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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평선 : 사쿠라기 시노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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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오키상 수상 작가 사쿠라기 시노의
기념비적 데뷔작


단조롭지만 선명하다. 차갑지만 생생하다.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이런 감각에 사로잡힌다. 색채를 잃어버린 대지와 하늘의 표정이, 공허함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체온이 분명하게 전해져온다. 그녀의 글은 독자의 마음을 북으로 북으로 이끈다.
- 다키이 아사요 / 작가

2013년 [호텔 로열]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사쿠라기 시노의 첫 소설집 [빙평선](2007)이 양윤옥의 번역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2002년 단편 [설충]으로 올요미모노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그녀는 줄곧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홋카이도의 정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작품에 담았고, [풍장](2008), [유리 갈대](2010), [러브리스](2011), [굽이치는 달](2013)을 비롯해 열일곱 권의 단행본을 발표했다.
사쿠라기 시노의 소설은 지역적 특색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풍부한 묘사,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지 않는 정직한 문장, 인간 내면의 고독을 읽어내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지난 수년간 문단에서 큰 주목을 받아왔는데, [빙평선]은 이렇듯 확고한 색깔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쳐 침체된 일본 문학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그녀의 생애 첫 단행본이다. 등단 후 오랫동안 출판 기회를 얻지 못했던 사쿠라기 시노는 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등단작 [설충]이 수록된 첫 소설집 [빙평선]을 내놓았고, 이 책이 호평을 받은 덕분에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빙평선]은 "내가 살아온 땅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다"는 그녀만의 방향성을 드러내어, 이후 발표한 모든 소설들의 토대가 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소설가’ 사쿠라기 시노의 존재를 대중에게 처음 각인시킨 작가 이력의 ‘원점’이나 다름없다. 표제작을 포함,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책은 홋카이도, 그중에서도 동쪽의 해무海霧 도시 구시로를 중심으로 겨울이면 유빙으로 뒤덮이는 오호츠크해 연안 마을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출판사 서평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얽매이고 짓눌린 채 살아간다-
압도적 필력으로 생의 문제를 담아낸 여섯 편의 걸작 단편


소설의 주 무대인 최북단 홋카이도는 대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땅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오랜 세월 엄혹한 환경에 맞서 터전을 일구어온 주민들의 고단한 삶이 자리하고 있다. [빙평선]은 한겨울 얼어붙은 대지만큼이나 척박한 삶 속에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젊은 시절 꿈을 좇아 대도시로 나갔다가 빈손으로 낙향한 뒤 불륜으로 공허함을 달래는 연인, 이혼 후 전통 기모노 침선장이 되어 담담하게 새 삶을 개척해가는 여자, 부당한 시집살이와 남편의 무심함을 견디며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속해온 아내, 자신의 가게를 찾은 창녀와 사랑에 빠진 젊은 이발사, 애인과의 지지부진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시골 부임을 자처한 치과 의사, 폭압적인 아버지로부터 도피하듯 관계를 맺었던 여자와 10여 년 만에 재회한 남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견고한 굴레에 얽매여 있는 인물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타인의 몸이 주는 온기에서 탈출구를 찾기도 한다. 첫 작품부터 성을 거침없이 묘사하여 ‘신新관능파’로 명명되었던 사쿠라기 시노답게 적나라한 묘사들이 적잖이 등장하지만, 실상 그 핵심에 있는 것은 ‘열정’이 아니라 엄혹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자의 ‘비애’ 혹은 ‘체념’에 가깝다.
그러나 태어난 장소와 시대, 가족에 의해 규정되어, 거기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등장인물들의 인생이 때로 답답하고 안타깝게 느껴지기는 해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작가가 그리고자 한 것이 ‘불행’ 그 자체가 아니라 불행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나갈 길을 찾아내고야 마는 인간의 ‘강인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작중 인물들 중에는 속박을 벗어던지고 탈출에 성공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주어진 현실을 수용하고 그 안에서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인물도 등장하는데, 그들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산다’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아니라, ‘어떻게든 산다’라는 작지만 확고한 의지이다. [빙평선]에는 특히 모진 환경 속에서 서로 연대해 자신의 삶과 가족, 이웃을 떠받치는 여성들의 모습이 자주 그려진다. 시골의 폐쇄적 관습 아래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자신을 옭아매는 과거를 잘라내고, 지지부진한 남녀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우유부단한 남성들을 일깨우고, 때로는 무서울 만큼 단호한 결단으로 인생길을 바꾸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못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사쿠라기 시노는 누구의 삶에나 존재하는 보편적인 질곡을 농밀한 문장과 홋카이도라는 독특한 풍광 속에 담아 한 폭의 풍경화처럼 선명하게 그려냈다. [빙평선]은 사쿠라기 문학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이후 그녀의 소설을 조명하고자 할 때 반드시 거론해야 할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줄거리]

