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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살았다 : 류머티즘과 함께한 40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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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오창희
  • 출판사 : 북드라망
  • 발행 : 2018년 02월 16일
  • 쪽수 : 29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86851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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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류머티즘은 여전히 싫다!” 하지만 이놈 덕분에 (제대로) 살아보게 되었다!

스물한 살, 룸메이트였던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류머티즘. 몇 년간 일어서지도 못하고 누워 지내며 온 가족이 함께 명약과 명의를 찾아다녔지만, 효험은 없었다. 결국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고, 이후로도 관절의 변형과 통증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하지만 수술을 계기로, 발병 초기 십 년간 류머티즘을 물리쳐야 할 ‘적’으로 삼았던 데서 벗어나 병과 함께 살 궁리에 나서게 되었고, 그 궁리는 또 다른 삶을 펼쳐 보여 주었다. “산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 안의 생명력을 북돋워 가는 여정”이고, 그것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류머티즘’과의 동행을 통해 얻게 된 것.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아파서 살았노라고. 공부와 책읽기를 손에서 놓지 않은 저자의 타고난 명랑함과 지성, 그리고 가늠할 길 없는 어머님의 사랑이 엮어 낸 특별한 류머티즘 동행기가 펼쳐진다.

출판사 서평

[아파서 살았다] 지은이 인터뷰

1. 이 책 [아파서 살았다]는 오창희 선생님의 글과 삶으로는 처음으로 독자들을 만나는 책입니다. 이 책을 쓰게 되신 계기와 함께 독자들에게 선생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도 제 삶을 책으로 쓰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간혹 일기장을 정리해서 책으로 내 보라고 하는 친구가 있긴 했어요. 그런데 아픈 시절 배설하듯 써 놓은 일기가 사람들 앞에 내 놓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 내 몸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감이당에 와서 ‘마음세미나’라는 프로그램에 등록을 하고 그해 봄, 첫 에세이를 발표했습니다. 그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그게 이 책의 시작이 되었어요.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에서는 연말이면 그해 공부한 내용을 나누는 학술제를 엽니다. 고미숙 선생님이 그 에세이를 보고 저의 이력을 정리해서 학술제 때 발표해 보라고 하셨어요. A4 넉 장 정도 되던 에세이를 A4 15장 정도로 구체화해서 발표를 했어요. 그리고 이듬해인 2013년에 그 글을 다시 북드라망 출판사 홈페이지에 4회에 걸쳐 연재를 했고요.
지금 돌아보면 선생님은 제가 아프면서 터득한 소소한 깨달음 같은 것들을 세상 속으로 순환시키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감이당에서는 자기 삶을 글로 써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야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되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섞이면서 함께 성장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 이후 선생님이 책을 써보라고 했고, 저도 이 기회에 한 번 지난 시간들을 정리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북드라망에서 출판 제안을 했고, 2017년 3월부터 한 꼭지씩 감이당 홈피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그게 이렇게 책이 된 겁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딱히 책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고 시작한 게 아니라 이런저런 기회에 제 삶을 써서 발표하다 보니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여기까지 온 거죠.
저는 사실 책 읽고 공부하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걸 더 좋아했어요. 운동도 좋아했고요. 물론 학교에서 내 주는 숙제라든가 시험공부까지 안 하면서 논 건 아니지만, 그건 꼭 해야 하는 정도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친구들과 함께 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전학을 여러 곳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사귄 친구들이 두셋은 있어요. 그 친구들이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아픈 동안 그 친구들이 많이 힘이 됐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는 오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이나 형제, 친척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어요. 덕분에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깊은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류머티즘을 만나고 나서 인생이 달라졌죠. 천성적으로 명랑한 성격이다 보니 아픈 이후에도 우울증을 겪거나 하진 않았지만 일상 자체를 꾸릴 수 없는 상황이 닥치니 참 난감했어요.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오래도록 지속되다 보니, 어려움을 헤쳐 나오면서 철도 좀 든 것 같고,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사는 삶이 즐겁습니다.

