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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에게 살해된 왕 : 프랑스 상징의 기원이 된 불명예스러운 죽음

원제 : Le roi tue par un co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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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백합과 파란색이라는, 프랑스의 상징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중세 유럽의 역사를 상징사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있는 책. 카페왕조에서부터 시작된 파란색과 백합꽃 문양은 오늘날까지도 프랑스를 상징하는 색깔과 이미지로 쓰이고 있다. 프랑스의 중세사학자인 미셸 파스투로는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인장 등 중세의 다양한 도상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그것들이 프랑스를 상징하는 시각적 이미지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아울러 카페왕조가 그러한 이미지를 채용해 왕실의 문장으로 삼은 배경과 목적을 12세기를 전후로 한 다양한 역사적 상황과 연관시켜 해석한다. 이를 위해 그는 돼지, 파란색, 백합의 상징성, 성모 마리아 신앙의 융성 등의 문화적 배경과 교회의 분열, 십자군 전쟁의 실패, 아키텐 공국의 영지를 둘러싼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대립 등의 정치적 사건들을 서로 교차시키며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출판사 서평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이겠지만, 프랑스의 축구 대표팀은 ‘레블뢰(Les Bleus)’라고 불린다. 그들이 파란색 유니폼을 상징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네딘 지단이 선수로 뛰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레블뢰가 세계 축구계를 호령했다. 세밀한 패스와 조직력에 기초한 그들의 경기 운영은 예술처럼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으며 ‘아트 사커(art soccer)’라고 불렸고, 그들은 1998년 월드컵에서 영원한 강호 브라질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파란색(Bleu)’은 프랑스를 상징하는 색이다. 월드컵과 같은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가 없던 18세기에도 이미 유럽에서는 파란색은 프랑스를, 붉은색은 영국을, 녹색은 독일을 상징하는 색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래선지 프랑스대혁명 직후인 1793년부터 1800년까지 프랑스의 서부 지역에서 벌어진 방데전쟁에서 왕당파와 맞서 싸웠던 혁명군도 ‘레블뢰(Les Bleus)’라고 불렸다. 혁명 정부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그들도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파란색이 프랑스를 상징하는 색이 된 것은 프랑스 카페왕조가 12세기 후반부터 파란색 바탕에 금색 백합꽃이 총총하게 그려진 것을 왕과 왕국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사용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프랑스의 중세사학자인 미셸 파스투로(Michel Pastoureau)는 프랑스가 어떤 불명예스러운 죽음이 가져다준 오점을 덮기 위해서 파란색과 백합꽃 문양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먹을 것을 찾아 땅을 헤집으며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왕의 낙마 사고를 불러온 돼지 때문에 오늘날 프랑스 대표팀의 파란색 유니폼이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악마의 돼지가 가져온 불명예스러운 죽음

    1131년 10월 13일, 루이 6세의 맏아들인 필리프가 파리 근교에서 낙마 사고로 죽었다. 그가 타고 있던 말의 다리 사이로 돼지 한 마리가 갑자기 뛰어들어 말이 넘어졌고, 말에서 떨어진 필리프는 돌에 세게 부딪쳐 크게 다쳤다. 그는 곧 가까운 집으로 옮겨졌으나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당시 필리프는 2년 전에 대관식을 올리고 아버지와 공동으로 프랑스의 왕위에 올라 있었다. 그런 필리프가 불결함과 탐식의 상징이던 돼지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은 왕국과 왕조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야생의 멧돼지를 사냥하다가 죽는 것은 전사다운 명예로운 죽음이었으나 농장의 돼지 때문에 죽는 것은 왕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명예스러운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수치스런 죽음을 놓고 ‘신이 내린 벌’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리고 젊은 왕의 죽음을 불러온 그 돼지를 ‘악마의 돼지’라고 불렀다.

    죽은 필리프를 대신해서 왕위에 오른 루이 7세가 실정을 거듭하면서 왕과 왕조의 명예는 더욱 땅에 떨어졌다. 왕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왕비와 함께 직접 제2차 십자군에 참여했으나, 원정은 무참한 실패로 끝났다. 게다가 십자군 원정 도중에 생긴 불화로 루이 7세가 알리에노르 왕비와 이혼하면서 프랑스 서부의 넓은 영토가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가에게 넘어가는 일마저 벌어졌다. 그 지역은 아키텐 공국의 상속녀이던 알리에노르 왕비의 영지였는데, 왕비는 루이 7세와 이혼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노르망디 공작이던 헨리 플랜태저넷과 재혼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154년에 헨리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면서 그 지역을 놓고 프랑스는 잉글랜드와 대립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것은 뒷날 백년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악마의 돼지’ 때문에 필리프가 목숨을 잃으면서 빚어진 일로 여겨졌다. 성직자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서 양육되던 루이 7세는 왕위에 오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알리에노르 왕비도 원래는 필리프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따라서 필리프가 죽지 않았다면, 프랑스 역사에서 최악의 재난이라고 불리는 루이 7세의 통치는 피할 수 있었을 것처럼 보였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지만, 분명히 그 시대 사람들은 그런 아쉬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필리프의 죽음은 왕국과 왕조에 내려진 신의 징벌처럼 보였다.

