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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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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승철
  • 출판사 : ㈜ 비아토르
  • 발행 : 2017년 08월 28일
  • 쪽수 : 57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8825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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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 그의 치열했던 삶과 문학과 신앙을 읽다
    _ 순문학과 중간소설, 심리소설과 유머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본 엔도 슈사쿠의 문학과 신앙
    _ 《침묵》 한국어 번역본에서 누락된 <기리시탄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 전문 번역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우리에게는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백색인》과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사일런스>의 원작 《침묵》으로 알려진 엔도 슈사쿠의 문학세계를, 그가 평생 치열하게 고뇌했던 ‘기독교의 아시아적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조망한 책.

    엔도 슈사쿠는 1947년 첫 평론 <신들과 신>을 발표한 이래, 199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총 51권 분량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모두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체험이나 신앙 역정을 녹여낸 작품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작품들은 문학으로서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엔도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해보는 가운데 신을 만나려고 하는 시도가 다름 아닌 종교이고 신앙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자신의 인생을 반추해본다는 것은, 우리를 스쳐지나간 존재들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흔적을 되새김질해보는 일이라는 것이다. 상처와도 같이 우리 몸과 영혼에 남아 있는 그 흔적이 우리에게 버림을 받았던 이들이 느꼈을 아픔으로 다가와 되살아날 때, 그 흔적은 우리를 신에게로 인도하는 창이 된다고 엔도는 강조한다.

    이 책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은 스위스 바젤 대학교에서 “기독교 신학과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의 선불교 사상과의 대화”를 다룬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는 등 ‘아시아적 기독교의 형성’이라는 문제에 천착해온 개신교 신학자 김승철 교수가, 평생을 ‘일본적 영성과 서구의 기독교’를 자신의 영혼 속에서 연결하기 위해 분투한 가톨릭 작가 엔도 슈사쿠의 삶과 문학세계, 그리고 그의 신앙 역정에 대해 탐구한 기록이다.

    출판사 서평

    “나는 전향하였다. 그러나 내가 신앙을 버린 것이 아님을 당신은 아신다”
    _ 엔도 슈사쿠의 문학, 인간의 연약함과 비겁함에 대한 끝없는 연민


    엔도 슈사쿠는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꼽힌다. 영국의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은 엔도를 “20세기 가톨릭 문학에 있어 누구보다도 중요한 작가”라고 평하기도 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수차례 거론된 그는 아쿠타가와상(《백색인》, 1955)을 비롯해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침묵》, 1966), 신초샤문학상(《바다와 독약》, 1958), 마이니치예술상(《깊은 강》, 1994) 등 일본 유수의 문학상을 두루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침묵》, 《예수의 생애》, 《깊은 강》, 《내가 버린 여자》 등 소설뿐만 아니라, 《인생에 화를 내봤자》,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등 산문도 다수 번역·소개되었다. 2017년에는 미국의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그의 대표작 《침묵》을 영화화한 <사일런스>가 상영되기도 했다.

    엔도 슈사쿠가 이처럼 국내외에서 광범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그의 작품들이 인간의 어둡고 약한 측면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공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슬픔에 공감하는 그의 자세는, 약자들의 잘못된 선택을 심판하고 벌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 예수’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고난을 당하며 끝까지 함께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한 예수’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엔도의 문학은 그가 평생을 바쳐 서구의 기독교와 아시아의 정신 사이의 ‘거리감’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변모해갔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서양인의 안경을 통해서’ 그 거리감을 극복해보고자 했다. 두 번째 단계에서 그는 그런 서양인의 시각 자체가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그런 거리감을 있는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서구적 사고의 용광로 안에서 만들어진 기독교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실감하는 예수’를 붙잡기 위해 시도하는 단계다.

