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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감옥세계에 대해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고발과 증언

미국의 감춰진 또하나의 세계인 감옥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인 소설 《5,896》은 미국이 경찰국가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또한 가장 앞섰다는 미국의 법체계에 대해 질문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며, 감옥에서 살아가는 죄수들의 삶을 통해 미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경찰관으로 지내던 젊은 재미동포는 술집여자와 젊음을 즐기다가 결혼요구를 받고 어처구니 없어하며 술집여자라고 그녀를 철저하게 멸시한다. 화자의 멸시에 분노한 그 여자는 남자를 성폭행범으로 고발하였고, 결국 화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견뎌가며 감옥에서 16년을 보내게 된다. 하루하루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견뎌가며 보낸 과정을 기록한 이 소설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오늘날의 미국 감옥의 현실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현장소설이면서 생생한 체험담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김동하 창작소설집 《5,896》 소개

재미동포 김동하의 장편소설 《5,896》은 미국의 감옥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생활했던 한 수감자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1인칭 화자인 나는 불법체류자 신분에서 영주권자가 되었다가 다시 시민권을 얻어 미국경찰관이 된다. 관광비자로 들어간 미국에서 많은 고생을 한 끝에 대학을 마치고 미국 시민권을 얻어 경찰관까지 된 화자인 나는 술집에 다니는 재미동포 여자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와 자주 만나면서 순간의 즐거움만을 탐닉하던 중 결혼요구를 하는 그 여자에 대해 모욕하고 멸시하는 말을 하자, 한을 품은 그 여자는 화자인 나를 강간폭행범으로 고발한다. 그리고 법정에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그 여자로 인해 나는 배심원들의 유죄 평결을 받고 성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화자인 나는 억울함을 풀기 위하여 항소도 해보지만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까닭에 결국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하지 못하고 감옥에서 16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억울한 성폭행범이 되어 감옥에 가게 된 화자인 감옥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추고 감옥생활을 하게 된다. 이렇게 생존을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화자가 겪는 여러 가지 경험들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동물화된 세계를 보여주는 그 속에는 약육강식의 문제뿐만 아니라 민족과 종족간의 갈등과 대립, 우정과 화해의 모습도 있고, 같은 한국인끼리 동포애를 발휘하는 모습도 있다. 이처럼 미국 사회의 어두운 그늘인 감옥에서 다양한 문화와 특성을 지닌 여러 종족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이 작품에서는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1. 악몽의 구렁텅이에 빠지다

진정 나를 버리십니까? / 8
잘못된 만남과 모함 / 15
멋진 모험의 길 / 24
나의 고등학교 시절 / 34
운명이 된 재판과 몸수색 / 42
소망의 씨앗과 미국 시민권 / 49
경찰 복귀와 아버지의 죽음 / 58
제이콥 변호사의 변호와 공격 / 66
문란했던 내 사생활 / 74
빅키 한의 증언 / 78
유죄 판결과 별세계 / 84

2. 또다른 세상을 만나다

하느님의 손길 / 94
마당과 휴게실(Yard and Dayroom) / 101
면회 그리고 슬픈 이야기들 / 111
제한조치와 방 수색(lockdown and search) / 122
자부심 대결 / 128
일자리와 보람 / 132
치료소 그리고 어이없는 이야기들 / 143
항소, 법원을 다시 가다 / 148
다시 형무소로 / 154
우쏘와 노르텐요의 싸움 / 163
다음 형무소로 이동 / 174

3. 미국 감옥의 속살을 보다

감옥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 / 184
오쏘와 수렌요들의 싸움 / 189
서로 돕는 동양문화와 연애편지 / 195
흑인 대 멕시칸(Black vs Brown) / 205
친구의 배신과 켈리의 우정 / 214
수도회 응모와 응답 / 226
알파숙소(Alpha Dorm)로의 이동 / 235
한인 공동체 / 242
바보와 까마귀 / 246
새로운 친구들 / 257
침대 깔개(Mattress) / 264
한국인과 월남인의 패싸움 / 270
침대 깔개(Mattress) 배달 작전 / 281

4. 자유와 희망의 길을 걷다

에릭의 새로운 출발 / 288
켈리의 편지와 면회 / 296
예상치 못한 위기 / 302
꿈 / 313
자유(Freedom)와 또 다른 족쇄 / 323
숨죽이며 보낸 3년 / 332
힘든 취업의 길 / 337
새로운 출발 / 343

* 삶의 진실에 대한 문학적 탐색 / 김봉진 / 355

진정 나를 버리십니까?