    성모 마리아를 앞세워 돼지의 흔적 지우기

    왕과 그의 측근들은 이 불명예스런 죽음의 흔적을 지우고, 왕과 왕조의 명예와 위신을 회복해야 했다. 루이 7세와 그의 자문이던 생드니 수도원장 쉬제르, 서방 기독교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던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 등은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왕국의 수호자이자 어머니, ‘프랑스의 여왕’으로 삼아 왕조와 왕국의 명예를 되찾으려 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성모 마리아의 도상에서 가져온 백합과 파란색을 왕국의 문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2세기 중반에 이르러 성모 마리아 숭배가 서구 기독교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백합은 성모 숭배와 결합해 성모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쓰이고 있었다.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는 설교에서 성모를 백합에 빗대어 나타내면서 그러한 흐름을 이끌었다.

    생드니 수도원장 쉬제르는 프랑스 역대 왕들의 무덤이 있는 수도원 교회의 창을 파란색 색유리로 장식했고, 이로써 파란색이 왕국의 색으로 자리를 잡는 데 영향을 끼쳤다. 10세기까지만 해도 파란색은 볼품없는 색으로 여겨졌으며, 종교적인 상징성도 지니지 못했다. 그러나 서기 1천년을 지나면서 파란색은 천상의 색이자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으며, 그리스도를 비롯한 신성한 존재들의 의복이나 주변 등도 점차 파란색으로 칠해졌다. 쉬제르는 생드니 수도원의 교회를 개축하면서 처음으로 파란색 색유리를 이용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했고, 샤르트르 대성당을 비롯한 왕국의 교회들도 그러한 흐름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이 파란색은 왕실 문장의 파란색이 되어 백합꽃이 만발한 ‘천상의 꽃밭’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파란 바탕에 금색 백합꽃들이 총총한(d'azur seme de fleurs de lis d'or)’ 프랑스 문장이 언제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백합꽃 문양의 사용이 최초로 확인되는 것은 1179년 11월 대관식을 치른 뒤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필리프 2세의 인장이다. 그리고 백합꽃 문양의 방패 문장은 1211년에 필리프 2세의 아들인 루이 8세가 헌장에 첨부한 밀랍 인영에서 최초로 발견되며, 파란색 바탕의 색까지 나타난 것은 1216∼1218년에 제작된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처음이다. 이러한 것들로 미루어볼 때 루이 7세의 치세 말기인 1150∼1180년 무렵부터 파란색과 백합꽃 문양이 점차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왕과 왕국의 상징적 정화

    이처럼 프랑스는 12세기 후반부터 성모의 두 가지 상징을 왕과 왕국의 상징으로 삼아 천상의 여왕을 프랑스의 여왕으로 탈바꿈시켰다. 성모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파란색과 백합으로 왕과 왕권을 나타냄으로써 프랑스는 천상의 왕국과의 결속을 새롭게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악마의 돼지 때문에 생긴 오점을 상징적으로 정화하고, 명예와 위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것은 프랑스의 문장을 다른 왕국의 그것들과 비교해보면 뚜렷이 확인된다. 유럽의 다른 왕조들은 대부분 동물을 문장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예컨대 잉글랜드와 덴마크 왕국은 레오파르두스를, 스코틀랜드와 레온, 보헤미아, 노르웨이 왕국은 사자를, 스웨덴 왕국은 황소를,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 왕국은 독수리를 상징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프랑스 왕국은 야수의 세계에서 빌려온 전사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와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을 상징으로 선택했다. 이처럼 프랑스의 왕은 유럽의 다른 왕들보다 먼저 문장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식물을 문장의 형상으로 선택해 스스로를 기독교 세계의 다른 왕들과 다른 존재로 부각시키고 있다. 곧 프랑스의 왕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매우 ‘기독교적인’ 왕이며, 하늘과 특별한 관계로 묶여 있음을 드러내려 했던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13세기 중반 이후에는 새로운 전설이 유포되기도 했다. 5세기에 기독교로 개종한 프랑크 왕국의 왕인 클로비스에게 천사가 하늘에서 백합꽃 문양으로 장식된 방패를 가져다주었다는 내용의 전설이었다. 왕실의 백합꽃 문양이 하늘에서 전해졌다는 이러한 이야기는 성왕 루이의 시성식이 있었던 1297년 무렵을 전후로 해서 더욱 활발히 제작되고 유포되었다.

