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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동 시인의 신작 시집.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1987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월간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연동 시인의 신작 시조집.

생활세계를 이끄는 심도 있는 통찰로 아프고 쓸쓸한 길을 지나온 김연동 시인이 견딤과 인고의 시간 속에서 낳은 70편의 작품을 상재했다. 시집 『낙관』은 그동안의 세계를 온몸 그대로 새기는 방식이자, 동시에 시조가 영혼을 추스르는 동안 갖게 된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개인의 정서와 일상 저변의 소재를 넘어서, 국가의 무능력함을 관통하는 현실에 대한 목소리도 담아내고 있다. 시조로 쏘아올린 활이 한 번도 명중한 적 없던 곳으로 나아가는 모양새다.

시조는 시인이 눈동자 속에서 밝힌 촛불처럼, 많은 염원을 담아 심지를 태웠을 것이다. “한 자루 서슬 푸른 보검을 갖고 싶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심검”은 더 많은 것을 향해 날을 뻗고, 더 깊은 것을 향해 꽂힐 것이다. 외로운 싸움 속에서 피어나나 이 무궁무진한 시편들이 내일을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용기가 되며, 동시에 현실에 지친 이들의 손에 “심검”을 쥐어주는 일이 될 것이다.

시인의 말

제1부
앉은뱅이꽃 13 늪과 바람 14 은빛 와온 15 우륵 16 시든 꽃 17 아우슈비츠18 서설(瑞雪) 19 삶의 속장 20 두나강 21 악의 도시 22 이름 23 한 장 경전(經典) 24 염전 26

제2부
바람꽃 언덕 29 천년의 기침 소리 30 오월 고뿔 31 북카페 32 갈치 33 타임스퀘어 34 힐링 35 낡아 가는 길 36 을(乙) 37 만장 바다 38 마른 밥 39 출항 40 정선 오일장 41 낙관(落款) 42

제3부
하동역 45 늦은 꽃 46 동토 시편 47 식사 48 만어사(萬魚寺) 49 바다 50 만용 51 여운 52 남강 53 슬하(膝下) 54 팔부 능선 55 한일(閑日) 56 툇마루 57 까치밥 58

제4부
신전 61 난장 62 흔적 63 희망 64 거울 앞에서 65 삭제 66 겨울 광화문 68 우럭젓국 69 갈채(喝采) 70 원시(遠視) 71 월척 72 신 역마 73 특무상사 74 강, 꽃물 들다 75 장사도 편지 76

제5부
심검 79 비염 80 퀘벡에서 81 나이아가라 폭포 82 링컨 기념관 83 계림 84 상공산(相公山) 85 복파산(伏波山) 86 도리원(桃李園) 87 양강사호(?江四湖) 88 양삭 89 잘츠카머구트 호수 90 진주조개와 시인 91 조탁(彫琢) 92

해설
화살이 날아간 자리, 꽂힌 자리 93
김태경(시조시인·문학평론가)

저만치 비켜서서 혼자서 피는 꽃도

먼 듯 가까운 듯 저 꽃 속 꽃이 되어

서로가 젖어 우는 날

꿈꾸고 있나 보다

?「앉은뱅이꽃」 부분

시인의 통찰력은 개성적인 목소리를 낳게 하는 원천이 되며, 대상은 가치의 특수성을 지닌 채로 재탄생한다. 또 시인이 구현하는 상상의 힘은 자연물에 의탁하여 더욱 견고한 생활세계를 위한 언어를 운용하도록 이끈다. 김연동 시인의 시선이 닿은 객관적 상관물은 앉은뱅이꽃이다. 그가 목격한 앉은뱅이꽃은 “시위하듯 피”어 있다. 그것은 마치 “흐린 하늘 한 모서리”를“깨끗이 닦고 싶어 궐기한 사람들처럼 무리 지어 피”어 있다. 이런 상상의 힘은 공생의 세계에 입사하여 은은한 감동을 선물한다. “저만치 비켜서서 혼자서 피는 꽃”이, 무리 지어 있는 작은 꽃들과 함께 “서로가 젖어 우는”모습은,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함께 ‘꿈’을 꾼다는 착상은 서로가 위치한 영역의 교집합을 지향하여 각자의 담을 허무는 느낌을 준다. 함께 웃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함께 우는 것은 서로가 깊은 신뢰를 갖고 있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1
바람이 부는 언덕 허기 같은 꽃이 피네 서풍에 흔들리고 동풍에 휘둘리다 터지고 덧난 상처를 누가 울어 치유할까

더운 피 어린 꿈도 안고 가야 하는 시간, 금이 간 가슴 위에 아픔만 더해지고 믿음이 눈감은 거리 미움으로 끓고 있네

2
굵은 회오리가 질정 없이 온다 해도 말 없는 풀무질로 시우쇠 녹여내고 벼린 날 담금질하는 바람꽃이 피고 있네
?「바람꽃 언덕」 전문


인용 시는 시간을 견뎌온 시인의 발화이기도 하다. 그것은 “립스틱 속눈썹으로/위장한/길을 돌아”(「거울 앞에서」) 거울 앞에선 자아를 들여다보는 일과 흡사하다. 어긋한 현실과 자아를 시조 속에서 포개려는 노력은 순탄치 않으며, 시인도 충분히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달아나지 않고, 아픔의 근원과 맞닥뜨리는 일은 시인에게 시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시조 안에서 고독을 견디고 미적 언어로 몸을 바꾸는 동안, 시인도 끊임없이 벼린 날을 담금질하였다. 그의 상처와 기억의 시간은 다층적으로 시조 속에 담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