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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17회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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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이번 노작문학상 본심 진출작들에 한해 주제의식과 표현형식을 간추리면, 한마디로 서정의 귀환이라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이것이 현재 시단의 흐름과 추세를 두루 비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재래 서정이 노정해온 정체 또는 답보상태에 어떤 진전이 있는지 가늠해볼 만한 기회인 듯해 흥미로웠다.” - 심사평 중에서
    일제강점기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는 등 낭만주의 문학을 선도한 대표적인 시인이자 연극인이었던 노작 홍사용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그 해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활동을 펼친 시인에게 수여하는 노작문학상. 올해는 홍신선 시인의 [합덕장 길에서] 외 4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책으로 출간되었다.
    2017 제17회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작품집의 디자인과 편집을 새롭게 바꾸는 등 변화하는 환경에서 시를 찾는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그 눈높이에 맞추고자 노력했다. 홍신선 시인 외에도 공광규, 김승희, 김중일, 맹문재, 박성우, 우대식, 이채민, 이현승, 최문자, 함민복 시인의 작품이 추천우수작으로 함께 수록되었다.

    출판사 서평

    눈물의 왕,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 그러나 십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 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에서


    홍사용 시인의 삶은 화려하지 않을지도 모르나 그가 이루고자 했던 문학정신은 치열했다. 그의 이름이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후대에까지 기억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처한 시대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극복해나가고자 했던 그의 정신이 그만큼 숭고한 경험으로 한국문학사에 기록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홍사용 시인은 1900년에 출생하여 1947년 작고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시로 여전히 독자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홍사용 시인은 당대의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그 ‘낭만’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센티멘털한 감정이 아닌, 낭만적 열정과 풍부한 감성, 개성의 해방과 자유, 초월적 세계에 대한 이상과 동경 등을 나타내는 것이다. 문학사조로서 ‘낭만주의’는 “고전적 규범이나 관습을 부정하고 상상력과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의 창조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는 장르”로 정의되는데, 1920년대 초 워즈워드, 바이런, 셸리 등의 시작품이 소개되며 한국 근대시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낭만주의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시인들은 이상화, 나도향, 박종화, 박영희, 홍사용 등 주로 [백조] 동인들이었다고 한다. [백조]는 3.1운동이 실패한 뒤인 당시의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홍사용 시인이 창간한 순수문예동인지다. 홍사용 시인은 [백조]의 창간과 함께 시 창작을 본격화 하였고, ‘토월회’를 통하여 연극인으로도 활동했다.
    홍사용 시인의 이렇듯 치열한 문학정신의 의미를 기리고 계승하기 위하여 2001년부터 노작문학상을 제정했고, 그동안 안도현, 이면우, 문인수, 문태준, 김경미, 김신용, 이문재, 이영광, 김행숙, 김소연, 심보선, 이수명, 손택수, 장옥관, 신용목, 신동옥 시인 등 시대별 최고의 시인들이 상을 수상했다.

