으로써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들은 원래 무한히 존재하거니와, 그 가운데 어떤 것들을 수집할지 물을 때 이미 ‘억단’이 개입한다.
근대과학이 유럽에서만 일어났다는 사실의 배후에는 그에 필요한 ‘억단’을 배출하는 모태로서 기독교가 있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세상은 신이 창조해주신 것이기에 한마디로 말해 명쾌한 법칙에 따라 질서가 세워졌음이 분명하다는 ‘억단’이, 뉴턴을 비롯한 당시 과학자들의 자연현상 연구를 떠받치고 있었다.
(/ p.127)

7장 이문화 체험의 궤적
1965년 스위스에서 귀국하던 무렵에는 문화 차이 문제를 논하더라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는 차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전 세계 인류가 모두 같다는 것을 강조하는 태도 쪽이 강했다. 외국 여행을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이문화 체험을 하는 사람은 적었고, 또 외국에 나가더라도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곤 했다. ‘국제인’이라 하면 무색무미한 증류수 같은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 p.150)

자신의 문화와 절단되어 차용물(借用物)에 의해 풍족해지면 인간의 감정이 빈곤해지는 것일까? 이문화를 진정으로 자기화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아시아 나라들은 모두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고 앞으로도 받아들일 텐데, 그 앞날이 어떻게 될까? 그다지 좋지 않은 경우―옛날이야기에 많이 나오듯이―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큰 부자가 된 사람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일본에서도 이미 무표정·무감동의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 p.154)

8장 꿈꾸는 미래
메이지 시대 이래로 이 사회를 개선하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많았지만, 그 꿈을 떠받친 이데올로기가 현실적으로 무용하다는 점을 깨닫고 모두 좌절했다. 한편 요즈음 젊은이들은 꿈이 너무 실현되지 않아 꿈을 제쳐놓고 사는 것이 아닐까? 최근 100년 동안 일본은 상당히 가난한 때도 있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또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가 ‘꿈’을 갖고 사회를 개혁하려 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떠한가? 와시다 교카즈鷲田淸一는 젊은이들의 “가까운 미래에 대한 절망의 깊이”에 놀랐다고 술회한 바 있다. 오늘날에는 예전과 같은 형태로 현실에 대해 ‘꿈’을 꾸기기 어려워졌다.
(/ pp.165~166)

꿈도 놀이도 완전히 소진 상태에 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폐색 상황(閉塞狀況)’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리라. 그러나 나에게는 이 상황이 ‘스스로 폐색시키고 싶은 사람이 많은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재미있는 꿈이나 놀이가 도처에 존재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오늘의 일본인들이 앞서 이야기한 단층적 현실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실 속에 들어 있으니 꿈이나 놀이가 폐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기서 빠져나와야 한 그루의 나무나 짧은 옛날이야기, 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들에 꿈과 놀이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 p.181)

10장 ‘나의 죽음’과 현대
다행히 전쟁은 끝났다. 패전의 칙어(勅語)를 들었을 때 바로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전쟁터에 있는 두 형이 살아 돌아온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불근신(不謹愼)한 생각을 해서는 안 돼!’라며 머리에서 지웠다. 가족보다는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고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차차 많은 것이 밝혀지면서 내가 기개가 없었던 것을 스스로 정당화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죽음을 두려워했고 가능하면 그것을 피하려 하는 등 기개가 없었던 점을 긍정하는 것과 함께 ‘나의 죽음’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쟁 중에 남다른 각오를 당당히 피력하던 사람들 가운데 가짜가 얼마나 많았는지도 알게 되었다.
(/ pp.203~204)