    오랜 여정을 거쳐 도달한 《깊은 강》(1993)에서, 엔도는 마침내 ‘이름 없는 그리스도’, 무어라 불려도 좋은 ‘이름 없는 신’을 만나게 된다. 한없이 약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밟음으로써 존재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신은 스스로를 밟도록 허락함으로써 존재케 한다. 우리에 의해 밟힘으로써 우리를 존재케 해주는 사랑의 존재, 온 우주가 다름 아닌 신이다. 그러므로 신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가 도처에서 밟으면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신의 흔적인 것이다.

    “나의 양복을 나에게 맞추고자 하는 노력이…… 나의 소설이 되어야 한다”
    _ 엔도 슈사쿠의 삶과 신앙 역정, ‘비자발적’ 세례와 ‘몸에 맞지 않는 양복’, 유학생활과 병상체험


    엔도 슈사쿠는 열두 살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세례를 받았다. 이 ‘비자발적’인 세례, 즉 자신의 결단에 따라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평생의 고뇌가 되었다. 그는 이 세례를 “나는 어머니로부터 기성복을 받은 셈이었다. 이 양복을 입어보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양복이기 때문에, 일본인인 나의 몸에는 맞지 않았다. 어떤 곳은 짧고 어떤 곳은 길었다”고 말한다. 그는 몇 번이고 이 ‘몸에 맞지 않는 양복’을 벗어버리려고 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가 목숨을 바쳐 중요하게 여겨온 것을 버림으로써 어머니를 배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엔도 슈사쿠는 전후 최초의 유학생으로 1950~1953년 프랑스에서 유학했다. 이 유학체험을 통해 엔도의 기독교와 서구에 대한 거리감은 더욱 확연해졌다. 황색인과 백색인 사이의 거리, 일본적 영성과 기독교 신앙 사이의 거리가 관념화된 것이다.

    엔도는 유학생활 중 폐결핵을 얻어 프랑스에서 치료를 받다가 귀국했다. 이때의 병상체험이 그에게 이성적·관념적이 아닌 실존적인 신앙을 형성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1960년에는 폐결핵이 재발해 세 차례의 대수술을 받았고, 2년 반에 걸친 긴 병상생활을 해야 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 엔도는 “신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을 느꼈고, “신이 존재한다면 왜 침묵하고 있는가” 묻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엔도는 “기독교가 유럽만의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즉, 양복만이 아니다, 일본옷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퇴원 후 ‘신은 침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침묵하고 계시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 《침묵》이 되어 나왔고, 가장 약하고 비겁한 자까지도 감싸안아주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한 예수의 모습이 탄생한 것이다.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엔도 슈사쿠의 문학과 신앙
    _ 순문학과 중간소설, 심리소설과 유머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읽다
    _ 《침묵》 한국어 번역본에서 누락된 <기리시탄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 전문 번역
    _ 70여 장의 사진으로 만나는 엔도 슈사쿠의 문학세계


    이 책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은 일본의 가톨릭 대학인 난잔(南山) 대학에서 인문학부 교수이자 난잔종교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개신교 신학자 김승철 교수가, 20여 년에 걸쳐 엔도 슈사쿠의 삶과 문학세계, 그리고 신앙 역정에 대해 탐구한 기록이다.

    신앙과 인생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순문학 작품에서부터, 통속소설적인 형태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익명의 그리스도를 그려낸 중간소설,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파헤친 심리소설, 그리고 분뇨담(糞尿譚, 똥과 오줌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장르에 걸친 엔도의 작품들과 그 안에 담겨진 신학적인 의미를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에는 그동안 한국어 번역본에서 아예 누락되었던 《침묵》의 결론 <기리시탄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 전문이 번역, 수록되었다. 이 <관리인의 일기>는 엔도 스스로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그런데 대부분의 독자들이 읽지 않고 그 바로 앞부분에서 책을 덮어버린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관리인의 일기>는 《침묵》의 최종적 결론이자 대단원으로, 주인공 로드리고의 배교 후 삶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읽어야만 ‘신의 침묵’의 참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또한 70여 장의 사진이 수록되었다. 엔도문학관에서 제공받은 어린 시절 엔도와 어머니의 사진으로부터 각종 작품의 표지, 저자가 직접 찍은 주세페 키아라(로드리고의 실제 모델)의 묘비 사진까지, 다양한 이미지로 엔도 슈사쿠의 문학과 신앙을 만날 수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I.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새롭게 읽다