    추천사

    사람살이의 구체에서 써가는
    시간예술로서의 서정시

    홍신선의 근작들

    1
    서정시는 시인 자신의 실존적 고투를 내용으로 삼는 자기 고백 양식이다. 거기에는 한 시대의 주류적 힘과 대항하면서 개성적 사유와 감각을 통해 새로운 상상적 질서를 구축하려는 시인 자신의 깊은 열망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때의 상상적 질서란, 미학적 전위들이 보여주는 파격적 실험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잃어버린 서정시의 위의威儀를 세우려는 고전적 열망과 깊이 닿아 있는 어떤 것일 터이다. 또한 서정시가 시간의 흐름에 의해 완성되어간다는 측면에서 시간예술로서의 서정시의 속성은 더없이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서정시가 ‘시간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이라는 뜻에서도 온당한 규정일 것이다. 서정시를 삶의 순간적 파악에 기초한 언어 예술로 정의한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 ‘순간’이란 오랜 시간의 흐름이 온축되어 있는 ‘충만한 현재형’일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 안에는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정해놓은 경계나 표지標識들이 지워졌을 때의 자유로움이 그려지고, 그 자유로움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잃어버린 서정시의 속성과 원리를 탈환하게끔 유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제17회 노작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홍신선洪申善 시인은 폐허의 세계를 견뎌오면서 자기 인식과 초월의 방법을 탐색하는 데 공을 들여온 우리 시단의 대표 중진이다. 두루 알려져 있듯이, 그의 시편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사물은 비교적 역사적 구체성보다는 존재론적 원형성을 강하게 띠어왔고, 그는 어떤 구심적 주제나 원리에 의해 시 세계를 구성하기보다는 그때그때의 경험과 기억을 언표할 때가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구체적 기억에 충실한 시편들을 통해 존재론적 비극성과 그 원형적 사유에 매진해온 홍신선 시편은, 실감 있는 시간의 깊이를 응시하는 데서 발원하여 사물의 존재 형식에 대한 섬세한 형상화에서 완성되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그런가 하면 홍신선 시편은 소멸해가는 사물들 뒤편에 숨어 있는 이미지들을 찾아내어, 언어가 가닿을 수 있는 어둑한 실존을 투시하고 표현하는 일관된 특장을 지니고 있다. 불우하고 어두운 생애를 지탱하고 견디는 주체와, 그 주체의 경험과 기억 속에 긴장과 균형으로 존재하는 소멸해가는 시간들, 그것들이 갈등하고 화창和唱하는 풍경이 말하자면 홍신선의 시 세계이다. 이번 노작문학상 대표 수상작인 다음 시편 역시 그러한 속성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아침나절 읍내버스에 어김없이 장짐을 올려주곤 했다
    차 안으로 하루같이 그가 올려준 짐들은
    보따리 보따리 어떤 세월들이었나
    저자에 내다팔 채소와 곡식 등속의 낡은 보퉁이들을
    외팔로 거뿐거뿐 들어 올리는
    그의 또 다른 팔 없는 빈 소매는 헐렁한 6.25였다
    그 시절이 앞이 안 보이던 것은 뒤에 선 절량絶糧 탓일까
    버스가 출발하면
    뒤에 남은 그의 숱 듬성한 뒷머리가 희끗거렸다

    그 사내가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깨박치듯 생활 밑바닥을 통째 뒤집어엎었는지
    아니면 생활이 앞니 빠지듯 불쑥 뽑혀 나갔는지
    늙은 아낙과 대처로 간 자식들 올려놓기를
    그만 이제 내려놓았는지
    아침녘 버스가 그냥 지나친 휑한 정류장엔
    차에 올리지 못한
    보따리처럼 그가 없는 세상이 멍하니 버려져 있다

    읍내 쪽 그동안 그는 거기 가 올려놓았나
    극지방 유빙流氷들처럼 드문드문 깨진 구름장들 틈새에
    웬 장짐들로
    푸른 하늘이 무진장 얹혀 있다
    - [합덕장 길에서] 전문

    시인이 걷고 있는 곳은 ‘합덕장’과 얽힌 기억의 길이다. 아침나절이면 읍내버스에 어김없이 장짐을 올려주던 한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되는 이 시편은, 그가 올려 주었던 오랜 세월을 천천히 투과해간다. 낡은 보퉁이들을 들어 올리던 그는 “헐렁한 6.25”라는 비유에서 보이듯 상이傷痍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식이 떨어지는 일이 많았던 그 시절은 그렇게 앞이 안 보이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의 희끗한 “숱 듬성한 뒷머리”가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자, 시인은 “생활 밑바닥”이나 “늙은 아낙과 대처로 간 자식들”의 표현을 통해 그가 이제 세월의 짐을 내려놓았는지 모를 일이라는 암시를 던진다. 시인은 “차에 올리지 못한/보따리처럼 그가 없는 세상”에서 “극지방 유빙流氷들처럼 드문드문 깨진 구름장들 틈새”를 바라본다. 막막하고 드넓은 “푸른 하늘이 무진장 얹혀” 있는 ‘합덕장 길’에서 우리가 보고 읽은 것은, 오랜 시간의 기억들이고, 그 기억의 주인공이 걸었던 길의 애잔한 사라짐일 것이다. 홍신선 시학의 밝은 눈이 발견한 시간의 깊이가 거기에 웅크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이번 수상작들이 보여주는 시간의 스펙트럼 앞에 놓이기도 한다. 홍신선 시인의 봄 여름 가을이 다음과 같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휘거나 굽은 나무를 보면 거기 뭔가 그동안 얹혀 있었구나 싶다. 텃새일까? 세월일까? 마침 날아든 직박구리가 제 목청에서 몇 말들이 쌀푸대 마구리를 연다. 절량絶糧의 시절도 아닌데 웬 쌀을 풀어먹일 참인지. 이밥꽃이 흰 쌀을 고봉으로 챙겨간다. 겨우내 손발 다 닳은 단풍나무가 욕심껏 쓸어 담아간다. 이미 쌀 씻어 밥솥에 갈급하게 안친 미루나무에선 밥내가 돈다. 그러면 저 새가 쫘르르 쫘르르 사방으로 퍼 내주는 게 정녕 입쌀일까. 아니지. 굽거나 휠 정도로 때로는 몇 말들이 허기를 때로는 풍찬노숙을 얹고 사는 이 동네 나무들. 지금도 새가 와 그 자리 노숙 중인 허공을 끌어내리고 좀 더 높이 노래를 얹고 있다. 구휼미처럼 풀어내는 저 악곡을 인근 푸나무들은 제 양껏 받아간다. 수금竪琴으로 뭇 짐승과 푸새를 다스린 오르페우스인가 그렇게 이 봄날 휘거나 굽은 나무들이 체관부 속의 간겨울 극한 허기를 진휼한다.