11장 종교와 종교성
일본이 기독교를 빼놓은 채 근대화를 추구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지만, 서양에서도 과학기술의 발전이 지나쳐 기독교 신앙에 상당한 위협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과학기술 지식의 정당성을 승인할 경우 그것은 성서가 가르치는 사실들과 모순을 빚게 된다. 그런 것들을 애매하게 공존시키는 것은 일신교의 논리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한 단순 논리를 발전시킨다면 서양에서 기독교 불신의 세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범죄가 현저히 증가한 것은 그들이 기독교에 의한 억제력을 상실했거나 ‘중심의 상실’이라 해야 할 상황에 빠져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지금까지 기독교 문화권에서 확고한 중심을 차지한 ‘유일신’의 존재가 위태롭게 된 것이다. 현재의 혼란은 그 때문에 야기된 것이다.
(/ pp.238~239)

냉전 시대에는 정치적으로 선악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는데, 그러한 판단을 떠받치는 것으로 종교가 있었다. 말하자면 눈앞에 분명한 적이 있는 한 인간은 자신이 옳다고 믿을 수 있으며, 그것을 떠받쳐주는 ‘중심’을 믿을 수 있다. 그런데 냉전의 대립 구조가 사라지자 중심의 존재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이슬람에 대해 나는 말할 자격이 별로 없지만, 아랍의 근본주의적 중심주의는 아무래도 근대화를 방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p.239)

12장 애니미즘과 윤리
윤리나 도덕은 아무래도 강요된 어떤 것으로 느껴지기 쉽다. 그것들은 패전 전에는 ‘수신(修身)’이라는 형태로 아이들에게 강요되었고, 패전을 계기로 그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일어났으며, 그 후로 오랫동안 일본 사회에서 금구(禁句)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일본 사회에서 도덕교육의 필요성이 외쳐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쯤부터일까? 왠지 일본의 우경화와 중첩되는 듯하다. …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동의 규범이나 선악의 기준이 있다. … 하지만 그런 것들의 필요성을 강조하거나 ‘도덕’의 중요성 따위를 말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곧 우경화와 결부 짓게 되는데, 이는 어찌 된 까닭일까?
(/ p.245)

‘도덕’을 강조하는 사람은 질서를 중시하는 사람이 많은데, 일반적으로 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질서를 지키게 할까?’의 관점에서 타인들이 지키도록 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자신은 그 바깥에 두는 경우가 많다. 질서는 그가 안도감을 유지하는 데 필요할 뿐이고, 그 자신의 행동 기준은 다른 곳에 있다. 나는 그 부분이 도덕이 우경화와 결부되기 쉬운 요인 중 하나가 아닐지 생각한다. 이는 권력자에게 이용되기 쉽다.
(/ p.246)

같은 일본 국민 중 윤리성이 높은 서민들과 윤리성이 낮은 고관들이 서로 무관하게 병존하는 듯한 패턴이 개인의 마음속에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요컨대 악에 대한 자각이나 의식화가 너무 약한 것이다.
(/ p.250)

저자소개

가와이 하야오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28~2007
출생지 효고 현 사사야마
출간도서 14종
판매수 2,690권

일본에 융 심리학을 최초로 소개한 임상심리학자로 융 심리학의 일인자로 손꼽힌다. 1928년 효고 현에서 태어나 교토 대학 이학부 수학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바꾸어 임상심리학 연구를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에서 유학한 뒤 1962년 취리히 ‘융 연구소’에 들어가 융 학파 정신분석가 자격을 얻었다. 교토 대학 명예교수,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명예교수, 일본 문화청 장관 등을 역임했다.
독자적인 관점으로 일본의 문화와 사회, 일본인의 정신 구조를 꾸준히 연구했다. 특히 문화 전반에 걸친 탐구심을 바탕으로 전문 분야인 임상심리학뿐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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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가, 정치활동가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저서로 [성공한 개혁가 룰라], 역서로 [루쉰: 동아시아에 살아 있는 문학], [행복의 경제학], [한국정치와 시민사회: 김대중․노무현의 10년], [진화하는 중국의 자본주의], [21세기 패자는 중국인가], [리스크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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