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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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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시골 방죽에 펼쳐진 들꽃과 같은 편안함과 아름다움,

    생활이라는 그림자 속에 비치는 따뜻하면서도 서글픈 무늬들을 섬세하게 그린 시집



    이창기 시인의 세번째 시집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발행되었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시골에서 10년 가까이 더 살아보았다. 여전히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라고 적고 있다. 이 말처럼 이번 시집에서는 시골 생활에서 시인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 시인이 정착한 새로운 땅에서 얻고 잃은 것들을 그린다.

    문학평론가 이남호는 이 시집에서 드러나는 전원 생활의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비교하고 있다. 자작해서 술을 마시고, 뜰의 나무를 내다보며 흐뭇해하고, 창에 기대어 오만한 눈길로 내다본다거나 하는 태도에는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편안함이 있다. 집이 좁아도 그만이고 손님이 찾아오지 않아도 그만이며, 아무데서나 쉬고 고개 들어 경관을 둘러보는 태도에는 세속의 질서와 가치를 벗어난 자의 자유로움이 있다. 도연명은 고향에 돌아와서, 한마디로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이 제멋대로 할 수 있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얻은 것이다. 물론 그 편안함과 자유로움은 부귀와 벼슬과 안락함과 명예와 같은 세속적 가치들을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도연명의 「귀거래사」는 그것들의 참된 가치를 일깨워준다. 「귀거래사」는 귀향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자유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도 시골 생활을 노래한 것이면서 동시에 자유를 노래한 시집이다. 시인은 ‘즐거운 소라게’처럼 시골에 안착했다. 시 「즐거운 소라게」에는 이제 막 시골에 정착한 시인의 가족들이 만나는 평화로운 정경과 자유를 얻은 시인의 편안함과 만족스러움이 잘 드러나 있다.



    잘 다듬은 푸성귀를 소쿠리 가득 안은

    막 시골 아낙이 된 아내가

    쌀을 안치러 쪽문을 열고 들어간 뒤

    청설모 한 마리

    새로 만든 장독대 옆

    계수나무 심을 자리까지 내려와

    고개만 갸웃거리다

    부리나케 숲으로 되돌아간다



    늦도록 장터 한 구석을 지키다

    한 걸음 앞서 돌아가는 흑염소처럼

    조금은 당당하게,

    제집 드나드는 재미에

    갑자기 즐거워진 소라게처럼

    조금은 쑥스럽게,



    얼마 전에 새로 번지가 생긴 땅에

    한 채의 집을 지은 나는

    세 식구의 가장(家長)으로서

    나의 하늘과

    별과

    구름과

    시에게 이르노니



    너희 마음대로

    떴다 지고

    흐르다 멈추고

    왔다 가거라! ─「즐거운 소라게」 전문



    시인이 시골 생활에서 얻은 편안함과 자유로움의 경지를 구체적 정황으로 보여주는 시들은 많다. 잠을 깬 아침 들녘의 싱싱한 생명력을 찬양하는 「나의 아침 방귀에 당신의 신중한 하루가」, 일상의 질서와 어긋날 수밖에 없는 자연적 욕망의 모습과 내적 갈등을 재치 있게 그려 보여준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옆길로 새는 마음이나 옆으로 가지를 뻗는 호박 넝쿨이나 다 같은 자연스런 삶과 자연의 일부임을 보여주는 「옆길로 새기」와 같은 시에서 시인의 마음은 시골 들판의 풀이나 나무 그리고 물이나 구름처럼 편안하고 자유롭다.그러나 시인은 한편으로는 시골 생활에 자족하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노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활이라는 그림자 속에 비치는 따뜻하면서도 서글픈 무늬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시인의 삶은 누추하고 상투적인 일상의 굴레에 매여 있다. 따라서 시인의 편안함과 자유로움과 낙천성에도 생활이라는 그림자가 있다. 일상 속에서 억압된 자유와 욕망이 문득 고개를 쳐들었을 때, 그리하여 생활이란 것이 자기에게서 뺏어간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비애감을 그린 「누가 나의 낮잠을 깨우는가」나 「세한도」와 같은 시는 가장 노릇은 물론 사람 노릇도 하기 힘들게 만드는 가난에 대한 시인의 자괴감이 표현되어 있다. 생활이란 안빈이 되기 어려운 것임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시인은 마음의 넉넉함과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시집의 3부 ‘심경(心境)’에서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따뜻한 여리고 따뜻한 마음씨들이 보다 잘 표현되고 있다. 「나는 어쩌다 생겨나와」나 「내게 강 같은 평화」 같은 작품들은 큰 의미가 담기지 않은, 마음의 한 표정에 불과한 듯하지만, 그 표정에는 삶과 문학의 진실을 관통하는 중요한 그 무엇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 마음의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화된 삶의 비애가 전해져 온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의 뒷면에 이런 빈집을 지키는 고단함 혹은 생활의 그림자를 배치함으로써 진실성과 건강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시의 정통적 아우라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반가운 시집이다.



    우두커니 먼 산을 바라본다

    코를 킁킁거리며 온몸 구석구석 냄새를 맡는다

    사정없이 몸을 흔들어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오줌을 깔긴다

    1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세 번씩 반짝거린다

    적당한 나뭇가지를 꺾어 발로 움켜쥐고는 죽은

    나무줄기를 두드린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무릎 꿇고 앉아 잔디 사이에 번진 토끼풀을 먹다가 쥐어뜯는다

    그러다 밀짚모자를 벗어 던지며

    넌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니!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지저귀거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전문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59년 서울에서 나서 인천에서 자랐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84년[문예중앙]에 시를, 1990년 [문학과사회]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 [李生이 담 안을 엿보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밖의 저서로 [스무살의 수사학] [김삿갓이라 불리는 사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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