    한편, 파란색이 왕국을 상징하는 색이 되면서 프랑스 왕은 파란색 옷을 관습처럼 입기 시작했다. 필리프 2세는 파란색 옷을 정기적으로 입기 시작한 최초의 프랑스 왕인데, 그는 1214년 부빈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을 때에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성왕 루이 때에 와서는 파란색 옷이 프랑스 궁전의 유행처럼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14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색의 위계에서 파란색의 지위가 크게 높아지면서 일상생활과 의복에서 파란색이 차지하는 영역도 커졌다.

    프랑스 상징의 기원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이처럼 미셸 파스투로는 파란색과 백합이라는 프랑스의 상징이, 중세의 연대기 작가들이 ‘악마의 돼지’라고 표현한 불결하고 비천한 동물이 일으킨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한다. 이를 위해 그는 근대 이후 거의 모든 역사책들에서 자취를 감춘 이 특별한 사건이 불러온 다양한 정치적 결과들과 성모 마리아 신앙의 융성, 색의 위계 변화, 돼지의 상징성, 문장의 사용 등과 같은 문화적 변동들을 서로 교차시키면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은 오직 미셸 파스투로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문장과 동물, 색이라는 주제를 역사학의 새로운 영역으로 개척해 중세 상징사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학자이다. 그런 그이기에 프랑스 상징의 기원을 ‘악마의 돼지’와 연관시켜 해석하는 이야기를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들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후기에서 이 책의 내용을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구상했다고 밝히고 있다. 삼촌의 서재에 있던 오래된 역사책에서 파리의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던 돼지 때문에 말에서 떨어져 죽은 젊은 왕 필리프에 관한 몇 줄의 글을 읽고는 그 사건에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칠순이 지난 이 학자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50여 년을 자신이 매료되었던 그 사건과 연관된 주제들을 탐구하는 데 바쳐왔다. ‘중세 문장의 기원’이라는 주제로 학위 논문을 취득했고, [염색업자 집의 예수, 중세 서양의 색과 염색(Jesus chez le teinturier. Couleurs et teintures dans l'Occident medieval)](1998), [블루, 색의 역사(Bleu. histoire d'une couleur)](2000), [색, 큰 책자(Couleurs. Le Grand Livre)](2008), [검정, 색의 역사(Noir. Histoire d'une couleur)](2008), [녹색, 색의 역사(Vert. Histoire d'une couleur)](2013) 등의 저술로 색의 역사를 탐구했다. 그리고 [곰, 몰락한 왕의 역사(L'Ours. Histoire d'un roi dechu)](2007), [돼지, 사랑받지 못한 친족의 역사(Le Cochon. Histoire d'un cousin mal aime)](2009) 등의 저술로 동물이라는 주제를 탐구했고, [서양 중세 상징사(Une histoire symbolique du Moyen Age occidental)](2004), [중세의 상징. 동물, 식물, 색, 사물(Symboles du Moyen Age. Animaux, vegetaux, couleurs, objets)](2012) 등의 저술로 상징사의 이론을 체계화했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은 그가 50여 년 동안 진행해온 연구들을 바탕으로 고등학교 시절에 매료되었던 사건에 대한 탐구를 완성시킨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곧 이 책은 상징사라는 영역을 개척하고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거둔 역사학자의 연구가 시작된 출발점이자, 그 평생의 연구 성과가 집약된 결과물인 셈이다.

    목차

    머리말_역사의 전기가 된 사건

    1. 프랑스의 두 왕
    뚱보왕 루이 6세
    왕들의 비만
    예정된 왕 필리프
    왕은 사냥을 해야 한다

    2. 사고
    쉬제르의 증언
    모리니 연대기
    또 다른 증언들
    왕자들의 죽음

    3. 불결한 동물
    더럽혀진 왕조
    성서의 유산, 유대교와 돼지
    인간과 돼지의 친족관계
    인간을 가장 닮은 세 동물
    돼지와 이슬람교
    기독교와 돼지
    더러움과 돼지 같음
    숲에서 도시로

    4. 얼룩지우기
    생드니에서의 장례식
    랭스에서의 대관식
    두 번째 필리프
    불행한 통치의 시작
    루이 7세 십자군에 참가하다
    성모에게 호소하다
    두 명의 열성 신도, 쉬제르와 베르나르

    5. 백합과 파란색
    프랑스의 여왕, 성모 마리아
    마리아의 백합
    천상의 파란색
    문장화의 시작
    왕실 문장의 탄생
    식물의 왕국

    6. 가깝고 먼 울림들
    필리프 왕의 순번은?
    돼지에게 살해된 왕, 그 기나긴 기억
    왕을 살해한 또 다른 돼지
    법정의 돼지
    하늘에서 온 백합
    프랑스의 파란색

