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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우리시 시인선 048호로 출간된 시집이다.

부재와 역설, 그리고 중심 찾아가기
시인에게 “행복은 어디 숨어 있을까요?”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리라. “가장 낮은 곳 바로 당신 곁에 있지 요”라고. 우리말 ‘끄트머리’는 끝과 머리가 합성된 말이다. 끝이 시작이며 시작이 또한 끝이라는 역설적 진실이다. 이 분법을 넘어선 지점, 그곳에 임채우의 묘법이 있다. 중심 을 찾아 흔들리는 양팔저울처럼, 좌와 우의 균형점을 견 지하고자 하는 것, 그는 넘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 직선과 곡선의 조화, 긍정과 부정의 조화, 변증법적 융 합의 원리, 유약함과 강건함의 긴장과 조화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중이다. 즉 ‘가장 좋은 것은 흐르는 물처럼 가장 낮은 곳에 있다’(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역설의 시학에 마음의 중심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말

제1부

겨울 피라미 - 15
내 맘엔 듯 뇌리엔 듯 - 16
청춘을 돌려 다오 - 18
현산峴山을 찾아서 - 19
고봉산高烽山 - 22
프록시마b - 24
익상편Pterygium - 26
크리스마스 칸타타 - 28
보도블럭 - 30
별을 쏘다 - 32
문래동 - 34
소아과에서 차례 기다리기 - 36
시와 산문 - 38
설문동雪門洞 · 1 - 39
설문동雪門洞 · 2 - 40
설문동雪門洞 · 3 - 42

제2부

간증 - 45
구상나무 - 46
9월 - 48
그늘 - 49
근하신년 - 50
나는 자연인이다 - 52
집으로 - 54
내 안의 꼴통보수 - 55
낮밤 바꾸기 - 56
낚시 - 58
노상 방뇨 - 61
놀이터 - 64
눈 - 65
떨어지면 - 66
만우절 - 67
벚꽃 그늘에서 - 68

제3부

부재 - 71
산이 아니다 - 72
파우어 - 73
서랍장 - 74
선글라스 - 76
하오의 당구 - 79
약력 - 80
우리가 있는 이튿날은 - 82
이별 연습 - 84
이웃사촌 - 86
자작나무 숲 - 88
장정소포 - 90
초등학교 동창회 - 92
커피에 빠진 장풍이 - 94
한뫼공원 - 96
행렬 - 98

제4부

감자-101
동창회에서-102
샌프란시스코-103
푸코가 죽다-104
모란꽃 -106
전문가 · 1-108
전문가 · 2-109
닮은꼴 · 1-110
닮은꼴 · 2-111
중남미문화원-113
서귀포 그 사내-114
벽초지문화수목원-116
학교-118
코끼리-120
그랜드 캐니언-121
개와 바이크-122
똥과 발자국-124

해설/ 나병춘 평범한 일상에서 보물찾기 - 127

평범한 일상에서 보물찾기

1. 곡선의 힘과 질량보존의 법칙
임채우 시인의 시집 원고를 찬찬히 읽고 나서, 순간 번 뜩 떠오른 키워드가 있다. ‘곡선’과 ‘구심력’과 ‘질량보존 의 법칙’이다. 시는 아마도 작가 원체험의 총량과 정비례 하지 않을까? 특히 어린 시절의 체험은 미래 상상력의 집 을 제공하고 그에 기반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우주를 건설 하는 기초 질료가 된다. 즉 골격에 해당하는 집의 주원료 는 부모나 친척 이웃들 동네 형들, 그리고 코흘리개 친구 들과 더불어 쏘다니던 들판과 뒷동산과 오일장이며 집 안 마당이나 뒤꼍의 솔바람이나 대숲바람이리라. 시인이 태어나고 자랐던 섬진강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올망졸망 높 고 낮은 사투리의 때 묻지 않은 동산들은 그의 시적 상상 력의 원형질이자 다채로운 창작의 틀을 형상화 해주는 우 주적 아우라라 할 수 있다. 그의 시 ‘고봉산’이라는 산 이 름만 보아도 어느 정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멋대가리 없는 산
야트막하고 밋밋한 게
길바닥의 쇠똥더미 같은 산
그래도 불 놓던 산

