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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 : 리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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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같은 리듬으로 하루하루 여행은 계속된다
    이해되지 않는 말들이 만들어내는 매력적인 풍경


    나는 내 꿈의 세계에서 살았네//내 꿈이 더 간절해지기를/내 꿈이 더 그리워지기를 바라며//그러나 지금 창가엔/텅 빈 새장 하나//그것은 중국풍 새장/내가 간절히 꿈꾸던//그러나 그리운/중국 나이팅게일은 없네
    ('중국 나이팅게일 전문)

    2006년 [시안]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유려한 시적 몽상과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가 도드라지는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펼쳐온 리산 시인의 두번째 시집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세계와의 불화 속에서 시가 어떻게 혁명에 관여하는지, 새로운 시적 혁명의 길을 보여주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첫 시집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문학동네 2013)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기존의 서정성과는 또다른 세련된 서정과 직관적이며 감각적인 통찰이 어우러진 독특한 시세계를 선보인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개성적인 화법을 앞세워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신화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가 녹아든 시편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18세기 제정공화국 주간지 세인트누아르/또는 문학 미술 음악에서 가장 주목할 성과물에 대한/추론적 분석에 의하면/방드르디 지역의 반란과 올빼미당원들의 연대기/시가 육 밀리 장군의 연설문/스마트 세리들의 발랄한 서사시 여행하는 오랑캐들에 대한 채색 판화 등이 있고//센티멘털 야간통신 가을호 목차에 의하면/꽃보다 말줄임표 애호가/이토록 잘 쓴 시는 거의 없다/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 등이 있다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 전문)

    낯선 이름과 장소, 생경한 언어들,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풍부한 문화적 배경지식이 담긴 리산 시인의 시는 단번에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시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심할 것은 아니다. 마치 안갯속을 거니는 듯한 말들이 매력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그의 시는 애써 해석할 필요 없이 그저 "무언가를 듣고 무언가를 전하고자 하는 욕망. 그럼에도 그 욕망이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선험적으로 알고 있다는 자각과 절망의 언사"(강정, 해설)가 그려내는 돌올한 이미지들을 떠올리며 "사라진 왕조의 마지막 무녀"([숲을 뒤에 두고])가 전하는 "흙과 뿌리와 이슬의 맛"([푸얼 방향으로])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퉁이를 돌면 말해다오 은밀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가령 저 먼 곳에서 하얗게 감자꽃 피우는 바람이 왔을 때 바람이 데려온 구름의 생애가 너무 무거워 빗방울 후드득후드득 이마에 떨어질 때 비밀처럼 간직하고픈 생이 있다고//처마 끝에 서면 겨울이 몰고 온 북국의 생애가 풍경처럼 흔들리고 푸르게 번지는 풍경 소리 찬 바람과 통증의 절기를 지나면 따뜻한 국물 펄펄 끓어오르는 저녁이 있어 저녁의 이마를 짚으며 가늠해보는 무정한 생의 비밀들//석탄 몇조각 당근 하나 노란 스카프 밀짚모자 아직 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은밀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 있어 다 알려지지 않은 무엇이 여기 있다고
    ([울창하고 아름다운] 전문)

    실재하는 모든 이름들이 허구였던 듯, "세상의 소리들은 한줌 연기 되어" 사라지는 "허망함 또는 허무함"([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속에서 시인은 "꿈의 트랙과 스탠드 사이를 서성이며 삶의 공백을 채워보려"([앙코르]) 한다. "불러야 할 서로의 이름은 끝내 알지 못"한 채 "다 지난 일"([숲을 뒤에 두고]) 같은 그렇고 그런 삶, "이름 이전에 다만 살아 번식"할 뿐 "이름이 없는 자"이거나 "아무런 계산에도 셈해지지 않는 자"로서 시인은 "죽음 같은 잠을 자고 깨어나도 끝내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 있"([계절노동자들])는 현실을 견디어낸다. 그러나 "융합과 반전은 다시 되풀이될 것"([앙코르])이라 믿기에 시인은 "아직 오지 않은 소식 하나를 기다려/어둑한 길 멀리를 바라보"([도문대작])며 "바람결에 전해지는 혁명에 관한 이야기"([푸얼 방향으로])에 귀 기울인다.

    외로워서 축구를 하고 외로워서 기차를 타지/외로워서 순록의 발자국을 찾아 미술관에 가고/외로워서 목화밭 너머 봄날의 묘비명을 적었네//어딘가 외로운 짐승이 외로운 짐승 옆에 앉아/오래된 기침을 하고 있을 때/함께 흔들 흔들거리는/느낌표와 물음표가 거꾸로 된 문장들/한방울의 피가 필요해//잠의 변경을 서성이던 한마리 짐승이/숫잠에서 깨어나/흥건해진 눈으로 바라다보는 눈/붉은 꽃잎 다 젖도록
    ([사월] 전문)