    1. 흔적과 아픔의 문학


    《침묵》의 결론으로서 <기리시탄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

    ‘흔적’의 문학과 ‘당의정적’ 글쓰기

    영혼의 여정으로서 엔도의 문학

    2. <기리시탄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 번역과 주해

    주세페 키아라의 후반생

    <기리시탄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 전문 번역

    II. 어머니와 ‘비자발적’ 세례

    1. ‘어머니’라는 원체험


    어머니, 아들, 그리고 다롄

    육친의 어머니로부터 ‘어머니 되시는 분’으로

    2. 초기 평론의 세계, ‘거리감’이라는 문제와의 씨름

    ‘비자발적 세례’와 ‘몸에 맞지 않는 양복’

    가톨릭 문학과 거리감의 문제

    거리감 극복과 구원의 문제

    3. 프랑스 유학과 프랑수아즈

    유학, 유럽과 일본의 거리

    프랑수아즈 파스트르

    4. 육욕과 악에서 영원으로, 사드와 기독교

    마르키 드 사드와 기독교

    도달할 수 없는 ‘사드의 성’

    III. 기독교 신앙의 가능성을 찾아서

    1. 《백색인》과 《황색인》의 세계


    신의 음화로서의 악, 《백색인》의 세계

    피로와 모호함, 《황색인》의 세계

    2. 《바다와 독약》과 ‘무관심’이라는 죄

    “신이 있어도, 없어도, 아무래도 좋아”

    일상과 초월

    ‘삼분법의 눈’

    3. 바보행전1, 《위대한 바보》와 《슬픔의 노래》

    가스통은 왜 일본에 왔을까?

    신주쿠와 예루살렘

    4. 바보행전2, 《내가 버린 여자》

    지극히 평범하며 나와 같이 약한 사람, 모리타 미쯔가 사는 세계

    한센병과 고야마부활병원

    IV. 어머니의 얼굴을 한 예수

    1. 《침묵》에 이르는 길, 단편집 《애가》와 후미에 체험

    《애가》 속 단편들

    후미에와 춘화, 그리고 어머니

    2. ‘침묵’ 이전의 《침묵》, 《침묵》 이후의 ‘침묵’

    ‘양지의 냄새’, ‘침묵’ 이전의 《침묵》

    <기리시탄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 《침묵》 이후의 ‘침묵’

    3. ‘아버지의 종교’에서 ‘어머니의 종교’로

    그리스도의 얼굴의 변용

    엔도와 페헤이라, 이노우에, 로드리고, 그리고 기치지로

    4. 《사해의 언저리》와 《예수의 생애》

    이중소설 《사해의 언저리》, 예루살렘과 신주쿠

    ‘동반자 예수’의 형성

    에텔베르트 슈타우퍼와 《예수의 생애》

    5. 역사소설의 세계1, 회한을 지닌 자의 기도

    왜 역사소설을 쓰는가?

    고니시 유키나가의 면종복배와 회한

    6. 역사소설의 세계2, 순교자 베드로 기베

    유럽의 일본인 유학생들

    《총과 십자가》, 교회와 예수 사이의 거리

    7. 역사소설의 세계3, 《사무라이》

    “하세쿠라는 바로 나다”

    세례라는 비적의 은총

    V. 우리 영혼의 깊은 강

    1.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끌어올린다”1, 《여자의 일생》


    ‘나의 마음의 고향’ 나가사키

    기쿠와 사치코, 그리고 성모 마리아

    2.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끌어올린다”2, 《깊은 강》

    어머니의 젖처럼 풍요롭게 흐르는 갠지스강

    오쓰와 미쯔코

    차문다, 고난받고 계시는 ‘어머니 되시는 분’