    저자 후기
    주요 사건 연표
    주석
    사료와 참고문헌
    도판과 그림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관한 역사라는, 내가 거의 반세기 가까이 매달려온 작업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나는 우선 1131년에 일어 난 사건과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에 관해 밝히고, 그러고 나서 왕을 살해한 돼지에게 역사의 무대 가장 앞에 있던 제자리를 돌려줄 것이 다. 그리고 봉건시대의 순수함과 불순함의 개념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어떤 동물들은 그리스도의 동물이 되고, 어떤 동물들은 악마의 동물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가까운 사촌인 돼지는 불결한 짐승이 된 것일까?
    (/ p.18)

    성모 마리아의 백합은 왕실의 것이 되었고, 천상의 여왕을 위해 마련된 파란색은 궁극적으로 카페왕조의 것이 되었다. 그 뒤 몇 세기가 지나면서 파란색은 더 이상 가문이나 왕조의 것이 아니라, 군주제의 것, 나라의 것, 마지막으로 국민의 것이 되었다. 파란색은 앙시앵레짐에서는 이미 완전히 프랑스의 색이 되어 있었다. 혁명은 파란색의 역할을 강화시켰고,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국제 경기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파란색 셔츠를 입고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왕을 살해한 돼지 때문이다!
    (/ p.19)

    어휘를 다루고 지배했던 것은 분명 성직자들이었다. 그들은 어휘를 이용한 연출과 묘사를 통해서 왕과 군주들을 표현했다. 그런데 묘사된 인물들 가운데에는 교황이나 주교, 교회, 수도원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이들도 있었다. 파문당한 이들도 있었고, 교회의 재산을 탈취한 이들도 있었다. 탐욕스럽고, 폭력적이며, 다툼을 좋아하고, 분쟁을 즐기며, 잔인하고, 배신을 일삼은 이들도 있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표현되었다. 영혼의 악덕은 신체의 기이한 형상과 일치했다. 이미지와 텍스트는 동일한 선상에 있었다. 보통 매우 뚱뚱한 자는 나쁜 인물이었다. 물론 11~12세기 문헌의 삽화에서 뚱뚱한 왕이나 군주는 많지 않았다. 그 숫자는 중세 말기가 되어서야 늘어났다. 그러나 비만으로 그려진 통치자는 언제나 부정적인 인물이었다.
    (/ p.34)

    사냥은 마상창시합과 달리 일종의 여흥이나 스포츠도 아니었다. 대규모 기마전과 군사 원정을 대비해 벌이는 육체 활동도 아니었다. 사냥은 오로지 의례였다. 그것은 힘과 지위의 상징이었으며, 가끔은 통치 행위이기도 했다. 대영주인 왕은 사냥을 해야만 했다. 그는 말을 타고, 자신의 개들과 사람들을 지휘하며, 숲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자신의 숲을 내달리며, 그것이 자기 것임을 알려야 했던 것이다.
    (/ p.48)

    중세의 문헌들은 적혀 있는 그대로 읽어서는 안 된다. 공증인이 작성한 단순한 증서나 목록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문구들이 넘쳐나고, 정확함은 허상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숫자가 수량보다는 특질을 나타내며,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한 경우가 허다하다. 서사 문헌들도 이와 같은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공문서보다 훨씬 심하다. 따라서 글자에 얽매여 정보를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연대기 작가가 어떤 날짜를 말하고, 왕이 붉은 망토를 걸치고 12명의 동료들과 말을 탔다고 서술했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해석이라는 문제를 염두에 둔다면,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는 뜻이다. 12라는 숫자와 붉은색은 현실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지만, 상징이라는 영역에 포함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아야 한다.
    (/ p.58)

    저자소개

    미셸 파스투로(Michel Pastoureau)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47~
    출생지 프랑스 파리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프랑스의 대표적인 중세사 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1947년 파리에서 태어났고 소르본대학과 국립고문서학교에서 공부했다. 1982년에 고등연구실천원 역사, 문헌학분과의 연구책임자로 선출되어 중세 상징사를 강의했다. 그리고 20여년 동안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유럽의 상징사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했다. 최근에는 다양한 학술활동과 사회활동을 하면서 여러 유럽 대학들, 특히 로잔대학과 제네바대학에서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프랑스학사원(금석학, 문학 아카데미)의 객원회원이기도 하다.
    미셸 파스투로의 초기연구들은 문장, 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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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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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서양중세사를 전공했다. [카타르파 교리의 특징과 그 현실적 의미]라는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두산백과사전의 역사・신화 분야 전문 집필자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는 [곰, 몰락한 왕의 역사](미셸 파스투로), [맨더빌여행기](존 맨더빌), [유령의 역사](장클로드 슈미트), [중세 동물지](작가 미상의 중세 필사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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