    으흐흐 지가 무슨 오르페우스라고 신새벽부터 날아온 직박구리야.
    - [직박구리의 봄노래] 전문

    누가 가을비는 소리만 온다고 했나.

    비는 꼬리를 올려 세우고 고목이 다 된 호두나무를 기어오르거나 순간 허공의 거죽을 타고 주르룩 미끄러져 내린다.
    오늘 저 숱한 새끼 얼룩 고양이들 발소리 죽여 이 나라 전역에 흩어져 달아난다.

    찬바람머리 가을비는 소리도 없이 고양이 걸음으로 온다.
    - [가을비] 전문

    ‘직박구리’는 나무 위에서 땅으로 거의 내려오지 않는 새다. 그 새는 어느새 “휘거나 굽은 나무” 위에 서린 “세월”로 몸을 바꾸면서 “제 목청에서 몇 말들”을 쌀푸대 마구리 열듯 쏟아놓는다. 아마도 ‘직박구리/마구리’의 라임이 고려된 듯하다. 쌀을 풀어먹일 듯이 쏟아진 “말들”을 이밥꽃이 챙겨가고 단풍나무가 담아간다. 허기와 풍찬노숙을 얹고 사는 이 동네 나무들에게 새가 날아와 노래를 부르는 이 풍경은 그 자체로 사실적이거니와, 더 나아가서는 가장 원형적인 오르페우스의 모습으로 직박구리의 봄노래를 끌어올린다. 홍신선 시학의 밝고 선명한 이미지가 잘 드러난 명편이다. 시인의 귀는 봄 노을도 “아침 저녁 하늘가 텅 빈 쌀독 바닥 긁는 소리로”([봄꽃 적막]) 온다고 기억하지 않는가.
    봄이 새의 노래로 왔듯이 가을 또한 빗소리로 온다. 하지만 시인은 찬바람머리 가을비가 들려주는 소리 대신 “꼬리를 올려 세우고 고목이 다 된 호두나무를 기어오르거나 순간 허공의 거죽을 타고 주르룩 미끄러져” 내리는 물활적 외양을 담은 이미지의 화폭을 구성한다. 숱한 새끼 얼룩 고양이들도 발소리를 죽이듯이 가을비는 고양이 걸음으로 온다. 이렇게 신생의 봄과 소멸의 가을은, 모두 인생론적 관찰과 사유를 뒤로 물린 채 선연한 감각적 이미지의 현상학을 도드라지게 함으로써, 홍신선 시학의 경쾌함을 한껏 부풀어 오르게 해준다.

