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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비밀 : 홍명진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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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셜 책소개

    [당신의 비밀]은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의 작가 홍명진의 면모를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집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살면서 겪은 경험들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여하튼 홍명진 소설을 읽고나면 ‘나’라는 존재(being)가 다른 존재가 되는(becoming) 작은 변신술을 경험하는 것만 같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 가난, 질병, 외로움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 관계의 빈곤ㅇ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글쓰기를 수행하는 작가 홍명진의 소설이 하루하루의 일상을 회의하고 좌절하되 쓰러지지 않는 사람들이 값싼 감상과 가짜 위로에 기꺼워하는 것이 아니라, 끝내 화엄의 바다를 연출하는 소설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이러한 생각은 순전히 기우일지 모른다. 홍명진은 이 지상의 폐허를 응시할 줄 아는 작가니까.
    ('해설, [상처 입은 치유자의 글쓰기]' 중에서)

    출판사 서평

    버려지는 사람들

    소설가 홍명진의 두 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이번 소설집에는 7편의 중단편이 수록돼 있는데, 등장인물들이 변방의 소수자들이다. 이런 소수자들에게 작가는 무슨 말을 건네고 싶었던 것일까. 문학평론가 고영직은 ‘해설’에서 작가를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부른다. 즉 작가 자신의 경험과 상처를 통해서 "서로의 내면을 연결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소한 밤들]의 주인공은 ‘희망의 전화’라는 상담센터에서 심야에 전화 봉사를 한다. 대체로 심야에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은 자신의 고독을 하소연하는데, 주인공은 단지 전화기 너머로 전해오는 익명적인 존재의 고독만을 마주하지는 않는다. 또 직장동료 P를 통해 그 고독의 근원에 어쩌면 경제적 상황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한 고독을 누구도 감싸주지 않는다.

    "어쩌겠어. 계약직이 파리 목숨인걸. 어디 진정할 데 있으면 해봐."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 그녀에게 위로랍시고 동료들이 해준 말도 그게 전부였다.
    ('사소한 밤들' 중에서/ p.15)

    여기서 작가가 발견한 것은 일종의 자기 치유의 윤리학이다. 물론 사회가 강제한 구조적 문제를 자기 치유라는 방식으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하지만 [사소한 밤들]에서는 김인순 할머니의 ‘노래’가 어떤 촉매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읊조린다. "그러게요, 할머니. 그날이 그날 같아도 분명히 다른 날이겠죠. 이 어둠이 저것과는 다른 어둠이듯이, 이 밤이 지난 것들과는 다른 밤이듯이."

    삶은 살아가는 과정의 이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에서는 친구 재섭의 부고를 받고 조문을 가던 중학 동창생들이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차가 고장 나 어둠에 갇혀버린 상황에 빠지고 만다. 이 작품은 시종일관 삶이 답답하고 우울한 존재들의 한숨(?)으로 실내가 뿌연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때 "선명했던 무엇인가가 있었"던 삶들이지만, 대체적으로 좌절한 캐릭터들이다. 사고로 갑자기 죽은 재섭도 시를 쓰며 건강한 삶을 꾸려가려고 했지만, 사랑에도 실패하고 갑자기 죽은 경우이다. 오도 가도 못하는 어둠 속에 갇힌 상태에서 구원 같은 불빛이 갑자기 주어질 리 없다.

    재섭의 생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그 시간을 살 뿐이다. 모든 것은 어제와 같고, 내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제와 같은 오늘과, 오늘과 다르지 않은 내일 사이에 또 몇몇 죽음을 맞이했고, 우리가 자랐던 그곳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다. 나는 이 오류 같은 시간을 믿지 못하면서도 또한 믿을 수밖에 없다. 보잘것없지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겠지만 그 시간 속에 우리가 지나온 길이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듯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 중에서/ p.85)

    어쩌면 지금 작가는 ‘전망 부재’의 터널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건강한 삶을 놓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오늘날에는 가장 윤리적인 태도인지도 모른다. 마치 ‘희망 없이 사랑하라’를 선택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작품집에 암울한 인물들과 사건들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마순희]는 기옥의 시선으로 청각장애인인 마순희의 삶을 조망하고 있는 작품인데, 마순희는 섹스할 때 이상한 소리를 낸다고 이혼을 당한 모욕을 견디며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마순희의 활기는 기옥에게도 어떤 움직임을 경험하게 한다. 처음에는 마순희의 적극적인 접근에 당황하지만 말이다. 왜냐면 "기옥은 통속적인 세상의 눈이 두려웠다. 값싼 동정의 위로가 언젠가는 그녀를 비난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몸테라피 강좌를 받는 동안 "마순희는 한 번도 결석이나 지각을 하지 않은 우등생"일 정도로 열심이었는데, 9회차 강좌가 끝나고 옥자 아줌마, 기옥, 마순희만 참가한 뒤풀이에서 기옥은 "술을 못 배웠어요. 술까지 마시면 정말로 병신이 육갑한다고 그럴까 봐"라는 마순희의 말에 "왜 그런 말을 해. 누가 순희 씨더러 병신이라고 그래"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기옥이 마순희 정동에 공명하는 순간이다.
    이 소설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데, 사소하고 상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삶이 사소하고 상투적인 것이기에 그것을 이기고 나온 작은 움은 더 큰 울림을 준다.