2. 선생님의 이력만큼이나 책 제목이 특이한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아파서 ‘살았다’기보다는 아파서 ‘망했다’고 생각하니까요. 이 책의 제목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대체가 담겨 있을 텐데요.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왜 ‘아파서 살았다’인지 말씀해 주세요.
사실 안 아파도 살긴 하죠. 아니,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아픈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처음 아플 때는 어쨌든 병과 싸워서 물리칠 생각을 했고, 그게 뜻대로 안 되니 좌절도 하고 슬럼프에도 빠지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살 수만은 없으니까, 저도 모르게 아픈 채로 살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여기저기 변형된 관절과 인공관절인 몸으로 건강하게 사는 길은 뭘까를 고민하게 됐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산다는 게 뭘까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최근 들어서는 산다는 건, 그냥 삼시 세 끼 밥 먹고 적당하게 인간관계 맺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게 아닌, 다른 무언가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다고 해서 그것이 일상과 동떨어진 어떤 거창한 이념이나 사상 같은 걸 말하는 건 아닙니다. 늘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관찰하고 탐구할 때 그 기준이 되는 방향성 같은 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몸에 대해, 인간에 대해,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서 탐구하면서, 이런 것들을 우주 자연의 이치 안에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 아프기 전에는 내가 누구인지 알 생각도 못했고 그럴 필요성도 별로 못 느꼈어요. 그러니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 수 없었죠. 설사 문제를 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회피하죠. 직면하기가 힘드니까요. 사실 그걸 어떻게 만나야 할지도 잘 모르고요. 그런 걸 배운 적도 없고 그게 중요하다는 걸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병을 앓게 되면 그걸 외면하기가 어렵죠. 특히 저처럼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그것도 일이년에 나을 병이 아니라 평생 가져갈 병을 앓게 되면 도리 없이 그 문제를 직면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점에서 어쩌면 이 병을 앓게 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제가 류머티즘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이게 싫죠. 통증을 유발하고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니까요. 그렇지만 세상에 좋기만 한 것도 없지만 나쁘기만 한 것도 없잖아요.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저는 사실 명랑한 성격에 별 어려움 없이 자랐고 그러다 보니 깊이 고민할 문제도 없었고 산다는 게 뭘까 이런 걸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류머티즘 덕분에(?) 그나마 내 몸에, 내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안 그러면 철없이 살다가 죽음에 임박해서야 이게 아닌데...하는 돌이킬 수 없는 회한에 빠질 뻔했는데, 천만다행으로 병이 그런 불행을 막아줬어요. 그러니 아파서 살았다고 할 수 있죠.

3. 이 책에 보면 본격적으로 류머티즘이 발병하고도 꾸준히 일기를 써 오셨는데, 이유가 있나요? 또 일기-글쓰기가 선생님의 병과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궁금합니다.
류머티즘이 발병하고도 꾸준히 쓴 게 아니라 류머티즘이 발병하고 나서야 일기를 썼어요. 글쎄요, 이유는 딱히 없는 것 같은데요…. 내 투병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든가 그런 생각을 한 건 절대 아니고, 안 쓰고는 살 수 없어서 쓴 거죠. 이게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 또한 살기 위해서 써야 되겠다는 자각을 하고 쓴 게 아니라, 숨을 쉬듯 밥을 먹듯 배설을 하듯 그런 생리 현상처럼 저절로 쓰게 됐어요.
그 당시 온갖 감정들이 들끓었어요.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쓴 적도 있고, 어느 날엔 일기장을 펼치기는 했는데 도저히 글로 정리가 안 될 만큼 감정이 격해서 그냥 볼펜으로 공책을 찢어버린 적도 있어요. 그런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대상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자기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이야기를 하는 데는 일기장보다 더 좋은 상대가 없어요. 처음 일기를 시작할 때는 복잡한 감정이 두서없이 격하게 나오다가 차츰 써내려가다가 보면 감정의 출렁임이 보이고 그러면서 마음이 가라앉아요. 좀 너그러워지죠.^^ 글은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지나고 보니까 아픈 동안 일기를 쓴 것이 감정을 배설하게 해 주었더라고요. 자칫 뭉치거나 쌓여서 저와 주변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감정들을 풀어주는 일종의 치료제라고 할까요, 무슨 말이든 들어주는 친구라고 할까요, 뭐 그런 역할을 했어요.
한편 심심할 때면 일기장을 들춰보곤 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그 동안 쓴 일기를 주욱 읽다 보면 당시 내가 어떤 감정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지, 어떤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는지가 보여요. 그래서 조금은 객관적으로 나를 보면서 그런 내 상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게 돼요. 다음은 그런 생각을 했던 날의 일기 중 한 대목입니다.