[설충]

시골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삿포로로 떠났던 다쓰로. 결국 사업에 실패하고 낙향해 부모님의 농장 일을 돕는다. 따분한 일상에 위안거리라고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옛 연인 시키코와 이따금 몸을 섞는 것뿐. 그러나 대를 이을 손자를 바라는 다쓰로의 아버지가 필리핀 소녀를 며느릿감으로 데려오면서, 영영 계속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에 변화가 찾아온다.

[안개 고치]
아이를 갖지 못한 탓에 결혼 2년 만에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마키. 돌아가신 어머니의 뜻에 따라 전통 기모노 침선장이 되어 조용히 혼자만의 생활을 꾸려가던 어느 날, 스승 지요노가 쓰러지면서 그녀가 가르치던 어린 제자 야요이까지 떠맡게 된다.

[여름의 능선]
‘착한 할머니는 시어머니가 되고, 온후한 남편은 착한 아들로 변해버렸다.’ 도쿄에서 홋카이도의 시골 마을로 시집온 지 9년. 쉴 새 없이 손자 타령만 늘어놓는 시어머니와 점점 더 바깥으로 나도는 남편, 끝나지 않는 농사일로 숨 막히는 나날을 보내던 교코는 농협 창구에서 우연히 도호쿠로 향하는 페리 여행 팸플릿을 발견하고 마음이 일렁이는 것을 느낀다.

[바다로 돌아가다]
은퇴한 스승의 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하던 젊은 이발사 게이스케. 계절이 무색하게 눈이 쏟아지던 어느 봄날, 자신의 가게를 찾아온 손님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녀의 이름은 기네코, 강 건너편 클럽에서 일하는 화류계 여자였다.

[물의 관]
치과 의사인 료코는 자신보다 열다섯 살 많은 클리닉 원장 니시데와 지난 5년간 연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둘 사이는 이렇다 할 진전도 변화도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에 놓여 있다. 어느 날 시골 마을의 치과 진료소에서 의사를 찾는다는 공고를 본 료코는 충동적으로 그 자리에 지원한다.

[빙평선]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낸 세이치로. 도쿄대학에 합격해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에 몰두하던 그는 어느 밤, 마을 남자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 도모에와 충동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10여 년 후, 지역 세무서장이 되어 돌아온 세이치로는 다시 한번 그녀를 찾아간다.

목차

설충-雪蟲
안개 고치-霧繭
여름의 능선-夏の稜線
바다로 돌아가다-海にかえる
물의 관-水の棺
빙평선-氷平線

옮긴이의 말

본문중에서

"안녕. 하세요."
기묘한 억양이었다. 소녀가 다쓰로를 향해 띄엄띄엄 말했다.
"마리. 입니다."
반응이 없는 다쓰로를 향해 다시 한번 처음부터 되풀이했다. 다쓰로도 뭔가 대답을 하자고 생각했지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도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다쓰로는 어머니를 보았다. 손자라는 말에 홀려 떨떠름하게 동의해줬던 어머니의 깊은 주름이 한층 더 깊어져 얼굴 전체가 쭈그러들었다. 며느리라는 자리를 준비해두었던 일가족에게 마리는 큰 불안감을 주고 있었다.
"열여덟 살이라네?"
돌아보니 아버지의 손에 여권이 쥐어져 있었다. 남자의 교활한 옆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어찌 됐든 이 소녀는 이 집에서 살 수밖에 없다. 이래서야 마소 거간꾼만도 못하잖아, 라는 말을 꿀꺽 삼켰다.
"애초에 그냥 손자를 사는 편이 더 나았겠네."
어머니가 말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설충' 중에서/ p.26)

