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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숙이란 작가에게 대한민국문학상 대상을 안겨주고 한국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한 <만남>은 다산 정약용과 그의 조카 정하상을 두 축으로 초창기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와 박해 사건을 그리고 있다. 일찍 천주교에 입교하고 서양 문물을 적극 수용하는 혁신적인 인물이었으나, 국법 앞에서 배교하고 목숨을 건진 정약용. 그러나 그의 형 정약종과 조카 정하상은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기꺼이 순교한다.
　
작가는 유교와 가톨릭,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복잡하게 얽힌 역사적 만남 속에서 인간적인 약점과 모순, 역사적 대의와 종교적 진리, 개인적 욕망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극명하게 그려내면서도, 종래에는 이 모든 것을 이해와 관용의 인간애로 승화시킨다. 미국과 프랑스, 폴란드 등에서 주목한, 역사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

미국과 프랑스, 폴란드 등 전세계가 주목한 한국문학상작
한무숙의 《만남》은 대한민국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1986) 일찍부터 미국과 프랑스, 폴란드 등에 번역, 출간되며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아시아, 북아메리카, 서유럽과 동유럽의 전혀 다른 문화권이 한목소리로 격찬하고 앞다퉈 소개하게 만든 이 작품의 힘,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질적인 세계간의 만남과 충돌, 인물들의 갈등을 따뜻한 인간애로 승화시킨 ‘가장 인간적인’작품
《만남》은 다산 정약용과 그의 조카 정하상을 두 축으로 초창기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와 박해 사건을 그리고 있다. 그 속에서 전혀 이질적인 두 개의 세계 - 동양과 서양, 유교와 가톨릭,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 가 씨줄과 날줄같이 얽혀들면서 발생하는 문화적 충돌과 혼란, 그리고 종국에는 화해와 하나됨이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위인과 범인(凡人)을 막론하고 인간이기에 누구나 갖게 되는 존재론적 문제 - 역사적 대의와 종교적 진리, 개인적 욕망 사이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그 속에서 보여지는 인간적인 약점과 모순을 이해와 관용으로 감싸는 작가의 시선은‘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근대 역사와 실제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생생하게 파헤친 역사소설의 백미
작가 한무숙은 소설 속에 역사를 되살려 놓았다. 그는‘역사소설은 역사적 단계로서 그 당대를 충실히 그려야 한다’는 당위성에 걸맞게 격동의 근대사를 박진감 있으면서 격식 있게 충실히 그려냈다. 이는 작가 자신이 한국 근대사회 전통의 삶을 돈독히 체득한 자산을 가지고 있으며, 천주교를 통한 구도의 경지에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만남》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조선이라는 특정 시간과 공간, 역사적 배경 및 인물들을 그리고 있지만, 동서고금이 한결같이 관심 갖고 자문해온 문제들 - 수많은 형태의 만남으로 짜여진 인간의 삶과 그 의미,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 등 -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어, 끊임없는 변화와 적응,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우리 시대에도 의미 있는 작품으로 다가갈 것이다.

머리말 고결한 영혼과의 만남
　
복음의 씨
회포
북경행
뜨거운 포옹
만남
　
내가 아는 한무숙 선생님 - 김후란
연보
참고문헌

정약용은 높은 이상과 해박한 지식,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일찍이 천주교에 입교하고 서양 문물을 적극 수용한 혁신적 인물이었으나 국법 앞에서 배교하고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정약용은 유교의 역학에 대해 “다만 음양의 원리를 따지는 수리 논리가 아니라 상제로부터 오는 천명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유교의 천명사상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국법이 추중하니까 그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배교를 한 셈이었다. 이 경우 그의 변절을 굳이 변호하거나 합리화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도 한 인간으로서의 약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작가 한무숙은 오히려 다산의 이와 같은 약함과 흠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긍정하고 포용한다. 다만 다산은 무모하게 살아남기에만 급급했다기보다 학문과 삶에 대한 보다 큰 의욕과 동경도 가졌을 수 있다.

반면 조선 천주교의 주춧돌을 놓은 그의 형 정약종과 조카 정하상은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기꺼이 순교한다. 특히 정하상은 여러 차례 어렵사리 북경을 찾아가 남천주당의 리베이로 신부를 만난다. 천주교 박해로 곤란에 처한 조선 교회의 자생을 위해 성직자를 보내 달라는 간절한 청을 건넨다. 주교와 로마 교황에게 보내는 같은 요청의 편지도 전한다. 그는 강진에 유배되어 있는 숙부 다산에게도 오가고, 멀리 함경도 무산에 유배된 학자 유스띠노, 조동섬을 찾아가 글도 배운다. 그는 이질적인 문화와 사상, 사람들과 가장 적극적으로 교제하고 화합을 이끌어 감으로써 비록 짧지만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살다갔다.

약한 인간의 변심과 용서를 보여주는 인물로는 권진사와 그의 종 승낙종을 들 수 있다. 장가도 못 든 이 사내종은 논산에 살던 권진사의 아내와 어린 딸들이 포졸들의 습격을 받아 피할 때 배신하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지만, 다른 죄업으로 병신이 되어 공주 감영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 갇혀 있던 권진사는 원수인 종 낙종을 오히려 사랑으로 용서하고 손수 신을 삼아 판 돈을 들여와 낙종의 연명을 돕는다.

그 외에도 거지가 되어 헤어졌던 권진사의 어린 세 딸들이 재회하는 장면은 운명의 신비와 함께 진한 가족애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