“오늘 낮에는 문득 내가 이 상태로 영원히 낫지 않는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 행동이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면, 이런 치료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이렇게 치료만을 일과로 나의 젊음을 보내버릴 수가 있나? 처음 아팠을 때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 이런 상태로 있으리라고 털끝만치라도 생각했더라면 나의 일과에 좀더 다른 생활을 병행하지 않았을까? 무언가 창조적이며 나의 존재에,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지금부터 또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계속될지도…. 이 시각부터 또 10년이 지난 후 오늘과 같은 회의를 느끼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1987. 1. 22. 목. 맑음)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당시 들끓던 감정들을 어디에 어떤 식으로 표출했을까 싶어요.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일기가 일상을 꼼꼼하게 기록해 놓은 자료가 되면서 이번에 책을 쓸 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책 곳곳에 인용도 했고요. 또 독서지도 수업을 할 당시, 아이들과 현대사 책을 읽으며 일기장에 적어 놓은 당시 사건 관련 제 생각들을 읽어주곤 했는데, 아이들이 무척 신기해하고 재밌어 하더라고요. 이런 것들은 전혀 뜻하지 않은 소득이죠. 그리고 일기장 곳곳에 지금에는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과 사건들이 매우 중요하게 등장을 하고 있어요. 그런 걸 보면서 아, 지금의 내가 참 많은 사건을 겪으며, 사람들과 기운을 주고받으며,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서 그 모든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일기를 쓰거나 삶을 기록하는 다양한 글쓰기들이 자신을 탐구하는 데에, 또 살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합니다.