    묻지 말라 백 몇 년 만의 폭염 속 무엇을 하며 지냈느냐
    그 해 여름 나는 팔대산인의 산수첩山水帖 속에 가 놀았다.
    그동안 끼고 살던 시도 잠시 내려놓고
    개론 정도 시어터진 철학 담론도 훌훌 털어 접고
    나는 화폭 속 저 산 밑 물가에서
    등목이나 했다 그리고 호미로 풀들을 잡았다.
    더러 낮잠에서 깨어 둘러보면
    못 보던 낯선 적막이 우두커니 앉아 나를 내려다 볼 뿐
    사람은 왜 모두 지웠는지 어디에서도 기척이 없다.
    대신 거기서 나는 보았다 국지성 호우 지나간 뒤
    초막집 마당 토사가 쓸려 내린 자국
    겉늙은 바랭이 풀이 떠내려 오는 토사를 전심전력 등 돌려
    저 혼자 막아낸 걸
    가닥 실한 곁뿌리로 악착같이 그 전역을 붙잡고
    살아낸 걸 보았다.
    장지長指엔 평생 펜대 잡느라 구덕살 깊이 박혔는데
    벌써 먹고 배설하는 단순 기계인지
    이번엔 폭염 속 호미질로 손아귀에 물집만 툭툭 솟고
    묻지 말라 백 몇 년 만의 폭염 속 무엇을 하며 지냈느냐
    지워진 인간 하나 건곤乾坤을 지고
    체제 밖 체제 밖으로만 떠돌던,
    색 낡은 산수첩 속 그렇게 갈필로 패망한 왕조를 등짐삼아 졌던
    바랭이 풀 닮은 미치광이 사내 하나 만나
    여름내 놀았다.
    - [폭염] 전문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폭염 속에서 시인은 “팔대산인의 산수첩山水帖” 속에서 놀았다고 고백한다. 시와 철학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선택한 한적한 등목과 낮잠과 호미질의 유유자적은, “낯선 적막”과 “어디에서도 기척이” 없는 시간으로 이어져갔다. 하지만 거기서 시인은 그동안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을 발견한다. 이 ‘발견’의 시선과 국량局量이 바로 홍신선 시학의 실존적 요체를 잘 드러낸다. 그가 발견한 것은 국지성 호우가 지나간 뒤 초막집 마당 토사가 쓸려 내린 자국이다. “겉늙은 바랭이 풀”이 쏟아져 내려오는 토사를 혼자 막아내고 살아낸 것이다. 그렇게 시인은 여름 내내 “지워진 인간 하나 건곤乾坤을 지고/체제 밖 체제 밖으로만 떠돌던,/색 낡은 산수첩 속”에서 폭염을 견뎌낸 인생론적 은유를 설파하고 있다. 시인의 밝은 ‘봄노래’와 ‘가을비’ 이미지에 이러한 뜨거운 성찰과 발견이 있었다는 것을, 시인의 충실한 자기 입법의 과정으로 기억할 만하지 않은가.
    주지하듯 서정시는 주체의 자기 발화에서 시작되고 완성된다. 물론 그 대상이 공적 범주에 포괄됨으로써 일종의 사회적 확장을 가져오는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그때도 서정시의 궁극적 자기 회귀성은 쉽게 양도되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회귀성이 사적 개인으로의 퇴행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췌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서정시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그 안에 타자 지향의 보편성을 내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서정시는 타자들을 향해 한껏 원심력을 보이다가도 다시 구체적 개인으로 귀환하는 속성을 여물게 견지함으로써, 그리고 오랜 시간을 거쳐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적 과정을 포함함으로써, 여전히 시간예술로서의 본령을 지켜갈 것이기 때문이다. 거듭 우리는 홍신선 시학의 이러한 시간예술로서의 요체가 거듭 만져지는 절편들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3
    우리가 잘 알듯이, 홍신선 시인은 이러한 회귀성을 통해 시간 경험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에 매진해왔다. 그것이 커다란 내러티브와 연관된 것이든, 지나간 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것이든, 아니면 시간 자체의 비의秘義를 탐색하는 것이든, 시인은 시간에 대한 이러한 남다른 경험과 해석을 지속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 이면에는, 직선적이고 분절적인 근대적 시간관觀에 대한 일정한 반성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최근 쓰이는 홍신선 시편들은 철저하게 이러한 시간 경험을 해석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원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읽어온 이번 수상작들도 이러한 삶에 대한 궁극적 긍정과 추인의 비밀을 품고 있는데, 그 안에는 사람살이의 구체에서 써가는 시간예술로서의 서정시의 문양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 모든 것이 홍신선 시학의 오랜 축적의 결실이자, 지금 다시 그가 새롭게 개척해갈 역설적 미래이기도 할 것이다.
    - 유성호 /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목차

    홍신선
    [수상작]
    합덕장 길에서
    직박구리의 봄노래
    폭염
    가을비
    봄꽃 적막

    [수상시인 대표작]
    오래된 미래
    자화상을 위하여
    황사 바람 속에서
    첫겨울 비
    수원지방
    늦여름 오후에
    어떤 가야산
    마음經 13
    마음經 45
    마음經 59

    공광규
    고독사에 대한 보고서
    그러거나 말거나
    평사리에서
    편종
    나무

    김승희
    꽃들의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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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코프,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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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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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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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살 - 최승자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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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rd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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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수족
    별빛의 시작