    3. ‘인간 속의 X’, 심리스릴러의 세계

    인간의 어두운 내면세계를 파헤친 심리소설

    무의식과 그림자

    아버지와의 화해

    성성과 악마성

    4. 유머의 세계

    버려진 것들에 대한 관심1, 분뇨담

    버려진 것들에 대한 관심2, 《소설 인생상담》

    5. 엔도 문학의 결정

    ‘존재의 성화’로서의 글쓰기

    밟힘과 밝힘, 밟힌 자가 밟은 자에게 길을 밝혀준다

    후기

    엔도 슈사쿠 주요 연보와 작품

    주요 참고자료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신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비하며, 그분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스스로를 우리에게 내어주셨으며, 그분은 그분이 침묵하고 계실 때조차 모든 곳에 임재해 계신다. 《침묵》은 이러한 사실을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몸으로 체험해서 알게 된 한 사나이의 이야기다. (마틴 스코세이지) _8쪽

    우리가 누군가와 만날 때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게 된다고 엔도는 반복해서 말한다. 더욱이 그 흔적이 ‘아픔’으로 경험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신을 보도록 해주는 창이 된다. 앞서 엔도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의 인생은 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때 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인생에 남겨진 흔적인 것이다. _28쪽

    나의 세례를 예를 들어서 말한다면, 나는 어머니로부터 기성복을 받은 셈이었다. 이 양복을 입어보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양복이기 때문에, 일본인인 나의 몸에는 맞지 않았다. 어떤 곳은 짧고 어떤 곳은 길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벗어버렸지만, 그렇게 되면 벌거벗을 수밖에 없었다. 달리 입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의 양복을 나에게 맞추고자 하는 노력이 나의 소설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어머니가 주신 양복을 일본인인 나의 몸에 맞는 일본옷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엔도 슈사쿠) _89쪽

    저는 가톨릭 신자였기에, 철이 들면서부터 신의 문제를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후에 외국 문학을 배우면서도 신의 전통이 긴 백색인들의 세계와 신이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황색인들의 세계 사이에서 언제나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분열은 프랑스에 가면서부터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엔도 슈사쿠) _165쪽

    서구 기독교와 일본적 영성 사이의 ‘거리감’으로 말미암아 방황하던 젊은 날 엔도의 고뇌는, 그런 ‘거리감’의 원인을 대비시켜 객관화한 《백색인》과 《황색인》을 통해서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 여기서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은 그러나 엔도에게는 또 하나의 새로운 자각의 세계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그 자각이란, “일본인은 이미 일본인으로서, 기독교의 전통과 역사와 유산과 감각도 없는 이 일본의 풍토를 등에 지고서,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자각, 즉 일본인은 일본인으로서의 ‘정신과 육체라는 십자가’를 짊어지면서 기독교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체적 자각을 의미한다. _176쪽

    ‘중간소설’이란 평범한 일본인들의 일상에서 일본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익명의 그리스도를 그려내는 작업을 가리킨다. 성과 속을 둘러싼 엔도의 실재 이해, 즉 일상(俗) 속에 숨어 존재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거룩함(聖)이라고 하는 현실 이해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_201쪽

    “당신이 아무리 예수라고 해도 나를 구원하지는 못할 거요. 지옥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야말로 거기에 갈 사람일 거요.”

    “아니요. 당신은 그런 곳에 가지 않아요.”

    “어째서요?”

    “그대가 괴로워했던 것,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그것으로 충분하오.” 《위대한 바보》 _219쪽

    누군가 불행한 것은 슬프다. 지상의 누군가가 괴로워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가 버린 여자》 _232쪽

    《내가 버린 여자》의 주인공 이름 ‘미쯔’는 ‘죄(罪)’의 일본어 발음인 ‘쯔미’를 거꾸로 읽은 것이다. 다시 말해, 버림받은 미쯔는 그녀를 버린 사람에게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거울이며, 그래서 비인간화의 낭떠러지에서 마지막으로 그들을 구원해줄 가능성인 것이다. _238쪽

