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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 : 황혜경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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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황혜경의 두번째 시집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 시인은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으로 등단한 당시부터 “2000년대 등장한 젊은 시인들의 단점과 아쉬움을 한 단계 극복하면서 그만의 정수(精髓)”를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으며 독자적인 문법을 구축해왔다. 첫 시집에서 자발적으로 격리된 일인칭시점과 그것을 서서히 흩뜨리는 방식으로 성장과 소통의 기미를 보였던 황혜경은 이번 시집에서 좀더 극적으로 내향적이면서 동시에 외향적인 발화를 드러낸다. 시인 특유의 수동성을 벗어던지기보다는 그것을 위태롭지만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끊임없이 과거를 향해 다가서는 방식으로써 오히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출판사 서평

내면의 침잠으로 발현되는 시어
위태롭게 적극적인 수동성의 세계

황혜경의 두번째 시집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문학과지성사, 2018)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 『느낌 氏가 오고 있다』(문학과지성사, 2013) 이후 5년간 쓰고 고친 63편의 시가 고스란히 담겼다. 시인은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으로 등단한 당시부터 “2000년대 등장한 젊은 시인들의 단점과 아쉬움을 한 단계 극복하면서 그만의 정수(精髓)”를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으며 독자적인 문법을 구축해왔다. 첫 시집에서 자발적으로 격리된 일인칭시점과 그것을 서서히 흩뜨리는 방식으로 성장과 소통의 기미를 보였던 황혜경은 이번 시집에서 좀더 극적으로 내향적이면서 동시에 외향적인 발화를 드러낸다. 시인 특유의 수동성을 벗어던지기보다는 그것을 위태롭지만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끊임없이 과거를 향해 다가서는 방식으로써 오히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미끄러지고 비껴나며 동류를 찾아 나서는 독백

“나는 언제나 늦되는 아이였다”라는 등단 소감처럼 황혜경은 현 시대의 급속한 변화와 미래지향적인 삶보다 늘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보고 그 낱낱의 의미를 헤아리는 데 공들여왔다. 이 과정에서 시인은 현실과 자아의 괴리를 목도하곤 했는데, 이번 시집에서는 바로 그 세상의 냉정한 흐름과 자신이 지닌 고유한 리듬 간의 어긋남을 토로하고 있다.

매미가 울더니 귀뚜라미가 울고
눈이 내리니 또 꽃이 필 것이다
절기는 예감하는 나보다 명확하다
―「어려운 예감」 부분

명징한 사실성의 세계는 황혜경이 끊임없이 실패를 겪는 언어의 세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언어란 그 자체로 실체성을 갖지 못하고 다만 의미를 발생시키는 지시체로서 소통의 한계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황혜경이 마주한 언어의 세계에서 나는 너와 필연적으로 불화를 일으킨다.

거울 앞에서 너는 무슨 생각을 하니? 처음에 나는 나를 생각하다가 너를 생각해 너는? 나는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깃든 너를 바라봐
―「베란다 B」 부분

지금의 너는 나의 상처가 섞인 혼용어로 존재한다고 쓰는 그녀를 훔쳐보았고 그것이 너를 너로 사랑하지 못하는 너의 슬픔이라고 읽었다 나의 슬픔에도 대입해보았고
―「이후의 서술敍述」 부분

시인에게 너의 슬픔은 곧 나의 슬픔이 된다. ‘나의 상처가 섞인 혼용어’인 너에게는 나 역시 ‘너의 상처가 섞인 혼용어’일 뿐이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해독 불가의 언어로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필연적 고립감에 좌절하지 않는다. 황혜경은 “주인인 줄 알고 살았던 나의 생生에/객客으로 초대받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하면서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로부터 체온을 나눠 받”(「버려질 나는 아름답다」)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동류同類의 감정을 더듬어가며 끼리끼리의 우리를” 찾아 나선다. 여기서 동류의 감정이란 마치 “혈맹”처럼 우리를 우리로서 묶어주는 감각일 것이며 내가 너의 손에, 네가 나의 손에 쥐여줄 수 있는 유일한 “definitely”(「끼리끼리」)일 것이다. 그러므로 황혜경의 시들은 언뜻 내부만을 향하는, 소통을 거부하는 독백처럼 보이기 쉽지만 실은 바깥을 향한 열렬한 손짓이며 공존을 향한 고독한 옹호라 할 수 있다.


과거에 깃든 본질을 향해 부단히 다가서는 의지

너의 언어가 나의 언어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너를 바라본다 너의 눈초리와 비슷하게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고

두 눈을 뜨고도 분별하지 못하던 것들이 보이는 때가 오고 있다
눈여겨보려고 한다
―「목도目睹」 부분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라는 제목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집 곳곳에서 화자인 ‘나’는 지나간 삶을 현재로 불러와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려는 태도, 실패를 견디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부단히 읽고 쓰는 존재의 행동 양식을 고수한다. ‘나’의 언어가 ‘너’의 언어와 다르더라도 기어이 본질과 마주하고야 말겠다는 안간힘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 안간힘은 황혜경에게 ‘쓰기’로 환원된다. 쓰는 행위로 물러서듯 나아가며, 수동적이지만 분명하게 활보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이번 시집은 바로 적극적으로 과거가 되는 황혜경의 행보가 무한한 시의 전진에 도달한 결과이다.