    함민복
    검은 개
    반달
    있음에 대하여
    달력
    한밤의 화살표 - 화살표 외전 3

    [심사평]
    자연과 깊은 현실 문효치 외

    [해설]
    사람살이의 구체에서 써가는
    시간예술로서의 서정시 유성호

    수상소감
    수상자 연보

    홍사용 작가연보
    홍사용 작품연보

    본문중에서

    합덕장 길에서

    아침나절 읍내버스에 어김없이 장짐을 올려주곤 했다
    차안으로 하루같이 그가 올려준 짐들은
    보따리 보따리 어떤 세월들이었나
    저자에 내다팔 채소와 곡식 등속의 낡은 보퉁이들을
    외팔로 거뿐거뿐 들어 올리는
    그의 또 다른 팔 없는 빈 소매는 헐렁한 6.25였다
    그 시절 앞이 안 보이던 것은 뒤에 선 절량(絶糧) 탓일까
    버스가 출발하면
    뒤에 남은 그의 숱 듬성한 뒷머리가 희끗거렸다

    그 사내가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깨빡치 듯 생활 밑바닥을 통째 뒤집어엎었는지
    아니면 생활이 앞니 빠지듯 불쑥 뽑혀 나갔는지
    늙은 아낙과 대처로 간 자식들 올려놓기를
    그만 이제 내려놓았는지
    아침녘 버스가 그냥 지나친 휑한 정류장엔
    차에 올리지 못한
    보따리처럼 그가 없는 세상이 멍하니 버려져 있다

    읍내 쪽 그동안 그는 거기 가 올려놓았나
    극지방 유빙(流氷)들처럼 드문드문 깨진 구름장들 틈새에
    웬 장짐들로
    푸른 하늘이 무진장 얹혀있다
    ('합덕장 길에서' 중에서)

    막상 수상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한동안 당혹스러웠습니다. 여러 해 상 운영에 참여했던 사람인데…… 그런 입장에서 덥석 상을 받는다는 게 왠지 기뻐할 노릇만은 아니다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상 운영에 참여한 게 언젠데 싶었습니다. 벌써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 저쪽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동안 노작문학상은 해를 거듭하며 엄정하고 권위 있는 상으로 우리 문학동네에 우뚝 자리 잡고 있지 않습니까.
    흔히 말합니다. 문학상에는 순일한 문학성만 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운도 일정부분 개입된다고 말입니다. 그 세속적 운이 배제되면 배제될수록 문학상은 더욱 공정성과 권위를 자랑할 터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노작문학상의 문학적 순일성을, 그리고 수상작품의 높은 작품적 완결성을 굳게 믿어왔습니다. 이번 저의 수상 결정도 역시 그러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대략 이렇게 생각을 추스르자 비로소 수상의 기쁨이 왔고 지금도 이 기쁨에 저는 젖어있습니다.
    산골마을로 얼마 전 저는 귀촌을 했습니다. 고향인 동탄(東灘)이 신도시 개발로 더는 머물 수 없는 공간이 됐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저는 제임스 조이스도 헤르만 헷세도 또 마루야마 겐지도 두루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 문청시절 그토록 저의 가슴을 뛰게 했던 시인 작가들을 다시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문학을 위해서는 가족도 고향도 세간의 뭇 인연들도 모두 버린 제임스 조이스에게는 적극 동조합니다. 또 저처럼 산골에서 작품에 몰입한 일본 작가에게는 한결 더 친근함을 느낍니다. 돈, 명예, 권력과는 무관하게 이들은 오로지 자기 문학을 위해,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 모든 것을 걸〔賭〕었지 않습니까. 따지고 보면 이는 일제 강점기 궁핍한 시대에 외홀로 문학과 1대1 맞서 살았던 노작선생의 고매한 문학정신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몇 해 전 시랍(詩臘) 50년을 보냈습니다. 이즘도 저는 작품 활동에 있어서만은 현역이고자 노력합니다. 또 현역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아마 그렇게 마지막까지 저는 시와 함께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와 같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꾸며 제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그것만이 제 나름으로 노작문학상 수상의 과분한 영예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이 상을 제정 운영하는 화성시 관계자 모든 분들에게 그리고 수상의 영예를 저에게 안겨주신 심사위원 여러분들에게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홍신선 (2017 노작문학상 수상시인)
    ('수상소감' 중에서)