4. 2012년부터 <감이당>에서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했는데요. 어떻게 <감이당>에서 공부를 하게 되셨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또 어떤 공부를 하셨고, 공부를 하시고 나서 어떤 점이 달라지셨는지도 말씀해 주세요.
20년간의 병상 생활을 접고 마흔 가까이 돼서 일을 시작했고, 돈도 벌고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 무렵 수유너머라는 인문학 공동체를 알게 됐고 그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땐 직접 갈 인연은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꾸준히 관심만 가지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마흔 후반에 독서지도 전문가가 돼 보겠다며 대학원에 진학했고, 논문 학기를 앞둔 시점에 다리가 부러져 다시 2년간 걷질 못했어요. 그리고 그때 미국발 경제위기가 닥쳤죠. 그러면서 갑자기 노후가 불안했어요. 얼마의 돈이 있어야 노후가 안정될까를 고민하다가 돈이 그걸 보장해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제는 정말 더 미루지 말고 내가 스스로 나를 관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 지금까지 내가 해 온 공부는 이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때 다시 수유너머가 생각났어요.
인터넷으로 수유너머를 검색을 하다가 감이당이라는 곳을 알게 됐고, 그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인문학과 의학 역학이었고 공부의 핵심은 자신을 탐구하는 거였어요. 제가 가지고 있던 당시의 문제의식과 맞아떨어졌죠. 게다가 [동의보감]을 함께 읽고 공부한다니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내 몸을 탐구하기 위해서 감이당에 오긴 했지만, 그 몸 탐구라는 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후 준비 차원이었어요. 병원비가 생활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그걸 어떻게 줄여볼 요량이었던 거죠. 그런데 동서양의 고전을 읽으면서, 몸 탐구와 삶의 탐구가 별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것은 어떤 삶의 비전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가 하는 것과 직결된 문제였고요. 그러니까 류머티즘을 어떻게 관리하면서 살아갈까 하는 문제는 병의 치료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러면서 류머티즘이라는 걸 다른 시각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 후 엑스레이상으로 관절 상태가 나아진 건 아닌데 불안감이나 심리적 위축감이 많이 해소가 됐고, 실제로 활동 범위도 넓어졌고 활동할 때 관절도 많이 편해졌어요.
그러면서 병원에만 의존하던 제 태도가 많이 바뀌었죠. 물론 현대의학이 제게 준 것들이 많아요. 인공관절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렇게 걸을 수가 없었을 테고, 주치의들의 처방대로 약을 먹으면서 일도 하고 경제적인 자립도 할 수 있었으니까 현대의학의 덕을 많이 본 거죠. 그러나 그것이 평생 지속되는 질병일 경우에는 자기 스스로 자기 몸을 알고 관리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이당에서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고요. 물론 지금도 여전히 병원에 다니면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합니다. 다만 현재 약을 안 먹고 있을 뿐이지요. 그렇다고 약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안 먹을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습니다. 다만 이제는 나도 내 몸을 치료하는 데 참여하고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물론 그 분야의 전문가인 의사 선생님들의 판단도 존중해야 하겠지만, 또 어떤 면에서 자기 몸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자신일 수 있으니까 내 몸이 보내는 메시지와 그에 따른 내 판단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마지막으로, 이 책을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지와 그 독자분들께 해주고 싶으신 말씀을 들려주세요.
그 말씀을 드리기 전에 제가 아픈 이후 어떤 마음으로 어떤 책을 읽었는지부터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처음 아플 때는 통증도 심했고 갑작스런 상황에 적응하느라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병이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자 나름대로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류머티즘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수기들을 읽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는 나와 조금만 상황이나 조건이 다르면 이 사람은 이랬으니까 저렇게 할 수 있었던 거야, 라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참 근시안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그런 태도를 가졌던 건 한시라도 빨리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조바심 때문이었던 같습니다. 그러나 나와 똑같은 조건과 병의 상태인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그런데 그때는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병증이 비슷하고 그런 조건에서 병을 이겨낸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니 그 어떤 책도 크게 도움이 되었을 리가 없죠. 그런 병을 앓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고, 그러니 그런 투병과정을 기록한 책도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내 몸의 생리적인 리듬, 사람살이의 이치, 이 우주 자연의 이치 등등을 깨침으로써 내가 가진 병에 대한 고정관념,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한계 등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결국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라는 걸 몰랐어요. 위인전을 읽고 세상에는 추구해야 할 다양한 가치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내 병이 가볍게 보이는 효과가 있긴 했지만 오래 지속되진 못했습니다. 통증이 심해지면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말더라고요.
아마도 이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 중에도 제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딱 맞는 해법을 줄 수 있는, 지금 겪는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묘책을 적어 놓은 책을 찾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 병이 어떻게 해야 나을까 하는 걸 고민하고 탐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질병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특히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병을 앓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그런 생각의 변화가 질병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병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병은 재앙이 아니라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럴 때 실제로 병도 가벼워지고 통증도 줄어들더라고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서도 참 진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것이 제가 경험한 바이니 이렇게밖에는 달리 말을 할 수가 없네요. 아마 저도 예전에 이런 말을 하는 책들을 분명히 읽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땐 내 관심이 거기에 있지 않았기에 마음에 와 닿지 않았겠죠. 그래서 오랜 세월 돌고 돌아서야 류머티즘이라는 병을 통해 결국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그렇게 보면 류머티즘은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저를 이끌어준 화두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나름의 ‘지병’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건 질병일 수도 있고 다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지병’ 자체도 변화하고 내 삶도 변화한다는 걸 저는 믿습니다. 이 점을 독자들께 말씀드리고 싶고, 이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생각이나 경험담도 듣고 싶습니다.

목차

머리말_떼어 버릴 수도, 반길 수도, 없는!

프롤로그 _ 필요한 건 ‘명약’이 아니라 ‘해석’
내 사주의 특징 │류머티즘과 내게 찍힌 바코드 │대운과 류머티즘

1부 투병(1977~1986)
1. 류머티즘을 만나다
룸메이트, 할머니가 돌아가시다 │드디어 병명을 얻다 │삐뚤빼뚤 쌓아 올린 블럭 │‘명약’은 어디에?
2. 다시 병원으로
‘용한’ 의사 │두 다리에 추를 매달고 │“누구 맘대로 불쌍하다고 해?” │마지막 룸메이트 │병원에서도 그 나름의 일상이 │서서 보는 세상에는
3. 아픈 건 아픈 거고 청춘은 청춘이다
내친 김에 실컷 울자 │몰래 한 가출 │이상한 담판 │불안이 폭발하다 │일상은 힘이 세다
4. 그래도 나는 사는 게 좋다
“니하고 내하고 같이 죽자” │책 읽기 │일기 쓰기 │추억, 자연, 그리고…

