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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책상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구닥다리 휴대폰이 어느 날 문득 눈을 뜬다.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리둥절한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성격 좋은 바가지. 넌 뭐냐? 글쎄 나는 누구일까?
둘은 방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이 전자제품의 정체를 아는 이를 수소문하고, 마침내 삐삐할머니를 통해 중요한 사실을 듣게 된다. 모든 낡은 전자제품은 선택을 해야 한다.
이대로 방전되어 영원히 잠들거나, 아니면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의 땅 드래곤마운틴으로 가거나. 전자제품들의 성지 드래곤마운틴을 찾아 떠난 낡은 휴대폰의 좌충우돌 모험담을 그린 『아날로그 보이』는 소외된 사물들이 서로 힘을 합쳐 난관을 극복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한국형 그래픽노블이다.

잊혀진 사물의 쓸모를 찾아서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한때 그 또한 반짝반짝 빛나는 신상품이었으나 이제는 한갓 잡동사니에 불과해진 물건들이다. 계산기, 필름, 뻐꾸기시계, 성냥, 축음기, 칠판지우개, 플로피디스켓. 주인공 ‘아날로그 보이’는 이제는 전파도 잘 잡히지 않는 2G폰이다.
매 시즌, 성능이 업그레이드된 최신형 폰이 출시되면 멀쩡한 핸드폰도 금세 구형이 되는 요즘, 핸드폰은 다른 어떤 사물들보다도 수명이 짧다. 쓸모를 잃어버린 사물들은 쉽게 잊혀지고 버려지지만, 혹시 그들의 이야기가 아직 끝난 게 아니라면?
아날로그 보이는 바가지와 필름과 함께 오래된 사물들이 모여 사는 여러 지역을 통과해 천신만고 끝에 드래곤마운틴에 도착한다. 붉은 시장, 후리볼트 공장, 해피랜드, 스마트시티, 난파선. 가는 곳마다 버려진 낡은 사물들의 사연을 듣고 도움을 주고 사건을 해결한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드래곤마운틴에서 아날로그 보이는 디지털 전자제품인 그에게 삐삐할머니가 왜 ‘아날로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지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많은 물건들이 만들어지고 또 사라진다. 어떤 것은 오랫동안 사랑받기도 하고 어떤 것은 반짝 인기를 끌다 잊혀진다. 성능이 업그레이드된 신제품이나 최신 기능을 갖춘 첨단기기들은 모두의 환호 속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언젠가 낡아져 구닥다리가 된다.
『아날로그 보이』는 그 낡아버린 사물들의 멈췄던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추억에 관한 이야기이자,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발견해나가는 한 인물의 성장 이야기다. 독특하고 몽환적인 색감과 잔잔한 유머가 서정적으로 어우러진 한 편의 환상동화와 같은 작품이다.

[명대사들]
“아날로그 보이, 너 좀비인 거야? 좀빈데 또 죽는 거야?” - 바가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결국 방전을 피할 순 없어.” - 삐삐 할머니
“필름은 시간이 멈춘 삶을 살아.” - 필름 아저씨
“미세먼지라니요. 이것은 십 년 묵은 신성한 분필가루입니다.” - 칠판지우개 트윈스
“나도 짧긴 하지만 불을 켤 수 있어요.” - 성냥 아가씨
“난 단지 살고 싶었다.” - 탈옥폰 선장
“초기화된 마음을 품은 자만이 용의 문을 통과할 것이다.” - 핀셋
“신호도 끊겼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은 구닥다리지만 제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친구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 아날로그 보이
“가끔은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추억의 물건을 꺼내 먼지를 털어주세요. 그와 함께한 시간이 좋았다 웃으신다면, 우리는 행복합니다.” -시네마천국의 감독 영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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