    배교자에 대해 엔도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교리적인 흥미나 신앙적 영웅에 대한 흠모 때문이 아니라, 배교자에게서 자기 자신의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서구적 기독교와 일본적 영성 사이에서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엔도에게, 신앙을 지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벗어버리지도 못한 배교자의 고뇌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엔도 문학의 근본 모티프가 된 ‘거리감’이 객관적이고 방관자적인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과 존재의 내면에서의 갈등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배교자의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갈등은 기독교가 일본이라는 땅에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변형의 전주(前奏)이며 “신이 일본에게 준 십자가”라고도 하겠다. _258쪽

    《침묵》 책이 출판되고 나서 일본의 독자들과 평론가들은 “이것은 신의 침묵을 묘사한 작품”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나의 의도는 “신은 침묵하고 계시지 않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침묵의 소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침묵’이었다는 말이다. 소설의 제목이 오독(誤讀)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었다는 말인데, 그런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나의 잘못이었다. (엔도 슈사쿠) _281쪽

    하느님의 사랑은 그러므로 보상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하느님은 믿는 자는 그의 믿음으로, 믿지 않는 자는 믿지 않는 그대로 구원하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하느님인 것이다. 선한 사람은 그가 선하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를 구원하시기 때문에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이 선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은 그의 선함이라는 이유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악인도 그가 악하다는 이유로 말미암아 하느님에게 버림을 받지 않는다. 악인 역시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가쿠레 기리시탄의 마리아> _310쪽

    제자들이 예수의 사랑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사랑이란 현실에서는 무력하기 때문이었다. “신의 사랑이란 현실에 살고 있는 인간의 눈에는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엔도는 썼다. 우리 눈에 직접적인 것은 싸늘한 현실이고, 또 신의 냉담한 침묵뿐이다. _335쪽

    몇 년 전 나는 고니시 유키나가라는 무장의 전기를 썼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에 있던 다이묘 가운데 이시다 미쓰나리나 가토 기요마사와는 달리, 그에 대해서 쓴 자료도 적고 연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이 무장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외면적 행동과 내면의 마음 사이에 있었던 큰 차이, 권력자인 히데요시에 대한 면종복배(面從腹背)의 자세, 즉 이중생활자로서의 그 삶의 방식에 흥미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는 유키나가 속에서 때때로 나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해내고, 나 자신의 분신을 발견했다. (엔도 슈사쿠) _356쪽

    하지만 기쿠는 성모도 사랑한 사람을 타인에게 빼앗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녀가 사랑한 사람도 역시 세기치와 마찬가지로 체포당하고, 채찍을 맞고, 피를 흘리고, 십자가 위에서 죽어간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여자의 일생》 _430쪽

    “어머니의 젖처럼 풍요롭게 강이 흐르는” 갠지스강에서 엔도가 본 것은 어쩌면 에게해의 태양이 내리쪼이는 그리스의 언덕에서 기독교로 착색되기 이전의 그리스 정신을 다시 발견하고서 유럽의 원천에 맞닿은 희열에 가득 찼던 유럽인들의 향수와 같은 유의 것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내용에서는 문자 그대로 동과 서만큼의 거리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엔도가 갠지스강에서 발견한 것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아시아적 혈액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엔도는 자신이 시종일관 추구해오던 ‘존재의 성화’가 실현됨을 목도함과 동시에, 일본적 영성과 서구적 기독교 사이의 ‘거리’가 합일됨을 체험했다. _446쪽

    “미안합니다. 그 말이 싫으시다면 다른 이름으로 바꿔도 좋아요. 토마토도 좋고 양파라도 좋고요.

    “그래 당신에게 있어서 양파가 대체 뭐예요. 옛날에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해놓고. 신은 존재하는가, 라고 누군가 당신에게 물었을 때 말이에요.”

    “미안합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그때는 잘 몰랐어요. 하지만 지금은 나 나름대로는 알고 있습니다.”

    “하면…….”