2부 동행(1987~1996)
5. 인공관절 수술
‘희망’의 민낯 │병과 ‘함께’
6. 좌충우돌 자연요법
단 한 알의 약도 │고향집에서 │단식 & 알밤 소동
7. 활원운동과 하느님의 목소리
손가락 변형 │‘활원운동’을 만나다 │어, 목이 저절로 돌아가네! │하느님과 대화하다
8. 세상 속으로
“내 뭐하꼬?” │독서지도 워밍업 │드디어 독립

3부 자립(1997~2006)
9. 계산서엔 없는 것
“처음으로 한 개 사람으로 된 것 같은” │초짜 선생
10. ‘수양산 그늘’
‘칠갑산’을 부르며 │아버지의 부재
11. ‘인간적 성숙’
사중 추돌 사고│‘이게 아닌데…’

4부 내 몸의 주인 되기(2007~2015)
12. 30년 만의 자각
대퇴부 복합골절 │한가로운 시간 │내 몸을 내가 모른다
13.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때때로 찾아오는 유혹 │입장이 바뀌니 명료해지는 것 │불청객들
14. 새롭게 보이는 몸과 세상
‘앎의 코뮌’, 감이당으로 │왕초보자의 몸 탐구 │경험에서 지성으로 │“그게 오른 공부다”
15. 초보 학인의 어설픈 공부
[면역혁명]을 읽고│[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읽고
16. “찬란한 슬픔의 봄”
“향기로운 가을 길을 타~고 갑니다” │‘조숙영’이 아니라 ‘97세 뇌출혈 환자’ │“소롯이 가게 해도고” │“다시 애기가 됐네” │을미년의 봄
17. [에티카]가 들려준 복음
후회의 진창에 빠져 │필연성을 인식하는 자만이 │마지막 생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18. 소멸에 대하여
영정 사진 속 어머니 │관이 광중에 닿던 순간 │사랑 앞마루에 앉아
19. 어머니, ‘살아 있는 텍스트’
“신외무물이다!”│어머니의 시조 외기 │“엄마의 광복절”│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5부 길 위에서(2015~ )
20. 뜻밖의 뉴욕행
40년간의 ‘습’을 끊다 │내게 이런 용기가? │Queens 워밍업과 센트럴파크 신고식 │주민과 관광객을 오가며
21. 월든 호수 탐방과 맨해튼 가이드
소로를 만나러 │비 내리는 월든 호수 │맨해튼 가이드 │가이드를 마치며
22. 뉴욕에서 만난 나
세 시간의 산책 │일상 속의 내 모습
23. 뉴욕 그 이후
북한산 산행 │탁구 대회
24. 두번째 뉴욕행
또 다른 설렘을 안고 │공부로 만난 친구│대가족생활의 즐거움

에필로그 _ 낯선 리듬 속으로
관성 워밍업 │류머티즘과 사주팔자 │“손가락 다 펴서 뭘 하려고요?” │뉴욕은 뉴욕이고 지중해는 지중해

본문중에서

“처음 류머티즘을 앓기 시작하고 전투 모드로 살았던 십 년간 내 욕망에 맞춤형으로 등장한 귀신은 ‘명약’이었다. 내 몸을 아프기 이전 상태로 온전하게 회복시켜 줄 명약. 어떤 치료를 해야, 어떤 약을 먹어야,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나을 수 있을까에 매달렸다. 다른 삶은 병이 나은 이후에나 생각해 볼 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골몰하는 동안 시나브로 내 삶이 증발해 버렸다. 이걸 알아차린 건, 두 무릎을 인공관절로 갈아 끼운 뒤였다. 그때서야 ‘명약’으로 포장한 ‘희망’이라는 귀신의 맨얼굴을 보았다. 그러면서 질문이 쏟아졌다. ‘꼭 나아야 되나?’, ‘이대로 살면 안 되나?’, ‘건강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있나?’ 등등. 그 이후 병과 함께 살기로 했고, 그러면서 “뭐하꼬?”(무엇을 하며 살까)로 방향 전환이 일어났다.”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글도 쓰고 학인들과 부대끼며 깨달은 건, 산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 안의 생명력을 북돋워 가는 여정이라는 것, 그건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내게 이런 깨우침을 준 데에는 류머티즘의 공이 크다는 것 등이었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만 5년이 지난 지금 난 ‘아파서 살았다’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내 류머티즘 동행기의 제목으로 삼고, 여기에 ‘아프면서 살았다’에서 ‘아파서 살았다’에 이르기까지 40년의 여정을 담았다.”
('지은이의 말' 중에서)