    기옥이 전동차 안에서 만난 두 여자는 기옥을 오해했다. 기옥은 수화로 격렬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녀들을 부럽고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들이 뿜어내는 신기한 열기와 활력에 기옥이 매료되었다는 걸 알 수 없었을 테니까. 기옥이 본 그녀들은 거리낌이 없었고, 한편으론 더없이 비밀스러운 자기들만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순희를 처음 만났을 때 기옥이 느꼈던 부담스러움과 거리감, 한사코 그녀와 거리를 가지려 했던 것이 어쩌면 기옥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마순희만이 가진 낯선 활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순희' 중에서/ p.162)

    삶과 삶,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고영직은 이번 홍명진의 작품집을 일러 ‘상처 입은 치유자의 글쓰기’라고 했는데, [당신의 비밀]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상처 입은 자들을 치유하는 것은 다른 상처 입은 자들이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 점은 홍명진의 소설이 아직도, 변함없이 낮은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창한 구호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삶의 상처는 다른 삶의 상처와 만날 때만이 조금씩 치유된다. 또는 상처와 상처 사이의 적절한 거리에 의해서만 삶은 지탱될 수 있다.
    암 병동에서 죽어가는 남편을 간호하는 작중 화자의 술회로 짜여진 [너무 멀리 가지 마]는 그 시적 예로 알맞을 듯싶다. 작품 안에서 환자는 언제나 작중 화자에게 ‘멀리 가지 마’라고 말하는데, 그 언표는 표면적으로는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의 나약함에서 발화되는 것처럼 읽힌다. 하지만 문제는 작중 화자의 해석이다. 죽음 쪽으로 다가가는 환자의 ‘멀리 가지 마’는 죽음과 삶의 거리에 대한 환유이며, 죽음이 삶을 밑받침하고 있다는 인식 기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삶의 결정적 상처인 죽음과의 거리를 가늠해보려는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다음과 같은 단락을 읽어보면 그 점은 조금 더 명확해진다.

    너무나 고요하고 맑은 아침이었다. 한쪽으로 치운 눈은 얼어서 빠닥빠닥 빛이 났다. 지그재그로 설치된 통나무 계단을 올라 병원 건물을 빠져나오자 답답하던 호흡이 툭 터졌다. 듬성듬성 서 있는 키 큰 활엽수들이 내장을 다 드러낸 듯 헐벗은 채 눈을 안고 있었다. 외딴 화장실 건물을 향해 걸음을 떼면서 어쩌면 그가 창가에 붙어 서서 내 뒷모습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현듯 뒤를 돌아보았다. (...) 비행기가 항로를 달려갈 때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지구 역시 그러하겠지. 편서풍이니 하는 바람의 영향이 없더라도 어디에도 오차는 존재하고, 삶과 죽음은 바로 그 오차의 간극이라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홍명진의 두 번째 소설집인 [당신의 비밀]은 독자들에게, 아주 구체적인 삶의 결을 아로새길 것이다.

    목차

    작가의 말 / 5


    사소한 밤들 / 9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 / 33
    조용한 생 / 87
    당신의 비밀 / 111
    마순희 / 137
    해피크리닝 / 165
    너무 멀리 가지 마 / 193

    해설
    상처 입은 치유자의 글쓰기(고영직) / 220

    본문중에서

    가끔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이 나를 제외한 채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워진다. 내가 없다고 시간이 제 멋대로 멈추거나 기다려주는 건 아니니까.
    종종 관계의 불안에 대해 생각한다. [사소한 밤들]을 발표할 때는 사회적인 존재와 근원적인 자아의 불안에 대해 생각했다. 존재의 형식과 질서,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자아들은 과연 행복한가.
    지나간 시간을 우리는 과거라고 부르지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가는 동안은 과거가 현재이고 미래이지 않을까. 그것이 세 개의 분절로 정확하게 나뉘어져 있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과연 오래된 미래와 도래하지 않을 시간이란 어떤 의미인지... 불현듯 생각하게 된다. 결국 삶과 죽음의 연장선에서 보면 경계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물코를 기워가듯 인류는 그렇게 코와 코가 맞물려 흘러왔다. 태양도 언젠가는 그 생명을 다해 소멸한다는 가설을 생각해보면 인류의 역사는 더욱 오묘한 이야기가 되려나? 집착과 망상을 벗어난 우주적 삶과 죽음 가운데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8월의 어느 날에 만난 폭우를 떠올린다. 낮이 밤과 같이 어두웠던 11월의 어느 날 오후, 센서등 하나 없는 낡은 건물 속으로 들어서며 떠올렸던 8월의 폭우. 폭우가 쏟아지던 8월의 어느 날 한낮도 밤과 같이 어두웠음을 기억한다.
    여기에 실린 단편 작업을 하고 발표하는 동안 몇 해가 지났다.
    망설이며 먼저 보냈거나 과감하게 던져버리지 못한 관계들의 여정이다.
    돌아보면 문득 내 안에 쌓인 나도 모르는 시간들이 두려워진다. 책을 엮어준 삶창에 감사드린다.
    ('작가의 말' 중에서)