    자연과 깊은 현실
    여섯 사람의 심사위원들이 추천한 열세 분 시인들의 작품을 심의하여, 제17회 [노작문학상]의 수상자를 가리는 것이 본심에 주어진 소임이었다. 숙의를 거듭한 끝에, 홍신선 시인의 작품 [합덕장 길에서]를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그 과정의 대강을 밝혀 적는다.
    심사는 조심스런 토론에 여러 차례의 투표를 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니, 결정에 이르는 과정은 다소 험난했다고 해야겠다. 더 적은 투표와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결과를 놓고 볼 때 최선을 선택했다는 건 분명하나, 어떤 방식의 합의였는가도 중요하다. 문학상 심사에서 투표란, 전문성을 총동원하고도 저울의 평형을 무너뜨리지 못할 때 선용해야 할 마지막 방편이다.
    이번 [노작문학상] 본심 진출작들에 한해 주제의식과 표현형식을 간추리면, 한 마디로 서정의 귀환이라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이것이 현재 시단의 흐름과 추세를 두루 비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재래 서정이 노정해 온 정체 또는 답보 상태에 어떤 진전이 있는지 가늠해볼 만한 기회인 듯해 흥미로웠다. 물론, 그 결과를 여기에 다 보고하기는 어렵다.
    공광규, 우대식, 김승희 시인의 노작들에 심사진의 호평이 있었음을 밝혀 둔다. 논의와 투표가 더 진행되면서 이분들은 아쉽게 물려지고, 홍신선 시인과 박성우 시인의 자연 친화적 서정 시편들에 다수의 눈길이 모였다. 요즘 한국시에는 어쩌면 자연과 농경적 삶의 정서가 부족한지도 모른다. 상처 입은 자연의 상상적 향유도 어딘가 미심쩍지만, 있는 자연을 외면하는 것도 어떤 게으름이 아닐까. “나의 방의 옆방은 자연”([이사])이라고 김수영은 적은 바 있다.
    박성우 시인의 시편들은 이 ‘잊혀진’ 세계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탐구를 보여준다. 겸허하고 조심스런 화자가, 이제 더는 시가 나올 것 같지 않은 농촌의 일상을 정성으로 매만진 자취가 행간에 그윽하다. 이 경험의 세목들은 이웃 간의 인정이나 콩 순을 잘라 먹은 고라니나 옥수수에 듣는 비, 또는 유쾌하기도 아프기도 한 비근한 사람살이지만, 이를 처리하는 방식과 솜씨가 감탄을 자아냈다. 어렵지 않은 말 속에 스민 기지와 유머, 그리고 날카로운 아이러니를 보면, 삶에 대한 성의 자체가 곧 시의 방법론이 아닐까 싶어진다.
    홍신선 시인의 근작들에는 도저한 심미 취향과 정신주의의 기품이 어른거렸다. 고전의 갈피들에서 매력적인 인유의 길을 내고, 상상과 현실,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여 생의 깊이를 저울질하는 비범한 응시가 있다. 자연물의 생태나 노경의 심회를 적는 필치는 유연하고도 기민하여, 노익장老益壯이란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게 한다. 여기에 어린 은은한 “허기”가 곧 이분 근작 시편들의 힘일 것이다.
    수상작 [합덕장 길에서]는, 시인에게 앞 세대일 한 불우한 인생의 굴곡진 초상을 소묘하고, 그 죽음을 길에서 조문하는 만가輓歌다. 그의 주름 투성이 삶을 다소 원거리에서 찍던 이 시는, 결구에서 시선을 푸른 하늘의 구름들 너머로 옮김으로써, 생사의 허전한 간격을 유난히 남다른 깊이로 성찰한다. 시의 자연이 곧 깊은 현실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흔연히 수용하게 되는 대목이다. 심사장의 다양한 견해들이 결국 이 한 장면에 수렴되었다 할 것이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제17회 노작문학상 시부문 심사위원회
    문효치, 박대진, 신대철, 김용범, 이영광, 유지선
    ('심사평'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4.02.13~
    출생지 경기도 화성
    출간도서 15종
    판매수 4,284권

    1944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하였으며,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예술대학과 안동대학교, 수원대학교 등을 거쳐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계간 [문학·선]의 발행인 겸 편집인 일을 하고 있으며, 시업에 전념하고 있다.
    1965년 월간 [시문학] 추천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 [서벽당집] [겨울섬] [삶, 거듭 살아도](시선집) [우리 이웃 사람들] [다시 고향에서] [황사바람 속에서] [자화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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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작문학상 운영위원회 [편저]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출간작으로는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다행한 일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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