‘병은 한 가지, 약은 열두 가지’라는 말이 있다. 양방에서 한방으로, 한방에서 민간요법으로, 기도에 굿까지. ‘명약’은 끝이 없었다. 차라리 약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신이 있어서 “넌 이제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다. 그러니 낫겠다는 희망은 버려라”라는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선택의 괴로움이 그만큼 컸다. 새 처방으로 바꾸자니 먹던 약을 조금 더 먹어 보면 효험이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하던 처방을 더 지속하자니 안 될 놈을 붙들고 씨름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이런 것들이 고통을 가중시켰다. 살면서 그때처럼 선택의 어려움을 절감했던 적이 없다. 선택 앞에 괴로워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고 그렇게 치료에 매달린 지 2년이 좀 지난 1981년 가을이었다. 추석을 쇠러 온 큰오빠와 올케가 경기도 광주에 ‘용한’ 의사가 있다며 서울로 가자고 했다.
('2. 다시 병원으로' 중에서)

그해 봄, 며칠간 봄비가 제법 내린 어느 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동촌 거랑에 큰물 나가드라. 거기 니하고 내하고 가서 빠져 죽자. 니 혼자 죽으라 카면 죄 많고 내하고 같이 죽자. 이래 고생시리 사니 죽는 게 안 나을라(낫겠나).”
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답했다.
“죽고 싶으면 엄마나 가서 죽어라. 나는 이래도 사는 게 좋다.”
한참 뒤, 어머니가 그러셨다. “그때 니 혼자 집에 두고 다니는 게 영 불안했다”고. 어머니는 그 시절 여기저기 약을 구하러 다니거나 볼일을 보러 다니느라 집을 비울 때, 혹시라도 내가 나쁜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그게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 속을 떠보려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였는데, 내가 어머니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그 이후로는 안심하고 다니셨단다.
('4. 그래도 나는 사는 게 좋다' 중에서)

이 사건으로 인해 그렇게 충천했던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런 정도의 충격에도 견디지 못할 몸이라니. 살다 보면 이런 사고가 다시는 없으리라 어떻게 장담하나? 이보다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그땐 어쩌지?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아 두어야 불안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5억? 10억? 과연 많은 돈을 가지면 불안하지 않을까? 돈이 편안한 미래를 보장해 줄까? 처음 독립을 할 때, 매월 50만 원만 벌면 족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그때 그 액수보다 더 많이 벌고 있는데도 왜 불안하지?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벌면, 그땐 또 불안감 해소에 필요한 돈의 액수가 더 커지는 게 아닐까? 결국 경제력이 이 불안감을 씻어 주지는 못하는 것 아닐까? 그럼 어떻게 해야 불안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11. ‘인간적 성숙’' 중에서)

류머티즘은 그 병세가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아침에는 이런 상태였다가 저녁에는 또 달라지고, 금방 꼼짝도 할 수 없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리기도 하고, 여기서는 이랬다가 저기서는 또 다른 몸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컨디션이 좋으면 좋은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그 상태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지만 물건을 자꾸 놓치거나 병뚜껑이 안 열리거나 책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게 힘들거나 할 때면, 순간적으로 짜증이 올라오고 불안이 스친다. 그럴 때면 손가락이 다 펴졌으면, 팔꿈치가 잘 굽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럴 때 퍼뜩 떠오르는 말이 있다.
('에필로그 낯선 리듬 속으로'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8 ~
출생지 경북 영양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58년 경상북도 영양에서 태어났다. 네 살 되던 해부터 아버지를 따라 경북 오지를 두루 다니며 산과 들에서 맘껏 뛰놀았다. 대학 2학년인 스물한 살 봄, 류머티즘을 만났다. 누군가 먹고 나았다거나 조금이라도 효험이 있다는 건 다 먹으면서 십 년 동안 병과 싸웠다.
서른한 살, 결국 양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 그때부터 병과 함께 살기로 마음먹고, 걸음마를 하면서 뭘 하며 살까를 고민했다. 서른아홉에 독립을 하고 독서지도라사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갔다. 돈도 벌고 공부도 하며 사십대를 보내다가 마흔여덟 살에 독서지도 전문가가 되겠다며 대학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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