    “신은 존재한다기보다 작용하고 있습니다. 양파는 사랑이 작용하는 덩어리지요. …… 양파는 어떤 장소에서 버림받은 나를 어느 순간엔가 다른 장소에서 살게 해주었습니다.” 《깊은 강》 _457쪽

    《침묵》에서 엔도는 일본이라는 늪지대에 “한 발을 담금으로써” 서구적 기독교로부터의 일탈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의 한 발은 여전히 강 밖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모습을 한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시아적인 그에게는 여전히 객체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엔도는 《깊은 강》에서 나머지 “다른 발도 담갔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제 그리스도마저도 그 이름을 잃어버리고 무명의 존재가 되었다. 그리스도는 이름이 없는 “양파”로서 부활한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이제 그리스도는 온 우주에 편만한 생명이 된 것이다. 엔도의 밖에서 무한한 거리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던 서구적 그리스도는 후미에가 되어 밟힘으로써 엔도의 내면에 새겨졌고, 이제 다시 갠지스강에서 이름 없는 ‘양파’로 부활해 온 우주에 편만한 생명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양파’에게는 내?외도 없고, 동?서도 없다. _470쪽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애정의 표현으로서의 유머가 자신을 상대방보다 낮추고 스스로를 비우는 것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자신을 상대방보다 낮추고 비운다는 의미의 ‘케노시스(kenosis, 빌 2:7)’를 연상할 수 있다면, 다른 이와의 연대 가능성을 제기하는 유머는 신 자신이 스스로를 비워서 인간의 자리로 낮아졌다고 하는 그리스도적 존재 양태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타인과의 연대는 타인을 이해함에서 성립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인보다 ‘낮은 곳에 서는 일(under-stand)’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상대방보다 낮은 위치에 자신을 두는 일의 극한은 스스로를 모든 것으로부터 버려진 것의 위치에 두는 것이다. 엔도에게 그것은 모든 생명체로부터 버림받음으로써 역으로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 표현되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분뇨담(糞尿譚, scatology), 곧 ‘똥과 오줌에 대한 이야기’다. _524쪽

    ‘동반자 예수’는 인간의 현실을 무시하고 뛰어넘음으로써가 아니라, 그 현실의 피할 수 없는 존재구조 속에서 늘 버림받는 자 쪽을 담당함으로써 버림받은 자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_547쪽

    엔도의 작품은 일관되게 ‘어머니 되시는 분’에 의해 그 분위기가 지배된다. 거기에는 약자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배려, 비겁한 자와 겁먹은 자에 대한 부드러운 위로가 있다. (……) 뿐만 아니라 엔도에게는 버림받은 자의 아픔을 지켜보는 또 다른 눈길이 있다. 바로 그리스도의 눈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버림을 받고, 배신을 당하고, 밟히면서 우리를 살리는 분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의 계시를 본다는 말은 결국 버림을 당한 자는 자신의 밟힘을 통해서 자기를 버린 자를 밝힌다고 하는 종교적인 자각으로 확대된다. 버림을 받고 밟힌 자가 버리고 밟는 자에게 신을 밝혀주는 계시가 된다는 구도가 엔도의 작품을 면면히 흐르고 있는 기본 도식이다. _549쪽

    우리에게 밟히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이기적 현실을 밝혀주는 존재다. 그리고 우리에게 밟히는 익명의 무수한 존재들은 실은 우리의 끝 간 데 모르는 이기주의를 사랑의 눈으로 밝혀주어 신에게로 인도하는 익명의 그리스도인 것이다. _5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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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89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 신학부에서 기독교 신학과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의 선불교 사상과의 대화를 다룬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귀국 후 부산신학교에서 가르쳤다. 2001년 일본으로 건너가 긴조가쿠인(金城?院) 대학 교수로 있다가, 2012년부터 난잔(南山) 대학 인문학부 교수, 난잔종교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자연과학, 특히 생물학이나 유전공학이 기독교 신앙과 어떤 관련성을 갖는지 연구하는 한편 기독교, 불교, 자연과학의 세계관을 통합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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