    붉은 포엽을 받치고 있는 암녹색의 이파리를 손가락 끝으로 맞비비자 옅은 풀물이 배어 나왔다. 불빛의 각도 때문인지, 건조한 주변 탓인지 꽃집에서 볼 때와는 달리 포인세티아는 이파리 색깔이 흐려 보였다. 당신을 축복합니다, 당신에게 축복을.... 혀끝에 맺히는 말들이 기포처럼 그녀의 입속에서 굴러다녔다.
    도전적으로 물음을 던진 이들은 대개, 스스로 먼저 말문을 닫았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기 내부에 답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그렇다거나 아니라는 단도직입적인 말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의 언저리에 널려 있는 자잘한 감정을 드러내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흔들리는 자신들의 내부를 깊게 들여다봐주기를. 그것이 아무리 쓸데없는 이유와 변명밖엔 안 될지라도 그 말을 들어주고 동조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리라.
    ('사소한 밤들' 중에서)

    재섭은 흰 차선 하나만 그려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었을 것이다. 재섭의 할머니 문상을 갈 때 태경의 차가 덜컹대며 들어갔던 그 길이 포장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낮은 산모퉁이를 돌면 드러나는 분지 같은 들과 들녘에 드문드문 앉은 농가들을, 다시 산모퉁이를 따라 이어지던 좁은 비포장의 길을, 시야가 가로막힌 산굽이를 돌 때마다 눈앞의 풍경이 단절되곤 했던 그 캄캄한 길을 기억한다. 막차가 끊긴 그 길을 걸어가면서 재섭은 몇 번의 절망과 마주쳤을까. 뒤에서 차가 오는 걸 몰랐을까. 알면서도 피하지 않은 걸까. 돌아보지도 않은 채 경사가 가파른 교문 앞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자전거의 바큇살이 허공에서 맹렬하게 돌던 장면을 떠올렸을까? 그때 그에겐 해변까지 찐 옥수수를 머리에 이고 장사를 다니던 허리 굽은 할머니가 있었다. 옥수수 사려, 옥수수 사려. 태경이었나, 종오였나. 장난스럽게 야밤의 찹쌀떡 장수 흉내를 내던 우리들의 시간이 결코 없어진 건 아니었다. 서로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우리에게 친구라는 이름 외에 무엇이 더 있었는지 잊고 살았을 뿐. 기껏해야 나누어 가질 건 추억밖에 없어서, 현실에서 추억은 힘이 약해서 서로의 거리가 갈수록 벌어졌던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걸 순리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 중에서)

    방으로 들어온 당신은 그제야 방의 형광등을 켰다. 당신이 누웠다 빠져나온 이부자리 발치에 여자가 두고 간 편지봉투가 보였다. 당신은 봉투에서 내용물을 꺼내고 텔레비전 옆에 올려뒀던 돋보기를 걸쳤다. 종이를 펼치자 남자 얼굴 사진이 툭 튀어나왔다. 정면을 보고 있는 표정 없는 사진이었다. 사각 얼굴에 눈매와 코, 입 언저리의 선이 뚜렷했고 밤송이처럼 짧게 깎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당신은 어디서 본 듯한 남자를 한참 들여다보다 그 밑에 적혀 있는 굵은 글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16세 미만의 여자 청소년을 강제 성추행하여 1년 8개월 형을 살고 출소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밑에 남자의 주거지가 적혀 있었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집과 주소가 같았다.
    당신은 우편물을 들고 멍하니 고개를 쳐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당신의 몸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당신은 서랍장 귀퉁이에 몸을 의지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의 비밀'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7~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67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났다. 2001년에 전태일문학상을 받았지만 7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습작의 시절을 다시 한 번 보냈다. 2008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2년에 제10회 사계절문학상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기금, 백신애문학상을 받았고 2013년에는 우현예술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우주 비행]과 [숨비소리], 소설집 [터틀넥 스웨터]가 있으며 함께 쓴 책으로 [조용한 식탁]과 [벌레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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