    그러하기에 시인은 "같은 리듬으로 하루하루"([정확한 페이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살아가면서 "슬픔과 무관하게 한 눈으로만 울 수밖에"([계절노동자들]) 없다. "그러므로 그러니까 그래서"([탐닉])만 반복할 따름이지만, 때로는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기도 하다가 "언젠가 통증으로 죽으리"([도문대작])라는 시인의 발언은 자못 비장하게 들린다. "처음부터 가면은 없었"다고 자각하면서 "나 혼자 있"([그리고 구텐베르크가 왔다])음을 "나 혼자 깨어 있"([고대 근동의 슬픔])는 채로 느껴 삼키며 시인은 "다른 불행을 보며/간신히 제 불행을 견디고 있는"([푸르름을 남겨다오]) 세상에서는 "눈물 없는 울음도 울음일 수 있"고 "소리 없는 노래도 노래일 수 있다"([공장의 출구 동백꽃을 가슴에 달고])는 깨달음에 닿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단지 유령일 뿐/두통과 불면의 밤을 지나온 유령일 뿐/서로의 그림자 속에 들지 못하므로/우리의 대낮과 밤 속에는 태양도 별빛도/서로의 그림자를 만들지 못한다//그리하여 우리는 단지 유령일 뿐/유리잔 속에 떠도는 몇모금의 상념일 뿐/연기로 부유하는 흐린 영혼의 구름일 뿐/우리는 서로에게 그림자를 만들지 못하므로/꿈꾸어도 죽어가는/꿈꾸지 않아도 사라지는//(...)//그리하여 우리는 단지 유령일 뿐/눈물의 가장 깊은 그림자를 만지지 못한다/아무런 상처의 그림자도 만들지 못한다
    ([프리미어리그의 세탁부들] 부분)

    시인은 ‘센티멘털 노동자 동맹’이라는 사뭇 도발적인 이름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시로써 ‘혁명’에 관여하는 길을 모색해왔다. "두려운 악몽과 몽상적인 꿈과 변덕스러운 소원 속에 존재하는 세상"에서 시인은 절박한 마음으로 "세계를 바꾸고 싶다"([어찌하여 나는 이토록 우아하며 호의적이게 되었는가])고 선언한다. 덧붙여 "끝나지 않는 이야기", 모든 시의 "마지막 문장 따위는 주목하지"([포도밭에 만개한 제비꽃]) 말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고독의 말을 타고 ‘허망함과 허무’를 여행"(함성호, 추천사)하면서 "간신히 다시 꿈을 꾸기 시작"([건초 수레는 지나가고])하는 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첫 시집 서두에서 드높이 외쳤던 ‘센티멘털 노동자 만세’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시인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토록 잘 쓴 시는 거의 없다"([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

    진창 깊숙이 몸뚱이가 빠진 지네 한마리/대가리를 휘휘 내저으며 몸뚱이를 뒤틀 때마다/터진 창자에서 새어나오는 노란 물//한 여자가 손가락을 덜덜 떨며 진창 위로 번지는 노란 피를 찍어먹고 있다
    ([벚꽃 이파리 자욱하게 날리는 곳으로 언제 나는 돌아갑니까] 전문)

    추천사

    이딸리아 남부 쏘렌또의 해안에는 그리스인이 건설한 쿠메(Cumae)라는 식민도시가 있었다. 그곳의 아폴론 신전에는 씨뷜라(Sibylla)라는 아름다운 무녀가 살았고, 그녀는 아폴론과 하룻밤을 지내는 조건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젊음을 같이 달라는 말을 잊어버린 탓에 세월이 갈수록 그녀의 몸은 늙어 대추씨만 하게 쪼그라들어 나중에는 몸을 잃고 목소리만 남게 된다. 신화는 그 목소리를 “죽고 싶어. 죽고 싶어.”라는 울음으로 전한다. 신화를 조금 더 밀고 나가자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몸을 잃은 목소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리산의 시는, 그 무녀의 목소리가 한줌의 모래알의 수만큼 살아, 바람에 실려 떠돈 내력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아마도 리산에게 있어 그 목소리를 실어나른 힘은 바람이 아니라 ‘고독의 말/馬/言’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고독의 말을 타고 ‘허망함과 허무’를 여행하고, ‘흙과 뿌리와 이슬의 맛’을 만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집에서 광기와 도발과 충격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시인은 우리에게 아무런 맛도 나눠주지 않고 나아간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言이 된 말들이 그저 우리 옷자락을 흔들어놓을 뿐이니까. “방금 뭐였지?” 이 시집은 그 느낌에 걸려 있다.
    - 함성호 / 시인

    목차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
    계절노동자들
    앙코르
    정확한 페이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도문대작
    도문대작
    공장의 출구
    동백꽃을 가슴에 달고
    검은 안식일의 토니는 왼손잡이 기타리스트
    종의 기원
    진눈깨비
    가난하고 아름다운 사냥꾼 딸이 꿈을 헐어 전나무에 물을 주고 큰 배로 만들 때까지
    프리미어리그의 세탁부들
    선량한 스파이
    1816년의 쌀롱
    어찌하여 나는 이토록 우아하며
    호의적이게 되었는가
    안녕, 나는 이사 간다
    앙상블 사이 쏠로
    오래된 레코드판에서 나는 소리를 내며 새들은 습지를 날고 있을 것이다
    사월 까자흐
    뉴올리언스 고담시에서 재즈는 어떻게 유행하게 되었나
    울창하고 아름다운
    푸얼 방향으로
    부엉이점 치는 밤
    숲을 뒤에 두고
    남십자성 아래
    폭풍 속의 고아들
    눈 내리는 백무선
    영산포
    중국 나이팅게일

    누가 오래된 사원의 벽에 이마를 대고 서 있다

    신중한 싸운드
    탐닉
    건초 수레는 지나가고
    녹색 마차

    당신의 루주는 언제나 붉지는 않다
    사월
    마두각배 만리
    붉은 양귀비
    살구나무 숲속의 호숫가
    독자적인 피날레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아일랜드식 사직서
    푸르름을 남겨다오
    캄차카병(病)
    포도밭에 만개한 제비꽃
    앵화 폭풍
    이왕직 양악대
    그리고 구텐베르크가 왔다
    벚꽃 이파리 자욱하게 날리는 곳으로
    언제 나는 돌아갑니까
    고대 근동의 슬픔

    해설|강정
    시인의 말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2006년 '시안'으로 등단했다. 센티멘털 노동자 동맹 동인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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