남편이 가정적인 게 아니라 가정적인 것을 동경하는 남자라는 걸 깨달은 것은 함께 살기 시작하고 1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아이와 아내가 기다리는 따뜻한 가정을 갖고 싶어."
마키는 임신이 되지 않았다. 말끝마다 손자와 성묘 이야기를 꺼내는 노친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는 그 사람 나름의 변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헤어지자는 말이 나왔을 무렵에는 벌써 다른 여자의 배 속에 남편의 아이가 있었다.
이혼이라는 결과가 안타깝기는 했지만, 자신의 인생에 매듭 하나가 지어진 것에 안도했다는 것도 솔직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결혼했을 때의 기분과 아주 흡사했다. 아기라는 천진무구한 존재 덕분에 주위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별수 없었다, 라는 이유가 생긴 것은 다행이었다. 이혼극은 주위에서 놀랄 만큼 짧은 기간에 수습되었다.
('안개 고치' 중에서/ pp.82~83)

사계절을 누리는 생활, 새파랗게 높은 하늘, 따뜻한 인정과 새로운 사랑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딸 마유를 낳기 전까지의 1년 남짓이었다. 배 속에 있는 것이 딸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시어머니 다키의 태도가 돌변했다.
"아들을 낳을 때까지 더 노력해줘야 해."
진통에서 해방되자마자 다키는 말했다. 착한 할머니는 시어머니가 되고 온후한 남편은 착한 아들로 변해버렸다. 도움이 되는 건 암소와 사내아이뿐이야. 다키가 강한 어조로 그런 주장을 펼치기 시작하면 대꾸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여름의 능선' 중에서/ p.104)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게이스케는 그 자리에 무릎을 세우고 주저앉았다.
"벌써 세 번째야. 갈 때마다 클럽에서처럼 진하게 화장하고 손톱 붉게 칠하고, 횟수도 실제보다 늘려서 기입해. 오늘은 다섯 번째라고 썼어. 그러면 의사나 간호사도 아기가 태어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왜 그렇게까지 하는데요? 낳아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거, 왜 생각을 안 해요?"
"낳은 다음에 죽이라는 거야?"
게이스케는 무릎에 박고 있던 이마를 들고 눈을 크게 떴다. 기네코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유난히 환한 얼굴이었다.
('바다로 돌아가다' 중에서/ p.189)

6월 하순, 여름의 기척이 감돌고 있었다. 바닷가 마을에도 보드라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잔잔한 바다는 항상 멋지게 짙은 청색이고 해가 나오는 날은 수면이 반짝반짝 빛났다.
연휴 동안에 여기저기 드라이브를 한 덕분에 인근 읍면을 둘러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와는 대조적으로 주민의 생활권은 어디나 비슷비슷한 양상으로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전국에서 밀려드는 관광객 덕분에 국도변의 편의점과 캠프 시설만은 기이할 만큼 번듯했다.
여행길에 충치가 아파왔다는 환자도 기꺼이 받아주었다. 나중에 읍 이름과 치과 의사 선생님께, 라고만 적힌 감사 엽서가 도착하기도 했다. 소소한 행복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아사히마치를 처음 찾아왔을 때 느꼈던 말할 수 없이 절망적이던 기분에서는 서서히 빠져나왔다.
('물의 관' 중에서/ pp.222~223)

도모에의 몸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일절의 소리도 추위도 세이치로는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혼자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세이치로는 얼음 위에 서 있었다. 달을 꼭 닮은 구멍 앞에 천천히 무릎을 꺾고 주저앉았다. 도모에의 몸이 다시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도모에!"
얼음이 울고 있었다. 소리는 섬뜩하게 메아리쳐 몸에 지잉 울렸다.
타원형 달.
찢긴 얼음 너머.
빙평선이 가로누워 있었다.
('빙평선' 중에서/ p.298)

저자소개

사쿠라기 시노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5~
출생지 홋카이도 구시로
출간도서 6종
판매수 396권

1965년 일본 홋카이도 구시로시市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하며 홋카이도 출신 여류 작가 하라다 야스코의 『만가』를 접하고 문학에 눈을 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법원 타이피스트로 근무하다가 스물네 살에 결혼하면서 전업주부가 되었다. 남편의 전근을 따라 구시로, 아바시리, 루모이 등 홋카이도 각지를 전전하며, 오래전 하라다 야스코가 소속되었던 문예지 《홋카이 문학》의 동인으로 다시 소설을 공부한다. 북녘 혹한의 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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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일본 문학 전문번역가. 2005년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으로 일본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사쿠라기 시노의 『호텔 로열』 『굽이치는 달』 『빙평선』,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그대 눈동자에 건배』 『라플라스의 마녀』 『마력의 태동』,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여자 없는 남자들』,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등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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