추천사

황혜경은 쓴다. ‘쓰다’의 자의식은 아마도 황혜경의 시들을 떠받치는 가장 큰 동력일 것이다. 이러한 자의식을 통해 시인은 나의 삶과 언어를 동일자로 환원시키려는 질서 정연한 언어의 사슬을 헤치고 힘겹게 더듬더듬 시인의 내면에 깃든 개별자의 언어들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시인은 소통이 아닌 독백에, 맥락이 아닌 오차에, 단 하나의 언어가 아닌 모두가 주인공인 나의 몸들, 그 불완전하고 가변적인 언어들 위에 위태롭게 서 있으려 한다.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씌어지고 씌어지고 또 씌어진 언어들이 인간의 삶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 아마도 황혜경의 시들은 이러한 자각을 전경화하는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는 듯하다.

목차

시인의 말

I Shining과 dark 사이에
따로 만든 응접실 /동사動詞를 그리라고 하는 이웃집 아이 /생각보다 큰 토끼 /수월한 창백 /Shining과 dark 사이에 /에계 /기氣가 죽은 아이 /곧 사라질 서랍 /어려운 예감 /싫 /도트Dot /빗속의 사람 /H의 불안 /나의 철제 책상에 앉은 것은 누구인가 /팽팽한 공포 /거울 /핵심 /미로 8

II 맹盟
서로 /맴돈다 /상극相剋 /끼리끼리 /말단末端 /소녀를 버리는 효과적 소년 /맹盟 /베란다 B /목도目睹 /두루두루 /누군가 /다음의 바탕 /깨끗한 총각 /다루어지는 수태受胎

III 구구함과 연연함을 이기려는 두번째 욕조
갱생更生 /제라늄처럼 /버려질 나는 아름답다 /기원祈願의 형태 /주장하는 사람보다는 /돌보는 부류 /배경음악 /궤도軌道 /의지의 광경 /구구함과 연연함을 이기려는 두번째 욕조 /Born again /그 나무의 형용사 /지워지는 인칭 /명징明澄 /휴지休止와 하다 /A2 블록에서는 /꽃과 춤

IV 지금 블라인드
되새김 /읍소泣訴 /반성 /파산破産 /배제하다 /이해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다 /혐의 /비켜서다 /이후의 서술敍述 /검은 외투를 하나 갖는 일 /말 못 할 겹겹의 흉부에 대해 말을 하려 할 때 /지금 블라인드 /예령豫鈴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

해설
쓰다, 또는 망각 이후에 오는 언어?박혜경

본문중에서

오늘이 어제에게 내일이 오늘에게 물어보거나
내일이 내게 말하지 너를 기억하지 않겠어, 그래, 나를 지워줘
어제가 오늘에게 오늘이 내일에게 귀띔해주어도
언제나 다음에는 누가 죽지
여백보다 넓어지는 바탕, 전체가 되어가는 여백
―「다음의 바탕」 부분

기다렸으나 못 보고 안 태우고 가면 어쩌지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막차를 혼자 기다려본 밤처럼
그냥 지나치면 어쩌니 나는 여기 있는데
지나갈 어떤 날은 오늘의 비극보다 가혹할 것이고
사는 동안 출생의 의혹을 다 풀지는 못하겠지
몰라도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
―「기원祈願의 형태」 부분

나는 설탕을 한 스푼 뜨다가 흘릴 때를 좋아하게 되었다 멀리서 한 무리가 오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개미들보다 먼저 걷기 시작하므로 나를 향해 달려오는 민첩한 발들이 있다고 믿으면서 기다리다가 줄지어 오는 발들이 도착하면 따뜻한 털신을 신겨야지 먹여야지
―「돌보는 부류」 부분

■ 뒤표지 글

“다음에 이다음에” 이 말이 계속 막연해지는 것이다.
향해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산 사람을 생각한다.
먼저 운 사람을 사랑한다.
먼저 간 이름을 불러본다.

어떤 시간이 완전한 과거가 되는 때는 언제인가. 가면 온다. 오면 간다. 나의 오늘은 죽은 시인들을 적어보는 반복의 날들 같구나. 이제라도 내가 살아보고 싶은데 여전히 시가 나를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다음에 이다음에” 그다음 말을 시작하려 한다.
“어떻게 어떻게든”
향할 것이다.

-

“아까 죽인 소녀를 잊고 싶은데 자꾸 생각나요.”
“잊으면 안 돼. 그 소녀를 잊으면 안 돼. 네가 빼앗은 생명을 잊지 마.”
[영화 「The Rover」(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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