정자나무 아래 들독같이 생긴 산
장사바위처럼
장사가 다시 나야
산천초목 울고 갈 산

머슴 아재 고봉밥 같은 산
저 산이 밥상 위로 어떻게 오르나?
밥그릇 위에 밥그릇 엎어
지혜로 다독거려 고봉밥이 된 산

제상에 한 술 떠 물밥을 만들 듯이
수박장수가 삼각으로 따 속을 보여 주듯이
숟갈질도 정성 들여
한 술 한 술 떠야 할 산

멋대가리 하나도 없는 산
에둘러 아파트 숲에 갇힌 산
가까운 이웃사촌 같은 산
순 밥심으로 오르는 산

? 「고봉산」 전문

시「고봉산」은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시인의 자화 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삶과 세상을 보는 안목이 방금 차려낸 고봉밥처럼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 든든한 느낌 이 든다. 시인이 태어나 뒹굴며 놀던 엄니 젖무덤이 곧바 로 연상되지 않는가. 도회에 나와 청년 장년으로 떠돌면 서 바라보는 그 넉넉하게 둥그런 능선들은 사유의 밑바탕 이 되어 향수를 떠올리는 연결고리이며 징검다리(‘쇠똥더 미-정자나무-머슴 아재-고봉밥-밥심’)라 할 수 있다. ‘고 봉밥’은 무엇인가. 참으로 춥고 배고프던 60년대 시절, 밥 때가 되어 두레반에 둘러앉으면 몽실몽실 하얀 김이 오르 던 고봉밥은 누구나에게 크나큰 구원이라 할 수 있다. 시 인과 함께 살던 ‘머슴 아재’의 튼실한 어깨와 지게에 져 나르던 나뭇짐이 뭉게뭉게 꿈속을 떠도는 느낌이 들지 않 는가. 고봉밥은 먼 유년의 추억이며 시인의 인생역정을 죽 지키고 끌어온 뒷동산이며 부모님인 동시에 밥심이며 삶의 DNA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말이다. 둥그런 곡선은 엄 니의 후덕한 젖무덤이며 그가 놀던 푸른 벌판과 섬진강의 그윽한 현빈玄牝의 곡선에 다름 아니다. 그 속에 내장된 무궁무진한 곡선의 힘도 실은 고봉밥을 담던 막사발의 든 든한 허리둘레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산에서 자라 는 ‘구상나무’며 ‘자작나무’ 시편들, 자연이나 식물에 관해 형상화된 시들 또한 이런 향토에 대한 밑그림이며 첫사랑 고백인지도 모른다. 묵묵히 어려운 시회詩會의 살림을 무리 없이 감당하는 것만 보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누가 알아주든 말든 제자리를 잘 지키는 동산처럼 든든 하게 시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나를 알아주 는 사람이 있다면/ 하늘 저 끝도 이웃과 같다” 왕발, 당나 라 시인). 아울러 시인의 시는 먼 나라를 멀리 떠돌거나 희 구하는 노마드의 삶보다는 자신의 삶과 시에 몰두하고자 하는 대지적 구심력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때 묻지 않은 낙원회복의 꿈들이 이곳저곳에서 묻어나는 원형 지 향성으로 자연스레 드러나 있는 것이다.

2. 눈과 손으로 별을 쏘다

좋은 시는 머리가 아니라 눈과 손에서 태어나는지도 모 른다. 물론 뜨거운 가슴에서 오기도 하지만. 임채우 시는 무엇보다도 예리한 관찰력과 상상력의 어느 지점에서 태 어난다. 특히나 그의 손재간은 몰래 숨겨놓은 비밀병기라 할 수 있다. 최근《우리詩》에 발표한 에세이에서 그는 어
린 시절을 반추하며, 자타공인 ‘공기놀이’의 대가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주로 누나뻘들이 노는 공기놀이판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누구나 그냥 지나쳐버릴 일도 그의 노련한 손에 걸리면 에세이가 되든 가 시로 다시 재생되곤 한다. 그 언젠가 샘터 파랑새극장 에서 故 성찬경 시인의 시낭송을 겸한 퍼포먼스가 있었다. 자신이 스스로 고백하기를 자신의 집을 ‘물질고아원’이라 소개한 바가 있었다. 시내를 어슬렁거리다 버려진 사물들 을 발견하게 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집에까지 모시고 와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것이다. 성찬경 시인의 성정과 거 의 닮은 사람이 임채우 시인이 아닌가 여겨진다. 물론 쓰 다 버린 사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