재판을 마치고 이제 모든 것은 배심원들에게 맡겨졌다. 그날은 금요일 오후였고 배심원들의 결정은 빨라도 그 다음 주로 미루어질 것으로 모두 추측했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이 사건이 일어날 때부터 우리 곁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해 온 친구 게리, 우리 셋이 법원을 나왔을 때는 화사한 오후였고 길은 퇴근길의 차량들로 북적 거렸다. 길을 건너 주차장에 세워 놓은 차를 타면서 우리는 동시에 한숨을 쉬고 그 자리에 잠깐 그렇게 말없이 앉아있었다. 지난 3주일 동안 쌓인 긴장은 우리를 아직 짓누르고 있었고 집에 가는 차안에서는 누구도 아무 말 없이 조용했다.
배심원들의 결정을 기다리는 시간은 매 순간이 피가 마르는 듯 했다. 날이 갈수록 그 초조함은 우리 모두의 신경을 칼날같이 날카롭게 했다. 내 변호사와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 그렇지만 검사의 치밀하게 준비한 논거에 배심원들이 지나치게 동요되는 것 같아서 염려가 되었다. 변호사는 그래도 확률적으로 보면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배심원들 사이에서 검사의 구형에 뭔가 동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니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던 금요일 아침이었다. 재판을 마친 지 꼭 일 주일 되는 날에 변호사가 전화를 해서 배심원들이 드디어 판결을 내렸다며 법원으로 바로 나오라고 했다. 어머니와 나는 드디어 올바른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는 순간을 맞이한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법원으로 달렸다. 우리는 차를 세운 뒤에 손을 꼭 잡고 법원으로 바삐 걸어 들어갔다.
재판실로 들어서서 피고인 자리에 앉으니 잠시 후 배심원들이 한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마지막 배심원이 배심원석에 앉자 판사가 배심원장을 향해 물었다.
“판결을 내렸습니까?”
“예.”
“그럼 판결문을 서기에게 건네주십시오.”
배심원장이 대답하면서 판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서기는 자기 책상에서 배심원장 쪽으로 걸어가 판결문을 받아서 판사에게 건네줬다. 서류를 받은 판사는 잠시동안 서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절차들이 왜 이리 긴 것인지 판결을 기다리는 내게는 모든 게 너무 답답하고 지루하기만 했다. 판사가 판결문을 살펴보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 표정에서 뭔가 좀 파악해 보려고 안간힘을 다 써 봤지만 알 수 없었다. 판사의 얼굴은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마침내 판사는 그 서류를 서기에게 되돌려 주면서 거기에 적힌 판결을 발표하라고 지시한 다음, 내 이름을 부르며 일어서라고 했다. 내 변호사와 나는 일어서면서 손을 꽉 잡았다. 서기가 판결문을 읽기 시작하는데 서론이 엄청 길었다. 무슨 죄목에 무슨 법조항이 해당되어서 적용한다면서 줄줄이 읽어 내려가다가 마지막으로 끝에 가서 유죄라며 22년을 구형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었겠지, 설마!’
그러면서도 그때 나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고, 숨통이 막혀 숨을 내쉬거나 들이마시지도 못한 채 현기증이 나서 풀썩 주저앉았다. 의자에 석고상처럼 부동자세로 한참을 앉아 있다가 드디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 변호사를 쳐다보니 나를 바라보는 눈이 영 심상치 않았다. 모든 게 영화 필름을 프레임으로 보는 것처럼 내 주위의 장면들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내 뒤를 보니 객석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는 바닥에 쓰러지셨고, 게리가 어머니를 일으키려고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모든 게 왜 이리 천천히 움직이지? 그러다가 다시 아무 것도 안 들리고 또 모든 장면이 정지된 것 같았다.
그 때 법정 간수 두 명이 내 뒤에 와서 내 팔 한 쪽씩을 잡고 일으킨 뒤에 내 두 팔을 뒷쪽으로 당겨서 두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러자 비로소 나는 정신을 차렸고, 화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수 두 명은 내 뒤에 나란히 서서 수갑을 찬 내 두 손과 내 목덜미를 잡고 나를 법원 안쪽에 있는 사무실로 끌고 들어갔다. 변호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에게 ‘곧 찾아갈게’라는 손짓을 하며 끌려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간수들에게 끌려가면서 어머니를 보려고 아무리 고개를 꺾어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간수 두 명은 서둘러 나를 법원 지하실에 있는 수감자 대기실(holding tank)로 끌고 갔다. 지하실로 가는 길은 법원 바깥을 거쳐가야 했는데, 그날따라 햇빛은 눈부시게 밝았다. 간수들에게 끌려가면서 이렇게 화사한 봄날에 내 인생은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진정 나를 버리십니까?”
억울한 누명을 쓰고, 더구나 검사의 어처구니 없는 논고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게 된 내가 법원 지하실에 있는 수감자 대기실 독방으로 끌려와서 하느님께 원망을 담은 일방적인 하소연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