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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따뜻한, 맑고 고요한 정화섭 시인의 시세계

정화섭 시조의 매력은 샘물처럼 맑고 깨끗한, 순수하면서도 따뜻한 서정시편이 아닐까 싶다. 길가 코스모스처럼 가늘고 여린듯하지만 내면의 정신은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사유와 관조로 흔들림이 없다. 시인은 시로 말한다. 순수하면서도 따뜻한, 좋은 시가 그리울 땐 여기 떨리는 심정으로 12년 만에 내놓은 정화섭 시인의 첫 시조집 『먼 날의 무늬』를 만날 일이다. 가끔은 눈가에 눈물도 맺히게 하는 시편들을 읽으며 “잠시 스쳐가 버린 사람”의 “생의 점을 쳐”보는 일도 조금은 설레고 떨리는 삶을 사는 일이 될 것이다.

정화섭 시인의 첫 시조집 출간의 떨림만큼이나 시인의 시조 또한 잔잔한 울림으로 가슴을 적셨다. 12년의 성과에 걸맞게 견고한 정형성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서정의 무늬를 빚어내고 있다. 마치 불교의 선수행자가 ‘무자화두’를 붙잡고 고난의 길을 가듯 새로운 ‘시조’를 창작하기 위해 정진하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다가왔다. 이는 시인이 꿈꾸는 삶의 방식과도 잘 어우러지는 듯해 더욱 믿음이 가고 정감이 느껴졌다.
시인의 작품 세계는 짧은 시조, 특히 2수 연시조 중심 창작이라는 형식적 특징과 함께 불교적 사유에 기반을 둔 고요의 성찰 시편으로 나눌 수 있으며, 여기에 음악과 어우러져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매력을 더할 수 있을 것 같다.

제1부 수건을 접으며
無자를 생각하는 밤
그리움
먼 날의 무늬
수건을 접으며
껍질 부르튼 나무
먼지에 대하여
헌 책방에 핀 수염가래꽃
석창포를 읽다
술정리 초가
9월의 쪽도리꽃
오리나무
매달린 무덤
돌담
야외수업
걸어가는 가계부

제2부 생각을 긁다
봄날
카페에 불을 켜다
서도역
으아리 그녀
생각을 긁다
입춘의 묵시록
8이 좋다
담밖에 장미
사랑초
생뚱맞은 의문
노란별 수선
꽃누르미
사진, A
비빔밥
황악산을 바라보며
따음표 속의 대화

제3부 야상곡을 그리다
카덴차
스켓송
달에 부치는 노래
무동
패션쇼를 보다
자고새가 있는 밀밭
자클린의 눈물
야상곡을 그리다
김광석 거리에서
글리산도
미술듣기
그림자를 밟고서
천전리 각석
바니타스
잔니스키키를 만나다
블루로드

제4부 잎의 귀
겨울비
순환
뒹구는 모과
경주 남산에서
해약
산사의 여름밤
바다편지
낙조
나를 물들인 은목서
측백수림
대가야 박물관에서
잎의 귀
꽃무릇
경자바위
꽃마실
유지매미
부석사
신문을 보다가
빌렌로로프의 비너스

제5부 원형찾기
떡살
메주
순간 길이 되다
숨김없다
봄맞이 꽃
경포호에서
기생꽃
팔공산 달밤
화엄늪의 겨울
북지장사
붉은 나방
먼 풍경
먼 시간을 두고
원형찾기
규화목
둘레향기
곶감에 분이 나다

해설ㅣ 순수하고 따뜻한, 맑고 고요한 - 정화섭 시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